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28화
1363화
영혼의 관 밖으로 나온 이드는 즉시 허공을 차고 날아올랐다.
팟!
파파팟!
두 번. 단 두 번 발을 굴렀을 뿐인데, 영혼의 관은 어느새 저기 발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드보다 더욱 높은 곳에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존 워스다.
철황유성탄에 올라탄 그는 하늘을 향해 쭉쭉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 속도라면 금방 새롭게 뜬 태양까지 도달해 버릴 것 같다. “진짜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아쉽게도 저건 허상이다. 호수에 비치는 달과 같은 신기루.
진짜라면 아무리 혼돈의 파편이라도 순식간에 숯덩이로 만들어 버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해서 그 열보다는 오히려 저만한 신기루가 형성되며 집중된 마나가 더 문제다.
불규칙한 그 흐름으로 인해, 어쩌면 철황유성탄의 속도와 응집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강제로 그 위에 실려 있는 존 워스로서는 하차할 기회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놓치기 전에 이쪽에서 먼저 터트리는 편이 좋았다.
“핫!”
짧은 기합 소리와 함께, 심상의 이미지가 철컥하고 들어맞았다.
직후 철황유성탄이 화려하게 폭발했다.
쿠쾅!
폭발의 위력은 엄청났다.
태양과 같은 밝은 빛을 뿜어내진 못했지만, 그 폭발의 중심지에서부터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는 태양이 뿜어내는 빛보다 빨랐다. 쿠화화화화
하늘에서는 구름이 밀려나고, 강제 일식이 일어난 것처럼 태양의 일부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피해가 큰 것은 영혼의 관이었다.
드드드득!!
이드가 마지막으로 뛰쳐나오며 뻥 뚫려 버린 지점을 기준으로, 아래쪽을 향해 커다란 균열이 발생해 버린 것이다.
습격이 시작된 이후 연이은 전투의 충격, 그리고 원원대멸력에 의해 마법 공간이 붕괴되며 뿜어진 충격을 아슬아슬하게 견디고 있던 영혼의 관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철황유성탄이 폭발하며 쏟아 낸 충격파는 그야말로 결정타였다.
하지만 이드에게 영혼의 관이란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사실 습격의 목적을 따지면, 붕괴는 오히려 바라던 바랄까.
해서 영혼의 관이 내지르는 처량한 비명을 뒤로하고, 이드는 연어처럼 충격파를 거슬러 올랐다.
당연히 목표는 존 워스였다.
폭발의 위력은 강력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 죽일 수 있다면 애초에 고생할 일도 없다.
지금은 그저 너무 밝은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
물론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놓친 건 아니다.
레이더보다 정교한 기감은 존 워스의 존재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를 향해 휘두르는 이드의 검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슈슈슉!
간결하게 나뉜 검초,
무극검강이 그 선명한 검로를 쫓아 태양을 베고 들어갔다.
이내 은색 검강이 태양 속으로 사라지고,
떠떠떵!
곧바로 들려오는, 쇳소리를 닮은 폭음이 존 워스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
“당신, 숨바꼭질에는 소질이 없어.”
이드가 방실거리며 웃었다.
그렇듯 보고 있으면 어쩐지 약이 오르는 미소를 지은 그는 문득 태양 속 존 워스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본인의 위치가 발각되어 당혹해하고 있다면 참 볼만할 테지만, 아쉽게도 그럴 가능성은 제로다.
사실 이드도 존 워스가 ‘숨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잠깐, 회복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겠지.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은 하나다.
바로 존 워스가 원하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
마음을 먹는 순간 발끝에 힘이 들어가고, 그 아래로 대기가 모여든다.
이드는 단단히 압축된 공기층을 차 내며 태양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 이드를 막으려는 것일까.
촤르르륵!
천검의 요새를 간소화한 것으로 보이는 검영이 늘어서며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진짜 천검의 요새도 아니고, 겨우 위력을 줄여 놓은 초식 따위에 발목이 잡힐 생각은 없었다.
더욱이 천검의 요새를 구성하는 무리에 대해서는 이미 대략적인 관찰이 끝난 상태.
“흡!”
이드는 즉각 무형대천강을 일으켜 검영을 일 검에 날려 버렸다.
엉!
시원한 소리와 함께 깃털처럼 날려 흩어지는 검영들.
아무리 간소화했다지만, 천검의 요새가 가진 위명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 그러나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요새에도 개구멍이 있는 것처럼, 이드는 천검의 요새가 가진 약점을 정확히 알아채고 노렸기 때문이다. 초식이 간소화되며 약점은 더욱 부각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앞을 가로 막은 장애물이 사라지자, 이드는 단숨에 태양 속으로 뛰어들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직후.
콰릉!
콰르르르릉!
태양에서부터 폭음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천둥소리를 닮은 폭음뿐만이 아니다.
그 속에 섬세하게 섞여 드는, 검 특유의 금속성이 있었다.
채채챙!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쩌어억!
노란 태양의 일부가 갈라지며 빛의 공백이 생겨났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그 이유는 단순했다.
이드와 존 워스의 검강에 태양을 이루고 있는 마나가 갈기갈기 찢기며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사실 말이 쉽지, 현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인을 검으로 가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이드와 존 워스는 당연하다는 듯 모든 공격에 담아 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이 감탄할 만한 공방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야, 보여?”
“・・・・・・ 저게 보이겠냐?”
“아아! 이 경이로운 전투를 코앞에 두고도 눈으로 볼 수 없다니.”
이런 상황에 플레타 부대와 은색 기사단이 아쉬움을 표했다.
“빌어먹을! 지들이 무슨 불사조야, 뭐야! 왜 저 안에서 싸우고 있는 건데! 인간이면 인간답게 땅으로 내려오라고!”
특히 언제 공격의 여파가 이곳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걱정까지 더해진 플레타는 태양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그에 오탄이 플레타의 허리를 잡아끌었다.
“그만 좀 하십시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봤자, 어차피 닿지도 않는다고요.”
“알아. 그러니까 맘 놓고 소리치고 있는 거잖아.”
“……뭐, 이런…….”
생각지 못한 비겁한 변명에 오탄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걸 대장이라고・・・・・・ 차라리, 이번 기회에 때려치워 버릴까?
그런 번뇌가 파도처럼 오탄의 마음으로 밀려올 때였다.
“숙여요!”
콰콰쾅!
맑지만 힘 있는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머리 바로 위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내 화끈한 열기와 더불어 충격파가 그들을 덮쳤다.
허리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충격량에 더해 얼굴을 때리는 흙먼지는 이드와 존 워스의 전투가 시작된 이후 가장 강렬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제는 그들을 지켜 주는 보호막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폭발의 진원지가 너무 가까웠다.
이것이야말로 플레타가 걱정하던, 전투의 여파였다.
태양 속에서 튀어나온 검강 줄기가 그들을 향한 것.
일리나가 늦지 않게 요격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사상자가 났을 것이 분명했다.
“대장. 어쩝니까? 아무래도 저분들이 들으신 모양인데요?”
“…….”
빈정거리는 오탄의 말에 플레타는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그의 말문을 막은 건 오탄의 말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식은땀 나는 오싹한 경험 때문이었다.
검강이 요격되기 직전까지, 그는 검강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한눈을 팔기는 했지만, 모든 신경은 전장을 향해 있었음에도 말이다.
소리도 마나도 감지하지 못했다.
이 정도라면 한눈을 팔지 않았다고 해도 과연 막을 수 있었을까 싶다.
긴장을 풀지 말라는 일리나의 말이 새삼 피부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자칫 전투의 여파 따위에 휘말려 부하들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오탄.”
“또 왜요?”
“헬로이와 료우를 중심으로, 저기서 저기까지 보호벽을 세워라. 은색 기사단과 대원들이 숨을 수 있게.”
플레타가 언급한 초인들은 각각 흙을 움직이고, 물질의 구성 성분을 바꿀 수 있는 초인기를 가진 대원들이다. 두 사람이 합작하면 어지간한 강철 벽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전투를 볼 수가 없는데요?”
“어차피 볼 수도 없잖아. 그냥 해! 눈먼 검강에 맞아 죽는 것보다는 그쪽이 나아. 그렇지 않습니까?”
“나도 플레타 대장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네.”
질문을 받은 검후가 플레타의 말에 동의했다.
물론 플레타와 달리 그녀는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검강을 알아차렸다. 하나 그녀 역시 그 위험도를 결코 작게 보지 않았다. 싸움 구경도 좋지만, 그것에 목숨을 걸 정도는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오탄은 검후의 말에 즉시 움직였다.
지목된 초인들과 함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대원을 불러내 순식간에 튼튼한 벽을 만들어 냈다.
아까와 같은 검강이라면 한 번 이상은 견딜 수 있는 그런 보호벽을 말이다.
그렇게 뒤에서 뚝딱하고 벽이 생겨나는 사이.
“더 이상 흉한 모습을 보일 순 없지. 이번엔 내가, 절대로 막아 낸다.”
플레타는 태양을 향해 두 눈을 부릅떴다.
도움을 받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번에야말로 자신이 나서서 눈먼 검강을 막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원래 기다리면 오지 않는 법.
콰르르릉!
쩌러러렁!
검의 울음소리와 함께 요란한 폭발은 점점 강렬해지는 가운데.
정작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눈먼 검강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일리나의 위치를 알아차린 이드가 특별히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플레타는 언제 날아들지 모를 검강 조각을 찾기 위해 눈에 핏발을 세울 뿐이었다.
오탄이 알았다면 불쌍한 대장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을 일.
하지만 그러한 삽질 덕분에 플레타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태양의 중심부에서 번져 나오는 붉은 기운에, 노란 태양이 붉은 석양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파사사사사
순식간에 빛을 잃고 스러지는 태양의 죽음과 태양이 죽은 자리에서 실뭉치처럼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검강의 폭풍을 말이다.
“백화난무.”
그와 함께 일리나의 입에서 그것의 정체가 밝혀졌다.
“백화난무라기엔 변형이 너무 심하지 않아요?”
두 눈을 좁힌 검후가 반론했다.
자신이 평생을 갈고 닦은 검법이라기엔 저것의 형태는 너무 이질적이다.
일리나는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답했다.
“이드잖아요.”
“…….”
백화난무의 원 주인.
그런 이드의 아내인 일리나가 백화난무라고 한다면 검후로서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