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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18화


1353화

이드가 어깨 넘어로 향하는 존 워스의 기세를 잘라 차단했을 때였다.

그때까지 손가락 하나 꼼짝이지 못하던 세 사람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오탄은 긴 한숨과 함께 이마에 솟은 식은땀을 몰래 훔쳤다.

“푸허헉! 수, 숨 막혀 죽을 뻔했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헛소리가 진짜일 줄이야. 뭐 저딴 괴물이 다 있답니까? 안 그래요, 부대장?”

“쯧, 호들갑 떨지 마라.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플레타 부대는 겁먹지 않는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찌릿하고 노려보는 눈길에 반사적으로 차렷 자세가 되는 부대원.

“그리고, 아무리 강한 척해 봤자 상대는 철벽의 검왕일 뿐이다. 삼검왕 중 두 번째 서열이고, 우리와 함께해 주시는 검후에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작자란 말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부대원.

하지만 정작 오탄은 그런 힘찬 대답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내뱉은 말도 부하가 아닌 스스로에게 하는 소리였다.

상대가 아무리 철벽의 검왕이라지만, 고작 기세에 밀려 꼼짝을 못 하다니.

스스로 말한 대로 자랑스러운 플레타 부대원으로서, 꼴불견도 이런 꼴불견이 없었다.

겨우 눈빛에 겁을 먹다니.

자신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던가?

몸에 칼이 박혀도 멈추지 않았던, 굽혀지지 않던 근성은 도대체 어딜 갔단 말인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강하다.

아무렴 철벽의 검왕이지 않은가.

검후를 제외한 최강의 삼기사 중 하나.

그런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래 봤자 그 실체는 욕심에 물든 배신자들일 뿐이지 않던가.

아무리 날고 기어 봤자 검후에는 감히 미치지 못하는 놈들. 그렇기에 주인을 찌를 때조차 힘이 모자라 바벨과 손잡은 치졸한 약자들! 오탄은 그렇게 상대를 매도하며 움츠러들었던 자신의 기세를 바로 세웠다.

비록 편법이긴 하지만, 상대를 격하의 존재로 만드는 것만큼 빠르게 기세를 세우는 방법이 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아무리 우습게 보여도 존 워스의 실력은 진짜였으니까. 철벽의 검왕이 세워 놓은 벽은 여전히 높고 단단했으니까.

그건 감히 자신이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고, 그간 쌓아 온 부대장으로서의 판단력이 말하고 있었다.

오탄은 이런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검왕의 실력이 이렇게나 높다는 게 말이 돼? 눈빛만으로 날 제압한다고?’

그럼 도대체 검후는 얼마나 강하다는 것일까?

또 그런 검후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던 명예 후작은?

물론 이곳까지 오면서 명예 후작의 실력을 지켜봤다.

하지만 자신을 향한 공격이 아니기 때문일까. 온전히 그 힘의 크기를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혼란은 의심으로 다가왔다.

정말 눈앞의 저 인물이 존 워스가 확실한가?

그러고 보면 명예 후작과 존 워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기는 했다. 모든 대화를 들은 것은 아니지만, 묘한 단어가 오가지 않았던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일단 부관주를 확보해서 최대한 빨리 물러나는 것이 좋겠다.’

오탄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건 인간 오탄으로서의 본능이고, 동시에 부대장으로서 그간 쌓은 경험에서 오는 판단이기도 했다.

오탄은 존 워스를 경계하는 동시에 대각선 뒤쪽에 선 플레타를 향해 눈짓했다.

‘뭐 합니까? 당장 도와주지 않고!’

그의 눈빛이 말하는 의미는 분명했다. 동료가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도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는 뜻을 담은 눈빛.

하지만 그런 오탄의 요청에도 플레타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탄의 눈매는 대번에 사납게 변했다.

‘장난 아닙니다! 당장 도와 달라고요!’

“거, 자식이 성질만 나빠서는 이 새꺄. 나도 당장이라도 움직이고 싶다고. 마음 같아서는 말이지.”

플레타는 자신의 두 부대원을 바라보며 입이 썼다.

자신도 보는 눈이 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처음엔 존 워스의 기세에 접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기세를 이드가 완벽히 차단했다.

오탄과 부대원, 그리고 부관주를 확보하려면 지금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움직이면 베인다.

그건 본능이 보내는 최대한의 경고였다. 오른쪽으로 접근하면 목이 떨어질 것 같고, 왼쪽으로 접근하면 허리가 잘려 나갈 것 같다. 그리고 정면으로 나가면?

욱신!

불에 지진 듯 심장 어림이 화끈한다. 아마도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는 경고일 것이다.

비록 친구와 건방진 부하들로부터 눈치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생활에서다.

전장에 선 자신의 예감은 야수처럼 날카롭고 정확했다. 그렇기에 이번의 예감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적인 철벽의 검왕이 대단한 인물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도 그에 비해 크게 모자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직접 붙어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내심 삼검왕이라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은 플레타 부대를 이끄는 대장이었다. 그는 스스로의 실력과 초인기를 믿었다.

그건 오만도 아니고, 과신도 아니었다. 많은 임무와 전투를 관통하며 쌓은 자신감이었다.

그런데 그 자신감이 오늘 이 자리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이성적으로 쌓아 올린 자신감 이전에, 본능이 자신의 패배를 알려 오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감히 반격할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로 확실하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는 알지 못했다.

더욱이 자신은 성난 망아지처럼 존 워스에게 달려들 것도 아니었다. 그저 부하와 포로를 챙길 생각뿐이었다.

거기에 자신과 존 워스 사이에는 명예 후작까지 서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플레타는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자신의 본능을 믿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분 더럽네.”

물론 오로지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건방지긴 해도 오탄은 아끼는 부하였고, 부관주는 바벨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포로였다. 어느 정도 부상을 각오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라울이 이런 플레타의 행동을 막았다.

라울은 그의 초인기 골든아이를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전달해 왔다.

존 워스라는 인물은 사실 처음부터 가짜이며, 그 뒤에 숨은 진실은 혼돈의 파편이라는 고대의 존재라는 것.

그리고 혼돈의 파편이 버서커를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길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충격적인 사실의 연속이었다.

처음부터 존 워스라는 인물은 없었다고? 혼돈의 파편은 또 어디서 나온 개뼈다귀란 말인가?

거기에 버서커라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칠 뻔한 플레타는 이를 악물어야 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버서커라니. 그야말로 초인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최고의 불안 요소가 아니냔 말이다.

그런데 저기 있는 존재가 그 불안 요소의 원인이란다.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리 고집이 강한 플레타라도 고집을 부릴 수가 없다.

반대로 태산 같은 걱정이 생겼다.

혼돈의 파편이 어째서 버서커의 원인인지, 또 라울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얼마만큼 확인된 사실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찌 되었든, 그게 진실이라면?

경우에 따라 자신을 포함한 플레타 부대 전원이 버서커가 되어 폭주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최악도 그런 최악이 없다.

습격의 성공이나 부관주의 포획은 둘째치고, 자칫 아군끼리 죽고 죽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러한 사태는 피해야 했다.

도끼눈을 뜬 오탄이 아무리 재촉을 해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것이 대장으로서의 결정이었다.

째릿! 째릿!

“아, 그만 좀 노려봐라. 미안하다고 하잖아, 이 새끼야.”

바싹 타들어 가는 내심을 숨기며 투덜대는 플레타였다.

그리고 은밀하게 다짐했다. 만약 혼돈의 파편과 버서커에 대한 연관성이 사실이 아닐 경우, 라울 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째릿!! 째릿!!

동시에 감히 자신을 향해 대놓고 째려보는 시건방진 부하 놈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라울을 통해 간략한 설명을 들은 플레타와 달리, 사정을 모르는 그의 부대원들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새로 등장한 적이 존 워스라는 사실에 더욱 고개를 갸웃했다. 존 워스의 이름은 소리와 관련된 초인들에 의해서 전달되었다. 

“저게 존 워스야? 그 철벽의 검왕?”

“확실히 무시무시하네. 이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기운이 살벌하잖아. 검왕이 그냥 검왕이 아니네.”

“그게 뭐가 대단해서? 그래 봤자 검왕인데, 이쪽엔 검후가 있다고.”

“오~ 그러네. 거기다 명예 후작도 있고. 그럼 후다닥 정리해 버리면 될걸, 왜 저러고 있는 거냐?”

“높으신 분들 속을 내가 어떻게 아냐?”

“항복하라는 거 아닐까?”

“그건 인정 못 하지!”

부대원 중 하나가 성난 얼굴로 멀리 떨어진 존 워스를 노려보았다.

비록 상대가 철벽의 검왕이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철벽의 검왕이 강하지만 그는 하나고, 이쪽은 다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저기 목이 잘려 쓰러진 시체는 그들의 동료였으며, 그의 친구였다. 그런 친구를 죽인 놈이 항복한다고 순순히 살려 줄 수 있으려고!

“네가 인정 못 하면 어쩔건데? 높으신 분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지. 우린 대장의 결정에 따른다!”

“……에이, 쌍!”

어느 부대나 그렇지만, 플레타 부대원들에 있어 대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부대원은 치솟는 화로 땅을 차 냈다.

이미 부대원들은 존 워스의 항복을 거의 기정사실로 보고 있었다. 비록 으스스한 기세를 뿜고 있지만, 존 워스에게 있어 너무 불리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점도 있었다.

“그런데 저분들은 왜 저렇게 심각한 얼굴이야?”

“그러게. 대장도 그렇고.”

몇몇 부대원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상황이 끝났다고 불만에 가득 찬 부대원은 계속해서 땅을 차 냈다.

퍽! 퍽! 펑!

“엉?”

발끝에서 터진 갑작스러운 폭음.

그에 화들짝 놀란 부대원,

설마 자신도 모르게 초인기를 사용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초인기의 각성?

그런 시답잖은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슈파파파팍!

“쿠에엑!”

사나운 충격파가 그의 얼굴을 두드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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