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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77화


1412화

분명 그렇게 다짐했는데.

라미아를 귀찮게 한 비올라의 엉덩이를 걷어차 연구실 밖으로 쫓아내려고 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그러지 못했다. 

“얘 상태가 왜 이래?”

탁자에 엎어져 울면서 콧물까지 훌쩍거리는 비올라의 모습 때문이다.

이드는 이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법 오랫동안 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비올라의 모습은 자신이 지하로 내려오면서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비올라가 라미아를 속 썩이는 것이 아니라, 라미아가 비올라를 괴롭힌 것 같지 않은가.

또 달리 보면 말을 듣지 않는 아들 때문에 속상한 어미와 종아리를 맞아 울고 있는 아들 같기도 한데. 부르르!

‘미친, 비올라 같은 아들이라니! 내가 무슨 생각을!’

번쩍이는 스킨헤드에 똘끼 가득한 비올라의 얼굴을 한 자식이 ‘아빠’라고 부르는 상상을 해 버린 이드는 온몸을 떨었다.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이보다 더 지독한 호러는 없을 거다.

이드는 전력을 다해 머릿속에 들어찬 그림을 지워 냈다. 흔적도 남지 않도록 탈탈 털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세뇌를 마친 이드의 시선이 라미아를 향했다.

일리나와 나란히 앉은 그녀는 투덜투덜 비올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자신을 향하는 눈길에 고개를 돌리는 라미아.

이드가 말했다.

“비올라는 왜 울고 있는 거야? 설마 네가 울린 건 아니지?”

“글쎄요. 내 탓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없긴 한데.”

“진짜 때렸어?!”

“아이참! 그럴 리가 없잖아요!”

라미아의 말에 놀라 소리쳤던 이드는 곧 자신을 노려보는 라미아의 눈초리에 빠르게 꼬리를 말았다. “응응. 그렇기는 하지. 네가 때렸으면 저렇게 질질 짜고 있을 틈이 없지.”

죽어도 벌써 죽었을 것이다.

아니면 연구실과 함께 통째로 얼음 속에 갇혀 버렸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탓이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라미아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도저히 짐작 가는 일이 없다.

“그럼 무슨 일로 저러는 건데? 그렇지 않아도 맘고생 중일 텐데. 어지간한 건 넘어가 주지 그랬어.”

“정말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리고 맘고생은 무슨! 저 인간은 그렇게 정이 넘치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럴 리가?”

그럼 삼 일이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식음을 전폐한 건 뭐란 말인가? 비올라의 상심이 온전히 그에 대한 복잡한 마음 때문이라고 짐작하고 있던 입장에선 당혹스러운 대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라미아의 반응은 단호했다.

“진짜예요. 나도 내려오기 전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탑주가 죽어서 상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저택에 도착하기 전에 다 정리됐었대요.” 

“그건・・・・・・ 너무 빠른데.”

비올라 같은 자식은 징그럽지만, 그럼에도 스승을 잃은 슬픔에 괴로워한다고 생각해 불쌍하게 여겼던 이드는 미적지근하게 식어 버린 눈으로 비올라를 봤다.

영혼의 관의 전투가 끝나고 저택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시간 남짓.

길다면 길지만, 한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엔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다. 더욱이 그 대상이 한때 존경하던 스승이라면 특히나 더!

그런데 이 비올라는 그 짧은 시간에 탑주에 대한 감정을 모두 정리했다는 것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정이 없다는 라미아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니까요.’

“그럼 슬픈 것도 아닌데, 왜 연구실에 짱박혀 있던 건데?”

비올라를 동정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일까. 비올라에 대한 이드의 말투가 원래대로 돌아갔다. 거칠어졌다는 말이다.

당사자인 비올라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린 것인지 어느새 훌쩍거리던 울음을 멈추고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슬프다기보다는 등과 어깨가 비 맞은 개처럼 처량해 보인다. 저걸 보면 분명 뭔가 사연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 사연이 정상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탑주의 죽음이 안타까워서래요. 정확히는 탑주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탑주가 가지고 있었을 초인 마법의 비전이 사라져서. 그래서 슬펐대요.” 

이어진 라미아의 말은 예상대로였다.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평소 초인 마법에 대한 비올라의 진심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될 것도 같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까지 무감각한지.

“정말 징글징글하다. 영혼의 관이 무너지는 걸 보고서도 초인 마법에 매달릴 생각이 드나?”

“아, 영혼의 관이 무너지고 거기서 수습한 게 거의 없는 것도 우울한 이유 중 하나였어요.”

“……”

그러고 보면 영혼의 관 습격 작전에 대해 가장 기대하고 신났던 인물 중 하나가 비올라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유는 지금 라미아가 말한 것이고 말이다.

참, 할 말이 없다.

“푸크크크큭!”

문득 들리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에 돌아보자 일리나가 터지는 웃음을 손으로 막고 있다. 어느 대목이 그녀를 웃게 만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인간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갑한 마음에 머리를 벅벅 긁은 이드는 비올라를 노려봤다.

어쩐지 그에 대해 걱정한 것이 바보 같아졌기 때문이다.

‘쉴라 경도 여기에 대해서는 모르겠지?’

모르고 있다면 꼭 알려 줘야겠다고 다짐한 이드는 이번엔 저 빌어먹을 놈이 왜 울고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라미아의 모습을 봐서는 이것도 절대로 정상적인 이유는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드는 곧바로 이에 대해 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라미아의 대답은 너무도 짧고 간단했다.

“뻔하잖아요. 저 인간을 질질 짜게 만들 수 있는 건 하나뿐이죠.”

“또 초인 마법이야?”

“그거 말고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건 대충 정리한 거 아녔어? 왜 새삼 지금에 와서 울고 있는 건데?”

탑주가 죽고 영혼의 관이 무너진 것이 벌써 삼 일 전이다. 울려면 그때 울었어야 했다. 설마 삼 일 동안 울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고 말이다.

“그 이유가 좀 복잡미묘한데. 간단히 말해서 이번에 초인 마법이 완전한 법칙으로 세상에 인정을 받았잖아요.”

“그렇지. 네가 한 일이잖아.”

“그렇죠. 그리고 난 그 과정에서 기존 설계도에서 몇 가지 중요 부분을 수정해서 완성했죠. 그게 기존의 초인 마법사들에 있어서는 꽤 이질적이었나 봐요.”

“이질적이라면?”

“마법의 구성 요소에 새로운 변수가 추가된 거죠. 초인 마법사 입장에선 뭐랄까. 음, 갑자기 실력이 떨어진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개인적인 실력과 주력하던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약 반 클래스에서 두 클래스 정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는 라미아.

그에 대해 이드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최소 반 클래스에서 초대 두 클래스라고 했다. 무인을 기준으로 말하면 절정에서 일류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격차다.

최악의 경우에는 화경에서 절정으로 떨어진 듯한 상황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사실 떨어졌다는 말도 약하다.

이건 그야말로 추락이고, 절망이다.

눈 떠 보니 절정이라니. 모든 것을 다 바쳐 화경에 올랐더니, 다시 절정이라고?

“울 만한데?”

아마 이드 자신이라도 울지 않았을까? 이건 자신의 모든 게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겠는가.

그런 이드의 말을 들어서일까.

“훌쩍. 훌쩍. 크흐흐흑!”

다시 훌쩍이며 질질 짜기 시작하는 비올라다.

이번에는 이드도 그런 그를 뭐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공감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저렇게 울고 있는 건, 혹시 그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된 건가요?”

웃음을 그친 일리나가 물었다.

“그런 거죠. 연구실에 틀어박혀서는 딱히 고 클래스의 초인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었을 테니까요. 제가 말해 줬죠.”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비올라는 몇 번이나 초인 마법을 사용해 보고는 저렇게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미 가 봤던 길이라면 금방 다시 갈 수 있지 않아요? 저럴 것까진 없을 것 같은데.”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초인 마법은 그 부분에 있어서 좀 복잡해서 말이에요. 일부 그런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는데.”

“크허허허헝!”

갑자기 커지기 시작한 비올라의 울음소리.

그 모습을 본 이드가 말했다.

“비올라는 후자에 속하는 거지?”

“그렇죠. 저 인간이 울고 있던 것도 그 사실을 알아서였죠. 그렇게 힘든 것도 아니라고 말해도 듣지도 않고. 그래서 마음대로 울어 보라고 그냥 뒀더니. 결국 이드가 올 때까지 울더라고요. 지독한 인간!”

라미아가 뿌득뽀득 이를 갈았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끝없이 울어 대던 비올라의 울음소리가 그녀를 괴롭힌 주범이었던 모양이다.

“제가 지독한 게 아닙니다. 이 상황을 두고 울지 않는다면 그놈이야말로 마법사가 아닌 겁니다!”

울다 말고 비올라가 소리쳤다.

그러자 라미아가 뿌득 이를 갈고는 그 자리에서 붕 하고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비올라의 얼굴에다가 두 발을 꽂아 넣었다.

멋진 원앙퇴였다.

“꾸엑!!”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힘든 일 아니라고!”

직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몸을 날리는 라미아.

이드는 잽싸게 달려나가 허공에 뜨는 라미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냥 뒀다가는 비올라가 울다 죽는 게 아니라, 맞아 죽을 것 같아서다. 당장 방금 원앙퇴에 허공에 하얀 이빨을 뿜어내던 비올라가 아닌가.

그런데 이런 이드의 행동에 힘을 얻은 것인지, 아니면 원망이 터진 것인지 저만치 굴러갔던 비올라가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소리쳤다.

“그게 어떠게 쉬스니가! 마버흔 그러게 아니… 응? 어! 내 이빠!!”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비올라는 묘하게 새는 발음에 그제야 자신의 앞니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는 방방 뛰었다.

그런 비올라의 입가로는 붉은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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