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06화
1341화
숨을 쉴 때마다 비강을 가득 채우는 피비린내에 속이 울렁거린다.
‘피 냄새가…… 이렇게 역겨운 거로구나.’
가능하다면 당장 뱉어 버리고 싶지만, 이건 밖이 아니라 안에서 올라온 피가 근원이다.
그르륵그르륵.
답답한 소리를 내면서 폐 속에서 끓어오르는 피거품.
숨 쉴 때마다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는 통증으로 미루어 보아, 내장뿐 아니라 폐까지 상한 것이 분명하다. 아마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른 게 아닐까.
스스로의 상태를 유추하던 부관주는 온몸을 감싼 외골격 갑옷 뒤에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정말 뜬금없지만 새로운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상을 당한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간단히 말해 내상이란 몸의 내부가 상한 상태를 의미한다.
병증이나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대부분은 마나 운용의 실패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내상을 입은 적이 없는 부관주에게 이번 경험은 새로운 체험이었다.
사실 이건 놀라운 일이었다.
기사, 마법사, 초인을 가리지 않고, 마나를 다루는 직업군에 있어 내상은 피할 수 없는 근육통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도 무리를 하면 근육통으로 고생을 하는데, 지금까지 없던 마나를 다룸에 있어 처음부터 능숙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조심에 또 조심을 더하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가 정확한 한계인지 몰라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며 특히 고생하는 직군이 바로 기사다. 아무래도 내공이라는 가공된 마나를 육체를 통해 직접 발현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비율로 따졌을 때 기사가 절대다수라는 것이지, 마법사나 초인 역시 내상은 통과 의례와도 같다.
특히 부관주 정도의 고위 마법사라면?
백이면 백. 그러한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서 입었을 크고 작은 내상은 그야말로 굳은살이 박일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정작 부관주는 이런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내상에 대한 첫 경험.
그건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그녀의 실력이 거짓이 아니라면, 고위 마법사에 이르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뛰어난 두뇌로 이론을 쉽게 이해하고, 천부적인 감각으로 마나를 다루는 타고난 재능. 흔한 말로 이러한 경우를 천재라고 한다.
그렇다. 부관주는 천재인 것이다.
영혼의 관에서는 이미 모르는 마법사가 없는 사실. 그렇기에 부관주가 내상으로 고생하는 마법사들의 상태에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면, 마법사들은 그런 그녀를 질투하면서도 이해했다.
심지어 일각에선 작게 판돈이 걸렸다.
과연 부관주가 언제 내상을 경험하게 될 것인가를 두고서 말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질투와 시기를 담은 귀여운 저주였다.
당신도 언젠가 우리처럼 고생해 보라는 그런 의미랄까.
아무튼,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 부관주도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내상을 입을 일은 평생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의 천재성도 천재성이지만, 그를 이끌어 주는 탑주의 자상한 가르침을 믿고 있기에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래, 인정해야 한다. 그건 오만이었다.
혓바닥에 끈적하게 휘감기는 핏물이 그런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 전투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일.
그르륵그르륵.
‘아파. 내상이란 것이…… 이렇게 아픈 것이로구나.’
숨 쉴 때마다 가슴을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에 숨쉬기가 어렵다.
이 통증은 온전히 내상 때문일까. 아니면 온 힘을 다하고도 어찌할 도리 없이 졌다는 것에서 오는 패배감 때문일까.
헷갈렸다.
내상과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철저한 패배는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그녀에게도 진 경험은 있다. 마법에 입문하고 배워 나가던 시절, 탑주와 장로들에게 가르침을 받으면 수없이 지곤 했다.
하지만 그런 배움의 과정과 실전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제 와 돌아보면 명예 후작을 상대로 가졌던 ‘강’이라는 생각도 오만이었구나 싶다.
그렇게 부관주가 패배의 충격이 전해 주는 주마등에 빠져 있을 때였다.
터벅터벅.
성큼성큼 가까워지는 발소리가 부관주의 상념을 깨웠다.
그와 함께 명예 후작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정작 그녀에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지금 부관주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시간!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자신은 과연 탑주에게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벌 수 있었을까?
“이봐, 언제까지 죽은 척 입을 다물고 있을 생각이야? 명색이 부관주가 써먹기엔 너무 추잡스러운 방법이잖아. 부디 내게 당신의 입을 억지로 열게 만들지 마. 우리, 서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키도록 하자고.”
플레타가 부관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말을 꺼낸 것은 이드였다.
“품위・・・・・・ 말이지요?”
“플레타 부대의 대장인 저 정도면 지켜야 할 품위가 있죠. 거기다 저 여자도 영혼의 관의 부관주라고 하는데. 이 정도 위치면 양국의 대표자 정도라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대표자 말이군요?”
“아무래도 바벨과 미완의 마탑이 현재 전쟁 중이니까요. 괜찮은 비유지요? 하하하.”
자신의 비유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어 대는 플레타.
이드는 그 말에 도저히 고개를 끄덕여 줄 수가 없었다. 비유는 둘째 문제다. 상황만 비슷하다면 국가가 아니라 부부싸움에 빗댄들 무슨 상관일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시각의 차이일 뿐이니까.
정작 이드를 어이없게 만든 것은 플레타가 하고 있는 꼴이다.
이걸 문제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플레타는 부관주의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다만 그 자세가 심히 불량했는데, 양다리는 쩍 벌어졌고, 두 팔은 무릎 위에 턱 하고 펼쳐 놓은 모습이다. 손가락 사이에 담배 하나만 끼워서 어디 뒷골목에 가져다 두면 훌륭한 양아치의 표본이 완성될 것 같은 모습.
도대체 이 모습 어디에 플레타가 말한 ‘품위’가 있다는 말인지.
‘어쩐지 라울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하네.’
저 플레타를 혼자 둔 심정이 어떨까. 물가에 어린아이를 혼자 둔 기분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나마 그에게 꼭 지금의 상황을 전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런 이드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플레타는 재차 부관주의 머리를 두드렸다. 자세와 마찬가지로 품위라고는 없는 행동.
“왜 아무 대답이 없지? 최소한 패배는 인정해야지. 마법사 놈들은 설마 패배를 인정하는 법도 모르는 거냐?”
‘그럴 리가 있나. 마법사만큼 기준이 정확한 인간들이 어딨다고.’
공식적인 발언이었다면 세상 마법사들을 전부 적으로 돌렸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나불거리는 플레타의 박력에 이드는 존경심을 담아 혀를 내둘렀다.
모르긴 몰라도, 적으로 돌리는 마법사 중에 라미아도 낄 것 같은데.
아무튼, 이런 자극적인 발언 때문일까. 내상을 입고, 사지에 구멍이 뚫린 상태에서도 침묵을 유지하던 부관주의 입이 열렸다.
“얼마나…….”
“음?”
“전투가 시작되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어이, 어이. 왜 그딴 걸 묻는 건데?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혹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건 아니지?”
“내 정신에 노이즈는 없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리에 자존심이라도 상한 걸까. 부관주의 목소리가 한층 또렷해졌다. 그러자 슬그머니 올라가는 플레타의 입꼬리. 좋은 건수를 잡았다는 의미다.
“흐, 아닌 거 같은데? 마법사면서 자신이 얼마나 싸웠는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당신 지금 제정신 아냐.”
사실 플레타의 말이 꼭 억지인 것만은 아니다.
마법에 입문한 마법사들은 시계만큼이나 정확한 체내 시계를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시계의 기준은 마법사들이라면 누구나 형성하는 써클이다. 써클의 회전 간격을 기준으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어도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시간의 흐름에 둔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부관주씩이나 되는 고위 마법사가 얼마나 오랫동안 전투가 지속되었는지 몰라 묻는다?
부관주에게 어떤 이상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해 볼 대목이긴 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정신에 노이즈는 없습니다. 다만…………….”
무언가 반박의 말을 하려던 부관주는 중간에 입을 다물었다. 이어질 말은 이러했다.
다만 초고속 전투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시간 감각이 혼란이 생겼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스스로의 미숙함을 고백하는 소리일 뿐이다. 아무리 이미 패배했다고 해도, 적을 앞에 두고 해서 좋을 소리는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그다음이 뭐야? 왜 말을 하다 끊지? 사람 답답하게.”
이런 부관주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층 양아치스러워진 어투로 플레타가 말했다. 부관주를 더 긁어 보려는 모습.
이드는 이쯤에서 자신이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부관주에 대한 심문을 플레타에 맡겨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 식으로는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11분 하고 29초가 지났습니다.”
“…….”
원하던 대답을 내놓았음에도 잠시 말이 없는 부관주. 곧 다시 입을 연 그녀는 상당히 허탈한 듯 말했다.
“겨우 11분이란 말인가요?”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11분인 건 확실하죠. 절대 틀리지 않아요.”
이드는 혼란스러워하는 부관주에 확인 도장을 꾹 눌러 주었다. 대충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이유에는 짐작이 갔다.
‘아마도 이번 같은 전투는 처음이었겠지. 음속의 벽을 수십 번 넘나들었으니까.’
일반적인 시간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수준에서 공방이 오갔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은 그만큼 특별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의미.
보통은 성장과 경험을 통해 이런 감각을 쌓아 나간다. 반면 부관주는 이런 경험은 처음일 것이다.
물론 연습은 했을 터였다. 그러나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게다가 보통의 연습에선 시간 감각에 혼란이 올 정도의 속도를 오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렴 그렇게 변태적인 수준으로 수련을 하는 인간이 얼마나 된다고.
“11분…….”
침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부관주가 원하던 만큼의 시간은 아닌 모양이군요?”
부관주의 가슴을 밟고 있던 발을 내리며 말했다. 목소리나 분위기로 보아 갑작스럽게 다시 반격에 나설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하던 시간?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전투가 시작되기 전 말했잖습니까. 부관주의 목적은 시간을 끄는 거라고.”
“아차, 깜박하고 있었습니다. 이야, 이거 들어야 할 것들이 많네요. 흐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부관주를 내려다보는 플레타.
그 모습은 마치 정육 할 고기를 내려다보는 푸줏간 주인의 그것 같다.
이드는 그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