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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61화


1296화

무엇을 더 준비했다는 말일까.

그런 의문으로 펠튼을 바라볼 때였다.

파파파팟

이드와 일행들이 선 입구를 중심으로, 양쪽 천장에 빛의 고리가 각각 열한 개씩 나타났다.

그리고 그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

그것은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콰쾅!

쾅! 콰콰콰쾅!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딛고 선 바닥이 흔들릴 정도의 진동을 만들어 낸 빛의 고리.

그 정체는 천장에서 떨어진 돌기둥이었다.

돌기둥은 아름드리나무보다 컸다. 대충 봐도 지름이 이 미터는 될 듯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속도도 제법 빨라서 일행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으면 부상자가 몇 나왔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건 의외로 일행들의 머리 위가 아니라 좌우로 제법 거리를 두고 떨어졌다.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적의 마법 공격에 대비!”

“방어 조, 앞으로!”

처처척,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절히 내려진 명령에, 방어에 특화된 부대원들과 마법사들이 일행들의 좌우를 막아선다. 하지만 돌기둥으로부터 곧장 예측 불가의 공격이 쏟아져 나오지는 않았다.

대신.

쿵!

펠튼이 한 번 더 지팡이를 내리찍었다.

쿵!

쿠쿠쿠쿠쿵!

그와 함께 일전의 것보다는 작은 크기의 돌기둥들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앞서 떨어진 것들을 중심으로, 새로 생겨난 돌기둥의 개수는 총 이백.

묘하게 이드 일행의 숫자와 겹치는 것 같다면 예민한 걸까.

“……사전 준비가 굉장히 요란한데. 하려면 빨리 해라, 마법사.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 줘야 하는 거냐.”

의미를 모를 돌기둥의 출현에 경계하면서도 여전히 시큰둥한 플레타.

그런 모습에 펠튼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누런 치아가 드러나는 웃음이 음울하다.

“그래, 그런 모습이 초인이지. 운 좋게 받아 든 능력으로 천지 분간 못하고 날뛰는 것들. 잘 들어라. 준비는 끝났고, 네놈들은 이미 그물에 걸렸다.”

“그 그물 참 굉장히 엉성해 보이네.”

“걱정 마라. 아무리 엉성해도 네놈들은 저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으니까.”

“아닌데? 그냥 걸어 나가면 될 것 같은데?”

“그건 능력 있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하나, 너희들에게 그런 힘은 없다. 너희들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빌려온 것일 뿐, 초인기가 사라진 초인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지 아느냐? 바로. 쓰레기다.”

심상치 않게 이어지는 말들.

“설마…….”

거기서 어떤 기색을 읽어 낸 것일까. 돌연 라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마법사는 지금 당장 단절의 결계를 사용하라!”

명령을 받은 마법사들이 즉시 준비한 스크롤을 찢었다.

쫘악!

거기서 튀어나온 마법은 일행과 돌기둥 사이를 가르는 은막이 되었고, 마법사들은 마나를 주입해 은막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단절의 결계.

이 마법의 원래 이름은 ‘타오의 성벽’이다. 대마법 결계 가운데 마법 저항 성능이 가장 뛰어난 마법으로 손꼽힌다.

그것을 라울의 명령을 받은 마법사들이 개량, 특화해 만들어 낸 것이 지금의 은막이다.

이 결계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초인 마법을 막아 내는 것이다.

라울이 이드와 검후, 그리고 은색 기사단에 협조를 요청한 까닭과 같은 목적이었다.

사전에 확인한 마법의 성능은 뛰어났다.

다만 초인 마법을 상대로도 똑같이 효과가 있을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인 마법에 대한 정보가 너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결과를 알 수 없는 마법이 바로 지금 사용되었다.

즉, 라울은 펠튼이 갑자기 돌기둥을 불러낸 이유를 자신들이 초인기를 쓰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앞에 둔 펠튼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담겼다.

“좋은 반응이다. 그러나 의미 없는 발버둥은 슬플 뿐이지. 쓰러지거라.”

손에 들린 지팡이가 돌기둥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 작은 몸짓이 마법을 발동하는 키였다.

각인 발현,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 같은 이백 개의 돌기둥. 그 표면에 각기 다른 기하학적인 문양이 빼곡히 들어차는 순간.

파앗.

돌기둥들이 일제히 빛을 발했다. 빛은 일순간 반짝이고 사라졌다.

이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돌기둥이 뿜어낸 빛이 사방으로 퍼지는 대신 이드와 그 일행이 있는 방향만을 비췄다는 것이다. 그 영향일까.

“어…… 어엇?”

“모, 몸에 힘이 안 들어가.”

플레타 부대의 대원 중 몇몇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급변하는 상황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돌기둥. 그 뒤에 이어진 라울의 다급한 목소리까지.

모두 언제 시작될지 모를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 준비는커녕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고?

하지만 그들 외에도 털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몇 명이 더 같은 행동을 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마치 탈진한 것처럼 몸에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습이냐!”

하지만 아니었다. 기습의 흔적은 없었으며, 부상을 입지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증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기습이 아닙니다! 제 초인기가…… 이유 없이 해지되었습니다.”

“초인기를 쓰려 해도 말을 듣질 않습니다!”

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일까. 다급히 소리치는 대원들의 낯빛이 창백하다.

부하들의 긴급한 보고에 오탄의 얼굴 역시 퍼렇게 질렸다.

그는 무슨 헛소리냐고 닦달하지 않았다. 당장 오탄 본인도 스스로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급한 상황에 그는 자동으로 자신의 상급자를 찾았다.

“대장!”

“호들갑 떨지 마라, 오탄, 차분히 대원들 상태부터 확인해.”

라울과 함께 선두에 선 플레타는 여전히 펠튼을 향해 서서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 든든한 모습에 오탄은 빠르게 진정했다.

“모든 대원은 자신의 현 상태를 조용히 보고하라.”

이 소동의 원인이야 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상태까지 적에게 온전히 알려 줄 필요는 없다.

대원 중 일부는 힘을 잃어 일어나지도 못하지만, 자신처럼 극히 일부나마 초인력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실로 처참했다.

개개인에 따라 상태의 차이는 있지만, 당장 싸우지 못할 정도가 무려 68명이다. 심지어 나머지도 온전하진 못하다.

초인기를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위력이 절반 이상 깎여 버린 경우가 태반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대 내에서 실력이 뛰어나기로 손꼽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평기사 하나를 겨우 상대하는 정도가 최대다.

“대장.”

“보고해.”

“저희 부대는 현재……… 대부분의 전투력을 상실했습니다.”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오탄의 보고는 냉정했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대원들의 전투력을 유의미하게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다만 이런 상황임에도 오탄은 절망하지 않았다.

이때를 대비한 보험이 등 뒤에 버티고 있음을 그는 물론, 그의 대원들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울 님의 선택은 옳았다!’

대원 중에는 영혼의 관 습격에 은색 기사단이 함께하게 된 것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 없지 않았다. 다만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실력과 바벨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그런 만큼, 자신들만으로 영혼의 관을 파괴할 수 있는데 어째서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냐고 본 것.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불만은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있었다.

‘은색 기사단이 같이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

‘그랬으면 우린 다 죽었어!’

대원들의 눈이 하나둘 후방에 선 은색 기사단을 향했다.

이런 부하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플레타는 펠튼과 새롭게 나타난 적 초인들을 번갈아 보며 흉흉하게 웃었다.

“저 마법사 새끼가 오만하게 구는 이유가 이거였네.”

“……초인 마법.”

“그래. 빌어먹을 초인 마법. 솔직히 내 상태도 정상은 아니야. 아무래도 전력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넌 어때?”

“……”

“하긴 너라고 다르겠냐. 그래도 네가 지금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해서 다행이지.”

‘틀려. 이런 상황을 예측한 건 아니었다고.’

라울은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초인 마법의 가능성 중 하나로 초인기의 봉인을 예상하기는 했다. 그에 대한 대비도 했고,

하지만 단절의 결계는 실패했다.

아니, 어쩌면 그거라도 있기에 자신을 포함해 일부 대원들이 싸움이 가능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래 봤자 정상은 아니지만.

그나마 은색 기사단과 검후, 그리고 명예 후작 내외가 뒤에 버티고 있어 다행일까.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가장 예상을 빗나간 것은 ‘초인기 봉인’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시점이다.

인공적인 초인이라도 일단 초인기를 사용하는 초인이다. 그러니 설마하니 자기들도 초인 전력을 동원한 상태에서 초인기 봉인이라는 수법을 사용할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비웃듯, 펠튼은 태연하게 그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영혼의 관 쪽 초인들은 그 수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떤 멍청이가 전투도 시작하지 않은 아군을 무너트릴 공격을 할까. 인공적인 초인답게, 초인기 봉인에 대해서도 대책이 서 있었던 것이리라. 

‘아니면 초인기를 봉인하는 마법이 정확히 대상을 구별할 만큼 매우 정밀하거나. 어느 쪽이 되었든. ・・・ 좋지 않아.’

영혼의 관과 탑주를 제거해야 할 이유가 더욱 커졌다.

문제는 당장 그럴 상황도 능력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플레타의 짐작처럼 그도 초인기 봉인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골든아이의 출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자신들의 상황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꼿꼿하게 허리를 세워도, 펠튼은 이쪽의 상황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듯 여유로웠다.

“이제야 보기 좋은 얼굴이 된 거 같군. 오만했던 게 누구인지, 이제는 알겠나?”

“…….”

“클클클. 그럼 쓰레기를 치워 볼까.”

까딱까딱

말 없는 펠튼의 손짓에 굳은 듯 멈춰 있던 인공 초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양측의 거리가 수백 미터로 좁혀졌을 때,

인공 초인들이 걸음을 멈췄다.

대신 그들 중 일부가 앞으로 나섰다. 일렬로 선 그들의 눈과 손이 이드 일행을 향했다.

“뼛조각 하나 남기지 말고 모조리 태워 버려라.”

화르르르륵!!

펠튼의 명령과 함께 용암 같은 불길이 일행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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