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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41화


1176화

톤 자작은 카논무파의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들고나온 붉은 링은 그가 카논무파는 물론, 혼돈의 파편이 꾸미는 일과 관계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어쩌면 솔론 단장을 카논무파와 접촉시킨 사람도 톤 자작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확실한 건 딱 하나다.

옆에 서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솔론 단장을 노려보고 있는 피터의 일이 더 늘어났다는 사실 말이다.

‘라울한테 지원 요청하는 것 정도는 내가 대신해 주는 게 낫겠네.’

이드는 짧은 시간이지만 여태 밥을 함께 먹은 정으로 그 정도 의리는 발휘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피터가 이 결심을 고마워할지, 원망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이드의 생각이 옆길로 새는 사이.

혼자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라미아가 결심을 굳힌 듯 말했다.

-이드, 그래서 말인데요. 우리가 저 링을 손에 넣는 건 어떨 것 같아요?

-훔치자는 말이야?

찰싹.

-그게 아니죠. 저 링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자들을 미리 구제하자는 거예요.

어쨌든 결국 링을 훔치자는 결론 아닌가?

이드는 민망한 듯 볼을 감싸는 라미아를 내려다봤지만, 결국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뭐 새삼스러울 게 있어야지.

대신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저런 위험한 물건을 위험인물의 손에서 빼내는 일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중원의 협객들이 하는 일도 이와 큰 차이가 없으니까.

다만 이드의 고민은 어떻게 티나지 않게 저걸 빼 올까에 대한 것이었다. 자신과 라미아가 나선 이상 링을 훔치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분명히 말해 어린아이 손에 들린 사탕을 빼앗는 것보다 쉬운 레벨이다.

그럼에도 이드가 경계하는 건 링의 도난을 안 톤 자작의 의심을 받는 상황이다. 저와 같이 작은 손해에도 예민한 작자라면 분명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세울 것이 분명하니까.

그러는 사이.

톤 자작은 기다려 준 손님들과 이드 일행을 향해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아티팩트를 하나하나 소개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귀하고, 뛰어난 물건인지. 또 그 가격이 얼마인지 말이다.

그야말로 노골적인 자랑질이랄까.

이윽고 자작은 소개를 마친 장비를 대결에 나서는 기사의 몸에 하나하나 직접 걸어 주었다.

그리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나씩 장비가 더해질 때마다 단단한 기사의 몸이 힘없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격은 일만 골덴입니다.’

가격을 가장 크게 외친 자작이 반지 하나를 기사의 손가락에 더한 순간, 기사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손가락에 일만 골덴 짜리 무게추가 달린 것 같은 모습이랄까. 현재 그의 몸에 걸쳐진 장비의 총 가격은 오만 골덴. 친칠라의 절반 가격밖에 되지 않지만, 기사는 그대로 기절하고 싶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저 마음 잘 알지.”

“……나도 기절하고 싶어. 도비드 저 인간이 불쌍해 보이다니, 미쳤나 봐.”

그런 기사를 가장 동정하는 사람은 바인과 해쉬였다. 누가 뭐래도 비슷한 입장이니까. 차이가 있다면 이드는 각각의 장비 가격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는 정도?

척 봐도 귀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가격을 정확히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였다.

특히 이미 대결을 끝낸 바인과 달리 해쉬의 낯빛은 그렇게 싫어하는 도비드와 비슷해지고 있었다.

도비드의 실력은 앞서 쓰러진 기사와 비등하다. 하지만 아티팩트가 하나하나 더해질 때마다 그의 전력은 더해지고, 그 전력이 커질수록 다음 대결은 어려워질 것이다.

그에 대한 해쉬의 걱정은 오로지 하나.

혹시라도 길어진 대결 중에 아티팩트가 부서지면 어쩌나 하는 것뿐.

‘혹시라도 깨질 것 같으면 몸으로 막아야겠지?’

사용자를 보호하는 아티팩트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내민다. 뭔가 심각한 오류가 있는 생각이지만, 톤 자작이 아티팩트의 가격을 하나하나 언급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강해지기만 하는 해쉬였다.

이드는 그런 해쉬를 조용히 바라보다 라미아를 보며 물었다.

-피해자 구제는 모르겠지만, 일단 링 확보는 나도 찬성. 그런데 그냥 훔치는 건 괜히 뒷말이 나올 것 같아서 말인데, 이 대결에서 확보하는 건 어떨 것 같아?

-내기로 저걸 요구하시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과연 내놓을까?

-거부하겠죠.

-그렇겠지.

이드는 단호히 고개를 젓는 라미아의 말에 동감했다.

자신과 라미아가 거의 확신을 가진 것처럼 저 물건이 정말 혼돈의 파편과 관련되었다면.

또 저것이 이베인을 괴물로 만든 그 마법이 깃든 아티팩트이고, 톤 자작이 그 용도를 알고 있다면.

그는 절대 저것을 내놓지 않을 터였다. 어쩌면 톤 자작은 지금도 저 링을 꺼내 온 바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기가 아니면 어떻게 가져오겠다는 건데요?

-그래서 말인데, 저 링, 꼭 온전한 형태로 가져와야 하는 거야? 좀 망가져도 상관없을까?

씨익.

이심전심. 그저 말이 아니라 실제로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있는 이드와 라미아다. 아니, 그게 아니라도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 말 속에 숨은 뜻을 모를까.

ᅳ저언혀! 문제없죠. 어차피 우리가 저걸 가져와서 쓸 것도 아니고. 저것의 원본에 해당하는 마법진의 구조도 이미 확보한 상태라고요. 요거. 까딱까딱.

검지를 편 라미아가 손가락을 흔들었다.

-딱 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면 돼요.

ᅳ딱 내가 원하던 답이야.

그녀의 답에 만족한 이드가 해쉬를 불렀다.

“제게도 명령하실 게 있으십니까?”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이드 앞으로 다가온 해쉬가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며 말했다. 바인이 대결에 나서기 전, 이드가 그녀에게 어떤 충고를 했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정확하게 들었던 사람이 그녀다.

그건 바인과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녀는 내심 자신에게도 그와 같은 충고를 해 주길 바랐다.

‘아티팩트가 하나라도 상했다가는 새 직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평생 무급 봉사해야 할지도 몰라.’

만약 이드가 이런 해쉬의 생각을 알았다면 한참을 웃었을 터였다. 분명 그녀에게 건네준 아티팩트들이 귀한 것들이긴 하나, 이드에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재료가 없는 것도 아니며 실력이 없는 건 더더욱 아니다.

시간만 조금 들인다면 라미아가 몇 개라도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들인데, 겨우 그런 게 부서진다고 해서 그녀를 노예처럼 부릴 리가 있나.

“상대해야 할 기사의 전력이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말입니다. 이쪽도 그에 대한 대응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아, 그렇다고 장비의 위력이 같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무조건 해쉬 경의 장비가 저쪽 가격의 두 배는 될 겁니다. 자부심을 가져요.”

“・・・・・・ 자부심을 가지기 전에 부담감에 깔려 죽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농담이 아니라, 진짜 부담가질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패해도 내기에서 지는 건 아니니까요. 아, 그리고 아티팩트가 부서지는 것도 신경 쓰지 말아요. 그것 말고도 그 비슷한 건 아직 한가득이니까. 그러니 그런 것보다 다른 부탁을 하나 하죠.”

“명령이라고 해 주십시오.’

“・・・・・・ 명령을 하나 하죠.”

“어떤 것이라도.”

이드는 가슴을 쿵 하고 두드리는 해쉬의 모습에 빙긋 웃고는 그녀의 검을 건네받고서 말했다.

“저기 탁자에 올려진 붉은 링이 보이죠? 사실 내가 자작의 신경을 좀 긁어서 소장하고 있던 물건을 가지고 나올 줄은 알았는데, 설마 저런 것이 끼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위험한 물건인가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링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해쉬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우리가 예상하고 있는 물건이라면, 사용자와 그 상대에게 모두 위험한 물건입니다. 하지만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해쉬 경의 현재 장비는 저 붉은 링까지 포함해서 두 배의 가치를 가지는 거니까. 순간 밀리긴 하겠지만, 침착하게 대응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자작도 이렇게 많은 손님이 보고 있는 상황에 정말 위험한 수준까지 저걸 사용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좋아해야 할 일인데. 어쩐지 마음 편히 좋아할 수가 없네요.”

이드는 기묘한 표정을 한 해쉬를 보며 한 번 크게 웃어 버리고는 들고 있던 검을 다시 그녀의 손에 건네줬다.

“잠시 손을 내보겠어요? 그리고 해쉬 경 어깨에 손을 좀 올려야 할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돈의 위력일까.

아니면 짧은 사이 이드가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해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에 이드는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과 어깨를 가볍게 잡고서 무극신기를 운용했다.

무극신기는 바람처럼 그녀의 기혈을 따라 흘러들었지만, 정작 해쉬는 그런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카논에서 이드와 악수를 나눈 그 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또한 무극신기의 공능.

하지만 이드가 그녀에게 무극신기를 주입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목적에 따라 기혈을 따라 움직인 무극신기가 독맥을 따라 해쉬의 척추에 들어찰 때였다.

“하아.”

굳게 닫혀 있던 해쉬의 입술이 열리며 긴 숨이 뱉어졌다. 그건 해쉬가 원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에 스스로도 놀라던 그녀는 곧 몸속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이건 내공.. ・하지만 어떻게?”

바람의 맛처럼, 물의 냄새처럼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본질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몸속에 스며든 기운이 내공임을 알아차린 해쉬가 놀라 물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이드는 어디까지나 바벨의 감찰관이었기 때문이다. 초인력이라면 몰라도 감찰관이 무인의 내공을 가지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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