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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777화


1212화

“저 새끼가!” 

이드가 발끈했다.

발을 동동 굴렀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구멍을 넘고 있는 드래곤이 0.1초라도 빨리 이쪽으로 온전히 넘어오기를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문제는 그걸 반대편에 있는 혼돈의 파편이 보고만 있을 턱이 없다는 것이다.

위이이잉!

혼돈의 파편이 무언가를 하기 무섭게, 구멍의 회전 속도가 몇 배는 빨라졌다. 그와 함께 활짝 열렸던 구멍 안의 틈이 열릴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닫히기 시작했다.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가 열렸다 닫히는 것 같았다.

혼돈의 파편 입장에선 당연한 대처였으리라.

반대쪽 상황이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쪽으로 넘어오게 된다면 그는 이드와 드래곤을 함께 상대해야 한다. 구멍 너머도 사정은 비슷하리라. 그렇지 않았다면 드래곤과 일대일로 싸우고 있지 않았을 테니까.

안타까운 건, 당장 이드가 이런 모습을 손 놓고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젠장! 혼돈의 파편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잡을 수가 없다니. 이런 경우가 어딨냐고!”

-아깝지만 어쩔 수 없죠.

“작은 틈이라도 어떻게 기어들 수 없을까?”

분한 마음에 미련을 담아 물었다.

구멍이 닫히는 속도와 구멍을 통과하고 있는 드래곤의 속도를 볼 때, 아주 약간은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드의 물음에 라미아는 단호히 ‘노’를 외쳤다.

-다른 경우라면 몰라도, 공간 계열 마법에서는 모험이나 도전은 절대 금지예요. 뭔 일이 벌어졌다 하면 무조건 대형 사고니까요. 더욱이 이건 그냥 공간 계열도 아니고, 차원 공간이고요. 깨끗하게 포기하는 것이 제일이에요.

“알지. 아는데, 아까워서 그렇지. 너도 봤잖아. 저 자식이 날 보고 비웃는 거!”

-그건 다음에 존 워스를 통해서 갚아 주면 되죠. 지금은 그런 것보다 우리 탈출이 더 중요해요.

엉뚱한 화풀이도 정도가 있지. 이 자리에 없는 존 워스가 알았으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만한 말을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라미아였다. 그런 그녀의 뒷말에 이드가 의문을 표했다.

“그게 왜? 우리 탈출은 큰 문제 없는 것 아니었어?”

정확히는 큰 문제가 있을 뻔했지만, 라미아가 잘 막아 주었다.

-그랬죠. 공간에 대한 구조 해석도 끝났고, 문제없이 나갈 수 있었어요. 이번 일만 없었으면 말이에요.

“이번 일이라…….”

이드는 저 아래, 이제 흔적만 남은 괴수의 사체와 구멍 너머 혼돈의 파편을 보고는 푹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탈출 방법은 있겠지?”

-있어요. 이드가 힘을 좀 쓰긴 해야겠지만요.

라미아는 최대한 간결하게 이드가 해야 할 일을 말했다. 앞선 말대로 어렵진 않았다. 그저 신호에 따라 라미아가 원하는 곳에 힘을 쓰면 되었다. -그럼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았어, 이번에도 신호 보내 줘.”

아쉽지만 할 수 없는 일에 계속 미련을 남기는 것도 어리석은 짓. 이드는 구멍을 넘어가는 일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접어 천황천신검의 장작으로 집어넣었다.

푸르르륵,

그에 여전히 검신에 머물러 있던 천황천신검의 강기가 푸른색을 머금고서 불길처럼 이글거렸다.

꾸오오오오!

그 정련된 기운이 구멍 안까지 퍼진 것일까. 짐짝처럼 내던져진 덕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드래곤이 이드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는 이드를 알아본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이드 역시 가벼운 고갯짓으로 답했다. 동시에 당장 대화할 수 없는 상대를 위해 라미아를 흔들어 보인 후, 구멍을 가리켰다. 구멍을 통과한 후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는데. 잘 알아들었을까.

‘못 들었으면 머리채 잡고 강제로 끌고 가는 거지, 뭐 있어.’

드래곤으로서 체면이 좀 구겨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드래곤이 나오고 있어요. 카운트할게요. 5, 4, 3…………….

구멍 밖으로 드래곤의 날개가 먼저 나왔다. 그에 따라 라미아의 카운트가 시작되었고, 이드는 검 자루를 다잡았다.

뿌드드득.

-1! 지금이에요!

라미아가 외쳤다.

그와 동시에 드래곤이 전신이 온전히 구멍 밖으로 빠져나왔고, 그때를 기다린 듯 구멍 안쪽 콩알같이 작아진 틈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폭발을 시작하는 화산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흡! 갈라져라!”

이드가 노려야 할 곳도 바로 저기였다. 뿜어진 기운을 이 공간으로 쏟아 내기 직전의 경계면.

이글거리던 천황천신검의 불길이 일순간 길게 뻗어 나가며 신이 사용할 것 같은 거검으로 변했다. 검에 담긴 기운의 크기는 무한.

이드의 의지가 실체화되는 그 찰나와 같은 순간.

스숫.

천황천신검이 위에서 아래로 구멍을 갈라 냈다. 이제는 바늘구멍처럼 작아진 구멍은 물론이고, 그곳에서 쏟아진 기운과 함께 그 안에 든 모든 걸 갈라 버린 것이다.

뭉클.

그러자 정해진 절차가 무너지며 통제를 잃은 기운이 이 공간을 유지하는 기운과 정신없이 뒤섞이며 크게 부풀어 올랐다.

공기가 빵빵한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한 그것을 향해 주변의 모든 게 빨려 들어갔다. 검은 공간은 물론, 그 안을 채우던 기운과 이드의 발아래로 비치던 별빛. 그리고 고목과 괴수의 흔적마저도.

그렇게 모든 것이 빨려 들고 나자, 검던 공간이 새하얗게 변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알 수 없도록.

있는 거라고는 이드와 라미아, 라미아의 마법에 잡힌 게르만과 드래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있는, 달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온갖 잡스러운 기운의 덩어리.

하지만 이 상황도 오래가지 않았다.

푸훙!

순일하지 못한 기운은 곧 균형을 잃었고, 임계점을 넘어선 기운은 끔찍한 위력의 폭발을 만들어 냈다.

그 위력은 실로 어마어마해서, 이드마저 식은땀과 함께 숨을 멈출 정도였다.

이곳이 아니라 대륙에서 폭발했다면, 왕국 하나쯤 통째로 날려 버리기엔 충분해 보였다. 핵폭탄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이드라지만 저 폭발에 휩쓸리면 살아날 수 없으리라. 하지만 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위험했다면 라미아가 먼저 어떤 조치를 했을 것이다. 이드는 그녀를 믿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빠가각.

요란한 소리와 함께 폭발과 이드 사이의 공간이 유리처럼 부서지며 갈라지더니, 사방으로 번지던 폭발의 위력을 모두 빨아들여 버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사방으로 퍼지던 그 엄청난 폭발의 힘을 하나로 모아 빨아들이다니.

“저거, 괜찮은 거 확실한 거지?”

이드는 갑자기 저 공간 너머의 상태가 걱정되었다. 느낌상 저 너머에 이드가 원래 들어왔던 방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카논의 황궁이 있다는 말이다.

-말했잖아요. 괜찮을 거라고, 그보다, 준비해요. 우리도 저리로 빠져나가야 하니까. 잠깐이라도 늦어 버리면 여기 갇힐지도 몰라요.

라미아가 경고했다.

라미아는 물론이고 차원의 인도 있으니, 공간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가 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말하는 것을 봐서 상당한 시간 고생할 건 분명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운 눈을 한 채 폭발을 바라보는 드래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거기, 드래곤 씨. 아직 이름도 모르지만, 잠깐 협조 좀 부탁합시다.”

“크롸?”


여느 때와 같은 일상, 고된 일과가 끝날 시간이 가까워지기에 모두의 마음이 두근거리는 시간.

발라파루와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시작은 몸을 가누기 힘든 지진이었다.

우우우우!

와장창!

“우와아악! 뭐, 뭐야!”

“따, 땅이 흔들린다!”

“우앙~ 엄마, 무서워~~ 엉엉!”

창이 부서지고, 가구들이 넘어졌다. 그에 놀란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지는 사람이 속출했고, 달리던 마차는 뒤집어졌다. 다행히 지진은 금방 그쳤다.

하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앞선 지진보다 더 두려운 것이었다.

콰르르르릉!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폭음과 함께, 황궁의 한가운데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무언가가 하늘을 뚫으며 치솟아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붉은 기운은 잠깐이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너무도 불길한 회색 빛줄기였다.

그 빛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떨어 댔다.

“마왕…… 마왕이・・・・・・ 마왕이 강림했다!”

“모두 도망쳐!”

누가 시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참으로 바보 같은 소리였다. 동화책도 아니고, 마왕이라니.

하지만 회색 빛줄기의 불길함을 접한 모든 사람은 그 말을 믿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악다구니를 쓰며 빛에서 멀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황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태의 근원지인 만큼 반응은 더욱 극적이었다. 평범한 시종들은 그 자리에 기절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안에 마나를 다를 줄 아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황제는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공을 운기해 겨우 심신을 안정시켰다.

“이게 무슨 일인가!”

“폐하, 우선 대피하시지요. 이곳은 당장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위험하옵니다!”

“무슨 소리냐! 여긴 황궁이다. 나의 집이란 말이다. 그런 황궁이 위험하다면 대체 어디가 안전하단 말인가! 황제가 황궁을 버리면 그러고도 황제라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 그딴 소리를 할 정신이 있거든, 당장 이 사태의 이유를 알아 와라. 당장! 황궁 마법사는 어딨느냐!”

황제는 온몸을 떠는 와중에도 위엄을 잃지 않고 노여움을 보였다.

그 앞에서 피신을 외치던 신하는 황제의 일갈에 화들짝 놀라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태를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황제의 노여움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를 대신해 사람들 사이로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 황제 옆으로 다가섰다. 그가 바로 당대 카논의 황궁 마법사인 크랜들이었다.

“부르셨나이까. 폐하.”

“그대는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겠지?”

“황공하옵니다만, 폐하, 신도 지금으로선 답을 드릴 수가 없나이다. 다만 문제의 저 마나가 황궁을 잡아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것이…… 저 불길한 것이 마나라고?”

“모든 속성이 뒤섞여 있으니………… 혼돈의 마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저런 것이 왜 황궁에서 터져나온단 말인가!”

황제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지만, 황궁 마법사라고 모든 답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귀족들 역시 쩔쩔매기는 매한가지.

그 때였다.

콰르릉!

또 한 번 땅울림에 사람들이 급히 고재를 들어 회색 빛줄기를 바라본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희미해지는 회색 빛줄기 안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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