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43화
1078화
‘못 찾겠다는 건 황궁 침입 미수범들을 말하는 거겠지?’
그거 말고는 없었다.
이드는 자세를 바로 했다. 다시 본 두 사람의 눈가엔 피로로 인한 다크서클이 진하게 올라와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번 일을 포함해서 최근 두 사람에게 시킨 일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이 둘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건 아니지만, 직접 명령을 받은 입장에서는 책임감이 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 에단과 에린의 입장이 조금 다르다.
에린이 검은 돌 때 이상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라면, 에단은 에린에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이드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열심히 해 주면 나쁠 게 없지만 말이다.
“이틀 만에 죄송하다는 건 포기가 너무 빠른 거 아냐?”
“죄송합니다.”
이드는 입술을 질끈 무는 에린을 보다 다시 말했다.
“그만 죄송하고, 설명을 듣고 싶은데?”
그에 에단이 한숨을 푹 쉬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드 님이 보시기엔 빠르다고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절대 대충 조사한 뒤에 내리는 결과는 아닙니다. 침입자들에 대해서는 이틀 전에 들었지만, 저택과 성문을 중심으로, 수도 전반에 대한 감시는 이전부터 계속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는 라울이 저택 앞에 나타난 날부터였다.
그 후 라울의 문제는 검후와 바벨 간의 협정을 통해 해결이 되었지만, 그때 시작된 감시와 조사는 쭉 이어 왔다.
또 누가 라울처럼 추적해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검은 돌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런 중에 일어난 사건이기에 급히 자료를 모을 필요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칼을 갈고 지켜보는 중에도 이상 현상을 몰랐다는 사실에 또다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아무리 황궁이 감시 영역 밖이라고 해도, 주요 길목에는 요원을 배치해 두었는데. 어째서 그날 밤 수상한 자를 본 이가 하나도 없는지 의아할 노릇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검은 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자료를 뒤지는 것뿐이었다.
“사실 이틀의 시간도 침입자들을 찾았다기보다 기존에 검은 돌에 수집되어 있던 정보를 분석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런 거죠.”
말과 함께, 눈짓으로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에린을 가리키는 에단.
이드는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두 사람의 얼굴에 다크서클은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뒤진 후유증이었던 거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른데. 애초에 기간을 정해 놓은 게 아니니, 안티로스에서 단서를 얻지 못했으면 조사 범위를 더 넓혀도 되는 거잖아.”
처리해야 할 일과 인원, 시간, 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네. 보통은 말씀처럼 하는 게 일반적이죠. 대안이 없다면요.’
“대안이라면, 다른 조직에 의뢰라도 하려고?”
이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에게 없는 것을 외부에서 들여오는 것은 가장 쉬운 방안이다. 사실 무인보다는 조직의 해결 방법 쪽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생긴다.
이드가 두 사람에게 준 권한과 자금이라면 이 정도의 일은 보고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 찾아올 필요가 없다는 소리다. 아니나 다를까. 에단이 머리를 벅벅 긁어 댔다.
그러다 머리카락이 다 뽑히겠다 싶어 걱정될 참에 입을 열었다.
“비슷하긴 한데. 의뢰할 곳이 조금 특별한 것이………… 아, 에린 양도 뭐라고 좀 해 보십시오. 왜 저만 말하게 합니까?”
그러다 문득 곤란한 표정과 함께 에린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제서야 에단을 한번 노려본 에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깃든 감정은
‘저 표정은 보통 무인들이 대련에서 졌을 때 나오는 건데.’
주로 패배감이라든가, 수치심이라고 하는 그런 부류였다.
그에 이드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에린이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는 말했다.
“사실 대안이라고 가져오긴 했지만, 이드 님께 말씀드리기 죄송한 일입니다.”
“일단 들어 보지. 무엇보다 택하고 말고는 내가 판단할 일. 두 사람은 가능한 한 최상의 방법을 찾은 것뿐이니 죄송해할 게 아니야.”
윗사람이 명령하고 부리기만 하라고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래에서 방법을 만들어 오면 그걸 쓸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도 윗사람의 책임이다.
즉, 누가 화를 내고 죄송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드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에린도 더 빼지 않았다.
“저희가 가져온 대안은, 바벨입니다.”
“이건 또 예상외인데, 바벨이라고?”
“예. 아까 말씀하신 대로 모자란 정보는 외부에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각 다른 조직의 정보를 취합하는 것은 복잡해 시간 소모가 많고, 체계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바벨은 다릅니다.”
“어떻게?”
“저희 같은 조직이 일부 소식에 특화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에 반해, 대륙의 모든 초인을 위한 바벨의 정보는 그 다양성과 범위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무엇보다 바벨의 정보 관리와 분석 능력 역시 같은 계통에서는 첫손가락에 꼽힐 정도고요.”
바벨의 시작은 초인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곤란한 초인을 구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는 초인들을 돕는 목적.
이를 위해서는 곤란에 빠진 초인들을 찾고, 그들의 사정을 알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정보다.
이를 위해 바벨은 초기부터 정보 관리에 힘썼고, 소속된 초인들이 많아질수록 바벨로 모이는 정보의 질과 양 역시 압도적으로 늘어났다. 당장 제국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는 발터를 보면 알 일이다.
그도 바벨의 일원으로서 제국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전 대륙에서 벌어진다면, 과연 바벨이 가지지 못한 정보가 있을까?
최소한 제국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정보력을 가진 것은 확실했다.
이드는 에단과 에린의 표정이 좋지 못한 이유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현재 협력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언제 다시 적이 될지 모를 상대다.
더구나 검후를 추적해 온 라울로 인해 깜짝 놀라 자존심에 상처까지 입었다.
그런데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 그런 상대의 정보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하려니, 얼마나 속이 상할까.
하지만 이 행동을 통해 두 사람에 대한 이드의 믿음은 더 굳어졌다.
아무리 싫은 방법이라 한들, 필요하다고 생각되었을 때 감추거나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달려왔으니 말이다.
“바벨의 정보력이 그렇게 좋단 말이지. 그럼 혹시 혼돈의 파편에 대한 정보도 구할 수 있으려나?”
“이드 님께 들은 것이 있으니 한참 파악 중일 겁니다. 다만 공유받는 건 다른 문제겠지만요.”
그거야 당연하지. 아무렴 공짜로 알려 주진 않을 것이다.
특히 바벨로서는 검후와 해결하고 싶은 문제도 있으니, 이드가 바벨에게 아쉬운 소릴 한다면 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요구할 것은 뻔했다. 이드는 잠시 고민했다.
과연 바벨에 침입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받는 것이 좋을까?
“일단 바벨을 대안이라고 들고 왔다는 건. 두 사람은 바벨에 정보를 얻는 것이 좋다는 의견인 거지?”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가장 빠르고 정확하다고는 생각합니다.”
간결하고 핵심만을 짚은 에린의 대답에 이드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럼 발터 단장을 찾아가면 되나?”
“라울을 만나셔야 합니다. 바벨이 가진 정보의 핵심은 그니까요. 쭉 감시한 바로는 아직 발터 단장의 저택에 머물고 있습니다. 말씀하시면 바로 초대장을 띄우겠습니다.”
“아니야. 굳이 번거롭게 부를 필요 있나. 이번엔 내가 직접 가 보지.”
“그럼 준비를…”
“준비도 필요 없고, 가볍게 혼자 갔다 올 거야.”
이드의 결정에 그를 보좌할 인원을 추려 보고 있던 에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혼자 다녀오신다고요? 협력 관계긴 하지만, 적진인데요?”
“어쨌든 지금은 네 말처럼 협력 관계잖아. 이미 그쪽에서도 다녀갔고, 무엇보다 저쪽에서 다른 마음을 먹는다고 내가 당하기나 할까?”
“……그래도 이드 님의 체면이 있는데.”
이드는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체면 같은 건 원래도 없었지만, 그나마 티끌만큼 남았던 건 밤에 몰래 황궁 담장 넘을 때 버렸다.”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검후의 요청으로 말이다.
사실 이 저택 안에서 체면을 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있다면 검후에게 잔소리를 날리는 쉴라와 스폴 정도일까.
“……”
“그건 넘어가고, 바벨에 의뢰할 건 이거뿐이지?”
“네, 다른 건 다 저희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에단이 야무지게 답했다. 이드가 명령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걸 다 바벨을 통할 것 같으면 애초에 검은 돌과 트와이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그때 복잡한 기분을 털어낸 듯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에린이 당부했다.
“이번 침입자의 건은 소드 팰러스와의 관련성이 깊을 거라고 의심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존 워스의 문제를 터트린 발터 단장과 바벨 역시 관련이 없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혹시 바벨에서 정보에 대한 대가를 바란다면 내놓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협력 관계에 따라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보를 저희가 제공해 주는 셈이니까요. 오히려 정보 제공비를 받아도 모자랍니다.”
“정보 제공비라. 그거 재밌겠네.”
아무래도 바벨에 대한 패배감을 이런 식으로 해소할 모양이다. 물론 저들이 이드를 쉽게 여기지 못하도록 조언을 한다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 크겠지?
그렇게 결정을 내린 이드는 말한 대로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저녁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맞춰 저택을 나서게 되었다. 저택을 나설 때 은색 기사단 전원이 완전 무장 상태로 대기하겠다고 말했지만, 그쯤이야 귓등으로 흘리고서 말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한참을 걸은 이드는 어느새 조용한 길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현재 이드가 머무는 저택과 마찬가지로 고급 저택이 가득 늘어선 주택가다.
이드는 그중 발터의 저택을 정확히 찾을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와 본 적이 있기에 딱히 찾기 어렵지도 않았다.
“과연 폭풍의 핵.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네.”
멀리 보이는 정문을 확인한 이드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아마 존 워스에 대한 일 때문일 것이다.
당장 굳게 닫혀 있는 대문 앞에는 두 명의 기사와 네 명의 병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평소라면 병사들만 지키고 있을 대문이지만, 아무래도 예민한 시기에 사소한 사고라도 방지하려는 목적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눈들.
누군가는 주변 저택에서, 누군가는 담장의 그늘에 숨어서, 누군가는 허공 속에서.
정말 사방에 눈이 가득했다.
저들의 목적은 발터의 저택을 방문하는 자들을 감시하는 일일 것이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지금 같은 시기에 발터의 저택을 방문한다는 것은 존 워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일 테니까. 적과 아군을 나눌 기회인 것이다.
“아무래도 정문으로 들어가긴 틀린 것 같고, 또 담을 넘어야 하나?”
당장 정문 앞에 섰다가는 난리가 날 거다.
이미 체면 같은 것은 버린 몸.
슬쩍 담장 너머로 눈이 향한 순간.
이드는 이미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