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19화
1354화
부관주가 서 있던 땅이 번쩍인 순간, 구속구가 부서졌다.
“이런 젠장! 잡아!”
그에 오탄이 빠르게 반응했지만, 그의 고함 소리는 이어지는 폭음에 묻혀 버렸다.
그런 가운데 라울은 골든아이를 이용해 플레타에게 급히 명령을 내렸다.
“부관주를 잡아! 절대 놓치면 안 돼!”
“어디서 명령질이야!”
쿵!
이에 플레타가 입으로는 불평을 터트리면서도 땅을 박찼다. 싸움이 시작된 이상 어떤 위험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파도를 타듯 충격파 속으로 뛰어드는 플레타를 보며 라울은 이를 갈았다.
“병신같은 놈! 함부로 상대의 수단을 한정하다니. 게을러 터졌어!”
누구도 아닌 스스로를 향한 질책이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존 워스라는 존재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기에 일어났다.
삼검왕 중 하나. 검을 든 모든 기사의 아이돌.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벽의 검왕.
존 워스를 수식하는 말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라울 또한 귀가 따갑게 들었고, 일부는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다.
그렇기에 너무도 당연하게 단정하고 있었다.
존 워스는 무공을 익혀 검을 사용하는 기사라고.
그렇기에 부관주를 빼내기 위해서 싸울 것이고, 그런 중에 기회를 찾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건 착각이었다.
비록 그가 혼자 나서기는 했지만, 지금 자신들이 선 땅은 영혼의 관이 만든 이공간이었다.
또한 존 워스를 나서게 만든 것은 마법사였다.
어떤 형태로든 마법이 간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런데 그런 ‘당연한’ 일을, 당연하다는 듯 제외하고 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존 워스라는 이름이 주는 압박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라울도 존 워스의 등장에 많이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거, 갑자기 너무 거물이 납셨잖아?’
부관주라는 중요 인물이 사로잡힌 시점에서, 영혼의 관에서도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예상했던 바였다.
부관주의 가치는 자신들보다 저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절대 포로로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라울은 적이 내놓을 수 있는 대응 방법을 두 가지로 봤다.
첫째는 처분하는 것이다.
이드가 사로잡은 플로어 마스터를 처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반 마법사도 아니고, 부관주를 상대로 그런 처분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부관주, 특히 영혼의 관 부관주라는 자리는 미완의 마탑에 있어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었다.
나라로 따지면 황태자의 자리.
다시 말해 탑주의 후계자인 것이다.
그런 부관주를 처분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탑주의 결정이 있어야 하는데.
‘어림없지. 그런 일에 신경을 쓸 정신이 있었으면 애초에 부관주가 달려 나올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런 이유로 라울은 두 번째 대응, 구출이 영혼의 관이 실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봤다.
그에 라울은 부관주를 탈취당하지 않기 위해 오탄에게 당부를 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라울의 판단이 물렀다.
영혼의 관이 보인 대응은 생각보다 빠르고, 무엇보다 강렬했다. 비책도 이런 비책이 또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설마 존 워스가 부관주의 구출을 위해 나타날 줄이야.
라울이 예상한 적 전력은 어디까지나 인공 초인과 고위 마법사들. 좀 더 쓴다면 장로급의 참전이었지, 결단코 존 워스는 계산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불의의 일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작은 가능성이나마 탑주의 등장은 예상했었다.
그러나 심문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으로 인해 그런 상상도 곧 지워졌다.
현재 탑주는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대답을 거부하는 부관주로 인해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라울은 대략 짐작이 갔다.
초인 마법의 완성을 위한 중요한 고비. 혹은 바이트 타블렛의 완성.
그 둘 말고 이런 상황에서 탑주의 발길을 잡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떠올린 라울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재까지 그가 두 눈으로 확인한 초인 마법은 이미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습격이 좀 더 늦었다면?
아마도 오늘 밤을 기점으로 초인 마법은 몇 배 더 위협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특히나 바벨에게 치명적인 형태로서 말이다.
반대로 바벨 입장에서 오늘 밤의 이 습격은 그야말로 최고의 타이밍이었다.
연구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탑주는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초인 마법은 발전을 중단당할 테니까.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랬는데.
난데없이 존 워스란다.
무엇보다 저 개자식은 등장과 동시에 부대원 둘을 죽이며 나타났다. 그나마도 이드가 제때 막아섰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추가 사망자와 함께 손발도 쓰지 못하고 부관주를 탈취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점에 이미 자신이 나섰어야 했다. 아니, 최소한 부관주라도 확실하게 확보해 뒀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존 워스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선입견. 거기에 더해 존 워스라는 존재와 관련된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였다.
그가 속한 삼검왕과 바벨의 관련부터 시작해서, 그의 초인 혐오. 미완의 탑 토벌의 난동과 이후 알게 된 혼돈의 파편이라는 정체.
결정적으로 그라는 존재가 버서커의 원인이라는 부분까지.
특히 가장 마지막 부분이 라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버서커.
그야말로 초인이라면 누구나 지고 있는 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바벨 최대의 불안 요소.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중요도는 부관주보다 더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신만은 두루두루 신경을 써야 했는데.
‘저 개자식은 도대체 미완의 마탑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기에 이런 일에까지 직접 나서는 건데!’
스스로에 대한 짜증은 너무도 쉽게 상대에 대한 분노로 변했다.
마음 같아서는 속이 시원할 정도로 조롱을 쏟아붓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마음뿐.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다.
이유는 저 개자식이 위험한, 그것도 매우 위험한 개자식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저 개자식으로 인해 대량의 버서커가 발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번 작전은 망한다.
아니, 어디 망한다 뿐인가.
자신의 생사도 장담할 수 없으며, 그 과정에서 은색 기사단이나 검후가 심하게 상하기라도 한다면?
겨우 수습해 놓은 바벨과 검후의 관계가 다시 파탄이 날 수도 있다.
물론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진짜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버서커는 일종의 발작 같은 거니까.
결코 원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바벨에 버서커의 원인을 알려 온 이들이 바로 검후와 명예 후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까닭은,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어디 숫자처럼 딱 떨어지던가.
아무렴 초인들의 손에 동료들이 죽게 된다면 결코 마음이 편할 수 없으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불만과 분노는 결국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
그러니 이미 사태가 벌어진 상황에서 라울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버서커의 수습, 그리고 혼돈의 파편에 관한 확인이었다.
버서커 현상에 대한 정황적인 근거는 확인했어도 아직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물론 확인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리고 상대는 혼돈의 파편.
아직 라울은, 그리고 바벨은 혼돈의 파편이 어떠한 존재들인지. 또 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기회가 된 지금 최대한 혼돈의 파편에 대해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왜?
‘당연히 앞으로 더 나타날 혼돈의 파편 때문이지.’
라울은 초인력을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려 골든아이의 눈동자를 활짝 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초고속의 전투를 시작한 명예 후작과 존 워스를 볼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라울은 능력의 칠 할을 두 사람에게 두고, 남은 삼할을 이용해 부관주와 주변 상황을 살폈다.
“부관주 주변으로 공간 변성을 확인했다. 공간 이동이 일어나기 전에 어떻게든 막아!”
당연히 그의 입도 쉴 새가 없었다.
그렇게 라울이 쉬지 않고 명령을 내리며 부대원을 챙기고, 부관주를 사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이.
그와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이런 시끄러운 라울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듯한 얼굴의 검후가 복잡한 눈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대상은 오로지 하나.
존 워스였다.
사실 그의 등장에 가장 놀랐던 사람이 바로 검후였다.
그에 비하면 라울의 놀람은 별것도 아니었다. 검후는 그야말로 숨을 쉬는 것도 잊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모습을 본 라미아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괜찮아?”
“별로 괜찮지가 않네요.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렇지 않기는 힘들지. 네가 가르치고 키웠는데. 수십 년을 믿었고, 그런 후에 배신까지 당했잖아. 감정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거야.”
“그렇기는 해요. 지금도 페시딘과 마르텔에 대한 원한은 한점 흐려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존 워스는 다르다? 왜? 혼돈의 파편이라서?”
“그런 거죠. 처음부터 충성한 적이 없으니, 배신이라고 하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냥 분했어요. 그 긴 시간 속아 온 나 자신이 바보 같아서. 그런데 막상 이렇게 보게 되니…… 마음이 복잡하네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검후.
오랜 인생 경험에 무공도 경지에 올라 공고한 정신을 가진 그녀였지만, 수십 년 쌓아 온 감정이란 깔끔하기 정리하기가 힘든 것이다. 과연 누가 그녀와 같은 경험을 했을까.
더욱이 그녀는 검후인 동시에 황실의 최고 어른으로, 평소라면 감히 그녀의 마음을 감싸 줄 사람도 없었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달랐다.
지금 이곳에만 그녀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세 명이나 있었으며, 그중 싸움에 정신이 없는 한 사람을 빼고도 두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다.
“그 복잡함이 지극히 인간적인 특징이죠. 그러니 혼란스러워할 필요 없어요.”
엘프의 시각으로 인간에 대해 말하는 일리나에 이어, 라미아가 검후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토닥거렸다.
“그럼, 그럼, 그리고 어차피 곧 그 번뇌의 원인도 금방 사라질 테니까. 오히려 지금 그 기분을 즐겨.”
“즐기는 건 어려울 것 같고, 그보다 저희・・・・・・ 아니, 두 분은 이드를 돕지 않아도 괜찮아요?”
마음 같아서는 저 속에 뛰어들어 자신이 당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등에다 검을 박아 주고 싶지만, 괜히 나섰다가는 방해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연 이런 내심을 알면 사람들은 무어라고 말할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검후가 전투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함부로 나서지 못한다니.
뭐, 세상 어떤 일에도 위에는 위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언제까지 뒤처지고 있을 생각은 없다.
이드와 일리나와 재회한 후 가장 열정에 불타고 있는 검후였다.
대련을 할 때마다 깨닫는 점이 있었다.
이번은 몰라도, 다음번 전투에는 뒤에서 보고만 있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작게 다짐하는 검후를 보며 라미아가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아무렴, 이드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더욱이 나는 따로 할 일도 있고.”
그렇게 말하는 라미아의 눈이 끝내 추적을 피해 공간을 넘고 있는 부관주의 등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