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761화


1196화

저벅저벅.

이드가 황금 문을 향해 걸어간다.

쿵쿵, 쿵쿵.

발소리를 따라 톤 자작의 귀에 울리는 심장 소리가 커진다.

‘옳지 옳지. 어서 그 안으로 사라져 버려라, 이 쓸모없는 것아!’

감히 운 좋게 초인의 힘을 얻어 자신에게 수치를 준 놈이 곧 사라진다.

말리는 솔론 단장을 뿌리치고, 콘펌 남작이 선을 그었지만 강압했다. 그렇게 불어올 부담을 각오하고 밀어붙인 일.

그 마무리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톤 자작은 속마음을 감추고 최후까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러는 사이, 문 앞에 도착한 이드가 돌연 뒤를 돌아봤다.

“……”

“뭐라는 거냐?”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본 톤 자작이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원래라면 들었다 한들 모른 척했겠지만, 지금은 저 멍청한 것이 제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알아서 찾아들어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마지막 말 정도는 들어 줄 생각이었지만.

피식.

돌아온 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에 더해 모두 알고 있다는 양 내려다보는 눈빛이라니.

“설마…….”

톤 자작은 순간 오싹한 위기감에 휩싸였다.

비틀린 입술과 눈빛.

한마디 말도 없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어떤 짓을 꾸몄는지 훤히 꿰고 있다는 뜻이 선명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놈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면? 일단 도망부터 칠까? 순식간에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에 톤 자작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사이 이드는 혀를 차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 안으로 발을 디뎠다.

“헉……!”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 톤 자작은 숨을 멈췄다.

함정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게 아니었나? 어째서 돌아 나오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간 것인가. 그런 의문과 함께 단에 있던 수정구가 둥실 떠오르고, 곧이어 황금 문이 저절로 닫혔다. 찰칵.

장치가 돌아가며 문이 잠겼다.

잠시 후 문에 적혀 있던 글자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섞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여러 가지 재료를 집어넣고 저어 대는 마녀의 솥 같았다.

“시작됐군.”

그걸 본 콘펌 남작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걸로 된 거요?”

톤 자작이 급히 물었다.

금지로 밀어 넣은 놈이 보였던 마지막 모습. 그에 대한 의문과 두려움은 빠르게 밀려났다.

놈이 제 발로 금지에 들어가는 걸 직접 보지 않았는가. 이제는 놈이 무얼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놈은 이제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할 곳으로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금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는 어디까지나 들은 게 전부. 직접 겪어 본 적이 없기에, 톤 자작은 확답을 받고 싶었다.

“이제 놈이 돌아오지 못하는 거냔 말이오.”

“끝났소.”

“흐흐, 확실한 거요?”

“금지가 왜 금지겠소. 선을 넘는 순간 돌아올 수 없기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기에 금지인 거요. 문이 닫혔으니 다 끝났소. 곧 ‘그게’ 떠서 확인까지 시켜 줄 거요.”

그리고 콘펌 남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글이었다.

깨알같이 적혀 있던 글자들이 이리저리 뭉쳐 한 줄의 짧고 굵은 문장을 만들어 냈다.

‘카논 제국이여, 해방의 마법사 게르만을 기억하라. 위대한 마법사를 영원히 추모하라. 나 카논 제국 황제 세라모르도가 이곳에 그의 유물을 남기니, 그의 영면을 방해하는 자, 카논의 이름으로 죽음을 내리리라.’

경고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 황제의 필체는 한 획 한 획이 힘이 넘쳤다.

그 위협적인 금빛이 눈을 찔렀다.

시큰거리는 느낌에 톤 자작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런 그의 얼굴은 마치 막힌 것이 뚫린 듯 맑고 편했다.

“좋아. 아주 좋아! 악취 나는 평민 나부랭이를 치우고 나니 이제야 좀 속이 편해. 진작 이렇게 되어야 했어! 와하하하하!”

콘펌 남작이 통쾌하게 웃어 젖히는 톤 자작을 노려보았다.

남의 탄탄대로에 재를 뿌리고는 좋다고 웃어 대는 꼴이라니. 마음 같아서는 쩍 벌어진 아가리에 칼이라도 꽂아 버리고 싶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제 뒤이어 밀려올 파도만 잘 넘기면 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기록을 살핀 바에 따르면, 여태 저 황금 문이 닫힌 후 다시 열린 경우는 없었다. 적어도 안에서 열린 적은 말이다. 그건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암. 절대 있어선 안 될 일이지!’

그는 문득 떠오른 불길한 상상을 급히 부정했다.

황궁 마법사를 비롯해, 게르만이라는 대마법사의 마법을 탐낸 고위 마법사들을 몇이나 삼켜 버린 문이다.

아무렴 바벨의 감찰관이 대단해 봐야 그들보다 대단할까.

“그렇다고 불안 요소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닌데….?”

제일 큰 변수는 감찰관이 초인이라는 점이다. 드물긴 하지만, 초인들이 각성하는 초인기 중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혹시라도 감찰관의 초인기가 이런 특수한 종류의 것이라면, 어쩌면 감찰관은 저 금지에서 빠져나올 수도.

짝!

콘펌 남작은 자신의 뺨을 힘껏 때렸다. 말이 씨가 된다고, 불길한 상상이 행여나 현실이 될까 두려웠다.

“왜 그러는 것이오? 미치기라도 한 거요?”

“오늘부터 내게 한 마디도 하지 마시오!”

누가 누구에게 미쳤다는 것인지.

콘펌 남작은 찬바람을 풀풀 날리며 획 돌아섰다. 좋은 일 하나 없는 이곳을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다.


찰칵.

문이 닫혔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굳이 확인해 볼 필요도 없는 일이기에 이드는 뒤를 돌아 살피는 대신 앞으로 나섰다. 제단 위에 떠올라 있는 수정구에선 어떤 변화도 없다. 아직 본격적으로 금지가 발동된 건 아닌가?

그런 생각과 함께, 완전히 밀폐된 방 안을 한 바퀴 돌아본다. 황금 문과 제단을 제외하면 특별할 것 없는 방.

“아니지,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네. 이 정도로 철저하게 막혔으니, 오래 있으면 질식으로라도 죽겠어.”

간단한 환상 마법으로 방 안을 쉼 없이 뱅뱅 돌게만 해도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쉬울 것 같다.

당연히 진짜 그런 유치한 수준의 함정이라면 금지라고까지 불리는 일도, 이드를 이 안으로 밀어 넣을 일도 없었을 거다. 

스스스스

그때, 그걸 증명이라도 하는 양 변화가 생겼다. 얌전하던 수정구가 돌연 안개라도 낀 듯 불투명해지더니, 수정구를 중심으로 마나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흘러내린 마나는 바닥에 깔리며 사방을 막고 있는 벽으로 흡수되는가 싶더니, 곧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 중앙에 물방울처럼 맺혔다. 또욱.

눈에 보일 정도로 실체화한 마나는 곧 아래로 떨어져 내렸는데, 그 아래 있는 것이 마나의 출발점인 수정구다.

“순환?”

시작과 도착점이 동일한 순환.

“겨우?”

물론 ‘겨우’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다. 순환이야말로 우주를 구성하는 진리의 한 축이니까. 하지만 작은 지식이라도 있다면, 비록 깊이 있는 이해까지는 아닐지언정 순환을 모르는 자는 없다.

그런데 그 게르만이 남겼다는 것이 겨우 이거라고?

당연히 그렇지는 않았다.

똑.똑.똑.

물질화된 마나가 수정구 위로 떨어지고, 그때마다 하얀색의 수정구는 점점 검어졌다.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 그렇다고 살기나 악취가 풍겨 나오는 오염된 마나도 아니었다.

“마기보단 혼돈인가. 역시 혼돈의 파편의 행사였구나.”

이드는 너무나 심원해 빛도 빨아들이는 마나의 정체를 금세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일까.

쩌어억.

언제 투명했냐는 듯 새까맣게 물든 수정구가 절반으로 뚝 갈라지고, 안에서 뿜어진 흑광이 방 안을 덮었다.

“여긴……..”

그야말로 한순간에 일어난 일.

흑광이 스치고 지난 순간, 이드는 이미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사방이 검은 공간. 땅도 하늘도 없는 곳. 발아래 저 멀리 별이 반짝이고, 머리 위에는 화산처럼 시뻘건 구멍이 뚫려 그리로 붉은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쓰읍. 조심한다고 했는데 당했네. 이거, 잔소리 좀 듣겠는데.”

사방으로 뻗어가는 기감에 걸리는 것이 없다.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라는 의미다.

고도의 환상 마법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속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눈과 뇌 정도. 지극한 환상도 무극신기를 속일 수는 없다.

아쉬운 점이라면 경계도 하고, 호신강기도 둘렀음에도 언제 당했는지 모르고 당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동 마법에.

이드는 이곳이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그 방이 아니라는 걸 알았음에도, 그것이 가능한지 의심이 들었다.

물론 무극신기가 전해 오는 정보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천하의 이드가 손쓸 틈 없이 당할 만한 이동 마법이라니. 이런 게 있었다면 혼돈의 파편도 진작 사용했으리라.

막말로, 이드가 아무리 강해도 저 심해나, 우주, 극단적으로 태양 안으로 던져지면 대응할 수 없으니 말이다. 혼돈의 파편이 소멸의 스릴이라도 즐기는 게 아닌 다음에야, 쓰지 않을 까닭이 있을까.

“신기한 건 신기한 것이고, 아무래도. 불러야겠지?”

이드는 볼을 긁적였다.

당장 주변에 자신을 위협할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이 두 사람이 말하던 금지임은 확실한 듯했다.

콘펌 남작의 말대로라면 제법 많은 마법사가 이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건 무엇인가의 공격에 의해서일 수도 있고, 또는 돌아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드 또한 전자라면 상대가 누구이건 맞서 싸울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돌아가는 방법을 찾을 자신은 없었다.

마법 지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걸 활용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이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하나 여기서 이전 이곳에 온 마법사들과 이드의 다른 점이 생긴다. 그들에겐 다른 방법이 없었지만, 이드에겐 언제든 부를 수 있는 외부의 도움이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할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면 된다.

다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택을 나설 때 그렇게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 놓고, 이런 곳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잔소리를 퍼부어 댈지.

“그래. 어쩌겠어. 다 내가 방심한 탓인 것…… 이런. 엿듣는 건 매너가 아닌데. 혹시 그런

기본 예의도 모르시나?”

듣는 사람도 없는 허공에 변명을 하던 이드의 손에는 어느새 검이 들렸다.

그런 이드가 돌아본 곳.

붉은 비치 아래. 그 아무것도 없던 곳에 어느새 비쩍 말라비틀어진 고목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위에는 볼품없는 꼴을 한 노인이 걸려 있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