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779화


1214화

황궁이 문을 걸어 잠갔다.

그 주변을 병사들이 둘러싸고, 성벽 위에는 마법사와 초인들이 올라섰다. 그들 사이에 선 기사들은 이미 반쯤 검을 뽑아 들고 전의를 피워 올리는 중이다.

누가 실수라도 그들의 공격권 안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자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 분명하다.

좌우간 형세가 그렇게 변하는 중, 그 앞을 다녀간 일리나의 존재를 신경 쓰는 사람은 기사 하나와 병사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엔 하늘에서 쉴 새 없이 번뜩이는 번개가 너무도 위협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요서들이 하나로 합쳐져 모든 이가 집 안으로 숨어든 덕분에, 현재 발라파루의 거리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저마다 피신처에 숨어든 사람들은 눈만 내놓고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피터는 이런 사람들과 사정이 달랐다.

“미쳐 버리겠군. 저건 또 뭐야..”

저택 옥상에 올라 거칠게 마른세수를 하던 피터는 그대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 옆에 있던 마리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빛, 그분들과 관련이 있는 거겠죠?”

“보나 마나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더욱이 남아 계시던 두 분 중 한 분은 갑자기 사라지시고, 다른 분도 말없이 뛰쳐나가셨는데. 저것과 연관이 없을 수가 없을걸?”

“역시 그렇죠.”

두 사람이 옥상에 올라온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았다.

이드가 홀로 황궁으로 들어간 사이 조용히 시간을 보내던 일리나가 갑자기 다급히 저택 밖으로 나가 버리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서 두 사람은 일리나를 쫓는 걸 포기하고, 대신 옥상에 올라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골치 아픈데. 아무리 봐도 보통 일은 아니야.”

“당연하죠.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데. 저걸 보고 아무렇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예요.”

마리는 두려운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궁에서 치솟던, 무서울 정도의 회색 마나는 이제 없다. 하지만 그 엄청난 마나가 휩쓸고 간 흔적은 고스란히 남았다.

뒤늦게 발동한, 황궁을 보호하는 마법의 중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으니까.

그뿐만 아니라 하늘에는 어느새 몰려든 검은 구름이 가득했는데, 그 중간에도 하늘로 뻗어 나간 마나가 뚫어 놓은 커다란 구멍이 생겨 있었다. 번쩍! 번쩍!!

지금도 봐라.

그렇게 뚫린 구멍과 그 주변으로 몰려든 구름 사이로, 폭주한 마나에서 만들어진 번개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복잡하게 얽힌 혈관처럼 보였다.

저런 무지막지한 자국을 남긴 마나가 하늘이 아닌 땅을 향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피터와 마리는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래도 대충 마무리된 것 같은데. 곧 돌아오시겠죠?”

“……모르지. 솔직한 심정으로는 돌아오신다고 해도 부담스러울 것 같단 말이지.”

“어째서요? 저희 일에 그렇게나 도움을 주시는 분이 또 어딨다고.”

마리는 그게 무슨 배은망덕한 발언이냐는 표정이 되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신들 선에서 지지부진하던 일을 이드가 와서 다 해결해 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걸 떠나서 이드와 그 아내들처럼 모시기 쉬운 윗사람이 또 어딨다고.

뛰어난 능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인격이 파탄 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상한 성격을 가진 상관들을 많이 만나 봤던 마리 입장에선,

이드는 그야말로 평생이라도 붙어 있으라면 그럴 자신이 있을 정도로 아랫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상관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고?

“혹시 따로 약속된 거라도 있으세요?”

“그건 아니고. 좀・・・무서워서 말이지.”

“무・・・・・・ 섭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기색이 역력한 마리에 피터가 혀를 찼다.

“넌・・・・・・ 못 봤겠군.’

“무슨 말씀이세요?”

피터는 자신이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아 본 것을 정확히 떠올리는 훈련도 받았었다.

덕분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무서운 회색 마나의 폭류를 헤치며 날아오른 거대한 그림자.

“각진 머리에 길고 두꺼운 목. 크고 단단한 몸체에 위협적일 만큼 길게 뻗은 꼬리. 그리고 그런 몸에서 길게 뻗어나 있는,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 이게 무엇일 것 같나?”

“갑자기요? 보자. 그런 생김새라면・・・・・・ 와이번 아닌가요?”

“거기서 크기를 키워 봐. 한 다섯 배쯤.”

“에이, 그렇게 큰 와이번이 어딨어요?”

“와이번이 아니면 어때?”

“네?”

“드래곤. 잘못 본 게 아니야. 난 아까 그 마나 속에서 드래곤을 봤다.”

“…….”

드래곤,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단어에 어리둥절하던 마리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과거에는 그야말로 ‘자연재해’와 동의어 같았던 존재. 도대체 그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단 말인가.

“그・・・・・・ 설마 저 일에 드래곤이 연결되어 있단 말씀이세요? 이드 님이 드래곤과 함께 있다고?”

“아닐 것 같지? 그런데 난 확실한 것 같거든. 그래서 이쪽으로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거야. 이야기로만 들었는데, 잠깐이나마 보니 무섭더라. 마나에 가려 그 모습을 똑바로 본 것도 아닌데. 무릎에 힘이 풀릴 뻔했어. 너, 아까 쓰러질 뻔했지?”

황궁에서 솟아오른 마나의 기둥.

마나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안다면 그것에서 느껴진 압박감에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거다.

그리고 감지 능력을 가진 마리는 감각이 예민한 만큼 충격도 컸다. 피터가 제때 잡아 주지 않았다면 지붕에서 굴러떨어졌을지 모를 정도로. 

“그거, 온전히 마나 때문은 아니다. 단순히 거칠기만 한 마나에는 정신을 압박하는 힘까지는 없거든. 하지만 드래곤에겐 그런 능력이 있지.” 

“드래곤 피어였군요.’

생소해서 그렇지. 드래곤과 관련한 일반적인 정보는 충분히 가지고 있던 마리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멀기만 하던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갑자기 피부로 느껴지는 듯해서다.

피터는 그런 마리를 두고 몸을 돌렸다.

“넌 여기서 변화가 없는지 좀 더 살피고 있어. 난 아무래도 라울 님께 보고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마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피터가 무엇에 대해 보고하려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황궁에 출현한 마나의 기둥. 그 속의 드래곤.

갑자기 사라진 라미아와 그 뒤 저택을 뛰쳐나간 일리나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진짜 드래곤이 이드 님과 함께 찾아오면 어떡하지? 저택 안에 숨길 수 있을까?”

마리는 저택의 좁은 문 사이로 드래곤의 거대한 몸을 구겨 넣는 상상을 했다. 아무래도 ‘드래곤’이라는 이름이 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날.

에단의 바람이 통한 건지, 이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를 쫓아 갑자기 사라진 라미아와 일리나도 함께.

대신 같은 날, 늦은 밤.

이드는 통신을 통해 피터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급격한 사태변화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대기 중이던 피터는 바로 그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역시 무사하셨군요. 복귀가 늦어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지 염려했는데,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좀 더 빨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피터 자작님.’

“아닙니다. 발라파루와 그 인근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황궁에 엄청난 사고가 있었다는 걸. 저도 그걸 보고 굉장한 일이 있었겠구나 하고,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톤 자작이 꽤 공을 들여 준비를 했더군요. 덕분에 땀 좀 뺐습니다.”

“하. 하. 하…… 그러시군요.”

피터는 굳어지는 근육을 억지로 잡아당겨 웃어 보였다.

자신이 본 그 마나의 기둥이. 마나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몸을 떨었던 그것이. 땀 좀 흘리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라니.

‘역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건가.’

그간 함께하며 많이 줄였다고 생각한 이드와의 거리감이 갑자기 확 늘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낀 피터였다.

그리고 이드는 이런 피터의 마음도 몰라주고서 용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런 사건이 있었던 만큼 발라파루에 다시 발을 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늦었지만 연락을 했습니다.”

“혹시 부상이라도…………….”

“그건 아니에요. 그보다는 오늘 일이 저와 톤 자작이 들어갔던 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저희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 만큼, 조사하면 밝혀지지 않겠습니까?”

“그렇…겠군요. 하긴 궁에서도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지요. 이만한 사건인데.”

황제 입장에선 먹고 자는 집에서 갑자기 폭발이 일어난 상황이다.

해결하지 않고서야 어디 안심하고 잠이라도 잘 수 있을까. 아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건을 파고들 게 분명했다.

거기에 백악궁이 날아간 만큼, 누군가 책임을 져도 져야 할 일이었다.

“그럼 저도 곧 호출을 받겠군요. 미리 준비를 좀 해 둬야겠네요.”

“라울 쪽에도 말해 뒀으니,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만 밝혀 주시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톤 자작이 엉뚱한 소리를 하지는 않겠습니까? 따로 입단속을 해야 한다면….”

이드는 말만 하면 당장이라도 톤 자작의 목을 잘라 올 것 같은 분위기를 피워 올리는 피터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톤 자작이라면 이번 사건을 제 좋을 대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 그가 살아만 있었다면 말이다.

“톤 자작은 아마 행방불명 처리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이드 님께서?”

“그건 아니고. 백악궁을 날려 버리고 솟아오른 마나 기둥에 휩쓸렸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시체도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이드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저 공간에 남아 있던 짧고 굵은 비명을 들었을 뿐이다. 자리를 옮긴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드가 그림자 관에 들어간 후 다시 나오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말해, 톤 자작과 콘펌 남작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