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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978화


1413화

피를 보자 두 사람은 싸움을 멈췄다.

싸움이라고 하기엔 라미아가 일방적으로 때렸을 뿐이지만.

‘동네 꼬꼬마 싸움도 아니고.’

이드는 내심 혀를 찼다.

그사이 한 손으로 흐르는 피를 틀어막은 비올라가 바닥에 떨어진 이들을 줍기 시작했다. 회색 바닥에 하얀 이가 그의 머리만큼이나 반짝거려서 찾기는 쉬웠다.

그렇게 찾은 게 다섯 개.

이드는 억울해 죽겠다는 얼굴을 한 비올라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쉰 뒤 라미아를 불렀다.

“치료해 주는 게 어때?”

“내가 왜요?”

팔짱을 끼고서 불퉁하게 답하는 라미아다.

“저거, 너 때문에 뽑힌 거잖아. 치료해 줘라. 일단 대화는 해야 할 거 아냐. 저래서야 발음이 새서 못 알아듣잖아.”

“칫, 그렇다면 뭐, 어쩔 수 없죠. 알았어요.”

‘원활한 대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이 잘 통한 것일까. 두 팔을 걷어붙인 라미아가 비올라 앞으로 다가섰다.

그에 비올라가 놀라서 움찔거렸다.

라미아는 또 그런 반응에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겨우 한 대 맞았잖아. 사내자식이 무슨 겁이 그렇게 많아?”

“……”

“그러니까 애초에 네가 함부로 말을 한 것이 잘못이라고. 나는 마법에서 태어난 사람이야. 그런 날 두고 마법사가 아니라는 둥 떠들어 대면, 내가 화가 나지 않겠니?”

“……”

“……사과 안 해?”

“……..데셩하니다………..?

요리조리 눈을 굴리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비올라.

그런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피를 보고 싸움을 멈춘 것도 그렇지만, 저게 어딜 봐서 고위 마법사들의 다툼인가.

특히 라미아의 행동은 흔한 말로 양아치 같았다. 강호식 표현으로 말하자면 사마외도로도 취급받을 수 없는 시정잡배랄까?

‘저런 건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건지.’

하지만 이런 이드의 생각을 알 리 없는 라미아와 비올라는 빠진 이를 제 자리에 옮겨 놓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입 벌려 봐. 빠진 자리를 봐야 끼워 넣지. 일단 피부터 씻어 낼까? 워터.”

“가르르륵~~”

“아, 보인다. 위에 세 개. 아래 두 개. 음………… 그런데 송곳니 쪽에 부정 교합이 있네. 어쩔래?”

“에?”

“이 기회에 교정할래? 교정하면 훨씬 보기 좋을 거 같은데. 얼굴 형태도 살짝 바뀔 것 같거든. 물론 좋은 쪽으로.”

“어…….”

그야말로 세상 뜬금없는 권유에 비올라의 눈이 떨렸다. 그러나 곧바로 거절하지 않았다는 시점에서 이미 그도 관심이 생겼다는 의미다. 

“교정하면 많이 달라져요?”

응? 일리나는 또 어느새 저기로 간 건지.

“당연하죠. 지금 비올라 같은 경우는 턱선이 제법 샤프하게 떨어질 거예요.”

“저마잉카?”

비올라도 이제는 완전히 혹한 표정이다.

이드는 그런 놈의 모습이 한심했다. 지금 손에 든 이가 누구 때문에 뽑힌 건지 벌써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 같다.

“응, 쉽게 말해서 호감형 얼굴이 되는 거지. 완전히 바뀌는 건 아니지만, 일단 지금보단 나을걸?”

‘헐……!’

어쩐지 귀에 익은 것 같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건 성형외과 매니저들의 전형적인 사탕발림이다.

물론 자신이나 라미아나 성형외과에 갈 일은 없다. 대신 궁금해서 따라간 적은 있었는데, 거기 매니저들이 딱 저런 식으로 말을 했더랬다. 잘 뜯어 보면 정말 교묘한 헛소리다.

교정 좀 한다고 달라져 봐야 얼마나 달라질까. 물론 아주 영향이 없다고 보긴 어렵지만, 크게 티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뒤에 저런 말을 끼워 넣는 거다.

그리고 저렇게 미끼를 던지고서는, 하겠다고 하면 그때 본격적으로 사이즈가 큰 추가 시술을 권유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와 달리 그레센에는 부정 교합을 고칠 전문 의료 기구가 없다.

그 때문에 부정 교합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를 뽑아서 제자리를 다시 잡아 주는 것인데.

‘저 녀석.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거 아냐?’

이드는 합리적인 의심을 품었다. 하지만 굳이 그 의심을 입 밖으로 내는 어리석음을 부리지는 않았다. 라미아를 방해해서까지 비올라를 구해 줄 의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남편으로서 라미아의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라미아가 강제로 시술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당사자가 좋아서 하겠다는데.

“자알 부탁드림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새 원망은 저 멀리 날려 버린 비올라가 라미아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인다.

처음 권유가 나왔을 때 거절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

“좋은 선택이야. 그럼 일단 먼저 뽑자. 입 크게 벌려!”

신이 난 라미아가 어느새 귀여운 집게를 손에 들고서 비올라의 입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마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마취는?”

“음!”

순간 비올라도 깨달은 양 눈을 크게 뜨고 뭐라 말을 하려는 듯했지만, 이미 집게가 이를 잡은 뒤였다.

뿌드득!

“끄어어억!!”

직후 연구실에는 또 한 번 피와 함께 억울함이 가득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드는 확신했다.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인 비올라의 사과 하나로 라미아의 화가 풀리지 않았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런 라미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태생부터 마법과 하나였다. 단 한 순간도 마법에서 멀어진 적이 없는 사람이 라미아다.

그런 이에게 마법사가 아니라고 했으니, 그건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였다. 그러니 확실한 뒤끝을 자랑하는 라미아의 화가 그렇게 쉽게 가라앉을 리가 있겠는가.

오히려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부디 원한일랑 남기지 마라.’

이드는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비올라를 보며 묵념했다.


이드는 오늘 비올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형적인 괴짜 천재 마법사에 속하는 비올라이지만, 천재답지 않게 굉장히 단순한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무려 마취도 없이 생으로 이빨을 뽑히는 고문을 받으며 기절해 놓고는, 깨어났을 때 말끔히 치료된 이빨과 살짝 달라진 자신의 턱선에 굉장히 만족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드가 봐서는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기 힘들 정도의 차이였다.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걸로 좋은 거냐?”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애초에 이 몇 개 옮겨서 바뀌면 얼마나 바뀌겠습니까?”

“그럼 할 필요가 없었던 거 아냐?”

너, 거품 물고 기절할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고!

“그건 아니죠. 원래 작은 차이가 명작을 만드는 법입니다. 전 지금이 확실히 좋습니다. 거기에 입을 다물었을 때 딱 맞물리는 것도 기분이 좋고요. 부정 교합이라는 개념. 이거 좋아요! 하하하하!”

비올라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치아를 따닥따닥 부딪쳐 보였다. 그 모습은 정말이지 미친 놈 같아 보였다.

과연 괴짜 마법사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래. 네가 좋다면 그걸로 됐다.”

이드는 비올라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연구실을 나가서 삼 일 정도는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피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라미아의 볼일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하니,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드가 라미아에게 다가갔다.

“이제 속이 시원해?”

“……씽,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포기해.”

괜히 미친놈을 진심으로 상대했다가는 이쪽이 피를 볼 뿐이다. 괴물과 싸울 때 괴물이 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할까?

“저도 알아요. 뒤끝이 찝찝해서 그렇지, 말을 함부로 한 것에 대한 벌도 충분히 줬고, 비올라, 여기로 와.”

“넵!”

누구 것인지 알 수 없는 거울에 이리저리 얼굴을 비춰 보던 비올라가 잽싸게 부름에 답했다.

감정이 정리된 덕분에 한층 이성적으로 탁자에 둘러앉은 네 사람.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주도하는 사람은 라미아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말을 꺼냈다.

“미리 경고하는데, 내 말은 매우 객관적인 사실을 기초로 한 것이니까 괜히 멋대로 곡해하지 말고 들어.”

“제 턱선에 걸고 더 이상의 바보짓은 없습니다.”

시술의 결과물이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단 말인가.

순간 라미아의 표정이 떨떠름하게 변하는 듯하더니, 금방 원래대로 돌아온다.

“좋아. 그럼 다시 말하지만 떨어진 네 클래스는 금방 복구가 가능해.”

“특별한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시죠?”

“다행이네. 이제 머리가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괜히 징징거리지 말고 진작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냐는 듯한 라미아의 눈빛에 비올라는 조금도 위축됨 없이 당당하게 제 생각을 꺼내 놓았다.

“네, 이성적으로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마법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제 초인 마법은 가장 원류에 가깝습니다.”

비올라의 목표는 초인 마법으로 탑주를 능가하는 것이다. 최고의 초인 마법사로서 역사에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비올라는 초인 마법의 가장 근간이 되는 근원 이론을 중심으로 초인 마법을 수련했다.

벌써 몇 번을 강조하지만, 초인 마법은 이제 막 태어난 마법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랄까.

그렇기에 초인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초인 마법에 다양한 방향성을 가미했다. 각 관에 속해 있던 초인 마법사들의 마법이 하나같이 독특한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에 반해, 비올라는 탑주가 개발한 초인 마법의 근원을 충실하게 따랐다. 근원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이뤄진다면 그 후의 응용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미아의 손에 완성된 초인 마법은 그 근원에 복잡한 변수가 삽입되고 말았다.

차라리 변형된 초인 마법이었다면 영향이 적었을 것이다. 변형이 큰 만큼 근원에서 떨어져 영향도 적을 테니까.

반대로 근원 중에서도 가장 큰 본류를 탐하던 비올라에겐 직격타가 된 상황.

과연 여기에 대해 어떤 해법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의문 앞에 라미아는 오만한 눈빛을 반짝였다.

“물론 잘 알고 있지. 그런데 말이야. 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니?”

되묻는 라미아의 전신에는 이전에 보지 못한 고고한 위엄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비올라는 잠시 침묵했다.

서로 처음 보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고 저런 질문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지 않은가. 라미아.

비올라가 생각하는 그녀는 일단 위대한 마법사다.

본인이 그녀의 마법에 반해 탑주를 배신하고 생명의 관을 뛰쳐나왔을 정도로.

그다음으로는, 명예 후작의 부인?

하지만 둘 다 지금 질문에 대한 답은 아니다.

그와 함께 지금 상황과 연결된 사실 하나가 벼락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났다.

비올라의 혀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초인…… 마법의 진정한 완성자?”

“봐, 잘 알면서.”

정답을 들은 라미아의 입가에 오만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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