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69화
1304화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면의 시야가 빛으로 가득 찼다.
번쩍!
‘위험!’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동시에 이성보다 본능이 먼저 움직였다. 뇌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뿜어지고, 생체 시계가 빠르게 돌았다. 적의 눈에서 쏘아진 광선이 살짝 느려진다고 느낀 순간.
파파팍.
쉴라의 발끝에서 흙이 튀어 오르며 그녀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와 동시에 광선은 그런 그녀를 관통한다.
콰콰쾅!
튀어 오른 흙이 광선에 휩쓸려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렇게 쉴라를 관통한 광선은 그녀의 등 뒤에서 폭발했다.
그와 함께 흐릿하던 쉴라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라진 그녀가 나타난다.
극에 닿은 보신경이 만들어 내는 조화, 이형환위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시야를 따라 빛의 속도로 쏘아지는 광선을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을까.
‘이놈. 위험하다!”
적의 공격을 피해 낸 쉴라는 적에 대한 경계를 몇 단계 올렸다.
눈에서 쏘아지는 광선의 빠르기는 그야말로 빛과 같다. 화살은 감히 비교 거리가 되지 않는다. 저만한 빠르기라면 이형환위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보신경으로는 회피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공격하는 족족 전력으로 방어하는 것 말고는 막아 낼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방어 역시 말처럼 쉽지는 않다.
적의 눈을 잘 보면 공격 방향이야 알 수 있다지만, 방금 보여 준 공격력은 쉽게 막아 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그 증거로 산드라가 날아가고, 광선이 닿은 바닥엔 큼지막한 구덩이가 생기지 않았나.
산드라는 이런 자를 어떻게 상대한 거지?
아니.
‘이놈이 이렇게 강력했었나?’
말도 안 된다.
이 정도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초에 산드라가 지금까지 상대하며 막아 내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이런 전투력을 가진 걸 알았다면 스위트가 아니라 산드라부터 먼저 지원하기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뒤에서 지켜봤을 때 이놈의 전투력은 결코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갑자기 강력해진 것이다. 적의 공격을 잘 막아 내던 산드라가 검막체로 튕겨 나간 게 그 증거다.
쉴라는 문득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갑작스러운 전투력의 상승이라면 이미 보았던 현상이다. 기사단이 백 명의 인공 초인을 쓰러트렸을 때 일어난 현상과 똑 닮았다.
‘틀려. 아직 사망자는 그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현재 은색 기사단과 전투 중인 인공 초인의 숫자는 168명.
백 명이 쓰러진 후 겨우 서른 명이 더 죽었을 뿐이다. 설마 증폭 현상이 한 번 일어난 후에는 한 명 단위로 사망자의 힘을 흡수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저놈에게 일어난 전투력의 상승 폭은 너무 커.’
백 명의 힘을 흡수해 50%의 전투력 상승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적은 거기서 다시 50%의 추가 전력이 상승한 것으로 보였다. 전체 전투력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고민이 많은 모양이지? 흐~ 짜릿하군. 그 유명한 은색 기사단장을 떨게 만드는 순간이 오다니. 환상적이야!”
한창 머리가 복잡한 쉴라를 보며 무슨 오해를 하기라도 했는지.
일곱 개의 눈이 쉴라의 모습을 가득 담고서는 환희로 번들거렸다. 그야말로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한번 열린 놈의 입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기쁜가 보군.”
“암, 기쁘지. 기쁘고말고. 당신 같은 유명인은 지금 내 심정을 모를 거야. 병신 눈깔로 조롱거리가 되던 내가, 은색 기사단장과 같은 급이 된 거잖아. 이제 감히 어떤 놈이 날 보고 병신 눈깔이라고 할 수 있겠냔 말이야! 그런 놈이 있다면 다 죽여 주겠어!”
쯔즈즈즛!
정신이 불안정한 걸까.
아니면 쉴라에게 두려움을 줬다는 데 흥분한 것일까. 자신의 과거의 일부를 밝힌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그의 눈에서 다시 광선이 뿜어졌다.
하지만 이미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던 쉴라는 안정적으로 보법을 밟았다.
스스슥.
앞서와 같이 튀어 오르는 흙은 없었다.
일순간 위치가 바뀐 신형.
콰콰쾅!
광선은 마치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아 빗나간 듯 쉴라의 옆자리를 관통하며 구덩이를 만들었다.
“왜 피하는 거지? 은색 기사단 단장 주제에! 왜 피하는 거냐고!”
그럼 적의 공격을 그대로 맞아 주기라도 하라는 건가?
아무래도 흥분이 문제가 아니라,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대답 없이 몇 번의 공격을 능숙하게 피해 버리는 쉴라.
남자는 그런 쉴라의 모습에 히죽 웃으며 다시 광선을 쏘아 냈다.
“그런데 말이야. 은색 기사단장님아. 내 공격은 사거리가 길어. 과연 당신이 피하면 저 뒤에 있는 당신 부하들이 멀쩡할까?”
남자가 살짝 턱을 치켜든다. 그것만으로 광선의 진행 방향이 크게 변한다.
그 말대로, 이번에도 쉴라가 공격을 회피할 경우 광선은 직선으로 뻗어 나가 정신없이 싸우고 있는 기사들과 인공 초인들의 몸에 구멍을 뚫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부하들뿐 아니라 당신 동료들도 죽게 될 텐데. 그건 괜찮나 보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제대로 된 의지도 가지지 못한 실험체 새끼들. 오히려 그놈들에겐 영광이지. 우리가 강해지는 양분이 될 테니까!”
쯔즈즛!
전면을 향한 네 개의 눈가가 불그스름해지더니, 남자의 눈에서 붉은 광선이 뿜어진다. 광선의 출연과 동시에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네 줄기의 냉기 광선.
저 광선에 맞은 바닥이 깨진 유리처럼 쩍쩍 갈라졌었다.
이번에도 쉴라가 광선을 피하게 된다면 뒤에서 싸우고 있는 기사 중 하나가 그런 신세가 될지 모른다.
그 때문일까.
남자를 바라보는 쉴라의 눈가에 냉기 광선보다 더 차가운 사늘함이 감돈다. 그와 함께 그녀의 검이 눈앞을 갈랐다.
단순해 보이는 수평 베기였다.
화르르륵.
하지만 검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피어난 꽃잎의 모습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마치 다른 공간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잎이 문을 열고 넘어오는 것 같은 모습.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난화십이식 풍화가 냉기 광선을 막아 냈다. 하물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찌지지지직-
냉기 광선의 아래쪽을 들어 올려 광선의 진행 방향 자체를 틀어 버렸다. 단순히 막아 내는 것보다 힘이 덜 드는 방법.
“엇?”
실로 간단해 보이는 방어에 냉기 광선을 쏘아 낸 남자가 놀라 버렸다.
쉴라는 남자의 모습에 비웃음을 흘렸다.
“왜, 네놈이 생각한 것과 다른가? 병신 눈깔.”
“까득! 죽일 년, 감히 날 그렇게 부르다니. 내 이름은 지돌이란 말이다.”
“아니, 넌 병신 눈깔이다. 부하이자 같이 싸우는 동료들을 양분 따위로 취급하는 넌 인간도 아니야. 그저 병신 눈깔일 뿐이지.”
“이 개 같은 년이! 은색 기사단장이면 단 줄 알아!”
쯔즈즈즛!
혐오스러운 별명을 불렸기 때문일까. 분노에 이를 악문 남자의 눈이 번뜩였다. 네 개의 눈에서 차례대로 붉고 푸른 광선이 쏘아졌다.
일종의 시간차 공격이 쉴라의 머리와 가슴, 그리고 다리를 노렸다. 실로 빛살 같은 공격.
하지만 쉴라에게 그의 공격은 이미 눈에 익었다.
물론 광선 공격은 빠르다.
“하지만 그뿐이지. 겨우 그 정도 빠르기로는 세상을 관통해 나갈 수 없단다. 병신 눈깔!”
“으아아!”
허공에 피어나는 네 장의 꽃잎.
화령화,
콰르르릉!
광선과 꽃잎의 검강이 충돌하며 폭발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폭염을 뚫고 나오는 쉴라.
그 모습에 남자가 눈을 다시 부릅뜨는 순간.
스스슷.
쉴라의 인형이 늘어났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다시 셋으로, 셋의 모습이 선명하진 않지만,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도 없다. 남자의 얼굴에 당황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그런 잔재주 따위! 다 쓸어버리면 끝이라고!”
쯔즛!
쯔즈즈즛!
전면을 향한 네 개의 눈. 거기에 더해 관자놀이의 두 개의 눈에서 광선이 뿜어졌다. 직선으로 나가는 네 개의 광선과 달리 관자놀이에서 뿜어진 광선은 곡선으로 뿜어져 쉴라를 관통한다.
쩌러러렁!
아니, 관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 비혼화의 쾌검에 조각조각 잘려 나간다. 빛줄기를 잘라 버리는 쾌검.
물론 광선이 정말 빛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가능한 일.
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일까. 남자가 광선을 뿜어내며 굳어 있는 사이, 쉴라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뜨겁고 차가운 여섯 줄이 광선이 갈가리 찢기며 가까워지자 뿌연 증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증기는 순식간에 시야를 가렸다.
“뭐야. 어딨어! 은색 기사단장 주제에! 이딴 비겁한 수단을 쓰는 거냐!”
눈에서 광선을 쏴 댈 수는 있어도 뿌연 증기를 꿰뚫어 볼 수는 없는 모양이다. 남자는 광선을 잠시 멈추고 잠시 주변을 경계했다. 그리고 곧 두려움에 휩싸여 사방으로 광선을 뿜어냈다.
“어차피 기사단 년들은 사방에 있다. 네년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년들만 다칠 뿐이라고!”
그러자 곧 사방으로 뿜어진 광선이 무언가에 막혀 증기 속에서 뿌옇게 빛났다. 그 방향에 쉴라가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일까.
전후좌우로 발사된 모든 광선이 막혔다. 분명 적은 쉴라 하나였는데. 어떻게 사방이 다 막힐 수 있는 거지?
“으아아아! 숨지 말고 나와! 나오란 말이다. 이년아!”
이유를 알 수 없는 현상은 공포가 되었다.
자신의 모든 공격이 막혔다는 사실에 지독한 무력감이 덮친다. 남자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광선을 쏴 댔다. 콰릉!
콰르르르릉!
하지만 그 모든 발악은 뿌연 빛으로 스러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남자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병신 눈깔, 넌 단 한 순간도 나와 같은 급이 된 적이 없다.”
섬뜩할 정도로 온기가 없는 목소리. 귓가를 간질이는 숨결.
도대체 언제 이렇게 가깝게 다가온 것일까. 그에 대한 두려움은 둘째 치고, 무언가 행동에 나서기도 전.
퍼퍼퍼퍽.
“끄아아아…….”
뾰족한 통증과 함께 일곱 개의 눈동자가 터져 나갔다.
그에 남자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터졌지만, 그것도 중간에 끊어지고 만다. 일곱 개의 눈알을 모두 터트린 검이 그의 목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서걱.
그렇게 남자를 처리한 쉴라는 그대로 증기 속에서 몸을 뽑아 올렸다.
파앗.
그녀가 날아오른 궤적을 따라 증기가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그 끝에 멈춰 선 쉴라가 급히 상급 기사들의 상태를 살폈다. 이 남자처럼 다른 초인들의 전투력도 상승했다면 상급 기사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