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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47화


1182화

‘또 그 이야기로군.’

솔론 단장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카논무파.

최근 톤 자작의 입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었다. 현재 자신이 가장 중히 여기는 곳이지만, 톤 자작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내용은 너무나 불편했다.

“그 일은 제 권한 밖입니다.”

“내가 그걸 모르나? 하나, 말하는 걸 보아하니 자넬 카논무파와 연결해 준 사람이 나라는 걸 잊은 듯하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알아, 알아. 나도 불가능한 걸 바라진 않아. 그저 카논무파의 중진으로서 의견을 내라는 말이네. 그 정도는 할 수 있잖나.”

스윽.

톤 자작이 술을 채운 잔을 솔론 단장 앞으로 밀며 말했다.

솔론 단장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말이 좋아 ‘간단히 의견만 내’라는 거지, 조직의 방향성을 정하는 일에 간섭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제 발언에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자네는 모르겠지만, 자네와 나. 그렇게 하나, 둘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네. 그게 정치지.”

그 말에 솔론 단장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저 의미는 벌써 위에서도 귀를 기울일 정도로 목소리를 모았다는 뜻인데. 언제 그렇게나……………. 과연 대상인답게 수완이 좋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솔론 단장이 내놓을 수 있는 답도 하나뿐이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정해 놓은 것을 위에서 쉽게 바꾸려 하겠습니까?”

“영원한 건 없는 법이네. 상황이 바뀌면 그에 따라 규칙도 바뀌어야지. 자네도 소드 팰러스에 대한 추문은 들었겠지?”

미완의 마탑 토벌과 함께 퍼지기 시작한 소드 팰러스의 소문은 다양했다.

검후 관련은 물론이고, 삼검왕, 제국 황실, 제법 이름 있는 가문의 수련생까지. 그야말로 전 대륙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드 팰러스다운 유명세랄까.

거기엔 일부 사실도 있지만, 대부분이 거짓과 날조였다.

“그런데 말이네. 그게 거짓이면 또 어떤가? 저 철옹성 같던 소드 팰러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리고 경쟁자가 흔들릴 때야말로 치고 나갈 절호의 기회인 법이야. 그야말로 세상의 시선을 우리에게 끌어올 일대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네.”

“저는 걱정이 좀 됩니다. 자작님께서 너무 사람을 모으면, 아무래도 위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흥, 그게 뭐가 문제야. 세상의 흐름에 가장 먼저 올라타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상인의 재주인데. 그리고, 날 삐딱하게 보려면 보라지.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뒤로 미끄러지는 순간 나는 앞으로 치고 나갈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오늘 당한 수모도 모두 갚아 줄 수 있어. 후작에게도, 감찰관 놈에게도. 그리고.. 바벨에게도.”

무슨 상상을 하는 것일까.

술잔을 입에 문 채 음험하게 웃어 젖히는 톤 자작을 보고 있노라니 솔론 단장은 술맛이 뚝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시류를 읽는 눈은 정확한데, 목적이 저래서야.

그는 이내 난장판이 된 바닥을 바라보았다.

‘도움 되는 놈이 하나도 없다고 했지? 그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로군. 아래위로 왜 이렇게 다루기 까다로운 자식들뿐이냐.’

그래도 가끔 속 썩이는 부하들은 그나마 괜찮다.

톤 자작이 기사단을 운영하는 비용이면 거의 모든 문제를 처리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부단장이 나서면 그가 따로 정리할 일도 없다.

그러나 톤 자작과 카논무파의 중진들은 다르다. 특히 중진들이 한 번씩 돌출 행동을 할 때면 정말 심각했다. 어떻게 하나 같이 그렇게 괴팍한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어려운 건 역시 그분이지.’

솔론 단장은 무심코 어떤 인물을 떠올리고는 내려놨던 술잔을 들었다.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긴장되고, 어려운 사람.

‘존 워스 님. 과연 자작이 그분의 결정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군.’

솔론은 이미 깊이 자신만의 상상에 빠진 톤 자작을 두고 조용히 방문을 잡았다.


파티가 끝난 후, 다음 날 아침.

피터 자작 저택의 연무장에는 이드와 일리나가 마주 서 있었다.

가만히 멈춰 선 두 사람은 서로의 검을 맞붙인 상태로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눈만 감고 있다면 마치 그대로 잠들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은 모습.

그 장면에 연무장 밖에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기 바빴다.

특히 이드가 아침 수련을 한다는 말에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해 구경에 나선 피터와 마리의 경우에는 묘한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몇 번이나 목격했음에도 그저 황홀하기만 하던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을 차분히 지켜볼 기회라고 여겼건만.

“이건 뭐,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하나도 모르겠으니.’

“그러게요. 제가 본 무공은 하나같이 심장이 뛰쳐나올 정도로 격렬했는데. 저것도 무공이긴 하겠죠?”

“흐흐. 설마 초인기일까.”

콧방귀를 끼는 피터에 마리가 눈을 흘겼다.

“저도 그냥 해 본 소리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나저나 저 두 사람의 반응을 보니, 저희가 초인이라서 이드 님의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런 말과 함께 마리가 바라본 곳에는 바인과 해쉬가 있었다.

재밌는 것은 그 둘의 표정이나 몸짓 또한 피터와 마리 두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완전히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혹과 의문을 넘기고 유심히 연무장 안을 노려보던 바인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있지, 나…… 저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가슴이 답답해.”

“그래. 처음 검기를 마주했을 때 이런 느낌이었지.’

“이게・・・・・・ 가능해? 검기는 고사하고 티끌만한 기파도 없고, 살기조차 없는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그것도 제삼자에게까지 이만한 실체적 압박감을 줄 수 있다고? 도대체 저 감찰관은 어떤 사람인 거야?”

“모르지. 대신 이걸로 하나는 더욱 확실해졌네. 우리가 엄청난 행운을 만났다는 것.

조용한 해쉬의 말에 바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력도 좋고, 물리력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거대한 힘을 가진 사람의 그림자는 넓으니, 그 아래 쉴 공간은 넉넉하지 않겠는가.

그때 해쉬가 갑자기 쪼그려 앉아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걸로 어쩌려고?”

“저게 무슨 수련인지 궁금하지 않아?”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건 알지. 제발 엉뚱한 짓은 참아. 저분은 우리 은인이라고.”

꼭 은인이라거나, 윗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타인의 수련에 함부로 끼어드는 것은 매우 큰 무례였다. 자칫 큰 부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타인의 수련에 개입하는 것은 싸움은 거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다.

“……”

하지만 해쉬의 호기심은 친구의 불장난을 말리려는 바인보다 빨랐다.

데구르르르.

동그랗게 말렸던 손가락이 튕기며 돌멩이가 바닥을 굴렀다. 마치 동네 아이들이 땅따먹기 놀이를 위해 밀어낸 돌멩이 같은 모습이었다.

연무장 밖에 있던 네 사람의 시선이 돌멩이를 쫓았다. 그들의 머리에는 어떤 그림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정지한 이드와 일리나. 검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 이상으로 전해지는 압박감.

어쩌면 자신들이 보지 못할 뿐 강력한 기운이 두 사람 주변에 요동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저 돌멩이는 모래처럼 허물어지는 것은 아닐까.

꼴깍.

어쩐지 많은 기사 이야기에서 들어봄직한 장면을 기대하며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런데. 데구르르르.

돌멩이가 멈추지 않는다. 멀리 떨어지는 자신들에게는 느껴지는 압박감 같은 건 허상이라는 듯 멈추지 않는 돌멩이는 이드의 발치까지 멈추지 않고 굴렀다.

그리고 그 모습에 묘한 실망감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데구르르르르-

이드의 발 앞에 닿은 돌멩이가 마치 물잔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이드의 신발 속으로 사라지더니.

“어?”

데구르르르르-

곧이어 반대쪽 방향으로 굴러 나와서는 한참을 더 구른 후에야 멈췄다. 그 모습에 바인이 멍하니 물었다.

“……봤어?”

“아니, 넌?”

분명 두 눈을 부릅뜨고 보고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기대감에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초인기겠지?”

그래서 의문이 들었다. 저건 아무리 봐도 무공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인의 말에 가만히 멈춰 있던 해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저 현상의 근원이 무공이었으면 좋겠어.”

“너 혹시…….”

바인은 강렬한 열기를 담은 해쉬의 말에 무언가를 짐작하고는 신음했다. 그렇게 말없이 멈춰 서 있던 두 사람은 곧 조용히 연무장에서 물러났다. 더 이상 이드와 일리나의 수련을 방해하지 않고, 지인들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다만 연무장에 올 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앞으로 나서는 두 사람의 발이 급해졌다는 정도일까.


“라울과 통신은 언제 가능하죠?”

수련을 마치고 식탁에 둘러 앉아 이드의 말에 피터가 답했다.

“두 시간 후 예정되어 있습니다.”

“기대해요. 최대한 많은 지원을 받아 내 줄 테니까요.”

“하하하…… 부디 부탁드립니다!”

피터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드는 그를 보다 창밖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피터 씨는 언제가 좋을 것 같아요?”

“네?”

“톤 자작에게 요구할 내기 조건 말입니다. 언제 황궁에 들어가야 가장 좋을 것 같냐는 말입니다.”

“아, 그 문제라면 이미 정리해 둔 것이 있습니다.”

“빠르네요.”

“이미 언질을 주시고, 그 자리에 직접 있었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지부장직을 내놔야지요. 최대한 톤 자작에게는 압박이 되고, 이드 님께선 가장 많은 고위 귀족을 볼 수 있는 날짜와 시간대를 뽑아 봤습니다.”

톤 자작과 솔론 단장.

카논무파의 줄기로 예상되는 두 사람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조사와 탐색을 중지할 필요는 없다.

재료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좋은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살리는 쪽이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드는 피터가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거기에는 날짜별로 황궁 방문이 예정된 귀족들의 명단과 그들과 톤 자작과의 관계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드는 그 서류를 보고 사람들의 탐색을 우선한 것인지, 톤 자작에 부담이 걸리는 쪽으로 일을 진행할 것인지만 정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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