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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47화


1282화

골든 디스크가 균열의 흔적을 관통하길 수백 번.

쌓이고 쌓인 흔들림이 파동이 되고, 파동은 결국 파도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파도는 여름날 아지랑이 같았다.

아지랑이의 파도는 백색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러는 중에도 골든 디스크는 쉬지 않고 흔적을 관통했고, 그로 인해 점점 높아진 파도가 공간 뒤에 숨은 차원 로드를 두드렸다. 한번, 두 번.

파도는 한 번으로 멈추지 않았다.

쉼 없이 들이치는 파도에 결국 차원 로드를 감싸고 있던 껍질에도 균열이 생겼다.

따각!

틈은 매우 작았다. 또한 공간의 복원력에 의해 금방 메꿔졌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랄까.

하지만 골든아이가 차원 로드 안을 들여다보기엔 충분히 넓었고, 또 넉넉한 시간이었다.

따각.

빠각.

한번 균열이 생기자 사방의 껍질에 동시다발적으로 금이 갔다. 골든아이는 그런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틈이 생긴 모든 차원 로드 안을 들여다봤다.

이러한 작업은 그야말로 노가다가 따로 없었다.

차원 로드에 생긴 틈의 크기는 손톱만 했다. 현재 이드 일행이 있는 백색 공간을 손톱 크기로 나눴다고 생각해 봐라. 상상하는 것만으로 토가 나올 만한 작업량이다.

하지만 그 엄청난 작업량을 골든아이는 문제없이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렇게 전체 차원 로드의 21% 정도를 살폈을 때다. 다른 차원 로드보다 껍질이 두꺼운 차원 로드가 나타났다.

하지만 두꺼운 껍질도 연속된 파도 앞에서는 결국 골든아이에 그 속을 내보이게 되었는데, 그 안의 흐름이 다른 차원 로드와는 확연히 달랐다. 차원 로드 안을 도도히 흘러야 할 마나의 흐름이 뭉친 듯 굽어지고, 굽어진 부위의 차원 로드 일부가 막혀 있었다.

차원 로드를 막고 있는 것의 정체는 골든아이에도 보이지 않았다. 조개껍질처럼 두껍고 단단한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벽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쉽게 짐작을 할 수 있다.

앞선 차원 로드에는 없던 것.

그리고 비올라가 자신이라면 차원 로드에 숨겼을 거라는 것.

그 말에 따라 자신이 찾고 있던 것.

코어.

‘찾았다.’

그건 단순한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확신은 서늘한 미소로 변해 라울의 입가에 떠올랐다.

“플레타.”

“왜?”

“네가 찾던 코어. 그거 찾았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고, 감고 있던 눈을 뜬 라울의 말에 플레타가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대검을 늘어트렸다.

쿵.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무게 덕에 대검의 날이 한 뼘이나 땅속으로 박혀 들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힘쓸 준비만 하다 근육이 터지는 줄 알았는데.”

플레타가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뻣뻣하게 굳은 근육을 푸는 척을 했다.

“엄살은. 나나 되니까 이렇게 빨리 찾은 줄 알아.”

“그래. 수고했다.”

“오냐, 감사히 여겨라.”

턱을 치켜든 라울의 모습에 얄미운 미소를 지은 플레타가 비올라를 찾았다.

“그래. 그리고 거기 마법사. 자네에게도 감사를 표하지.”

“크흠. 양식 있는 바벨의 초인님이시군.’

“・・・・・ 인마!”

생각도 못한 비올라에 대한 감사에 라울이 발끈했지만, 플레타는 ‘이게 뭐 어때서’ 하는 얼굴을 했다.

“어쩌라고? 저 마법사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잖아. 아니냐? 그렇다고 코어를 찾아낸 네 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뭘 쩨쩨하게 그러고 있어.”

“쳇.”

쩨쩨하다는 말까지 나온다면 이 이상 불만을 말하기는 어렵다.

플레타는 이런 라울의 반응이 퍽 마음에 드는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한쪽 어깨를 빙빙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숨어 있는 코어는 어디 있는 거냐?”

“저기다.”

슈파파팟!

라울이 한 점을 가리켰다.

그 손끝을 따라 허공을 날던 원반 중 일부가 궤도를 바꿔 어딘가를 중심으로 모여들어 비행을 시작했다.

원반들이 그리는 원의 지름은 오 미터.

곧이어 오 미터의 공간 안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더니, 그 아지랑이 너머로 마치 혈관처럼 보이는 복잡한 그물 형태의 선들이 나타났다. 그것이 바로 차원 로드.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진짜 봐야 할 것은 밝게 빛나는 차원 로드의 중앙에 구멍처럼 자리한 작은 덩어리였다.

마치 빛나는 차원 로드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 덩어리. 그것이 바로 코어였다.


“적의 알 수 없는 초인기로 인해 코어가 통상 공간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와 동시에 난리가 난 곳이 있었다.

바로 백색 공간을 조정하던 석실의 마법사들이었다. 커다란 수정구를 중심에 둔 다섯의 마법사. 그중 하나가 다급하게 손을 움직이며 수정구 표면을 만졌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수정구가 복잡하게 빛났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듯 마법사의 표정은 갈수록 나빠졌다.

“공간 보정 실패!”

“코어 위치를 변경해라.”

조셉이 수정구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수정구도 이전까지는 백색 공간 전체를 비추고 있다가, 지금은 아지랑이 뒤로 드러난 코어와 라울을 중심으로 후방에서 대기 중인 이들을 비추고 있었다.

“공간 불안정성으로 인해 위치 변경이 어렵습니다. 무리하게 좌표를 변경하다가는 차원 로드에서 튕겨 나갈지 모릅니다.”

“빌어먹을. 정확히 급소를 찔렸군.”

조셉이 뿌득 하고 이를 갈았다.

코어의 위치가 발견되었지만, 그걸 다시 감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라울로서는 뜻하지 않은 수확이었다. 코어를 찾아내기 위해 공간 불안정성을 만든 것인데. 그것에 의해 코어의 이동까지 막혀 버렸으니 말이다.

“초인 놈들이 차원 로드 안의 코어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평소처럼 무식하게 힘이나 썼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놈들인데 말입니다.”

“아마 동행한 마법사들이 분석해 낸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이미 코어가 드러났다.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겠나.”

“……”

조셉의 말에 마법사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코어가 드러난 이상, 당장 손을 쓸 방법은 몇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몇 가지 방법도 코어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아니,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쪽의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코어와 함께 무차원 공간이 붕괴된다.

그리고 무차원 공간의 붕괴는 곧 그들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셉을 보조하던 마법사 중 그런 책임을 지고 싶은 마법사는 아무도 없었다.

“왜 말이 없나!”

“멍청한 놈들. 일단 공간 에너지를 코어 보호로 돌려. 그리고 코어를 통상 공간으로 현계시킨다.”

“그랬다가는 적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위험합니다.”

“그럼 다른 방법을 내놔 봐.”

“그・・”

고개를 흔들고 나섰던 마법사는 끝내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코어를 노출하는 조셉의 결단도 그렇지만, 당장 현 상황에서 내놓을 만한 방법들이 하나같이 코어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극단적인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셉의 말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게 아니던가.

“방법이 없으면 멍청한 입 닥치고 명령대로 실행해!”

“・・・・・・ 공간 유지에 들어가던 마나 성질을 변환하고 그 채널을 코어로 돌렸습니다.”

“코어를 중심으로 백삼십육 층의 보호 장벽이 형성됩니다.’

“통상공간으로 코어를 부상시킵니다. 현재 심도-45.38.35………….”

“코어가 현계하는

“아앗! 코, 코어에 대한 적 초인의 공격이 들어옵니다!”

“막아! 코어를 무사히 현계시켜야 한다!”

놀란 목소리에 답하는 조셉의 목소리도 마법사들 못지않게 다급했다. 차라리 코어의 좌표가 안정된 상태였다면 몰라도, 지금은 차원 로드 안에서 통상 공간으로 현계 중이다. 이때 코어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해진다.

자칫 현계하는 와중에 깨어질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된다면 준비한 수단은 제대로 사용도 못 해 보고 끝날 수가 있다.


마법사들을 기겁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플레타였다.

“좋아. 저것만 부수면 끝난다는 말이지?”

그는 대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코어에 대한 공격 자세를 잡았다. 자세가 점점 잡혀 갈수록 그의 몸에 붙어 있던 근육들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내가 언제 그랬냐? 끝이 아니라, 이 공간에서 나갈 수 있다고 했지.”

“이거나 그거나 비슷하잖아. 아무튼, 네 말대로 코어는 내가 해결한다. 너는 건들지 마라.”

“어차피 나는 여기까지만 해 줄 생각이었어. 그보다, 뭔가 하려거든 빨리 해라. 영혼의 관 놈들도 코어가 발각된 걸 알 테니, 곧 뭔가 대응을 할 거야.

그러면 늦어.”

“흥, 별걱정을 다하네. 내 준비는 벌써 끝나 있었거든! 잘 보고 있기나 해라. 이게 바로 거인의 발자국이라는 거다!”

라울에게 하는 말일까. 아니면 뒤에서 보고 있는 이드와 검후에게 들으라는 것일까.

플레타가 큰 목소리로 외친 순간, 끝까지 웅크린 그의 몸을 중심으로 바람이 일어났다. 마치 바람이 그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몰려들었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태풍의 중심이 된 것처럼 그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돌았다.

그렇게 바람이 점점 강해지던 한순간.

쿠웅!

한껏 웅크리고 있던 플레타가 몸을 폈다. 아니, 몸을 뽑아 올렸다. 그와 함께 거대한 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플레타의 몸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그의 점프는 마나나 마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아티팩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보통 응축한 힘을 뿜어내면 그 반응은 빠르게 마련인데 플레타의 움직임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기묘하게 느렸다.

그렇다고 힘이 충분치 못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위로 솟아오르기에는 느린 속도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상승한다. 그 모습은 마치 그에게만 중력이 약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런 모습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초인기. 저 사람이 가진 초인기는 뭐지?”

이런 플레타의 모습을 본 이드와 은색 기사단의 궁금증은 그거 하나였다. 도대체 무슨 초인기를 가졌기에 저런 모습이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과연 어떤 굉장한 파괴력을 보여 줄까.

바벨의 핵심 부대를 이끌고 있는 대장이라면 굉장한 초인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 기대감이 플레타에게 모여들었고,

그 기대감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플레타가 골든 디스크가 만들어 낸 아지랑이의 문 앞에 도달하고 있었다.

“거긴 넘어가면 안돼!”

라울의 외침이 들려온다.

플레타는 피식 웃고 만다.

그 정도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저절로 안다. 눈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공간이 묘하게 어긋나 있음을. 이 너머로 발을 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본능이 그렇게 외친다.

“그렇다면 여기에 찍어 주지. 거인의 발자국을!”

쿠웅!

플레타가 대검을 높이 들어 올린 순간, 묘하게 공기가 무거워졌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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