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56화
1191화
기사 하나가 두 눈을 부릅뜨고 마차 안을 살핀다.
밖에선 또 다른 기사가 ‘출입 허가’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다.
기사는 종이와이드를 번갈아 보며 종이에 적힌 정보가 맞는지를 확인한다. 마차에 함께하는 사람이 톤 자작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한 치의 허술함도 보이지 않는 깐깐한 모습이다.
다른 나라도 그렇긴 하겠지만 이곳 카논의 절차는 유독 더 철저했다.
아직도 굳게 닫혀 있는 성문만 해도 그렇다.
아나크렌의 경우 낮에는 황궁의 성문이 열려 있다. 한데 여기 카논의 경우 무섭게 닫혀 있다.
그 앞을 지키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기세 또한 살벌한 건 당연하고.
이래서야 편히 궁을 방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도 어지간해선 발길 하기 어렵지 않을까.
뭐, 황제와 황가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는 사이, 마차에 수상한 점이 없음을 확인한 기사가 물러났다. 그러자 밖에 있던 기사가 종이를 접고서 말했다.
“톤 자작님, 그리고 바벨의 에단 감찰관. 두 분의 방문이 허가되었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였네.”
“별말씀을. 그럼.
곧이어 기사가 신호하자 무거운 성문이 열리고, 마차가 천천히 그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두껍긴 하지만 겨우 성벽 하나를 넘었을 뿐이다.
한데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
“대단하군요. 같은 황성인데, 밖에서 볼 때와 안에서 볼 때의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이드는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각국의 환경과 문화에 따라 건축의 형태도 다르다. 그에 따라 카논의 황궁은 전체적으로 각져 있었고, 뾰족하게 솟은 첨탑도 많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권위와 위압감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고 할까.
한데 성벽을 넘어 바라보는 황궁의 느낌은 달랐다. 그저 바라보는 각도가 바뀌었을 뿐인데. 위압감과 권위는 어디 가고, 거인에게 보호받는 듯한 편안함과 더불어 내 명령을 기다리는 든든한 창을 보는 것 같은 힘을 느끼게 한다.
마법으로 인한 감각이 아닌, 순수하게 건축물에서 전달되는 힘.
“흥, 카논에 발을 들이고서도 황궁을 설계한 위대한 건축가에 대한 것도 몰랐단 말인가. 한심하군.”
물론 그런 순수한 감탄을 삐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말은 한 귀로 흘렸다.
건축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톤 자작에게 물어 봤자 정상적인 답을 듣기는 힘들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한 사람은 한심하다며 떠들고, 한 사람은 그 말을 무시하는 사이 마차는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직후 솔론 단장이 마차의 문을 열자, 건물 안에서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걸어 나왔다.
만난 적 없는 사람.
하지만 이드는 그가 누군지 안다. 피터가 가져온 서류 속 초상화에서 봤다.
매노리 콘펌 남작.
다른 부분은 조사 중이었지만, 확실한 사실은 콘 자작과 한배를 탄 인물이라는 것.
“콘펌 남작.”
“어서 오십시오, 톤 자작님. 이쪽이 바벨의 에단 감찰관이시겠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바벨의 에단입니다.”
콘펌 남작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이드는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어 상대와 악수했다. 그와 함께 상대의 기혈을 살피는 것은 덤. 카논 제국에서는 아주 자동이다. 자동.
‘톤 자작과 같네. 카논무파의 무공을 익히진 않았어.’
톤 자작에 이어 두 번째다.
분명 카논무파와도 관련이 있을 텐데, 무공을 익히고 있지는 않다.
어째서일까. 카논무파의 무공은 소드 팰러스를 통해 퍼진 무공에 비해 발전이 빨라 익히기 어렵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무공을 연마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쁜 것일까? 배워선 안 된다는 규칙이 있나?
‘그도 아니면, 마공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힐끔.
이드의 눈이 솔론 단장을 스쳤다.
그의 발전을 옆에서 보고서도 과연 그 힘이 탐나지 않았을까? 카논무파의 무공을 연마하면 안 된다면, 소드 팰러스에서 나온 무공을 익혀도 된다. 꼭 무력을 발휘하기 위해서가 아닐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익히는 편이 좋았으니까.
한데 누려야 할 것도, 누릴 것도 많은 자들이 그런 걸 멀리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욕심을 버렸다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톤 자작은 어떻게 봐도 무소유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이런 생각의 과정을 거치면, 결론은 세 번째 가능성에 도착하게 된다. 카논무파에서 나온 무공의 위험성을 알고 있다는 것 말이다.
마공을 수련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통제되지 않는 감정. 경지를 넘지 못했을 경우 발생하는 말년의 파탄. 거기에 더해서 만약 아직 이드가 알지 못하는 약점이 더 존재한다면?
아마 그런 사정을 알고서는 절대 카논무파의 무공을 익힐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무공의 위험을 알았다면 자연히 소드 팰러스의 무공도 의심스럽고, 조심스러울 테고.
무엇보다 능력만 된다면 무공이 주는 장점 정도는 충분히 마법과 신전을 통해 구할 수 있으니, 굳이 불안을 안고서 무공을 익히지 않는 것이다. ‘이거, 돌아가면 바벨에다가 카논무파의 무공 원본을 구해 보라고 해야겠네. 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겠어.’
피터의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으어어.”
“어? 왜 그러세요?”
“몰라.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것이 아무래도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나 봐. 아무래도 휴식이 필요할 것 같은데….”
“라울 님께 대신 전해 드려요?
“……일하자.”
일하다 말고 탁자에 머리를 박고 있던 피터가 다시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도 마무리 짓지 않고 휴가라니. 농담이 아니라 진짜 죽이러 올지 모른다.
“들어가시죠. 톤 자작님의 부탁도 있으셨으니, 오늘은 특별히 제가 직접 궁 안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콘펌 남작이 열린 문 앞에 서서 손짓했다.
이드는 그에 감사의 인사를 표했지만, 내심은 전혀 아니었다.
궁 안의 사람을 책임지는 사람 중 삼 순위라고 했다. 그런 인물이 아무리 부탁을 받았어도, 뭐가 아쉬워서 직접 안내하고 나설까. 결국 다른 사람이 알아서는 곤란한 일이기에 직접 나서는 것이다. 본인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문 안으로 들어선 궁 안의 모습은 성벽 안에서 볼 때와 또 달랐다.
화려하고 포근하다. 거기에 더해서 구조가 복잡하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궁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보시는 이 궁의 이름은 사라나. 황궁에 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세 개의 건물 중 하나입니다.”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면, 매우 특별한 곳이 아닙니까?”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 오랜 기간 꼭 필요했다는 뜻이고, 다시 말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이라는 의미였다.
“그렇습니다. 과거에는 황세자께서 이곳을 사용하셨지요. 이름조차 카논의 초대 황제께서 모친의 성함을 따 왔을 정도니까요.”
“그런 의미 깊은 궁에 발을 들였다니 영광이로군요.”
“하하하. 제가 특별히 신경을 좀 썼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데, 그런 곳이면 보통 황가의 분께서 머무시는 곳이 아닙니까? 아무래도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만.”
“괜찮습니다. 전부 오래전 얘기니까요. 시간이 흐르며 궁이 몇 배나 넓어진 지금에 와서는 그 용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황가의 분들께선 더욱 편하고 안전한 곳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이제는 황공하게도 궁과 제국의 살림을 돌보는 용도로 쓰고 있습니다.”
“아하, 콘펌 남작님의 사무를 보시는 곳이로군요. 과연 황제 폐하께서 이런 곳을 내어줄 정도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부끄럽군요. 저 혼자 쓰는 곳도 아닙니다.”
말과는 달리 몸짓 하나하나에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톤 자작과는 좀 다른 자신감이랄까. 그나마 오만하게 보이지 않는 점이 선을 지키는 듯 보인다.
하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가 일하는 곳은 황궁이다. 고개 돌리는 곳마다 남자백후에, 황족이 발에 챌 정도로 굴러다니는 장소.
한순간의 실수에 자신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그야말로 한둘이 아닌 공간.
권력욕이 향하는 최후의 종점이면서도, 어지간한 간담이 아니고선 하루도 버틸 수 없는 곳이 바로 황궁이다.
그러니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것이다.
“황가의 분들이 아니고서 궁 안에 건물을 혼자 쓸 수 있는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가만 보니 제가 황궁에 든 것이 영광이 아니라, 남작님께 안내를 받는 것이 영광인 것 같습니다.”
이드의 입에서 꿀 발린 말이 술술 잘도 흘러나왔다.
한 걸음 뒤에 선 톤 자작은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노려보았다. 자신과 콘펌 남작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나 다르다니.
그 작은 차이에 이드에 대한 톤 자작의 원한이 한 층 더 두꺼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드는 콘펌 남작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 갔다. 사실 아부라고는 해 본 적도 없었지만, 콘펌 남작이 듣기 좋을 말을 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 배운 대로 겸손하고, 상대를 높이는 예를 차리면 그만이었다.
딱 그 정도만으로도 이곳에서는 충분히 품위 있는 아부의 말이 된다. 그야말로 중원과 그레센이 가진 문화의 차이랄까.
그렇게 궁 내부를 한 바퀴 돌았을 때였다.
사라나 궁의 자랑인 벽면 한 쪽을 꽉 채운 색유리 앞에 멈춰선 콘펌 남작이 양해를 구하며 말했다.
“잠시 먼저 앞서가십시오. 감찰관에게는 실례이나, 아무래도 톤 자작님과 꼭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말입니다.”
“전혀 상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천천히 대화 나누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이 색유리가 너무 아름다워 잠시 감상하려던 차였습니다.”
안 그래도 중간중간 톤 자작을 힐끔거리는 것이 안절부절못하기에 어쩔 것인가 싶었다.
더욱이 자신이 있음에도 참지 못하고 나눌 이야기가 어디 가벼운 것일까.
이드는 일부러 성큼성큼 걸어 거리를 뒀다. 듣지 않을 테니, 맘껏 이야기를 나누라는 양
그러자 콘펌 남작이 곧장 톤 자작에게 붙어섰다.
마치 연인처럼.
한데 그 표정이 실로 좋지 못하다. 몸의 거리는 연인 같은데, 표정은 원수를 바라보는 것 같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준 사이에 저럴 수 있을까?
보통은 어려운 일을 해결해 줬으니, 알아서 잘하라며 잘난 척을 해도 모자랄 것인데?
‘일을 서두르다 사달이라도 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