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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876화


1311화

옳은 말이다. 남자가 검후일 순 없지.

뻔한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대놓고 화를 낼 정도의 일은 아니지 않나.

면박을 당한 남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불쾌감을 느낀 거다.

그렇기에 그는 깨닫지 못했다. 자신 역시 상대방만큼이나 신경질적인 상태에 있음을 말이다.

“진정들 합시다. 여러분 모두 너무 흥분하셨소.”

그리고 때마침 남자를 비롯해 신경이 예민해진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목소리가 나섰다. 연륜이 묻어나는 차분한 목소리는 흥분한 사람들을

주목시키는 힘이 있었다.

아니, 목소리뿐이 아니었다.

실제 그에게는 사람들을 움직일 만한 힘과 직위가 있었다.

젊은이 못지않은 곧은 허리와 달리 하얗게 센 머리와 눈썹에선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남자는 영혼의 관의 장로였다.

장로 요크 킬릴리는 자신을 향해 모여드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적의 위용이 참으로 대단한 것 같지 않소?”

“…….”

“하지만 다행히도 적은 아직 멀리 있구려. 그러니 차분히 대책을 세웁시다. 의미 없이 떠들어 봐야 영혼의 관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오.” 적은 아직 먼 곳에 있다.

둘러 표현한 것이지만 그 속에 든 뜻은 분명했다.

아직은 적과 싸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겁먹지 마라. 듣기에 따라 비꼬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아니, 흥분한 사람들의 귀에는 그렇게 분명 그렇게 들렸으리라. 어쩌면 요크 장로가 의도한 말뜻도 그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도 그럴 게, 겁먹고 흥분한 모습은 결코 영혼의 관에 속한 마법사로서 보일 모습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일까.

“크흠.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희가 장로들께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평소답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자의 마나에 사람을 자극하는 권능이 깃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요크의 눈길을 마주한 마법사들이 애써 신색을 바로 했다.

감히 그의 말에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되지도 않는 소리로 자신들의 못났던 행동을 이드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오히려 냉정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의 노골적인 비웃음을 샀다.

‘저 멍청이들은 저 말의 뜻을 알고 떠드는 것인가.’

마나 파동이 몇 개의 층을 넘어 여기까지 닿은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속에 영혼을 흔드는 권능까지 담겼다고?

그게 가능한 적이라면 자신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런 엄청난 능력자라면 감히 싸울 생각을 포기하고 바짝 엎드리거나, 지금이라도 전력으로 도망치는 것이 살 방법일 것이다.

‘저것들이!’

이런 비웃음에 말을 꺼냈던 마법사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이미 요크 장로에게 경고를 받은 상황. 멋모르고 폭발하는 이는 없다.

그런 마법사 사이에서 요크 장로가 움직였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수정구. 가란의 거울을 조작했다.

파팟!

미세한 마나의 움직임,

직후 벽면에 비치고 있던 영상이 사라지고, 대신 이드의 모습이 확대되어 커다랗게 보였다.

그 모습에 로브 자락을 흔들던 마나 파동이 다시 떠오른 마법사들이 침음성을 냈다.

“바벨 소속일까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이만한 능력을 보이면서 초인기가 아닌 무공을 사용했습니다. 초인이라기보단 무인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만한 강자가 어디서 나왔단 말입니까.”

“이번 습격의 핵심도 검후가 아니라 저자가 아니겠습니까? 다른 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아니오. 저자가 아무리 강해도 검후는 검후입니다.”

이드에 대한 인상이 어지간히 강했던 모양이다.

그의 얼굴이 벽면을 채우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그 속에는 진실에 가까운 추측도 있었지만,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도 태반이었다.

하지만 두서없이 떠들기도 잠시.

사람들은 곧 하나둘 말을 멈추고 이드의 모습을 벽면에 비춘 요크 장로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으니, 영상을 비추었으리라고 생각한 것. 요크 장로는 좌중이 조용해지자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잘 들었소. 그런데 가만히 듣고 있으니, 정작 중요한 사실은 떠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소.”

“무엇 말씀이십니까?”

“저자의 정체 말이오.”

벽면에 가득한 이드의 얼굴을 가리킨 요크 장로.

좌중은 이드의 얼굴을 돌아보고는 다시 요크 장로를 돌아보았다. 그들이라고 어떻게 이드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을까.

“장로께선 저자의 정체가 짐작이 가십니까?”

“그러는 여러분들은 벌써 잊으셨소? 부관주가 자리를 비우기 전에 하신 말씀. 명예 후작의 존재를 확인해 달라는 전언 말이오.”

“……아!”

“이런 젠장. 멍청하게 그걸 잊고 있었다니!”

“그렇지, 명예 후작! 정신의 관과 쉐어 가든에서 그가 보였던 활약을 생각하면…………… 가능합니다. 충분히 이런 능력을 보일 수 있어요.’ “바로 저자가 그 소문의 명예 후작이었을 줄이야.”

부관주가 자리를 비우기 전.

검후의 존재를 확인한 그들이 ‘어쩌면’ 하고 언급했던 사람이 바로 명예 후작이었지 않던가. 어째서 그걸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마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멍청하게 굳어 버린 머리를 두드렸다.

“그렇소. 아마도 저자가 바로 문제의 명예 후작이 틀림이 없을 것이오.”

“그렇겠지요. 무공으로서 검후와 비등하거나, 그 이상의 모습을 보였으니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아니고서야 누가 가능하겠습니까.” 

그 자리엔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이드의 정체를 확신하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요크 장로가 재차 가란의 거울을 조작했고, 벽면의 영상은 다시 원래 비추고 있던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개의 영상이 동시에 떠올랐다.

전투가 끝난 2층. 그리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서 그대로 멈춰 버린 펠튼.

“펠튼에겐 안타까운 일이오. 명예 후작이 상대라니. 쯧쯧.”

“처음부터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던 거요.”

“그래도 저 모습을 보니 답답하기도 하오.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완전히 굳어 버려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지 않소.”

영상 속 펠튼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동시에 그가 침입자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삭제해 버렸다. 검후만 해도 상대가 쉽지 않은데, 거기에 그녀를 넘어서는 전투력을 보여 준 명예 후작이라니.

“그나저나 이거, 펠튼을 안타까워하고만 있을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펠튼 다음은 우리가 될 겁니다.”

“아무래도 대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펠튼이 패배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막지 못한 침입자들이 상층으로 올라오는 것은 문제다. 침입자가, 명예 후작이 한 층, 한 층 올라올수록 지금 펠튼이 당하고 있는 꼴을 자신들이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마법사들은 우려를 담아 요크 장로를 포함한 영혼의 관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어려운 숙제를 앞에 두고 부모의 도움을 바라는 아이들 같았다. 하지만 그게 못나 보이지는 않았다.

스스로의 능력이 모자람을 알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절대 멍청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아는 현명한 이였다. 

“장로님. 저런 강자가 끼어 있는 전력이라면 각층에서 개별로 막아서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각개격파 당하는 꼴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네들은・・・・・・ 명예 후작이 두려운 모양이군.”

남은 층의 플로어 마스터들일까.

간절함과 조급함을 담아, 싸우기도 전에 싸움에 진 개처럼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 모습에 또 다른 장로가 미간을 모았다.

이런 장로의 반응에 말을 꺼냈던 마법사들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와중,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내린 여마법사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상대입니다. 어찌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엘로자!”

전투에 있어 적을 두렵다 말하는 것은 금기였다.

그 자체로 패배를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장로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어찌 영혼의 관의 영광스러운 플로어 마스터로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장로의 반응에도 엘로자 마법사는 당당했다.

“오히려 영혼의 관을 지키고 있는 플로어 마스터이기에 현실을 정확히 살피는 것입니다. 페로나 장로님.”

“…….”

“명예 후작의 강력함은 장로님도 직접 보셨지 않습니까. 저만치 강력한 힘이라면 3층, 4층에서 아무리 단단히 준비해도 저자를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단언하는가. 해 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 아닌가!”

“지금 장로님의 말씀이야말로 마법사답지 않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예상하지 못하는 것을 측정해 내는 이들이 바로 마법사입니다. 명예 후작과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그 결과가 뻔히 예상되는 일입니다.”

엘로자는 그렇지 않으냐는 듯 다른 플로어 마스터를 돌아봤고, 그녀의 시선을 받은 플로어 마스터들은 침묵으로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이어 엘로자는 다른 마법사들을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관이 누구의 손에 파괴되었고, 정신의 관이 붕괴되던 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또 쉐어 가든에서 어떤 전투가 벌어졌는지.”

“……”

“이 전투 속에서 명예 후작은 어땠습니까. 그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모르는 분은 여기 없으실 겁니다. 특히 그가 쓰러트린 거대한 늑대 괴물. 과연 여기 남은 플로어에 그 괴물보다 더 강력한 전력이 있습니까?”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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