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24화
1059화
같은 날 밤. 이드는 지하실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자의가 아니라 검후의 요청으로 끌려온 것이었다.
이드는 오늘은 쉬기로 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기사들의 하루는 지났고, 밤인 지금은 제 수련 시간이니 괜찮아요.’
검후는 이리 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생긋 미소를 보이는 중에도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건 그녀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낮에 있었던 이드의 장난의 영향 때문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오늘은 쉬는 게 좋지 않을까?”
“이게 누구 때문인데요.”
끙끙거리는 검후의 말에 할 말을 찾지 못한 이드는 볼을 긁적였다.
현재 검후를 괴롭히는 있는 기맥통은 기맥 과부하에 따른 것으로, 쉽게 말하면 일종의 전신 근육통 정도가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진기도인 전용 마사지기가 될 위험을 감지한 이드가 검후가 기대하는 진기도인에 역근의 비결을 더해 기맥과 근육을 꼬집고, 비틀어 괴롭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수법은 일반적인 진기도인 이상의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 받으면 좋기는 하다.
문제는 지금 검후가 앓고 있는 것과 같이 강력한 후유증이 남는다는 점이다.
그런 이유로 검후는 진기도인을 받는 중에 한 번, 그리고 받고 난 후 또 한 번 원망을 가득 담아 이드를 노려봤었다.
물론 이드는 순진한 눈으로 이게 몸에 더 좋아서 신경 좀 썼다며 뻔뻔히 대답했지만 말이다.
좌우간 그렇게 골탕을 먹은 검후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 이드는 그녀가 설마 같은 날 다시 부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때도 말했지만, 그게 후유증은 있어도 몸에는 더 좋다니까. 그런데, 정말 그 상태로 대련을 하겠다고?”
“왜요. 이 상태로 대련을 하면 탈이라도 나요?”
설마 그렇게 위험한 짓을 한 겁니까’ 하고 묻는 듯한 새초롬한 눈길에 이드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농담으로라도 그렇다고 했다가는 지금도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쉴라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그런 거면 애초에 안 하지. 그거, 그냥 근본적으로 근육통하고 비슷해. 힘들긴 해도 일단 뭐라도 하려면 할 수 있잖아. 그리고 움직이고 나면 좀 더 힘이 붙고, 대신, 절대 자주 할 건 아니고.”
이드는 설명에 더해 조건을 붙였다. 진기도인과는 다른 의미에서 이걸 자주 요구하는 건 곤란하니까.
귀찮거나 수고스러운 걸 떠나서, 정말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관없네요. 아니, 오히려 반갑죠. 언제나 최고의 상태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것도 수련이죠.”
“그렇기는 하지.”
아무래도 절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쩔 수 없겠다 싶어 원하는 대로 대련을 위해 일라이져에 손을 가져다 대던 이드는, 돌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자신과 함께 내려온 일리나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일리나가 검을 좀 빌려줄래요?”
“일라이져를 쓰지 않으려고요?”
“본인이 오늘은 좀 괴롭고 싶다니까 그렇게 해 주려고요. 일라이져에도 익숙해졌으니, 다른 검으로 거리 차를 좀 주는 것도 괜찮겠죠.”
뭔가 흉흉해 보이는 눈빛으로 일라이져 대신 일리나의 검을 받아 드는 이드다.
“잠깐만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한 적은 없단 말이에요!”
그에 검후가 반발했지만, 이드는 이미 듣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대신 오늘도 역시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을 향해 돌아섰다.
일리나를 제외한 검후 껌딱지 쉴라와 스폴, 그리고 막내 이인조 케마란과 네리베르 네 사람 말이다.
평소엔 다른 기사들도 참관이 허락되었지만, 휴식을 명령받은 관계로 오늘에 한해서 그들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다만 여기 네 사람은 이런저런 의미로 제외되었다고 할까. 그중 가장 큰 공통점은 크고 작은 형태로 난화십이식을 익히고 있다는 것이다.
검후가 익힌 무공은 다양하다. 시작은 이드가 전수한 것이지만, 그걸 발전 응용해서 전 대륙에 알려질 수 있도록 한 사람이 다름 아닌 그녀니까.
하지만 그녀가 가장 심도 깊게 익힌 무공은 난화십이식이었다. 동시에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당연히 이드와 대련에서도 사용했다. 아니, 이드와 같은 강적을 상대로 난화십이식 이외는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옳으리라.
그리고 그런 난화십이식의 대련은 무공을 익히는 사람에게 있어서, 특히 같은 난화십이식의 일초반식이라도 익히고 있는 입장으로는 큰 가르침이나 다름이 없다.
그중 현재 난화십이식 전체를 배우고 있는 쉴라에게는 더욱더 말이다.
“그럼 오늘은 좀 타이트하게 밀어 보자.”
“아니, 제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제 컨디션의 상태에 대해서….. 젠장!”
미끄러지듯 다가온 이드의 검이 산더미 같은 힘을 품고 떨어지자, 검후는 하던 말을 포기한 채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그와 함께 지하실을 울리는 웅장한 종소리.
떠엉!
퍼석.
이드는 검후가 디디고 선 바닥이 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손맛을 보면 알겠지만, 오늘 주제는 패도다.”
“꺄으윽!”
그리고 그 말이 끝난 순간부터, 검후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차고 노는 돌멩이라도 된 것처럼 이드의 공격에 정신없이 튕겨 나가기 바빴다.
이드가 예고한 대로 그의 공격은 지독하게도 강맹하고 무거웠다. 그렇다고 어리석을 정도로 느리지도 않았다. 빠르지 않지만 늙은 곰처럼 교묘하고 음흉했다.
지금까지 짧게나마 경험한 이드의 깔끔하고 담백한 검법과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거기에 검의 길이도 익숙지 않았다.
무기의 길이 따위 이미 보는 순간 분석이 끝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라고 할까.
이드가 평소와 다른 무기를 이용하자 검후도 거리에 깜빡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녀의 옷과 몸에 흙과 상처가 늘어났다.
“으아~ 이드님, 정말 인정사정없으시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검후가 구를 때마다 움찔움찔 몸을 떨어 댔다.
그렇게 얼마의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검후가 바닥을 굴러도 관객들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지 한참 되었을 때였다.
검후는 전신 근육통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일 텐데도 여전히 투지가 빛나는 눈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다시 이드를 향해 검을 들고 서는 순간이었다.
“후~후~ 됐어요. 다시 오세…… 음?”
“대련은 잠깐 쉬자. 손님이 온 모양이니까.”
스스슷.
돌연 어딘가를 바라보던 이드가 말과 함께, 아니, 말보다 빠르게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대신 회오리치며 남겨진 먼지 뒤로, 검후가 충격을 흘리지 못해 깨 먹은 지하실 바닥이 자동으로 복구되는 모습만이 비쳐졌다.
당연하게도 라미아의 솜씨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수련에 필요한 기능일 것이라나 뭐라나.
그렇게 지하실에 남은 사람들이 생각이란 걸 하기도 전.
이드는 저택의 정원에서 당혹감을 애써 감추고 있는 발터와 마주하고 있었다.
“하. 하하…… 이렇게 갑자기 나오실 줄은 몰라 놀랐습니다.”
태연하게 말하는 발터지만, 그는 내심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기척을 죽이고 초인력도 갈무리했는데, 그걸 눈치챘단 말인가……………..’
오늘 파티에 페시딘이 참석했다. 그런 만큼 그쪽에서 자신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을지 모른다.
발터는 행여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흔적을 내보이지 않고 은밀히 접근했다.
이 정도면 경비견 앞을 지나도 인지하지 못할 거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드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아니, 소용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이드가 접근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드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인정하고 있는 바였으니 그리 오래도록 놀랄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그의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은 이드의 손에서 번뜩이고 있는 검이었다.
‘저걸로 날 찌르려는 건 아니겠지.’
발터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대련 중 발터의 접근을 감지한 이드가 그대로 온 탓에 그 손에 검이 그대로 들려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검집에서 뽑혀 번뜩이는 날을 자랑하는 상태로.
이드는 즉시 그런 발터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아, 마침 대련 중에 달려 나온 참이라서 말입니다. 발터 단장께서 이 시간에 갑자기 이곳을 찾으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기다리던 사람은 다른 분이었거든요.
“……이해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드로서는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이드의 말속에서 의도하지 않은 뼈를 찾아낸 발터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허락하신다면 검후님을 뵙고 싶습니다.”
“따라오시죠.”
이드는 발터의 요청에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바벨이 찾아올 것이라고 예고한 검후가 아니던가.
바벨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는 초인파의 발터가 찾아왔으니, 만남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드는 말과 함께 돌아섰다. 그와 동시에 라미아를 통해 이 일을 검후에게 전달했다.
그래서일까.
말없이 정원을 가로지른 두 사람이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땐 기다렸다는 듯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그 중앙에 선 검후가 양옆에는 쉴라와 스폴을 두고, 뒤에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따르는 상태로 나타났다.
그 모습에 잠시 멈칫하던 발터는 곧 천천히 한쪽 무릎을 땅에 대고는 심장에 손을 얹었다.
“자랑스러운 아나크렌 제국의 충실한 신하이자 검인 발터 오 오훤이 검후님께 인사 올립니다.”
“진정 그대가 제국의 충실한 신하이길 바라오. 일어나도 좋소.”
“……감사합니다.”
예상은 했지만, 날이 선 검후의 말에 생각 이상으로 불편함을 느끼며 발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복잡하게 오가는 듯하더니 검후가 먼저 입을 뗐다.
“내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음을 아는 자는 극히 적은데, 발터 경은 이미 알고 찾아온 것 같군요.”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밤에 날 찾은 용건은 무엇이오?”
검후가 선 자세 그대로 말했다.
사실 이건 일반적으로 예의가 아니었다.
보통은 손님을 저택으로 먼저 들인 후 용건을 묻는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현이며, 적대 관계 혹은 이미 싸우고 있는 적이라고 여긴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발터는 전혀 불쾌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차라리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최악의 경우 공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각오까지 하고 있던 참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밤 저는 주선자로서 검후님을 찾았습니다. 라울이라는 자가 검후님과의 만남을 청하고 있습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던 참이었소. 언제가 좋겠소?”
“검후님께서 무례를 허락해 주신다면 2시간 후 만남을 청한 자를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허락하오. 그럼 그때 봅시다.”
“…..이만 물러갑니다. 잠시 다시 후 뵙겠습니다.”
사실 검후의 허락은 이드의 말을 통해 이미 예상했다.
하지만 그 외에, 마음에 담아 둔 말을 꺼낼까 망설이던 발터는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후 천천히 물러났다.
이드는 그런 발터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검후가 몸을 돌리자 천천히 문을 닫았다.
늦었지만 손님맞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