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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39화


1174화

대결이 시작되기 전, 승패를 두고 이런저런 예측이 난무했다.

“아무리 장비발이 좋아도 기본 실력이…………….”

“하지만 감찰관이…….”

“어허~ 자넨 감찰관만 보고 톤 자작의 자존심은·

“확실히 분명 자작도 어설프게 준비…….”

보통 도박을 즐기다 보면 잡다한 정보가 늘어나는 법이다. 거기에 이 자리에 나선 귀족 대부분은 교양으로라도 검을 잡아 봤기 때문에 할 말이 더욱 많았다.

쿠당탕!

하지만 그렇게 자기주장 강하던 입들도 두 번의 굉음과 더불어 고무공처럼 허공으로 튕겨 나가는 기사의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춰 버렸다.

“아…… 하하하하! 이겼다!”

“보십시오. 역시 제 판단이 옳았지 않습니까.”

“젠장. 아깝게 졌다는 말도 못 하겠군.

그것도 잠시.

곧이어 정신을 차린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과 함께 아쉬움이 섞인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대부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결과를 만든 바인, 그리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장비에 대한 감탄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보다 더 놀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이 결과를 만든 장본인인 바인이었다.

그녀는 검의 손잡이를 거꾸로 잡은 채 쭉 내민 자세를 풀지도 못하고 굳어 있었다.

“아니, 왜…… 무슨 이런..”

바인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만든 광경이지만 현실감이 없었다. 대신 대결에 나서기 전, 이드가 했던 말이 귓가에 이명처럼 아른거렸다.

“첫수는 기습. 허초 없이 직선으로 강하게 때리세요. 단! 절대, 절대 검 끝으로 찔러선 안 됩니다.”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의 목에 걸린 십만 골덴의 주인이기에 그 명령에 따랐을 뿐인데, 이런 결과라니.

분명히 말해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

바보 같은 첫수로 지난 결투보다 더 못난 꼴을 보인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간단히 이겨 버릴 줄이야.

‘이것이 십만 골덴의 위력・・・・・・’

바인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쓰다듬었다.


“굉장하잖아요, 친칠라.”

“목걸이가 대단하긴 해도, 저건 그거 하나로 될 일이 아니야.”

마리의 감탄에 피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시선은 바인의 다른 장신구로 향했다. 심상치 않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이런 결과라니.

“아무래도 감찰관이 내놓은 장비가 대단한 모양인데.”

“혹시 따로 팔지는 않을까요? 얼마를 주더라도 사고 싶은데.”

벌써 주변의 반응도 심상치 않다.

“주목받는 건 귀찮다고 하시더니. 일을 이렇게 벌여 놓으면 어떻게 수습하라는 건지.”

자신은 대외적으로 이드로 향하는 유일한 창구다. 즉, 이제 이드에 대한 귀찮은 문의는 다 본인에게 쏟아질 터였다. 그걸 다 감당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피터다.


그 사이.

짧은 비행 후 기절한 기사의 상태를 확인한 후작의 호위 기사가 바인의 손을 들었다.

“이번 대결은 바인 경의 승리입니다. 양측에선 두 번째 대결을 준비해 주십시오.”

“1차 판돈을 정산하겠습니다.

“나는 정산금을 그대로 재투자하겠다!”

판결이 나기 무섭게 판돈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 혀를 내두른 이드는 바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승리를 축하하며 톤 자작을 살폈다. 그는 일순간에 끝나 버린 대결에 아연실색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론 단장이 그를 대신해 쓰러진 기사를 수습 중이었다.

오히려 톤 자작 이상으로 놀라야 할 당사자일 텐데 말이다.

한 번 정체를 알고 나니, 정체를 숨긴 카논무파의 인간이기 때문에 저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괜히 들기도 한다.

“참혹한 결과로군.”

톤 자작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이드도 솔론 단장에게서 눈을 돌려 답했다.

“그러니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장비로 충분하겠느냐고.”

“……무구에 기대는 건 정당한 기사의 대결이 아니오.”

“하하하. 이거 참, 다른 분도 아니고 손님들이 즐길 거리가 생겼다며 기뻐하신 자작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애초에 기사 간의 신성한 대결에 어떤 무뢰한이 내기를 하고, 판돈을 걸겠습니까.”

“크윽.”

톤 자작 본인이 했던 발언을 돌려주는 것으로 그의 발작을 찍어 누른 이드는 곧 관용을 베푸는 승자의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이라도 다음 대결에 나설 기사의 장비를 바꾸시겠다면, 허락하겠습니다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서로의 입장을 확연하게 보여 주는 ‘허락’이라는 단어.

그걸 들은 톤 자작의 얼굴은 터질 듯 붉어졌지만, 차마 그 분노를 터트리진 못했다.

한 번 거절했던 권유를 받아들이는 건 분하지만, 이대로 부실한 장비를 탓하며 내기에서 패하는 일 역시 자존심 구겨질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어이쿠. 톤 자작이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 같소.”

“독이 통하지 않는 초인이지 않겠습니까. 끌끌끌.”

“그런데, 과연 저 자존심 강한 톤 자작이 제의를 받겠습니까?”

“바보 같은 소리. 자작은 말이지, 귀족이기 전에 상인이란 말일세. 잘 보라고.”

혀를 차는 누군가의 말소리.

사람들이 흥미롭게 지켜보는 사운데, 톤 자작이 입을 열었다.

“감찰관의 제의. 감사히 받겠소.’

“정말입니까?”

“이대로는 결과가 뻔한데,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손님들의 흥을 식게 만들 수야 없는 일 아니겠소?”

이제는 미소까지 보이는 톤 자작의 말에 이드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과 이해득실을 철저히 별개로 하여 따로 보는 듯한 이성적인 태도는 확실히 인정할 만했다.

물론 그렇기에 이따위 옹졸한 짓거리를 꾸며 스스로 무덤을 판 게 의외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그럼 저와 자작님이 소장한 장비 중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그 결과를 볼 수 있겠군요. 이것도 자작님이 말씀하신 색다른 재미겠지요?”

“…….잠시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소.”

이드는 제 질문에 답하는 대신, 위층으로 향하는 톤 자작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 후 이드의 시선은 곧바로 솔론 단장을 향했다. 불화를 만들고 있는 톤 자작도 빠졌으니, 간단한 대화라도 나눠 보려면 지금이 제격이지 않겠는가.

“자작님이 잠시 자리를 비웠으니, 솔론 단장님이 잠시 제 이야기 상대를 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하하.”

이드는 자신의 말에 아무 의심 없이 다가오는 솔론 단장을 보며 말했다.

“언뜻 들으니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은데, 무공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

자고로 첫 만남에서 간단한 호구 조사는 기본.

솔론 단장도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못할 것이다.


콰앙!

“빌어먹을 놈! 감히 내게 이런 수치를 주다니!”

문을 박차고 들어선 톤 자작이 참았던 울분을 거칠게 토해 냈다. 과연 저 분을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목에 굵은 핏대가 줄기줄기 솟아 있었다. 

“아버지.”

“이게 다 네놈이 벌여 놓은 짓거리 때문이다. 알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사실 그날의 사건과 별개로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 원인은 전적으로 톤 자작에게 있었지만, 보일런은 지금 그 말을 꺼낼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기에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허락하시면 제가 어떻게든 수습해 보겠습니다.”

“흐흐. 네깟 놈이 무슨 수로.”

“망나니 짓거리도 경우에 따라서는 제법 쓸모가 있습니다.”

결국 자신이 한 번 더 욕을 먹겠다는 뜻이다. 더욱이 톤 자작에게 허락을 받았다면 딱히 이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보일런이 두려운 것은 언젠가 없어질 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톤 자작의 마음이었으니까.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써야 할 때를 구별하는 법을 좀 더 익히거라.”

아들을 내려다보던 톤 자작이 등을 돌렸다.

“아버지?”

“이미 네 바보짓으로 수습할 단계를 넘었다. 이건 자작으로서, 또 상인으로서 내 자존심이 걸린 일이 되었다.”

직접 싸움에 나서거나, 인품이나 인연을 통해 뛰어난 사람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경우도 아니다.

순수하게 가문이 지금까지 쌓아 온 부 상인으로서 귀물을 보는 눈. 그걸 시험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보일런이 나서서 상황을 흐지부지한다?

아마 오늘 모였던 손님들이 돌아가는 마차에서 배꼽이 빠지게 비웃어 댈 것인데. 톤 자작은 그 꼴을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감찰관 놈이 꺼내 놓은 물건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괜한…….”

“거기까지! 네 놈의 어설픈 눈썰미로 뭘 안다고 떠드는 것이냐. 너는 설마 우리 가문의 저력이 그딴 놈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기는 게냐?”

“그게 아닙니다. 그냥, 저택에서 그보다 좋은 물건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겁니다.”

“그 말대로다. 네가 보지 못했을 뿐, 없는 것이 아니다.”

톤 자작은 말과 함께 커다란 책상의 한 부분에 손에 낀 반지를 가져다 댔다.

“약속의 보석이여. 내 몸에 흐르는 수의 피를 증거로 명하노니, 어둠을 꿰뚫어 보는 눈을 떠라.”

쿠구구―

톤 자작의 주문이 끝나자, 책상이 천장에 닿을 정도로 바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드러난 것은 커다란 책상과 같은 크기에, 전면과 후면이 유리로 된 장식장 같은 금고였다.

“이건……!”

처음 보는 광경에 보일런이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보물 창고가 있다는 것도 놀랐고, 그 안에 든 물건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데 또 한 번 놀랐다.

그것들은 감찰관이 꺼내 놓은 물건에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귀물로 보였다.

“봤느냐, 이것도 우리 가문이 가진 보물의 일부일 뿐이다. 겨우 감찰관 따위에 밀릴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어, 어째서 제겐 알려 주지 않으신 겁니까.’

“이게 다 총명하지 못한 네 탓이지, 누굴 탓하느냐?”

“분하거든 좀 더 노력해라. 그래야 이것이 네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네.”

“우선 저기 있는 것들을 꺼내 들어라. 감히 수칵 가문을 우습게 보는 감찰관의 얼굴을 짓뭉개 줄 보물들이니, 조심히 다뤄라.”

톤 자작은 보일런에게 자신이 가리킨 물건들을 꺼내 들게 만들고는 최상단에 올라 있는 물건을 노려보았다.

그건 볼품없는 붉은색의 링이었다.

하지만 생김새가 그러할 뿐, 여기 있는 물건 중 가장 가치가 높은 물건이다. 또한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던 톤 자작은 곧 마음을 정한 듯 직접 검은 링을 꺼내 들었다.

“설마 싶을 때 조금 떠 쓰는 것이 성공의 비법이지.”

“아버지, 그건?”

“알 것 없다. 내려가자.”

아들의 질문을 무시한 톤 자작이 파티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보일런은 다시 내려가는 장식장을 한 번 돌아보고는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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