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46화
1281화
라울이 눈을 감았다.
세상이 검게 변하는 순간, 골든아이가 눈을 뜬다.
검게 변한 세상이 밝아지더니 이내 눈으로 보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정보량을 더한 시야가 제공된다.
세상을 보는 높이도 다르다.
사각 없는 시야가 오십 미터 위에서 백색 세상을 내려다본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감춰진 것이 드러나며, 숨겨진 답이 저절로 나타났다. 당장 보이는 것은 마법으로 빚어낸 백색 세상의 불완전함.
그리고 아군의 전력.
골든아이를 통해 보면 그 사람의 힘이 빛으로서 보인다. 당연히 기사, 마법사, 초인이 가진 빛이 각각 다르다.
그 많은 이들 중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은 역시나 이드와 검후다. 그만큼 라울에게 있어 두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쉽게도 골든아이를 통해 두 사람에게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도 평범했다.
‘역시 보이지 않나. 심지어 검후는 그 사이 더 발전했나 보군.’
이전에도 검후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새어 나오는 빛을, 그녀의 위대함을 온전히 갈무리하지는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그 미세하게 흘리던 빛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쉐어 가든에서 탈출한 후 그리 길지 않은 그 시간에 그녀는 또 발전한 것이다. 지금 골든아이를 통해 보이는 게 그 증거다.
높은 경지에 올라 있을수록 앞으로 나가는 것은 더욱더 힘든 일이 아니었나? 어떻게 몇 달 만에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간 검후를 마주하며 수없이 실감했던 그녀의 위대함을 또다시 실감하는 라울이다.
그런 라울의 골든아이가 이번엔 라미아와 일리나를 스쳤다.
‘역시나…… 인가?’
이드도 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빠르게 포기한 것이다. 예상했던 바였다. 이미 앞선 저택 습격 사건을 통해 이드를 온전히 볼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때 보지 못한 게 이번이라고 다를까 싶었던 것.
그러나 이런 포기는 라미아와 일리나에게도 이어졌다.
골든아이를 통해 바라본 두 사람의 모습 역시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 가지 얻은 소득이 있다면, 지금 일리나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도?
일리나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인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상이 마법이나 가면 등을 통해 진짜 모습을 숨기고 있다는 의미.
‘얼굴을 감출 이유가 있는 건가?’
의문이 들지만, 거기까지. 깊이 살피지 않는다.
현재 중요한 것은 일리나의 감춰진 모습이 아니며, 지금이 아니라도 영혼의 관에 있는 이상 그녀를 살필 기회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이상 눈을 향하고 있다가는 이드가 알아챌까 두려웠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다. 지금까지 골든아이의 시선을 알아차린 이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찝찝하긴 했다. 때마침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본 이드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우연・・・・・・ 이겠지?’
우선은 조심하는 것이 좋을까.
눈을 돌린 라울은 골든아이를 통해 백색 세상을 구석구석 살폈다.
넓지 않은 백색 세상에 골든아이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러나 찾고자 하는 코어는 드러나지 않았다.
‘꼭꼭 숨겨뒀단 말이지. 그렇게 쉽게 찾게 해 주진 않겠다는 건가.’
쉽게 찾을 생각 말라던 비올라의 말이 옳았다.
라울도 그걸 무시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하나하나 귀담아들었다.
탐지 마법이 먹히지 않는다는 얘기 같은 것 말이다.
분명 초인기는 마법과 다르다.
마법보다 훨씬 유연하며 자유로운 특징이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정도는 아니다.
마법으로 어려운 일은 초인기에도 똑같이 어렵다. 다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 방식이 기존의 것과 다르기 때문에 조금 더 쉽고 새로울 수는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숨겨진 코어를 찾기 위해서는 결국 라울이 더 힘을 쓸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판단이 선 라울은 멈추지 않았다.
내부의 초인력을 끌어 올리고, 초인기의 발현 단계를 상승시켜 골든아이의 비기 중 하나를 사용했다.
“컴파운드 아이.”
발아래서 회전하던 수레바퀴가 분열했다. 이내 수레바퀴에서 작은 수레바퀴가 나와 아래위에 붙었고, 또 작은 수레바퀴에서 대형 수레바퀴가 나왔다.
각각의 수레바퀴들은 라울의 발아래서 거대한 원을 그리며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라라락.
“이게 라울 자작의 초인기.”
“굉장히 화려한걸요?”
이 원이 얼마나 큰지, 후방에서 검은 몬스터와 싸우는 전장 일부가 회전 반경에 들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은색 기사들이 제법 흥미를 가지고 놀라는 반응들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반응들은 전혀 라울에 전달되지 않았다.
그에 신경 쓰기에는 코어의 탐색에 온 신경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컴파운드 아이를 통해 몇 배로 강력해진 골든아이의 탐색 능력이 백색 공간을 훑었다.
어디 하나 빠지는 곳 없이 꼼꼼하게.
그러나 이런 노력이 허무하게도 코어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컴파운드 아이로도 보지 못한다고?”
살짝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라울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그다음엔 난감했다.
비올라를 상대로 큰소리 쳐 놓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이대로 코어를 찾는 일이 늦어지면 플레타 부대가 위험하다. 일단 그렇게 되기 전에 은색 기사단이 그리고 검후와 이드가 나설 테지만, 과연 그것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컴파운드 아이의 강도를 높이거나, 그 위 단계의 비기를 사용하면 결국 코어는 찾겠지만……………..
‘결국은 찾아내겠지만…… 시간이 문제다.’
문득 마법에 대해 공부하라던 비올라의 말이 머리를 스친다.
코어를 찾기 위한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는 찰나였다.
높아진 집중력에 잡음을 차단하던 고막을 이드의 목소리가 두드렸다.
“그런데 비올라, 아까 탐지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럼 마법사는 이공간 안에 있는 코어를 찾을 수 없는 거냐?”
“당연히 방법은 있습니다. 이 무차원 공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무결정 상태의 차원 로드 안이란 말입니다. 그 안에 들어앉은 코어를 드러나게 하려면, 차원 로드에 공간 불안정성을 주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죠. 하지만 이 공간 불안정성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서……”
뒤에 말은 더 들을 필요가 없다.
‘공간 불안정성이란 말이지. 고맙군, 비올라 마법사.’
코어를 찾을 방법을 몰라 고민했는데, 이제 그 방법을 알았다. 수단만 알면 그걸 해결할 능력은 충분하다.
공간 불안정성도 그렇다.
마법사인 비올라에겐 어려운 일일지 몰라도, 지금의 라울에게 간단하다.
“분열하라. 골든 디스크,”
보이지 않는 공을 들어 올리듯 두 손을 들어 올린다.
퓻!
그 순간, 제일 끝에서 회전하던 가장 큰 수레바퀴에서 손바닥 크기의 황금색 빛줄기가 솟아올랐다. 눈으로 좇기 힘든 속도로 날아오른 물체의 정체는 접시 형태의 작은 원반이었다.
그리고 그런 원반은 하나가 아니었다.
퓨퓨퓨퓻!
처음 하나를 시작으로, 수십 개의 원반이 수레바퀴에서 날아올랐다. 그것들은 순식간에 백색 공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원반은 빨랐으며, 이내 날개 달린 새 따위는 도저히 따라갈 수도 없는 각도로 복잡하게 비행했다. 규칙도 없고, 목표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의 비행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의미 없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끼긱.
끼기기긱.
원반이 각도를 한번 바꿀 때마다 허공에선 소음이 발생했다. 그건 귀로 들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오직 골든아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라울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소리였다.
그것은 원반이 허공에 존재하는 어떤 아지랑이를 관통하며 나는 소리였다.
“저건…… 이 공간에 존재하는 균열의 흔적을 관통하는 건가?”
“……”
이걸 육안으로 본다고?
이드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용에 라울은 너무 놀라 감고 있던 눈을 뜰 뻔했다.
‘명예 후작의 눈엔 균열의 흔적이 보인단 말인가? 마법사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게?”
컴파운드 아이를 사용한 라울이 코어 대신 찾은 것이 바로 균열의 흔적이었다. 백색 공간 상공에 존재하는 아지랑이 같은 일렁임. 푸른 하늘에선 볼 수 없는 그것은, 이 공간이 완전하지 않다는 증거와 같았다.
그러나 그뿐이다.
균열의 흔적을 흔들어도 이 공간이 파괴되지는 않는다. 골든아이가 전해 오는 정보에 라울은 곧 흔적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그러던 것이, 비올라의 말을 듣고 달라졌다.
균열의 흔적을 흔들어 무차원 공간을 붕괴시킬 순 없지만, 흔들림을 쌓고 쌓아 파도를 일으킬 수는 있을 터.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 파도라면 비올라가 말한 공간 불안정성을 훌륭하게 충족할 것이다.
혹시 조금 모자란다고 해도 상관없다.
“길 필요도 없어. 잠깐이면 된다. 찰나의 순간만 드러나면 골든아이는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파도를 만들기 위해 바람을 불러왔다.
골든 디스크. 그것의 역할은 바람이었다.
이건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런데 오직 자신만 보고, 행한다고 생각한 이 과정을 저 명예 후작은 당연하다는 듯 꿰뚫어 보고 있다.
‘육안으로 본 것인가. 아니면 무인의 기감인가? 아니, 그전에 공간을 보는 무공이라는 것이 있었나? 명예 후작. 도대체 얼마나 더 나를 놀라게 할 작정이지.’
그 순간, 이드라는 인물에 대한 라울의 정보 란에 한 줄이 추가되었다.
동시에 이번 일에 이드를 합류시킨 결정이 얼마나 옳은 것이었는지를 한 번 더 되새겼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을까?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고 했다.
현재 이드가 바벨의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구 또한 아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적이 될 가능성도 남아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적이 되기 전 알아낼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알아내야 한다. 이번 작전에 이드를 합류시킨 것에는 이런 목적 역시 들어 있었다.
과연 영혼의 관을 파괴하고, 이번 작전이 끝났을 때.
자신과 바벨은 이드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놀라게 될까.
그 정도에 따라 그를 대하는 바벨의 태도는 또 한 번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검후와 제국에 대한 대응도.
한편 이렇게 복잡하게 흘러가는 라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드 일가는 여전히 태평하기만 했다.
그 시작은 이드의 의문에 답하는 라미아의 목소리였다.
“좀 더 정확히는 무차원 공간의 생성흔이네요. 저걸 노리는 이유는 아마도 공간의 불안정성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겠죠.”
“엥? 저 인간이 그걸 어떻게 알고서요?”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의 비올라에 이드가 말했다.
“아마도 누군가의 의견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아니. 그건 이드 님이 물으셔서 답하느라고…”
“갑자기 내 탓? 난 그렇게 큰 소리로 대답하라고 한적 없는데?”
“……에이씨.”
초인 마법과 미완의 마탑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라 신나게 떠들었던 비올라가 땅을 퍽퍽 찼다.
그렇게 비올라가 화를 삭이는 사이.
‘보인다!’
라울은 코어를 찾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