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46화
1181화
파티가 끝났다.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마차에 올랐다.
“내 오늘처럼 파티가 끝나는 게 아쉬운 건 처음이네.”
“싸움 구경만큼이나 재밌는 것이 또 없기는 하지요.”
“거만하던 톤 자작이 망신을 당하는 모습도 볼만했어요.”
“그나저나, 벌써 입이 근질거립니다.”
“조심하게. 행여 소문이 크게 나면 자작이 박박 이를 갈 것이야.”
“그 땐 저도 자작과 내기를 걸고 대결을 해 보지요.”
“뭐라? 하하하하!”
아들이 벌인 사고를 수습해야 할 톤 자작의 아쉬운 소리나 듣자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응한 파티였다. 한데 그가 정작 거기서 더 큰 망신을 당하자 많은 사람이 고소해했다.
그중에는 후작을 포함한 고위 귀족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결 중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그들에게는 매우 즐거운 밤이었다. 눈과 마음은 물론, 주머니까지 말이다.
“피터 자작과 감찰관에게 초대장을 보내도록 하게.”
그 중엔 그 즐거움을 느끼게 해 준 이드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힘깨나 쓴다는 톤 자작을 저렇게 눌러 버린 이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드 일행은 그런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저택으로 돌아왔다. 갈 때와의 차이점이라면 인원이 두 명 더 불어나 있다는 점일까.
피터는 손님방을 내어주며 바인과 해쉬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이드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마 수일 안으로 카논을 떠날 테니, 봐야 할 사람이 있다면 미리 인사를 나눠 두는 게 좋을 겁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떠나기 전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있었습니다.”
이드의 말에 누군가를 떠올린 듯,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인사를 나눌 사람은 많을 것이다. 굳이 인사가 아닐지언정 제 신변에 찾아온 새 소식을 알리기에도 바쁠 터였다.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자작에게서 버려지고, 그런 자신을 바벨에서 주워 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편하게 만나도 좋습니다. 다만, 가능한 한 조용히 만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면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무렴 어디 끌려가는 일은 없겠지만, 어마어마할 정도로 귀찮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식으로 겁을 주는 이드의 말에 바인과 해쉬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당장 대결이 끝났을 때 쏟아지던 귀족들의 축하,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이드에게 짧은 말이라도 걸어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들던 사람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자작가에 먹고 자는 동안 맹세코 단 한 번도 겪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내일 하루는 자유롭게 다녀도 좋습니다.”
“충.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물러가고, 일행은 다시 서재에 모여 앉았다.
마리가 차가운 얼음물을 가져왔다.
아드득.
“시원하네요. 오늘 파티는 좋았어요, 그렇죠?”
얼음을 깨물어 먹은 이드의 말에 피터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잘한 카논무파의 무인들을 찾아내는 것보다 확실히 큰 소득이었습니다.’
“솔론 단장과 톤 자작의 뒤를 캐는 건 바벨에서 잘해 줄 거라고 믿어요.”
“물론입니다. 절대 실망하실 일 없도록 처리하겠습니다.”
피터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카논무파’는 결코 초인과 무관한 조직이 아니다. 한데 정작 카논무파의 존재를 처음 밝혀낸 것도 이드였고, 그 후에도 카논무파에 소속된 무인에 대한 조사가 지지부진해 이드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오늘 그 줄기로 확신이 가는 톤 자작과 그의 기사단장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 또한 이드가 찾아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야말로 바벨의 이름이 부끄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못난 모습도 여기까지다. 톤 자작과 솔론 단장에 카논무파에 속한 무인의 정체까지 찾아냈다. 그러니만큼 그들에 대해 조사하고, 그 뒤를 샅샅이 캐면 뭐라도 나올 터였다. 만약 그조차 못한다면 차라리 부끄러워서 죽어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전 굳이 복잡하게 일을 진행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드가 묻자 라미아가 마리를 가리켜 보였다.
“마침 속에 든 생각을 밝혀낼 능력도 있으니, 과감하게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서요. 아무리 봐도 그 자작이라는 인간. 조직에 충성할 만한 인물로 보이진 않더라고요.”
조직보다는 자신과 가문을 위해. 그리고 명예보다는 돈이 먼저인 부류.
그것이 톤 자작에 대한 라미아의 평가였다.
이드 또한 그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아. 그런데, 충성은 없어도 두려움은 가지고 있더란 말이지. 뒤를 캐려면 이용하긴 해야 하는데. 어쩌면 양쪽에 다 발을 걸치려 할지 몰라.”
링이 부서지는 순간, 톤 자작은 경악을 숨기지 않았다. 이드는 그 찰나, 그의 얼굴에 숨겨진 두려움을 똑똑히 봤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톤 자작도 무공을 익혔지만, 여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수박 겉핥기. 즉, 교양 수준이었다.
무공이 간절해서 카논무파와 함께할 인물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가 카논무파, 또 그 뒤에 있는 혼돈의 파편과 손을 잡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대에 와서 급격히 성장한 가문과 상단을 보면 뻔한 답이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달콤한 꿀만으로 다룰 수 있던가.
꿀을 내어 주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고서야 그런 인간이 복종하기는 힘든 법이다.
“저도 이드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세상에 바벨의 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인간은 없지만, 그런 놈들은 위험합니다. 더욱이 카논무파를 앞에 세운 이 조직은 너무할 정도로 점조직화되어 있습니다. 실수 조금만 해도 다시 숨어 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바벨을 사랑하는 피터지만, 그는 무조건적인 바벨 만능주의자는 아니었다.
라미아는 두 사람의 말에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단순히 의견을 내었을 뿐, 굳이 자신의 주장을 고집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카논무파에 대한 결과는 아무리 빨라도 토벌이 끝난 후에나 나오겠네요.”
“그러고 보니 곧 토벌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세 분도 토벌대에 참가하시겠군요.”
“안 할 수가 없죠. 아, 그러고 보니 알고 보면 마탑의 일도 카논무파와 연결점이 있습니다.”
“그렇・・・・・・ 군요.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쩝.”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그간 지지부진하던 카논무파에 대한 색출 작업이었건만, 이드가 나선 순간부터 얼마나 쉽고 빨라졌던가. 이드가 사라진 후 다시 시작하려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톤 자작과 솔론 단장을 찾아낸 것과는 별개로, 쉬이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출발은 언제·…..”
“급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수일 안으로 움직이게 되겠죠. 하지만 일단 그 전에 할 일은 하고 갈 것이니, 너무 아쉬워는 말고요.”
“할 일이라면…… 내기 말씀입니까?”
“진짜 고위 귀족들 얼굴을 좀 봐야죠. 겸사겸사 톤 자작이 알아서 문제를 만들어 주면 그것도 좋고.”
이드를 상대로 아들과 아비가 번갈아 가며 패배했다.
그것도 도저히 변명이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그야말로 망신을 당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바벨의 감찰관이라는 이름에 어떻게든 인연을 만들어 보려던 귀족들과 달리 오히려 더욱 자존심을 세우려 하던 톤 자작인 만큼, 당장 내일이라도 내기에 걸린 조건을 이행하라고 하면 뭔가 수작을 부릴 확률이 높았다.
이드와 바벨 입장에선 당당하게 톤 자작의 목을 조를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향은 그가 카논무파로 연결된 연줄을 이용해 주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에 피터가 애매한 얼굴이 되어서는 신음했다.
“으으…… 벌써부터 일거리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조금만 힘내요. 곧 바벨에서 지원이 있을 테니까.”
웃음 띤 이드의 말에 피터가 귀를 쫑긋 세웠다.
“헛, 혹시 라울 님께 어떤 전언이라도?”
“전혀요. 라울이 전할 말이 있었다면 피터 씨를 통했겠죠.”
“그럼 지원이란 말씀은?”
“오늘 말해 보려고요. 그간 정이 있는데. 피터 씨가 고생하는 걸 모른 척할 수 없잖아요.”
“크흐~ 이렇게 제 고생을 알아주신다니, 감격입니다. 그런데・・・・・・ 혹시 라울 님과 통신을 하신다면, 전 여기 없는 겁니다? 저는 저 카논의 밤거리를 뛰고 있다고 말해 주십시오!”
피터는 이드의 옷자락을 잡고 간곡히 요청했다.
만에 하나라도 라울이 날아와 ‘너야? 네가 이드 님 입을 빌려 지원을 요청한 거냐? 이딴 간단한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빌빌대는 이 무능이!’라며 멱살이라도 잡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섭도록 유능한 상사를 둔 부하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죽어서도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할까?
“이런 개 같은!”
모든 마차가 떠나고 저택의 대문이 굳게 닫힌 뒤.
솔론 단장을 데리고 방에 들어선 톤 자작은 참고 참았던 화를 터트렸다.
와장창!
널따란 책상 위에 올라 있던 온갖 물건들이 톤 자작의 손짓에 쓸려 나가 깨지고 구르며 난장판이 되었다.
쾅! 쾅! 쾅!
그것으로도 모자랐던 톤 자작은 책상을 있는 힘껏 내리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빌어먹을 놈! 쓸모없는 놈! 어떻게 내게 도움이 되는 놈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이야! 헉, 헉, 헉.”
그렇게 한참 화를 낸 톤 자작은 거친 숨을 내쉬며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솔론 단장이 미리 꺼내 놓은 잔에 술을 넘치도록 채워 내밀었다.
“이제 화가 좀 풀리셨습니까?”
“어림도 없어! 최소한 도비드 놈 정도는 오크 먹이로 던져 줘야 진정이 되지.”
챙그랑!
꽤 독한 독주를 단숨에 마셔 버린 톤 자작이 마시고 난 잔을 바닥에 던져 깨버렸다. 그 모습에 솔론 단장은 내심 혀를 찼다.
아무래도 오늘 톤 자작의 손에 잡히는 물건은 제대로 남아나는 것이 없을 모양이었다.
“도대체가 아들이라고 있는 것이나, 기사 놈이나 어떻게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느냔 말이야.”
“송구합니다. 제 훈련이 부족한 탓입니다.”
“듣기 좋은 소리나 듣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그딴 말보다는 답을 내놓으라고. 내가 오늘 빌어 처먹을 감찰관 놈에게 당한 수모를 어떻게 갚아 줘야 할지에 답을 내놓으란 말이네.”
“……자작님, 상대는 바벨입니다.’
자작의 억지에 솔론 단장은 결국 내일 꺼내 볼까 하던 말을 꺼내놓았다. 하지만 자작은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상대는 감찰관이지. 절대 바벨이 아니야. 둘을 같이 보지 말게.”
개도 주인을 보고 패야 하는 세상이다. 어찌 그 둘을 따로 볼 수 있을까. 그야말로 억지였다.
그렇게 솔론 단장이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자 그 모습을 곁눈질한 톤 자작이 은근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말인데.”
“말씀하십시오.”
“이제 슬슬 카논무파를 세상에 내놓을 때가 된 것 같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