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3화


530화

이드는 지금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그의 얼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에단은 이드 앞에 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이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다. 마침 이드의 시선이 에단을 향하고 있어서 둘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드는 그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이드는 에단이 아니라 그의 뒤에 떠오르는 긴급대책위의 인간들과 그들의 전언을 향해 짜증을 내고 있었다.

방금 에단이 전한 이야기만 해도 이드를 충분히 어처구니없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드를 직접 소드 팰러스로 데려온 에단으로서는 이드에게 불편하게 돌아가는 모든 상황이 자신의 책임인 듯 느껴지고 있었다. 소드팰러스에서 이드에게 실수를 할 때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 미친 인간들이 정말 마스터하고 등을 돌리겠다는 말인가?”

솔직히 에단은 현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앞서 보고서를 작성할 때 마음대로 하라는 이드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이드의 정체에 대해 사실대로 써서 보고를 올렸다.

이드가 곧 마인드 마스터 본인이다!

다른 미사어구 하나 더하지 않고, 큼직하게 한 줄을 통째로 띄워서 눈에 아주 잘 보일 수 있도록 적어 뒀다.

에단은 보고를 올리고, 하루나 이틀 후면 긴급대책위의 인간들이 모조리 달려와 무릎이라도 꿇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억지를 조금 부려 보면 그들 모두가 이드의 제자와 같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 일이 지나고, 칠 일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고 속을 태우던 에단은 소드 팰러스의 생각을 추측하기를 포기했다.

그 보고서를 올렸는데, 이드 앞으로 달려오기는 고사하고 확인을 위해서 보고서의 작성자인 자신도 부르지 않다니. 에단으로서는 이해 불가의 상황인 것이다.

‘보고서를 읽었다면 이런 대처는 불가능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에단도 설마 보고서를 올리라고 명령한 당사자가 보고서를 아직도 읽지 않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에단의 예상과 같은 반응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에단은 오늘도 까맣게 타는 속을 부여잡고 이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제 생각에 특별한 변화가 있지 않은 한 화원으로의 출입 허가는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드는 가볍게 손을 저었다.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네가 출입을 막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지만 갑갑하긴 하다. 설마 시르피의 일을 가지고서 이렇게 배짱을 부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소드 팰러스에 도착하면 시르피가 머물던 곳은 바로 확인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푸념과 같은 이드의 말에 에단의 고개가 더 떨어졌다.

잘만 하면 그의 얼굴이 바닥에 새겨질 판이다.

“아, 괜찮다니까.”

[그런데 의외긴 해요. 소드 팰러스에 대한 말이 많아서 당연히 시르피도 검궁에서 머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야.”

의외라는 라미아의 말에 에단이 기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마를 짚었다.

그동안 이드는 에단의 소드 팰러스 자랑에 당연히 시르피가 소드 팰러스에 머물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녀가 실종되기 전 머물고 있던 곳은 이곳 소드 팰러스가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틀린 말이기도 했다. 소드 팰러스의 크기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드 팰러스 안에서도 시르피의 거처는 따로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먼저 소드 팰러스의 구조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소드 팰러스는 혼 후작 영지의 중심에 지어졌다.

혼 후작 영지의 주인은 시르피다. 그녀의 남편인 혼 후작의 죽음 후 자연스럽게 그 권리가 시르피에게 넘어간 것이다.

시르피는 보통 태대공녀 또는 검후로 불리고 있지만, 귀족 명부에는 혼 후작 영지의 주인이자 후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후작 부인이라고 적혀 있다.

거창한 칭호들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저 나이 많은 후작 부인으로 불리었을 거라는 뜻이다.

그녀는 소드 팰러스가 생겨나기 전부터 후작성에서 살았고, 초월의 벽을 넘은 곳도 후작성이었다. 처음 소드 팰러스라는 이름으로 사람이 모여든 곳도 후작성이었다.

이후 황제가 그녀에게 소드 팰러스의 이름과 성을 내릴 때도 그 중심은 후작성이 되었다.

황제는 그녀를 좀 더 가까이 두고자 했지만, 시르피는 아들과 남편의 추억이 서린 후작성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사별한 남편에게서 계승한 혼 후작 영지의 관리에서 손을 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강제할 권리는 황제에게도 없었다.

황제는 그녀의 생각을 존중하여 그녀가 머물고 있던 후작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을 짓고 벽을 쌓았다. 그것이 지금의 소드 팰러스다. 소드 팰러스는 크게 수련자 중심의 외성과 생활 중심의 내성,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검후를 보좌하며 기사들을 관리하는 검궁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정작 검후, 시르피는 이 세 곳 중 어떤 곳에도 머물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 아름답고, 기품 있게 황제가 꾸민 검궁에조차 공적인 일이 아니면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소드 팰러스에 존재하는 제삼의 공간에 머물렀고, 그게 바로 혼 후작 영지의 중심인 후작성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은 것이다.

후작성은 소드 팰러스의 사람들에게 화원으로 불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작성의 부근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드물게 후작성 안을 보고 온 사람들까지도 그곳에 가득한 수만의 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후작성 주변엔 언제나 꽃의 향기와 색에 취한 벌과 나비들이 가득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후작성을 화원이라고 불렀다. 소드 팰러스의 그림자에 혼 후작 영지를 다스리던 후작성의 존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화원이라고 불러도 그 진실된 모습을 모르는 사람은 소드 팰러스에 없었다.

검후가 생전의 추억을 되새기며 소중히 관리하고,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에 그녀를 존경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화원에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았다.

검후의 실종도 이 화원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실종 후 많은 사람이 화원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그저 화원의 무수한 꽃만 짓밟혔다.


이드도 화원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이 제국과 대륙을 떠돌 수는 없는 일. 이드는 그 시작을 화원에서부터 하고자 했다. 만약 티끌만한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행운일 것이고 말이다.

또 내심 기대하고 있는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긴급대책위에서 태클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시즌아웃이 거론될 만큼 살인태클이 들어왔다.

얼마 전 발표되었던 클라인 후작의 입장에 이어지는 것으로, 이드의 정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소드 팰러스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인 화원에 대한 출입을 허가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엔 기가 막혔다.

그리고 연이은 신청에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때마다 오기가 생기가 생겼다.

그런데 이번 신청에서는 더욱 기가 막힌 답변이 돌아왔다.

‘본 성에서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드에 대한 그 어떠한 증거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본 성은 이드가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을 제시한다면 본성이 확보하고 있는 검후에게 이어진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과 비교 검증할 생각이 있다.

만약 위 사람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임을 인증하고자 한다면 긴급대책위에 출두하여 마인드 마스터의 무공에 대한 시연과 설명을 하고, 마인드 마스터의 기술이라고 기록된 무공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은 대놓고 무공을 가져다 바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며칠 전 이드에게 새로 배운 기술로 적잖은 파장을 만들어 낸 에단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미친놈들!”

뒤에 남은 담당자가 노발대발했지만 에단은 싹 무시해 버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막힌 이야기라 에단은 이드에게 이야기를 쉽게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

“누굴 호구로 아나.”

이드는 에단의 이야기를 듣고 시니컬한 미소와 함께 콧방귀를 끼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한참 침묵하던 이드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몰래 잠입하는 건………… 안 되겠지?”

에단이 기겁한 표정으로 이드를 말렸다.

“마스터, 제발 참아 주세요.”

정말 생각 같아서는 그렇게 화원을 살피고 소드 팰러스를 떠나고 싶은 에단이었지만, 마지막 남은 소드 팰러스에 대한 애정에 차마 이드의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이 알려지거나 화원에 잠입했다가 소드 팰러스와 충돌이라도 일어나는 경우에는 정말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이드의 실력에 대해서는 충분히 신뢰하고 있는 에단이었지만 무조건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양측이 충돌해서 좋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드도, 소드 팰러스도 말이다.

전설로 남겨진 이드의 실력을 생각하면 소드 팰러스의 피해가 어떨지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소드 팰러스와 각을 세우고 있는 초인파의 입장에서는 축배를 들 일이다.

소드 팰러스에 대해서 많이 실망한 에단이었지만 초인파에 대한 경계심이 어디 간 것은 아니었다.

이드는 간청하는 에단의 모습에 충동적인 마음을 접었다.

“좋아. 일단은 참는다. 누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고.”

검후가 실종된 지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고, 이미 몇 달이나 지난 일이었다. 지금 와서 며칠 서두른다고 그녀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에 검후가 납치되었고 그녀에게 가치가 있다면 그녀는 살아 있을 것이고, 가치가 없다면 벌써 그녀의 생명을 사라졌을 것이다.

이런 경우 서두르기보다는 꼼꼼할 필요가 있었다. 세세하게 살펴 그녀를 찾아서 살아 있다면 구출하고, 죽었다면 원수를 갚아 줄 뿐이다. 그렇게 작게 분노를 불태우는 이드의 모습에 에단이 좌불안석이자 일리나가 나섰다.

“이드, 우리 정원으로 나가요.”

그렇지 않아도 갑갑한 이야기만 오고가던 상황이다.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 싶었던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러고 보니 정원은 답답하고 했죠. 그러지 말고 근처의 숲이나 산을 찾아볼까요. 소드 팰러스에서 먼저 굽힐 생각이 없다면 당분간 숲에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재료만 있다면 간단히 집을 짓는 정도는 넉넉히 이틀 정도면 충분하다.

“우…… 죄송합니다, 마스터. 허락 없이 소드 팰러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금지라고.”

에단은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이드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이 인간들이 진짜 치사하게 나오네………… 응?”

에단의 말에 다시 긴급대책위를 씹으며 문을 열던 이드는 문 앞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기세를 올리고 있는 두 아기씨를 보고는 놀라 한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낯이 익은 두 아가씨는 갑자기 열린 문에 새로 등장한 얼굴을 확인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인사를 해 왔다.

“일전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 찾아 왔습니다. 케마란입니다.”

“네리베르 폴 다임입니다. 감사 인사를 위해 들렀습니다, 에단 선배님.”

두 아가씨의 시선이 이드를 넘어 그 뒤에 서 있는 에단을 향했다.

“……응?”

갑작스러운 두 아가씨의 시선에 직전까지만 해도 풀죽어 있던 에단은 이유 모를 상황에 바보 같은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