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79화
1414화
대륙 각국에는 하나 이상의 마탑이 존재한다.
마법사는 중요 전력이므로 다들 자국에 마탑을 세우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다.
마탑의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탑주다.
대부분의 경우는 해당 마탑의 탑주가 그 마탑의 최강자가 맞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탑주가 선정되는 방법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마탑의 탑주는 왕실처럼 혈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탑의 탑주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실력이 뛰어나야 했다. 지식이 곧 실력인 마탑에 있어서 이는 당연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비단 실력만으로는 탑주가 될 수 없었다.
힘만 좋다고 탑주가 된다면 그건 뇌 대신 머리에 근육이 든 기사나 파괴에 눈이 돌아간 흑마법사들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자신들을 지극히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존재라고 여겼다.
그러하기에 탑주는 실력은 물론이고 논리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이어야 했다. 마탑에 속한 마법사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사유다.
사실은 고위 마법사일수록 괴짜에 외골수가 많은데, 그런 인물이 탑주가 될 경우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었다. 해서, 그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좌우간 이런 자세한 속내는 두고, 일단 세상 사람은 대부분 탑주가 마탑의 최강자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상태다.
그리고 미완의 마탑은 현재 이런 최강자이자, 초인 마법의 최고 권위자가 죽어 버린 상태다.
그렇다면 현재 초인 마법의 최고 권위자는 누구인가.
보통은 탑주의 제자이자 영혼의 관의 부관주인 이더비히를 지목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일 뿐.
현재 초인 마법의 최고 권위자는.
“바로 나란 말이지. 초인 마법의 완성자. 엣헴!”
라미아는 귀여운 헛기침과 함께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한껏 잘난 척을 했다.
“…….”
“…….”
“뭐 해요! 박수!”
그 모습을 멀뚱히 보고 있던 이드는 곧 하얗게 눈을 치켜뜨는 라미아의 모습에 조건 반사적으로 손뼉을 쳤다. 짝짝짝!!
“오오!!”
거기에 감탄을 곁들이는 센스까지. 그야말로 자동이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비올라의 눈빛이 거슬리긴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가장의 몸부림을 결혼도 못 한 애송이가 감히 어떻게 이해를 하겠는가.
‘네가 결혼하면 뭐 다를 것 같냐!’
이드는 저주를 퍼부었다.
비올라가 하루빨리 결혼하기를!
“어때? 이제 알겠어?”
“대충은 이해했습니다.”
“이해했다면서 대충이 왜 붙어?”
자신 없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라미아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러자 라미아의 눈치를 살핀 비올라가 입을 열었다.
“초인 마법의 완성에 삽입된 근원 변수에 대해 직접 가르쳐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까?”
실력이 떨어진 이유가 새롭게 나타난 변수 때문이라면, 그에 대한 답으로 고민은 해결된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다. 문제는, 겨우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면 라미아의 반응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라미아의 얼굴에 이걸 어쩌면 좋으냐는 한심함이 떠올랐고, 그걸 마주한 비올라는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죄송합니다.”
“하아. 넌 본인이 말한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네?”
“초인 마법의 진정한 완성자. 그건 단순하게 법칙을 세우는 마지막 과정에 마침표를 찍은 사람에게 주는 트로피가 같은 게 아니야.”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법칙의 완성은 그야말로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기억될 위대한 업적이다.
대부분은 이 위대한 업적 자체에 주목할 것이다.
하지만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닌 완성에 이르는 과정이다.
법칙의 완성이란 쉽게 말해 ‘지도’다.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해서 정의하는 지도.
당연하게도 이 지도는 아무나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땅에 대한 탐험이 끝나야 만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도이지 않던가.
당연히 새로운 땅, 초인 마법에 대해 통달하지 않은 마법사는 초인 마법에 대한 지도를 완성할 수 없다.
그런데 라미아는 지도를 완성했다.
초인 마법사도 아닌 라미아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그것은 법칙이 완성되는 과정의 특이성에 있다.
죽은 탑주가 완성을 위해 영혼을 갈아 넣었던 바이트 타블렛. 그것이야말로 초인 마법의 집대성이다. 바로 이 바이트 타블렛을 통해 세상에 초인 마법을 납득시키는 것이다.
이때 법칙의 완성자가 하는 일은 중계자와 같다. 바이트 타블렛과 세상을 잇는 중계자.
의식의 과정에서 바이트 타블렛에 든 모든 지식은 중계자를 통해 진리의 서에 기록된다.
바이트 타블렛을 직접 제작한 제작자, 혹은 그에 비견되는 초인 마법에 통달한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이 과정을 수행할 수 없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전한단 말인가.
아마 그러기도 전에 끝없이 밀려드는 거대한 지식의 파도에 뇌가 익고 머리는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라미아는 성공했다.
아마 그녀가 평범한 천재 마법사였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에서 태어난 존재로 드래곤 로드를 능가하는 마법의 대가다. 게다가 이미 동시에 두 개의 바이트 타블렛을 손에 넣어 초인 마법에 대한 충분한 연구 결과도 얻었다.
결국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하여 의식 과정에서 바이트 타블렛이 전달하는 막대한 정보량을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에 라미아는 초인 마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었다.
즉, 초인 마법의 최강자가 된 것이다.
만약 초인 마탑이 세워진다면 마탑에 속한 마법사들의 지지는 부관주를 향할지 몰라도, 최강자의 자리만큼은 라미아의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법칙의 완성자.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자세히 풀어낸 라미아는 비올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네가 말한 초인 마법의 진정한 완성자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히 이해했겠지?”
“이, 이해했습니다. 제 앞에 계신 명예 후작 부인이야말로 초인 마탑의 진짜 탑주.”
라미아의 질문에 답하는 비올라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그러나 그의 말은 불쑥 손을 내밀어 목을 낚아채는 이드에 의해 끊어지고 말았다.
“이 자식이 내 아내를 어디다 가져다 붙이려고!”
“케켁!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기어코 머리에 혹을 하나 달고 풀려난 비올라.
그는 벌게진 두피를 문지르며 끙끙거렸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그 얼굴에는 알 듯 모를 듯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주먹을 들었다.
“어쭈, 웃냐?”
“아닙니다! 제가 웃은 건 어디까지나 초인 마법을 계속해서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떨어진 클래스를 금방 복구할 수 있다는 의미도 이제는 진짜 이해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비올라는 바보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근심 걱정을 모두 털어 낸 염화시중의 미소. 다만 고승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면 근심, 걱정을 비운 자리를 욕심과 욕망으로 채웠다는 것일까.
덕분일까. 아직 눈가가 붉은 중에도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하다.
이드는 그런 비올라의 모습에 어이가 없어 물었다.
“그럼 이제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건 끝내는 거냐?”
“무슨 말씀을! 명예 후작 부인의 가르침을 받아 초인 마법 연구에 더욱 힘을 쏟을 생각입니다. 어차피 식사는 연구실에서 하면 됩니다. 굳이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요!”
완벽한 통조림이 되겠다고 자신하는 비올라.
이드는 그 모습에 내심 혀를 찼다.
문득 수련장에서 마주친 쉴라가 생각났다. 이런 놈인 줄도 모르고 걱정하고 있을 그녀가 불쌍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열의라면 라미아를 붙잡고 얼마나 귀찮게 할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드는 그에 대해 미리 경고를 남기기로 했다.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대신 초인 마법의 강습은 라미아가 시간 날 때 하는 거다. 귀찮게 매달릴 생각이면 미리 포기해.”
“아니, 그건 좀.
지금 미친 듯 파고 들어야 다음에 부관주가 다시 나타났을 때 그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입니다.”
“부관주면, 영혼의 관에서 놓친 초인 마법사를 말하는 건가?”
갑자기 언급된 존재에 이드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비올라가 분한 얼굴을 하고는 뿌득 이를 갈았다.
“맞습니다. 부관주인 동시에, 탑주로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은 제자입니다. 덕분에 세 명의 부관주 중에서 가장 강력한 마법 실력을 가질 수 있었죠.”
“호오.”
저 비올라가 초인 마법 관련으로 실력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니. 상대에 대한 좋은 감정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지만 그럼에도 저 정도면 극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보다 관심이 가는 것은 부관주에 대한 비올라의 감정이다.
분노와는 분명히 다른 뜨거운 적대감. 동시에 지지 않으려는 치열한 경쟁심이 느껴지는 그 감정의 이름은 질투였다.
“그러니까 부관주의 실력은 순전히 탑주 덕분이다? 그래서 이번엔 네가 라미아의 덕을 보겠다는 거네?”
“・・・・・・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되냐? 라미아와 탑주가 같아?”
초인 마법에 한정하지 않는다면 라미아와 탑주의 수준은 비교가 불가능했다. 비록 죽은 탑주가 초인 마법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력의 고하를 정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 라미아는 법칙의 완성을 통해 초인 마법까지 마스터하면서 모든 면에서 탑주를 압도하게 되었다. 그런 라미아에게 배움을 얻으면서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건 그야말로 양심 없는 짓이었다.
과연 이런 명백한 사실 앞에서는 비올라도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는 못하겠는지 슬그머니 눈길을 피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라미아가 비올라를 불렀다.
“그런데, 부관주가 다시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에 실패했다면 몰라도, 명예 후작 부인께서 법칙을 완성하셨잖습니까. 이젠 당당히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제국이 토벌대를 꾸린 건 잊었니? 제국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마스는 초인 마법을 얻기 위해 전쟁을 준비했잖습니까. 일단 초인 마법의 위력만 확인한다면 각국에서 서로 오라고 할 겁니다.”
“미완의 마탑에 걸린 죄목은 어쩌고?”
“평민들이야 당장 내일이면 다 잊어버릴 것이고, 귀족들도 이득만 된다면 굳이 따질 사람이 있을까요?”
“없겠지.”
애초에 미완의 마탑에서 실험 재료로 갈아 넣은 초인들은 다 뒤탈이 없는 인간들이었다.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들의 희생에 대해 끝까지 띠지고 들 사람이나 나라는 없다는 말이다.
당장 제국이 주장하는 토벌도 이번 고비를 넘기면 다시 나오지 않을 주장이었다. 더욱이 영혼의 관이 붕괴한 지금,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모인 토벌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문제인 상태다.
비율라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양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