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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73화


1208화

“쯧, 나도 모르게 방심해 버렸네.”

자신을 향해 번득이는 이빨에 이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힘만 센 아이 같은 괴수의 단순한 반응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틈이 생겨 버린 것이다.

지금처럼 엉겁결에 적의 공격권 한가운데 놓인 적이 또 있었을까 싶다.

사실 정말 격하의 상대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쉬운 상대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싸운 것은 아니지만, 드래곤이나 혼돈의 파편 등은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자연재해 급이 아닌가.

그에 비하면 괴수는.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온전히 본인의 실수다.

누군가는 그게 그리 큰 잘못이냐고 할 수 있다. 이드쯤 되는 사람에게 이게 무어 그리 대단한 위협이냐고.

방심이 아니라, 그저 적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이드에겐 헛소리나 다름없었다.

이드라는 인간의 정체성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바로 그가 ‘무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무인의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을 상대함에 있어서 절대 방심하지 않는 태도.

한데 잠깐이지만 그 마음가짐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최근 정신사나운 일이 많아서 그런가. 명상이 좀 필요하겠어.’

이드는 그 즉시 새로운 정신 무장을 위한 수련 계획을 결정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라미아를 살폈다.

혹시 그녀가 지금 자신의 꼴을 보고 있다면, 추후 그 입을 막아야 했으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수치를 일리나와 검후에게까지 알릴 바에야 라미아를 매수하고 말리라!

하나 다행히도 게르만을 살피기에 바쁜 라미아는 이쪽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이드는 내심 한숨을 쉬며 일라이져의 검광으로 무한대의 기호를 그렸다.

장난처럼 보이는 그 흐름을 따라, 끊어지지 않는 두 개의 고리가 화경이라는 개념을 세상에 실체화했고.

촤르르륵.

이드가 마음을 다독이는 사이.

검은 공간을 하얗게 채우며 날아들던 이빨들이 물에 떠내려가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부딪치며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빨들은 마치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 이드의 검 끝에 매달린 리본처럼 길게 늘어졌고.

서거거거걱!

순식간에 길이를 더한 이빨에 대나무처럼 빼곡이 내리박혔던 촉수들이 후두둑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드의 시야도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끄워워…….”

제법 고통스러웠는지, 괴수가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탓.

가볍게 바닥을 찬 이드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지워지듯 사라진 후, 괴수의 등 뒤 허공에서 다시 나타났다.

쿠르르릉!

이후 이드의 움직임에 부서진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천둥소리를 냈고, 반대로 괴수는 토하던 울음을 멈췄다. 퍼억!

치이이이익!!

대신 머리와 가슴의 구분이 힘들었던 괴수의 몸이 주욱 쪼개지며 그 속에서 대량의 진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진물은 그 고약한 악취만큼 독했다.

진물이 떨어진 바닥이 불에 닿은 얼음처럼 맥없이 녹아내린 것이다. 심지어는 괴수의 몸과 촉수마저 녹이려 했다.

도대체 저런 지독한 물건을 어떻게 몸속에 품고도 멀쩡할 수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들 때였다.

진물이 마치 슬라임처럼 괴수의 몸을 거슬러 오르더니, 이내 갈라진 몸체를 한데 묶어 합치고는 그대로 괴수에게 흡수되었다.

그러자 진물이 녹아내리던 몸뚱이는 어느새 재생이 되었고, 이드가 반으로 갈라 버렸던 머리에는 그러한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크워워워우우~!”

녹기는커녕 오히려 다시 멀쩡해진 것이다. 괴수는 이드의 공격에 더욱 성난 모습으로 몸부림을 쳤다. 당장 머리 위에 박힌 눈알에서 토해진 백색 화염이 공간을 태워 내고 있었으니까.

“이야, 이걸 안 죽네. 과연, 원조는 다르다는 건가.”

게르만에게 불사성을 부여했던 걸 일컫는 말이었다.

이드는 괴수가 뿜어내는 폭포수 같은 화염이 라미아에게 튀는 것을 쳐 내며 한숨을 쉬었다.

좋지 않은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게르만과 고목의 재생 능력을 본 이드는 어쩌면 괴수 또한 그렇지 않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절반이나 잘려 나간 몸을 저렇게 일순간에 합쳐 버릴 줄은 몰랐다.

공격한 입장에서는 허탈함을 넘어, 공격에 대한 의욕마저 사라져 버릴 만한 모습이다.

정확한 대처 방법을 모른다면 그야말로 칼로 물베기가 따로 없다. 어떤 피해를 입혀도 수초 만에 멀쩡하게 돌아올 테니 말이다.

문득 게르만이 가진 바 능력과 그 마지막을 안타까워한 황궁 마법사가 떠올랐다. 그가 결국 괴수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 버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무리 마법사의 능력이 뛰어나도, 무한대로 회복하는 괴수를 상대로 무한히 마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 마법사와는 여러 가지로 달랐다.

실력이나, 동료의 유무를 떠나, 적을 상대할 때 가장 중요한 점.

“그럼 그 재생 능력의 약점도 같은지 확인해 볼까.”

바로 적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괴수의 몸이 오리하르콘에 타들어 간다는 건 이미 확인한 사실이다. 워낙 빨리 재생해서 그렇지, 방금 괴수를 절반으로 갈랐을 때도 그 단면은 까맣게 타버렸었다.

보통은 그렇게 타면 치료가 어려운 법인데. 이 괴수 놈은 그런 상식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촤촤촤촥!

이드는 자신의 발을 묶으려 드는 마안과 순백의 화염, 그리고 촉수 사이를 가로지르며 괴수의 몸통을 노려보았다.

오리하르콘의 검신이 박힌 고목을 생각해 보라.

저 괴수에게도 신체가 잘리는 정도가 아니라, 몸속 깊숙이 오리하르콘를 찔러 넣어 두면?

그래도 과연 아무렇지 않을까?

그 검이 괴수의 몸에 비해 아무리 작다고 해도 말이다.

본래 극독은 바늘 끝에 묻은 미세한 양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과연 괴수에게 오리하르콘은 얼마나 극독이 될까. 그리고 이런 심상은 신검합일을 이루고 있는 일라이져에도 전해졌다.

부르르,

그와 함께 분명 자아가 없을 일라이져가 진저리를 치며 몸을 떨었다. 절대로 이드의 의지에 감응해 일어난 일이 아니다. 실로 지금까지 없었던 신비한 현상이지만, 이드는 어쩐지 일라이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애원이었다.

저 악취나는 괴수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싫다는 간절함 말이다.

“걱정 마. 아무렴 내가 널 그런 데 쓰겠니.”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이드 또한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사방에 악취가 가득하다. 그 근원과 같은 괴수의 몸속에 일라이져를 던져 넣었다가 만에 하나라도 그 악취가 검신에 배기라도 한다면? 실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꼭 악취가 아니라도 땅과 함께 제 몸마저 녹이는 강력한 산성 능력을 가진 진물이 괴수의 몸속에 있다. 아무리 오리하르콘이 괴수와 상극이라도, 저 속에서 녹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환경 속에 던져 넣기에는 일라이져라는 신검은 너무 아깝다. 대체할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니고,

“우선 속옷부터 좀 벗긴 후에 시작할까.’

괴수의 공격 속을 무참히 헤집던 이드가 그리 말하고는, 놈과의 거리를 급격히 좁히며 검을 휘둘렀다.

수라삼검의 붉은 검강이 사방으로 번뜩였다.

화염이 갈라지고, 촉수가 잘려 나갔다. 그때마다 쩌렁쩌렁하게 울부짖는 괴수였지만, 실제로 놈의 피해는 전무에 가깝다.

잘려 나간 촉수가 재생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수초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 몇 초 사이 이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예를 들어 잡초처럼 잘라 낸 촉수가 다시 자라기 전, 괴수의 몸뚱이에 강기의 실을 하나로 끌어모아 그 폭발력을 발산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수많은 빛 무리가 하나로 합쳐진 것 같은 수라섬광단.

“끄에에에에에!”

그 강력한 힘에 괴수의 몸을 휘감고 있던 2차 촉수가 우수수 잘려 나가며 그 아래 괴수의 몸체가 나타났다.

이드는 그 즉시 아공간에 있던 모든 오리하르콘제 무기를 꺼내 괴수의 몸속으로 박아 넣었다.

푹! 푸푸푹!

무극신기를 주입받은 무기들은 금방 그 날에 강기를 뿜어내며 괴수의 몸속을 뚫고 들어갔다.

이드가 미리 적당히 분배한 힘에 따라 각각의 무기들은 괴수의 몸체 중심과 뇌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머리 부분에 모여 자리를 잡았고. 곧 오리하르콘과 괴수의 몸이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밖에 있는 이드에게도 금방 확인이 되었다.

하늘을 향해 찢어질 벌어진 괴수의 입에서 꾸역꾸역 진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 몸에 달린 눈알 주변에서도 마찬가지.

거기에 더해 이드의 검에 잘려 나간 이후에도 재생하던 촉수가 움직임을 멈추고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야말로 화살 맞은 기러기가 떠오르는 모습이었지만,

“크워워워워!!”

역시 괴수는 기러기가 아니었다.

쩍 벌어진 입에서 진물을 뿜어내며 고통 가득한 울음을 터트리던 놈은 이내 온몸을 비틀어 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떼를 쓰는 아이처럼, 등이 가려운 개처럼, 성게처럼 모든 촉수를 뾰족이 세우고서 제 몸을 굴리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왜 하필 저쪽으로 가는 건데!”

마치 주인을 잃은 마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한 괴수. 아무리 약해졌다 한들, 그 크기와 무게의 파괴력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언제 무너질까. 편히 그때를 기다릴 생각을 하던 이드는 사방을 구르던 괴수가 라미아 쪽으로 방향을 잡자 낭패한 모습으로 발을 굴렀다. 짜자작.

뇌령전궁보 특유의 현상이 발끝에서 일어나며 순식간에 괴수를 앞지른 이드. 라미아의 앞을 막아선 그가 무형검강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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