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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32화


1367화

두피를 가르면 피가 흐른다.

그 뒤에는 하얀 머리뼈가 나타나고, 그걸 잘라서 열면 그 안에는 무색투명한 뇌척수액과 회색의 뇌막을 볼 수 있다.

이 뇌막을 잘라 열면 비로소 뇌가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라미아가 뚜껑을 딴 탑주의 머릿속은 달랐다.

우선 피와 뇌척수액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이건 미라가 되었으니, 그럴 수 있었다.

수분이 쫙 빨렸으니까.

그러나 떼어 낸 머리뼈 안쪽에 있어야 할 뇌가 보이지 않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텅 비어 있는 것은 또 아니었다.

탑주의 머릿속, 뇌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뇌 대신 주먹 크기의 녹색 돌이 들어 있었다.

돌의 표면에는 빛의 선이 쉼 없이 내달리며 반짝였다.

“으음…… 이래서야. 이것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거로군요.”

탑주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라울이 납득한 듯 혀를 찼다.

저래서야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물론 그는 꼭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야만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바벨 소속의 별의별 특이한 초인들을 다 접하다 보면 그런 고정관념 따위 남아날 구석이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탑주도 인간이라고 주장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저 녹색 돌을 보는 순간. 라울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기분이 들었다.

저건 산 사람의 몸뚱이에 붙어 있을 물건이 아니었다.

즉, 탑주는 이미 죽어 있는 것이 맞았다.

‘・・・・・・ 충격이 크겠는데?’

탑주를 살피던 라울이 마법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바닥을 구르고 있어 정확한 모습은 볼 수 없어도, 탑주의 머리가 열리는 것은 보았으리라.

그러면서 그 안에 응당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사실도 알아차렸을 테고.

아니나 다를까.

충격을 받은 마법사들은 그대로 굳어 버린 모습이었다.

질리다 못해 새파래진 얼굴로 눈을 질끈 감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현실을 부정하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 입장에서야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테니까.

‘이왕이면 상황 인식을 철저하게 해 주면 좋겠는데. 그래야 바벨로 완전히 넘어오게 만들지.’

그 전에 몸값 지불이 먼저긴 하지만 말이다.

“작업 이어 갈게요.”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어차피 자작님이 도울 일도 없는걸요.”

“…….”

정말이지 이런 취급은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라미아가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낭랑하게 퍼지는 주문과 추가되어 생성되는 마법진들,

“…….”

그에 눈을 감고 있던 마법사들이 눈을 떴다.

그들도 귀가 있어 오가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가 밝혀낼 수 있을까?

그녀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마법을 어떻게 사용하려는 것일까.

순수한 마법사의 호기심이 절망 속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 더해, 알아야 했다.

탑주를 저 꼴로 만든 것이 누구인지.

일단 습격자들이 은밀히 일을 벌인 것은 아니었다.

영혼의 관이 그 정도로 허술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참혹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야 원수를 갚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이 그들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부릅뜬 마법사들의 눈에 시뻘건 핏발이 섰다.

그렇게 여럿이 지켜보는 가운데.

라미아는 수십 가지의 마법을 바꿔 가며 빠르게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현재 그녀가 하는 작업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교한 외과 수술에 가까웠다.

비유를 하자면, 온몸은 물론이고 작은 세포 하나까지 암에 잡아먹힌 탑주의 몸에서 티끌만큼 남은 정상적인 부분을 찾아내는 작업 중인 것이다. 그것도 폐나 위와 같은 내장 기관이 아니라, 뇌와 영체라는 복잡하고 고차원적인 기관을 대상으로 말이다.

덕분에 그런 사정을 자세히 모르고 섣불리 골든아이를 이용해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라울은 전두엽을 찌를 듯한 정보량에 눈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골든아이를 거둔 직후, 그는 라미아라는 존재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휴~ 미쳤군, 미쳤어.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저런 초정밀의 복잡한 과정을 혼자서 진행한다니.’

라울은 라미아에 대해 재차 감탄했다.

그는 확신했다.

현재 바벨에는 지금 그녀가 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가 없다는 걸.

아니, 어디 바벨뿐일까.

제국을 통틀어서도 저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기는 할까 싶었다.

특히 단순히 힘에 치우친 것이 아닌, 저런 정밀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얼마나 귀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라울은 문득 욕심이 생겼다. 

‘역시 친분을 쌓는 걸로는 아쉬워. 어떻게…………… 바벨로 데려올 수 없을까.’

이드 일가를 모셔 오기만 한다면 바벨은 최고가 될 수 있었다.

현재 소드 팰러스가 가진 명성을 자신들이 그대로 계승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를 구성원으로 둔다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크다. 거기에 더해서 오늘 생포한 마법사들로 초인 마법까지 얻게 된다면?

과연 이 대륙에 누가 있어 바벨을 막을 수 있을까.

“……좋구나.”

참으로 흐뭇한 상상이지 않은가.

오죽하면 자신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새어 버리는 것도 몰랐다.

“뭐가요?”

“……네?”

“좋다고 하셨잖아요. 뭐가 좋냐구요.”

“큼, 잠깐 저들의 처리에 관해서 생각했습니다.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다시 작업 이어 가시죠.”

정중한 가운데 눈을 피하는 라울의 모습에 라미아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뿐이다. 

본인이 어떤 욕심을 품었는지 라울이 스스로 고백할 리는 없었다.

어차피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니기에 라미아는 곧 그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대신 손을 거두고 한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거 말인데, 준비 과정은 끝났어요. 지금부터는 탑주의 영체를 매개로 해서, 변형된 그의 육신을 통해 바이트 타블렛의 변형과 오염 상태에 대해 알아볼 거예요.”

“・・・・・・・ 설명만 들어도 굉장히 복잡해 보입니다.”

설명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 작업은 더 복잡하다.

당장 저기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마법사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의 눈은 한마음 한뜻으로 그게 가능하냐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해야죠.”

그런 가운데서도 라미아는 부담이라고는 없는 얼굴로 탑주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중이다. 준비 과정이 끝났다는 그녀의 말처럼, 탑주의 머릿속 풍경은 어느새 조금 바뀌어 있었다. 수분이 빠져 바짝 말라 버린 근육과 신경 다발의 징그러운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대신 그 중앙에 자리한 녹색 돌의 모양이 많이 바뀌었다.

일단 그것을 중심으로 미세한 마법진이 촘촘히 둘러싸고 있었다.

엄지손가락 크기를 한 마법진의 총 숫자는 133개.

그것들이 둘러싼 모습은 마치 꽃잎 같았다.

또한, 돌 자체의 변화도 있었다.

단단해 보이던 돌은 보이지 않던 틈이 생겨나며 갈라지고 나뉘어 가조립 상태를 유지 중이었는데, 그 모양이 마치 호두알 같았다. 뇌를 닮은 호두알 말이다.

이러한 변화에 라울은 순수하게 놀라웠다.

자신이 딴생각에 빠진 그 짧은 사이 이런 변화를 만들어 내다니.

이건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인정을 받았을 것 같지 않은가.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감상할 시간이 없다.

시간.

시간이 촉박했다.

“얼마나 오래 걸릴 것 같습니까? 탑주를 매개로 쓴다고 하더라도 강제로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요.”

“딱히 그렇지도 않아요. 일단 진단이 끝나기까지 십 분?”

“……그렇게 빨리 끝낼 수 있다는 겁니까?”

“바이트 타블렛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를 해 봐서 잘 알거든요. 이제야 밝히는 거지만 지금까지 두 번. 저희가 손에 넣었던 적이 있어요.” 그야말로 갑작스러운 고백에 라울의 얼굴에 뜨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니, 언제 그런 일이! 그런 일은 미리 말씀을…….”

놀란 마음에 말을 쏟아 내던 라울은 곧 마음을 수습했다.

물론 그런 사실이 있다고 알려 줬다면 좋았겠지만, 달리 따지면 그 사실을 자신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손을 잡고 있지만,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가 두텁게 쌓인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생각할수록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잠깐만, 두 번이나 얻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째서 여기에 있게 된 겁니까? 탈취당하신 건・・・・・・ 아니신 것 같은데.” 

바이트 타블렛이든 뭐든, 이들 가족의 손에서 무언가를 탈취한다?

라울도 이제는 장담할 수 있었다.

그건 제국의 황실을 터는 것과 같은 수준의 터무니 없는 시도다.

과연 미완의 마탑만으로 가능했을까?

더욱이 그런 일이 있었다면 소란도 보통 소란이 아니었을 텐데, 자신은 그런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다.

라미아는 그렇게 당혹해하는 상대를 보며 기쁘게 대답했다.

“설마요. 그건 불법이죠. 그냥 팔았어요. 아주 비싸게!”

“파, 팔았다는 겁니까? 이걸?”

“좋은 거래였죠.”

“끄으응……!”

이게 비싸다고 좋아할 일이란 말인가!

그걸 팔아먹은 덕분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 때문에 초인들에게 어떤 피해가 생겼는데.

좋은 거래였다니!

라울은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겨우겨우 눌러 참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도 있었다.

그렇게 바이트 타블렛의 일부를 손에 넣어 연구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보를 기반으로 좀 더 빠르게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는 개뿔! 이런 돈에 미친 인간들! 돈이 필요했으면 차라리 바벨에 팔지!’

눈앞이 노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드 명예 후작은 돈과 권력 등에 초탈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제국이 내린 정식 작위도 거절했다고 들었는데. 이게 뭐란 말이냐.

라미아는 여러모로 혼란해 보이는 라울의 모습에 아무래도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미래의 호구에게 이 정도 서비스는 해 줘야지 않겠나.

“혹시 오해할까 봐 말하지만, 생각 없이 그렇게 처리한 건 아니었어요. 내가 두 번이나 기회가 있었다고 했죠? 그때 저희가 넘긴 건 하나였어요.” 

“헛! 그럼 다른 하나는?”

“여전히 저희가 가지고 있죠. 원래는 그걸 통해서 미완의 마탑을 조사하고, 그와 연관된 혼돈의 파편을 찾아볼 생각이었어요. 어차피 중요한 조각 일부를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바이트 타블렛이 완성될 일도 없다고 여겼죠. 분명 그랬는데. 결과는 보시다시피.”

완성된 바이트 타블렛이 당당히 눈앞에 서 있었다.

“혹시 가지고 계신 바이트 타블렛이 가짜라거나, 저들에게 예비가 있었던 것은?”

“에이, 설마 내가 가짜도 구별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리고 예비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네요. 이건 그냥 갈아 끼우면 되는 부속품이 아니라고요.”

라미아의 확신 어린 말투에 라울은 결국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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