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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40화


1175화

이드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자 일행들이 그를 둘러쌌다.

톤 자작도 아니고, 솔론 단장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뭔가 있는 거죠?”

“당연히 있지. 우리가 여기 온 목적이 뭐야?”

“결투에 대한 문제로 자작님이 초대해서가… 아닌가요?”

축하받던 중 얼떨결에 같이 끼게 된 바인이 어리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인과 해쉬도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하나 이드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자작의 기사가 아니다. 게다가 지금 하는 작업이 카논 제국을 떠날 결심까지 한 그녀들을 굳이 따돌리며 숨길 정도로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런 이유도 분명 있죠. 하지만 우리가 파티에 참석한 가장 큰 까닭은, 바벨의 적을 찾기 위함이에요.”

“바벨의 적!”

조금 어리바리한 분위기를 보이던 바인과 해쉬는 이드의 말에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기사에게 ‘적’이란 단어는 본능을 자극하는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심지어 그녀들은 이미 바벨에 한 발을 담근 상태. 그런 만큼 바벨의 적이라면 이제 그녀들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드가 일컫는 장소는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좀 전까지 두 사람의 주군이던 자가 머무르는 저택이 아니던가.

그런 곳에서 적을 찾고 있다?

그 의미를 짐작한 두 기사는 소름이 돋는 한편, 저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자작가가 바벨의 적이 될 수도 있다면……..’

‘자작가의 힘이 아무리 강해도 바벨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어.’

돈이 암만 많아 봐야 절대적 무력 앞에선 무의미할 뿐이다. 바인과 해쉬는 자신들이 바벨이라는 거대한 힘에 깔려 죽기 전에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은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진짜 상황은 그와 달랐지만, 그녀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에 피터가 짓궂은 얼굴을 하고는 말했다.

“톤 자작에 대한 원망이 좀 줄어드는 것 같지 않소?”

“……조금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진짜는 상상하고 있는 것과 좀 다르니까. 그렇지요? 에단 님.”

“글쎄요. 이제부턴 두 기사가 상상하던 대로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네?”

이드는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 버린 피터와 일행에게, 솔론 단장이 카논무파의 사람임을 말해 주었다.

“이런 젠장. 그럼 지금까지의 패턴은 의미가 없어지는 거 아닙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만. 일단은 그렇죠.”

솔론 단장이 카논무파라는 사실보다 그를 계기로 늘어날 일거리에 더 충격을 받은 듯한 피터에 이드는 조금 한심함을 담아 답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한데………… 카논무파가 뭔가요?”

다행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두 기사에겐 곧장 마리가 붙어서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이드는 그런 세 명을 따로 두고서 물었다.

“바벨이라면 솔론 단장에 대한 정보도 가지고 있겠죠?”

“있기는 하지만, 별 도움은 안 될 겁니다.”

자료가 있음에도 여태 그가 카논무파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 말은 곧, 조사가 부족했다는 의미다.

“그렇게 부정적일 필요는 없죠. 일단 의심하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많을 테니까. 잠깐 이야기하면서 들은 건데, 솔론 단장은 소드 팰러스가 아니라 카논의 기사 아카데미에서 무공을 익혔다고 하더군요.”

기사 아카데미는 소드 팰러스에 자극받은 카논 제국이 자국의 기사들을 키워 내기 위해 만든 교육 기관이었다.

물론 목표했던 소드 팰러스의 명성에는 아직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태다.

“그럼, 그곳에 카논무파의 맥이……?”

“단정하긴 이릅니다. 하지만 조사해 볼 필요는 있겠죠. 그런 의미에서, 피터가 힘내 주리라 믿어요.”

“네…… 뭐, 어차피 제 일이란 거죠.”

힘내라는 의미를 담아 이드가 어깨를 두드렸지만, 그럴수록 피터의 어깨는 힘없이 축 처질 뿐이었다.

“힘들면 라울에게 떠넘겨요. 어쨌든 오늘은 월척을 끌어 올렸잖습니까, 당당하게 지원 요청이라도 해요.”

뭘 그렇게 혼자서 고생하느냐는 의미가 담긴 위로였지만, 피터는 전혀 힘이 나지 않았다.

‘지원 요청’이란 단어는 결코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곧 자신의 능력에 한계가 왔다는 것을 뜻하는 바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힘 빠진 피터와 자신들이 모르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알고서 묘하게 흥분 중인 두 기사를 옆에 둔 이드는 잠시 후, 계단을 내려오는 톤 자작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보일런의 손안에서 느껴지는 진한 마나의 기운까지도.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시선 역시 두 사람을 향했다.

“오호~ 그럼 이번엔 자작의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건가?”

“기사들의 대결 이상으로 흥미롭군요. 누구의 아티팩트가 가장 귀할까요.

“음? 그런데, 톤 자작이 직접 손에 들고 있는 저건 뭐지요?”

처음 사람들이 집중한 것은 보일런의 손에서 빛을 뿜어내는 장신구들이었다. 그러나 누군가 톤 자작이 직접 손에 든 붉은 링을 발견하고 말을 꺼내자, 모두의 관심이 그쪽으로 향했다.

아무리 봐도 볼품없게 생겼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그런 물건을 톤 자작이 직접 챙겼다는 사실이 더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 더욱이 척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아티팩트는 아들에게 맡긴 채 무려 본인이 직접 들고나왔다.

단순한 쇳조각이 아닐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짐작할 수 있는 일.

“어떤 종류의 아티팩트일까요?”

“형태로 봐서는 고대의 것 같은데.”

“일단 수칵 상단주가 손에 있지 않습니까. 저거, 무지막지하게 비싸겠지요?”

사람들은 붉은 링의 정체에 대해서 각자의 의견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마치 정답을 맞히면 상품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이드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설적으로 너무도 수수하기에 눈길을 잡아끄는 붉은 링은 대체 어떤 물건일까.

“쯧. 아무리 기능이 좋아도, 저렇게 볼품없어서야.”

다만 한 사람.

피터는 뭔가 못 볼 걸 본 사람처럼 혀를 찼다.

이드는 친칠라를 봤을 때와는 완벽히 반대되는 그의 모습에 내심 웃음이 났다. 털털한 모습과 달리 보석을 탐미하는 취미가 있을 줄이야. 그리고 또 한 명.

피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 바로 라미아였다.

톤 자작의 붉은 링을 확인한 그녀는 무언가를 확신한 듯 연결을 통해 이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드, 저 붉은 링, 뭔지 알겠어요?

-당연히 모르지. 왜? 알아야 하는 거야?

-네.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는 최근 저거랑 비슷한 물건과 접촉한 적이 있거든요.

형태가 다르다는 말은, 기능적으로는 같다는 뜻일까.

이드가 라미아를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눈가를 반달로 만든 후였다. 뭔가 굉장히 재미있는 걸 발견했을 때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드의 기억 속에 저것과 연결될 만한 물건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결국 이드는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답을 들춰 보기로 했다.

-난 떠오르는 거 없어. 포기. 그래서, 정답은?

・・・・・・・포기가 너무 빠른 것 아니에요?

-바로 옆에 답이 있는데 머리 아프게 고민하면 그게 바보지. 그러니 빨리 답!

이드의 재촉에 라미아가 못 말리겠다며 살살 고개를 저었다.

-칫, 재미없게. 따로 확인은 필요하겠지만, 일단 저 링에서 발산되는 미세 마나의 질과 파동, 그리고 탐지 마법으로 읽어 낸 일차적인 마나의 구성과 배치로 봤을 때,

-봤을 때?

-이베인을 괴물로 만들었던 마법과 겹치는 부분이 매우 많아요.

순간 거대 괴수의 일부가 되었던 이베인을 떠올린 이드. 그의 고개가 바쁘게 라미아와 붉은 링을 오갔다.

그 모습에 라미아는 장난에 성공한 개구쟁이처럼 하얀 이가 보이도록 기세 좋게 웃었다.

이드는 그 미소를 보고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라미아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장치와 비교하면 저링은 너무 작지 않아?

당시 이베인을 괴물로 만들었던 때의 마법은 성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했었다. 아무리 공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게 마법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정도가 있다.

설령 그게 정말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성비가 너무 안 좋다.

도대체 저것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 정도의 마법진을 압축해서 저 작은 링에 쑤셔 넣는 작업이라니. 아무리 혼돈의 파편이라는 규격 외의 존재라고 해도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

물론 딱 저 하나만 만드는 것이라면 가능은 할 터였다. 하지만 과연 혼돈의 파편이 그렇게 공들일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그렇게 공들여서 만든 물건이 고작 톤 자작의 손에 있다는 거지. 그것도 내기에 꺼내 올 정도로 가볍게 취급되는 형태로.’

자존심 좀 상했다고 꺼내 오기엔 이베인을 괴물로 만든 마법은 너무 강력하고, 위험하다.

-아니지.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면 이 시점에 꺼낼 리가 없잖아. 저기에 정말 이베인을 괴물로 만든 그 마법이 들어 있는 거 맞아?

ᅳ맞아요. 약 80% 정도. 다만 마법의 출력이나, 발산 형태에서 다른 점은 있을 것 같아요.

역시 그랬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20%의 차이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때의 마법과 결이 같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요.

-알아. 그나저나 오늘 완전 대박이잖아? 솔론 단장이 제법 굵은 가지인 줄 알았더니, 톤 자작이라는 줄기에 붙은 작은 가지였네. 진짜 월척은 톤 자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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