이드 2부 – 616화
1051화
공연장에는 엄청난 인파가 모여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축제 아닌 축제에서 광장의 축제 준비 쇼와 함께 가장 인기 있는 볼거리란다. 거기에 관람비도 토벌대가 돌아오는 날까지 정가의 절반인 데다, 재미있다고 소문도 났다.
사람이 모이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걸 감안해도 사람이 너무 많은데.”
“히잉~ 여기서는 못 볼 것 같아요.”
이제 막 시작한 공연. 하지만 앞자리는 고사하고 앉아서 볼 만한 자리도 없었다.
울상을 한 케마란에 네리베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누군가를 불러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말했다.
“귀빈석에 자리가 몇 개 있다고 합니다. 대신 비싸요. 이만큼・・・・・・”
이드는 네리베르가 펼친 손가락에 놀라 휘파람을 불었다.
동시에 일반 관람비를 절반으로 깎은 부분에도 납득이 갔다.
그 정도 값이면 귀빈석만 잘 팔려도 할인 금액의 손해를 넉넉히 메우고도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반값의 관람비도 극단의 서비스가 아니라 흥을 돋우기 위해 사람 수를 채우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무래도 공연이란 것이 같이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흥과 재미가 더해지니 말이다.
“제일 좋은 자리로 달라고 해.”
이드는 망설이지 않고 주머니를 열었다. 이럴 때 쓰기 위해 챙겨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확보한 귀빈석은 과연 비싼 값을 했다.
편하고, 화려했으며, 전담 하인까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연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렇다. ‘나름’ 말이다.
공연장을 나서는 이드와 일행의 표정은 묘했다. 무언가 어이없다는 얼굴들이었다.
“저기 어떠…… 셨어요? 하인들에게 듣기로는 토벌대의 활약상을 그린 연극이라고 했는데………….”
케마란이 이드와 일리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가장 열심히 연극을 보자고 주장했던 만큼 그들의 반응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가요? 분명히 말해 이 연극은 사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이 답하기 전 네리베르가 먼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분노했다. 그에 옆에 있던 일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마지막을 제외하면 전부 제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니까요.”
다시 말해 한 장면을 제외하면 모두 꾸며 낸 내용이란 뜻이었다.
토벌대의 일원으로서 힘든 전투를 벌였던 네르베르의 입장에선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저런 ‘가짜’를 가지고 토벌대의 이름값을 팔아먹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유일하게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조차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었다.
다름 아닌 이드와 메르시오의 싸움이었다.
토벌 중 있었던 다른 사건들과 달리 워낙 충격적인 규모였기 때문일까.
이 전투에 대한 소문만은 이미 제국 전역을 거처 다른 나라에까지 알음알음 퍼지고 있는 상태였다.
다만 소문이란 것이 대부분 그렇듯, 이 역시 당시의 모습을 온전히 담지는 못했다. 당장 수도에 퍼진 것만 해도 사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소문을 근거로 연출된 장면이 온전히 진실을 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 결국 결론은 이 연극이 99.8% 가짜라는 것이다.
네리베르가 다음 공연을 준비하는 공연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토벌대가 도착하면 연극이 가짜라는 건 바로 들통 날 텐데 말이에요.”
그에 이드가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겨우 연극이란 거지. 어쩌면 내용을 수정했다면서 관람객들을 다시 보게 만들 속셈인지도 모르고.”
“그건 진짜 사기잖아요!”
네리베르가 발끈했다.
평소 똑똑한 그녀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세상 경험이 미숙함이 드러난다.
아무렴 수도에서 연극을 하면서 이런저런 대비 하나 해 두지 않고 일을 벌였을까.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겨우 연극의 내용을 가지고 문제 삼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일단 연극은 재밌었잖아. 사람들도 큰 불만은 없을걸? 일리나는 어때요?”
“저는 재미있었어요. 내용도 흥미롭고.”
“그렇죠?”
“아무래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을 연극으로 다시 본다면 지금처럼 흥미롭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봤지?”
“으…….”
네르베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본인의 생각과 다른 세상이 분한 모양이다.
이드는 그런 네리베르를 뒤로 하고 케마란을 찾았다.
“자~ 다음엔 어디야?”
“어・・・・・・ 그러니까 다음은………….”
그에 세 사람과 한 발 떨어져 안도하고 있던 케마란이 깜짝 놀라 허둥댔다.
그 모습이 한심했는지 네리베르가 나서 다음 목적지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그에 일리나에게 결정권을 넘기고 물러서 있던 이드는 문득 잊고 있던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내일부터 지옥이란 건 무슨 말이야?”
“네? 제가요?”
멍청한 얼굴로 묻는 케마란. 술에 취했을 때 일이라 바로는 기억나지 않는 것 같다.
“그래. 네가 술에 취해서 그렇게 말했거든. 그래서 나가 놀아야겠다고.”
정확히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기억이 떠오른 모양인지 케마란의 얼굴색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으으~ 기억나 버렸어요. 다시 재미있게 놀려고 마음먹은 순간에………… 너무하세요.”
“뭔데?”
잘 보면 케마란 뿐 아니라 네리베르의 얼굴도 굳어 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두 사람의 반응이 이럴까?
호기심이 더해진 이드가 재촉하자 케마란이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부터 검후 님이 직접 수련을 봐준다고 하셔서 그래요.”
“그게 왜 지옥이야? 좋은 일이잖아.”
기사들. 특히 여기사들에게 검후는 영원한 우상이 아닌가. 그녀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는 건 단순한 영광 이상의 일일 것이다. 기사로서도, 무인으로서도 말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언니 기사들은 수련이 시작되는 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될 거래요. 그러니 마지막을 즐기라면서.”
“그거 너희들 놀리려고 그런 거 아냐?”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얘 말이 그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말과 함께 케마란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자 네르베르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이 끝난 후에 가끔 언니 기사들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울었다고? 저 은색 기사단 기사들이?”
끄덕.
이드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그 철의 여기사들이 울었다니.
몇 번의 전투를 함께하며 그녀들이 얼마나 독한지를 보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도대체 무슨 수련을 어떻게 하기에 그 악바리 같은 기사들을 울릴 수 있는 걸까?
좌우간 그런 이유라면 케마란과 네리베르의 안색이 좋지 않은 이유도 납득이 갔다. 그녀들이라면 이드 이상으로 은색 기사들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무슨 수련을 하는지는 모르고?”
도리도리.
“알면 더 괴로울 거라고 말해 주지 않으세요. 그래서 말인데요, 마스터.”
“왜?”
“내일 수련 보러 와 주시면 안 될까요?”
와서 검후의 폭주를 막아 달라는 것 같은데. 이드는 케마란이 우물쭈물하며 꺼낸 말에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으…… 아니요.”
“그래. 잘 생각했다.”
이드는 고민 끝에 고개를 숙인 케마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아무렴 무인이 수련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검후가 하는 일이다. 힘들지언정 몸이 망가지거나, 잘못된 길을 갈 걱정이 없다. 아직 가야할 길이 까마득한 무인에게 이보다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
아마 말만 하면 눈물이 아니라 피를 토해도 좋으니 수련을 받게 해 달라고 할 사람이 구름처럼 모여 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전에도 들러 볼까?”
“신전에는 왜요?”
“너희들 선물로 포션을 좀 사려고. 지옥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통과하려면 필요하지 않겠어?”
“……그럴까요?”
수련은 싫으면서도 그에 대비한 신전에는 관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그럼 다음 들를 곳은 신전으로 결정. 가자!”
이드는 두 사람의 등을 떠밀며 이동했다.
수도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저 멀리 보이는 신전도 분위기를 탄 듯 화려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나름 볼거리가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이드까지 더해져 기분을 내고 있는 수도에 두 사람이 새롭게 발을 들였다. 그들은 수도의 분위기가 신기한 듯 정신없이 주변을 살폈다.
“여긴 올 때마다 분위기가 좋아. 우리가 최강이다. 그런 자부심이 느껴진달까.”
그중 한 사람, 큰 모자로 황금색 눈동자를 가린 라울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악사와 구경꾼들을 보며 말하자 일행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 규모야 어떻든 토벌이 성공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안티로스에는 언제 또 다녀가셨던 겁니까?”
“왜, 엄청난 사건 하나 있었잖아.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이드 명예 후작 말이야. 얼굴을 직접 한번 보고 싶더라고.
위로 올라간 눈꼬리 덕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한 남자는 그 말에 애원하듯 말했다.
“정말 신출귀몰하십니다. 어딜 그렇게 쉬지도 않고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제발 조심 좀 해 주십시오. 라울 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바벨이 흔들립니다.”
“흐~ 걱정 마라. 나 없어도 바벨은 잘 굴러가니까. 그보다, 어때? 감지되나?”
라울의 말에 남자는 무언가를 느끼려는 듯 두 손을 펼치고는 천천히 한 바퀴를 돈 후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정도로 느낌이 없는 걸 보면 차단된 것이 아니라 파괴된 쪽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부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명예 후작이 가진 다양한 무공이라면 가능성도 있고요.”
“아니, 확인하기 전까지는 단정하지 마. 정말 아쉬워. 생존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렇게 답답할 일도 없는데.”
라울은 답답함에 땅을 찼다.
쉐어 가든이 공격받고 검후를 빼앗겼다는 보고에 급히 나섰다.
그러나 그가 확인한 것이라고는 폐허가 된 쉐어 가든과 그곳을 조사 중인 마스의 기사와 마법사들, 그리고 시신만을 남긴 바벨의 초인들이 다였다. 시간이 있었다면 좀 더 자세히 조사하고, 그들의 시신도 챙겼으리라.
그러나 당장 검후를 쫓아야 했던 그는 자세한 사정을 뒤로하고 지금 이곳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바벨의 보고는 그에게 닿았고, 자연스레 쉐어 가든을 폐허로 만든 전투에서 나타난 신랑의 존재도 알게 된 상태였다.
그로서는 아쉽게도 마스가 철저히 관리한 은색 기사단의 존재는 보고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드와의 연관 관계를 떠올리기에는 부족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검후를 쫓아 도착한 곳이 바로 여기, 안티로스이지 않은가.
남자는 그럼에도 확신하지 않는 라울이 조금 답답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라울은 상사고, 그는 라울의 부하인 것을.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확인은 끝까지 마쳐야지. 방향 잡아 봐.”
“예. 예.”
라울의 재촉에 사방을 둘러본 남자가 한쪽으로 방향을 잡아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봉인의 존재를 감지한 방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