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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66화


1301화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검후의 반응.

그러더니 살그머니 귓가에 속삭인다.

“혹시 절 시험하시는 건 아니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대화.

그렇기 때문일까. 친근함에 더해 격식도 사라진 말투에는 살짝 투정이 섞였다.

이드는 귓가를 간질이는 입김에 어깨를 풀풀 털어 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의 검후를 상대로 시험이라니. 그럴 리가 없잖니.”

“그럼 그 애매한 말은 뭐예요?”

“뭐긴 뭐야. 나도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는 거지.”

“……이드 님이 모른다고요?”

“왜? 나라고 다 알 수는 없는 일이잖아. 다만, 뭔가 목적이 있는 건 확실해.”

“그거야…… 그렇겠죠. 무공이든 초인기든, 단발성으로 터트리는 것보다 무언가를 유지하는 게 몇 배는 더 어려우니까요. 그런 걸 의미 없이 지속할 이유는 없죠.”

검후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렇다. 돈을 물건을 구매하는 데 쓰지 않고, 불에 태우는 격이랄까.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다시 없을 멍청한 짓이라고 하겠다.

만에 하나 돈이 썩어난다면 그런 짓을 할 미친놈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당장 돈을 크게 써야 할 일이 생긴 상황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저들은 지금 전력을 다한 싸움 중이다. 그런 상황에, 헛심을 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어지간히 멍청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스폴을 비롯한 은색 기사단의 상급 기사를 상대로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하고 있는데 그럴 정신이 어딨단 말인가.

그러니 답은 하나다.

저런 상황에서도 유지해야 할 만큼 저 흡인력은 어떠한 결정적 효용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민이 된다.

바짝 붙었던 검후가 한 걸음 멀어지자 이드는 라미아를 찾았다.

“라미아는 어때? 마법으로 답을 알아낼 수 있겠어?”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항상 답을 주던 그녀.

하지만 이드의 대도서관인 그녀도 이번엔 쉽지 않은 듯했다.

“어려워요. 적 초인기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요. 탐지 마법을 사용하기엔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틈이 나질 않고요.”

라미아가 혀를 쏙 빼문다. 그녀도 아쉬운 것이다.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 가운데 저 여섯 초인이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고, 그건 라미아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

“지금 상황에서 탐지 마법은 어쩔 수 없지.”

저 격렬한 전장에 탐지 마법을 사용하느니, 달리는 말 위에서 바늘 한 쌈에 실을 꿰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

이드도 그런 이론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이드에게 라미아가 말했다.

“대신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저들이 아니라 저 뒤에 있는 마법사를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따지고 보면 저들이 흡인력을 발현하기 시작한 시점이 적 마법사의 마법이 발동된 후잖아요. 저쪽을 파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제법 혹하는 말이다.

접근 방법이야 어떻든, 답을 알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굳이 그렇게 어렵게 돌아갈 필요 없지. 무슨 꿍꿍인지는 몰라도 곧 꺼내 놓게 생겼으니 금방 알 수 있을 거야.” 

“하긴.”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두 사람의 눈이 전장을 향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피를 흘리는 중이다. 그 속에서도 이드가 살핀 것은 숨이 끊어져 쓰러진 자들이었다.

다행히 아직 그들 중 은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죽은 자들은 모두 적 인공 초인들.

게다가 여섯의 추가 전력이 나타나던 시점에서 사망자는 두 배로 늘었다.

스폴과 상급 기사들이 빠졌지만, 은색 기사단은 여전히 인공 초인을 상대로 단단히 승기를 잡고 있었다.

기사들은 서두르지도, 물러서지도 않고서 차근차근 적을 쓰러트렸다. 초인들의 초인기 같은 화려한 수법은 없었지만, 이런 차분함이 기사들의 진짜 힘이다.

“끄륵…….”

그리고 지금. 또 하나의 인공 초인이 피거품을 물고 넘어간다.

인공 초인이 쓰러지는 속도는 미미하지만 조금씩 빨라지고 있다.

이 상태라면 그들을 모두 쓰러트리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으리라.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빨라질지 모른다.

적 전력이 줄어들수록 아군의 전력은 배로 늘어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적을 쓰러트린 기사들이 이후 동료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둘 쓰러트리고, 남은 적의 숫자가 은색 기사단보다 적어지면. 그때 남은 전력은 어디를 향할 것인가.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남은 전력은 스폴과 상급 기사를 도울 것이다. 보기에 따라 비겁하다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싸움은 결투가 아니라 전투다. 거기에 이미 따지고 보면 백 명을 상대로 삼백 명이 달려든 시점에서 더 비겁한 건 영혼의 관 쪽이다. 누가 누구에게 비겁을 논할까. 좌우간 상황이 이러니, 저들 여섯은 기사들의 검이 자신들을 향하기 전에 준비하고 있는 바를 꺼내 놔야 했다.

제대로 된 발버둥 한번 치지 못하고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푸욱!

“적의 기세가 꺾였다. 전열을 재정비하라!”

마침 기사의 검에 또 한 명의 인공 초인이 쓰러졌다. 정확히 적 전력의 삼분의 일. 백 명의 적을 쓰러트린 것이다.

그에 따라 은색 기사단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그런 기사의 발밑으로,

포옹.

죽은 인공 초인의 가슴에서 희미한 빛 방울이 튀어 오르더니, 곧 사라진다.

‘분명 저것도 흡인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야.’

여섯 초인들.

그들의 흡인력과 마찬가지로, 적 마법사의 마법이 발동된 후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관련이 없다고 보기가 오히려 어렵지 않을까. 과연 연관된 셋의 연결점은 언제 튀어나오게 될까.

그리고 이런 이드의 기다림을 알았는지, 그렇게 꼭꼭 비밀을 감추고 있던 네트나들이 비밀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백 명째 인공 초인이 쓰러진 다음 순간이었다.

“으아압!”

“크으읍!”

상급 기사 산드라와 격렬하게 검을 주고받던 적이 갑자기 기합성과 함께 폭풍 같은 초인력을 뿜어냈다.

초인에게 있어 초인력은 일종의 내력 같은 것이다. 그 자체로는 속성을 지니지 않은 힘. 그러나 그 근본이 마나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으로 작용한다.

그게 산드라의 전신을 쥐어뜯었다.

그리고 그에 산드라가 휘청이는 순간을 노려 적 초인의 강력한 공격이 들어갔다.

초인기를 휘감은 검,

그건 검기 이상으로 날카롭고, 검강처럼 매서운 힘이었다. 한순간에 차원이 달라진 위력. 거의 본능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산드라지만, 기혈을 뒤흔드는 충격까지는 막아내지 못하고 뒤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그런 산드라의 눈에는 놀람과 당혹이 어렸다.

“갑자기 강해지다니….. 어떻게 된 거지?”

그녀가 상대한 적은 결코 여력을 남기고 있지 않았다. 검을 나누다 보면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적의 능력을 파악하는 부분이 그렇다. 특히 서로의 실력이 비슷하다면 그런 부분은 더욱 예민하고 정확하게 구분이 된다.

그런 감각으로 볼 때 적은 힘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건 뭐란 말인가. 마치 지금까지는 봐주고 있었다는 양. 힘을 숨기고 있다가, 이제부터가 진짜다! 하고 소리치는 멍청이들처럼 갑자기 엄청난 힘을 뿜어냈다.

그건 분명히 말해 가볍게 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면 이후의 전투는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아니, 솔직해지자. 위험하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은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힘이! 솟아오르는구나! 으하하하하!”

“이거다! 이거야!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라고!”

“후우~ 위험했다. 덕분에 진땀 좀 흘렸다. 여기사. 하지만 기대해라. 진짜는 지금부터니까.”

스폴과 상급 기사들이 상대하던 모든 적에게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일순간 전투가 멈췄을 때다.

“왜 멈춰 있는 것이냐! 너희가 상대하는 적은 은색 기사단이다! 그들 뒤에 누가 있는지 잊지 마라! 온 힘을 다하라는 말이다!”

잠깐이라도 힘이 취한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듯, 펠튼이 노성을 터트렸다. 현재 그는 은색 기사단과 검후의 존재에 한껏 예민해진 상태. 

“쯧, 성질도 급하시지.”

“예, 예. 압니다. 알지요. 너무 기대돼서 소름이 돋아 있단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

“흐흐흐, 검후를 잡으면 어떤 기분일까. 일단 눈앞에 있는 것들부터 쳐죽이고 알아보자!”

네트나들은 그런 펠튼의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스폴과 상급 기사들을 향해 초인기를 쏟아 냈다.

콰콰콱!

퍼퍼퍼펑!

속성에 따른 색색의 초인기가 번쩍이고, 검과 초인기가 충돌하며 충격파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카카캉!

‘강하다!’

손바닥이 찢어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아 내며 스폴은 이를 악물었다. 현재 느껴지는 충격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적의 힘은 50%가량 늘어난 듯했다.

골치 아픈 점은 단순히 힘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힘과 속도, 초인력의 양까지. 전력으로 계산할 수 있는 모든 수치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아니, 그야말로 폭등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적은 겉모습만 같을 뿐, 지금까지 그녀와 싸우던 적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

비등했던, 어떤 면에선 자신과 상급 기사들이 미미하게 승기를 빼앗아 오던 지금까지의 전황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지금 이 순간 승기는 완전히 적에게 넘어갔다. 이대로는 버티는 것조차 어렵다.

판단을 내린 스폴은 망설이지 않았다.

“모든 기수는 지금 당장 상급 기사들을 지원하라!”

이것은 결투가 아니다. 혼자서 상대할 수 없는 적이라면, 협공으로 싸워 나갈 뿐이다.

이런 스폴의 명령에 인공 초인들과 싸우고 있던 기사 중 기수들이 빠져나와 상급 기사들을 지원했다.

스폴은 그 모습을 보며 뒤에서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쉴라를 바라보았다.

짧은 눈의 마주침. 하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 할 것 같습니다.”

쉴라가 검후를 보며 말했다.

“잠깐 기다리렴, 명예 후작, 아무래도 이게 명예 후작께서 이상하다 말씀하신 것의 정체겠지요?”

“그런 듯합니다. 죽어 나간 인공 초인들, 죽은 자들에게서 반짝인 빛, 여섯 명의 몸에 흐르던 흡인력과, 갑자기 강력해진 힘.”

“역시 죽은 자들의 능력을 흡수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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