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43화
1178화
“해쉬 경이 고생 좀 하겠어.”
이드가 전음을 보낸 후 말했다.
“맞아요. 링이 작동하기 전에 정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죠. 신체 능력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으니까요.”
라미아와 일리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현재 두 사람이 보여 주는 속도와 힘을 보면 오히려 빠른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업그레이드 된 능력이 마법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시적인 능력이기에,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생략된 형태로 만들어진 아티팩트라는 말이다.
“해쉬 경이 잘 처리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돕지 않을 건가요?”
당연히 이드가 나설 줄 알았는지, 일리나가 의문을 표했다.
그에 이드는 이젠 눈뿐 아니라 급하게 오르내리는 어깨 위로까지 붉은 기운이 비치는 해쉬의 상대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괜찮아 보이니까요. 해쉬 경이 상대할 수 있는 선까지는 해쉬 경에게 맡겨 두려고요. 믿어 줘야죠.
“해쉬 경이 상대할 수 있는 선을 넘으면요?”
“그럼 멋지게 등장해야죠. 일리나와 같이.”
그에 일리나가 고개를 살살 저었다. 싫다는 걸까. 농담이 별로라는 걸까. 아니면 둘 다?
일리나의 말이 멈추자 이번엔 라미아가 옆구리를 찔러 왔다.
“해쉬 경을 믿어 주는 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이고, 사실은 저 마법이 폭주하길 기다리는 거죠?”
“그런 바람도 없지는 않지. 일단 일이 벌어지면 톤 자작의 평판은 땅에 떨어질 테니까.”
미리 한 발 빼 두긴 했지만, 그렇다 한들 실제 사상자가 나오고, 사고의 당사자가 되면 그따위 건 머리에 남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저 콧대 높은 귀족들에게 그런 경고 한 줄이 통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미리 김을 빼 두면 바벨에서 작업하기에 좀 더 편해지는 거지.’
더욱이 사람이라는 것이 원래 아쉬운 상황이 오면 어딘가에 기대고 싶어지는 법이다. 톤 자작이 정말 ‘줄기’라면, ‘뿌리’에 도움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지는 거다.
그렇게 되면 바벨이 그 흔적을 찾아낼 확률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그런 거라면 해쉬 경에게도 미리 알려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거기까지 귀뜸해 뒀다면 해쉬 경은 도리어 부담감에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녀를 위해선 지금 상태가 딱 좋아요.”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손끝을 비볐다.
무극신기를 주입하며 살핀 해쉬의 근골과 내공의 기질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결코 근거 없이 나온 말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드가 다시 대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사이 대결의 양상은 바뀌어 있었다.
해쉬가 다 잡아 가던 공격의 주도권이 완전히 상대에게 넘어간 것이다. 그에 더해 도비드의 상태도 눈에 띄게 변했다.
“푸하푸후아”
우선 숨소리가 짐승처럼 거칠어졌다. 붉은 눈에선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정련되었던 몸놀림은 취객처럼 휘청거렸다. 지극히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모습.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변해 버린 대신 힘과 속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해쉬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예측불허의 모습. 구경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재밌어졌으니, 불만이 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끄아압!” 쩌저정!
“체앗! 여기서…… 더 빨라진다고?”
퉁!
깊이라고는 없는, 그저 빠르고 강할 뿐인 검.
그걸 어렵게 받아넘긴 해쉬가 아티팩트에 내장된 푸쉬 마법으로 거리를 벌린다.
힘과 속도에서 밀려 승기를 빼앗긴 와중에도 그녀가 패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 도비드가 힘과 속도를 얻는 대신 마법을 버린 것처럼, 자동으로 발동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서였다.
‘아니,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용할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을 수도.’
“저놈, 아무래도 이성을 잃은 것 같지 않습니까? 발동어를 말할 정신도 없어 보이는데요?”
피터가 말했다.
그는 이미 언제든 움직일 수 있는 경계 태세였다. 링의 마법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사용자를 미치게 만드는 위험한 마법은 그 결과가 항상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일단 시선은 해쉬 경을 쫓고 있으니까요. 굳이 비교하면…… 앞뒤 분간 못할 정도로 만취한 상태일까요?”
이런 평가에 피터와 마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상태면 위험한 거 아냐?’
‘그렇죠? 앞뒤 분간 못할 정도로 취하면 누구라도 붙잡고 주먹을 휘두르니까요.’
‘그럼,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건 뭐고?’
‘저야 모르죠?’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마리에 피터가 입을 열었다.
“이대로 사고가 나도 괜찮을까요? 갑자기 사람들을 덮치기라도 하면.. 물론 이・・・・・・ 큼. 에단 님이 계시긴 하지만.”
“그렇죠. 그런데, 그걸 걱정해야 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지 않아요?”
“예?”
“우리가 수도 경비대도 아니고, 폭탄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말이에요. 저기.”
이드의 턱 끝이 가리키는 곳.
그곳에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팔짱을 낀 톤 자작과 그 옆에 딱 붙은 솔론 단장이 있었다.
피터는 이마를 딱 쳤다.
도비드의 상태가 너무 아슬아슬해서 마음이 급했다. 자신은 수도 경비대가 아닌 바벨 소속의 초인.
“제가 할 일은 사고가 나면 그걸 잘 퍼트리는 것이로군요.”
“그렇게 하면 톤 자작이 좀 더 곤란해지긴 하겠죠?”
“조치하겠습니다. 그럼 이 대결은 해쉬 경의 패배겠군요?”
“아니요. 해쉬 경은 영웅이 될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의 피터에 이드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앞쪽으로 눈을 돌렸다.
해쉬와 도비드.
두 기사의 대결은 이드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해쉬가 밀리고 있었다. 아티팩트는 강력했지만, 어디까지나 두 사람은 마법사가 아니라 기사. 힘과 속도가 쉼 없이 증가하는 도비드가 승기를 잡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렇게는 지고 말아. 정신 차려, 해쉬! 첫 명령부터 멍청한 모습을 보일 생각이야!’
까드득.
해쉬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는 지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배려해 준 에단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가볍게 자신들을 잘라 버린 톤 자작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고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는 법.
“케아아악!”
이미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돌아간 도비드는 마음만으로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연속해서 공격을 막아 낸 손에 이제는 감각이 없을 정도였다.
결국 여기까지인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이 솟아오를 찰나.
“잘 싸웠어요. 앞으로 아홉 수만 더 버텨요. 그럼 도비드 경이 당신에게 등을 보일 테니까, 그때를 노려요. 내가 전해 준 내공이 당신을 도울 테니, 이번 기회는 놓치지 말아요.”
그 생각을 쫓아 버리는 이드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싸우는 중에 등을 보인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것이 가능한가?
‘・・・・・・ 지금 눈이 뒤집힌 도비드 경이라면 가능할지도?’
누가 보더라도 눈앞의 그는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저렇게 되기 전, 이미 한번 경고를 해 줬던 감찰관의 전음이 아니었나. 그 충고를 살리지 못한 것은 오로지 자신.
‘이번엔…… 놓치지 않아. 버틴다!’
해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도비드의 검이 쇄도했다.
쩌엉!
까아앙!
“와우. 검력이 엄청납니다.”
“아무래도 여기사 쪽이 오래 못 버틸 것 같지 않습니까?”
점점 공격이 강해지는 도비드에 반해,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방어에만 치중한 해쉬.
구경하는 입장에선 그야말로 승패가 빤히 보이는 상황.
“자작은 역시 무서운 사람입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한 걸 꺼낸 것 같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 정도 배포는 있어야지요. 괜히 뱀 혓바닥으로 불리겠습니까.”
“아무렴요. 독도 잘만 쓰면 약입니다, 약이에요.”
어떻게 봐도 정상이 아닌 도비드지만, 대결을 구경하는 귀족들 대부분은 그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 결과만 좋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
“아슬아슬한데.”
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평가에도 정작 그 주인공이랄 수 있는 톤 자작의 마음은 편하지가 못했다.
그는 도비드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이드가 내놓은 아티팩트가 하나같이 심상치 않아 꺼내왔다. 물론 그 성능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는 그게 결과까지 완벽한 완성품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걱정 마십시오. 여차할 땐 제가 나서겠습니다.”
“명심해. 큰 사고는 절대 없어야 해!”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톤 자작의 말에 솔론 단장이 검 자루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조금이라도 이상 반응이 나온다면.
그리고 말이 씨가 된 듯,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반응이 발생했다.
쾅!
꽈아앙!
“끄으으읍!”
해쉬는 검을 해머처럼 휘둘러 마치 자신을 땅속에 심어 버리려는 것 같은 상대의 공격을 오로지 깡으로 버텼다.
삼 층의 방어 마법 중 두 개는 이미 깨진 뒤다.
하물며 방어 마법이 있어도 마법을 넘어 온몸을 내리누르는 압력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렇게 몇 번을 더 속으로 외쳤을까. 도저히 아홉 수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강해지던 어느 순간.
“푸우우우ᅳ”
길게 늘어지는 뜨거운 숨과 함께 망치질, 아니, 공격이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