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982화


1417화

그렇게 한창 데이트를 즐기는 이드와 일리나.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으니.

바로 스케스틱이었다.

그는 저택 지붕에 올라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꽤 강했지만, 그의 주변은 조용했다. 바람이 알아서 조심하는 듯 옷자락 하나 날리지 않았다.

스케스틱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드래곤의 기운을 정령이 알아차리고 스스로 조심한 것이다.

자연이 알아서 피해 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드래곤이라는 종족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대단한 드래곤이 지금은 마치 스토커처럼 이드와 일리나를 살피고 있었다.

일리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드.

일리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는 이드.

일리나와 즐겁게 대화를 이어 나가는 이드.

그렇다. 지금 이드는 여느 화목한 가정을 가진 남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저것이 마인드 마스터.”

하지만 스케스틱은 그런 이드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그가 바라보고 있는 존재는 지금의 이드가 아니라 수일 전의 이드였다. 혼돈의 파편 존 워스의 목을 잘라 낸. 그 순간을 떠올린 스케스틱은 짜릿한 흥분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쉽구나. 같이 갔어야 했는데.”

스케스틱은 영혼의 관 습격에 함께하지 못한 것이 새삼 아쉬웠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영혼의 관 습격에 나서는 자신을 대신해 수도를 지켜 달라는 이드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불만은 없었다.

상황에 쫓긴 혼돈의 파편이 안티로스를 노릴 가능성이 충분했으니까.

혼돈의 파편이라면 이가 갈리는 그로서는 혼돈의 파편에게 일말의 틈이라도 주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거기에 로드가 부재중인 중간계에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이드였다.

그는 로드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드가 상황을 주도하는 것을 인정한 상태였다.

감히 이드가 인간이라고 그를 무시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를 인간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처음 본 순간부터 그에게서 드래곤 특유의 짙은 마나의 향을 느낀 스케스틱이었다. 그것도 어린 드래곤이 아닌, 고룡의 향기를 말이다. 또한 그것이 아니라도 이드에 대해서는 로드를 통해 충분히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였다.

그의 강함. 그의 정체. 또 그가 자신의 종족에 가져온 은혜까지.

그중 가볍게 여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에 이드를 통해 전달된 그레이드론의 유지.

유실되었던 13클래스,

이드는 그것을 다시 자신들 드래곤에게 돌려주었다.

로드를 비롯한 드래곤들은 말한다.

’13클래스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우리들 드래곤은 혼돈의 파편과의 싸움에서 진작에 멸족되었을지도 모른다.’

오만이 하늘에 닿는 드래곤이 스스로 멸족을 입에 올렸다. 멸족 이전에 세상의 멸망이 먼저라고 말해도 모자란 자신들이 말이다. 그러나 스케스틱이 보았을 때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13클래스가 아니었다면 크나큰 피해를 각오했어야 할 전장이 한둘이 아니었다. 분명 더 많은 드래곤들이 죽었을 것이다.

당장 외계로 밀려난 드래곤들이 문제없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도 13클래스의 힘이 컸다.

외계는 그야말로 황량하다는 말이 부족한 곳이다. 공간과 공간의 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비어 있는 공간이 외계다. 동시에 세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록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드래곤이라도 견디기 힘든 가혹한 장소.

바로 이런 외계에서 마음 놓고 편히 날개를 쉴 수 있는 작은 세계를 만들어 낸 힘. 그것이 바로 이드가 전해 준 13클래스였다.

그 하나만으로도 전 드래곤이 이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드래곤과 이드의 관계는 고작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드는 그레이드론의 하트를 이어받았다.

이드의 입장에선 거래였다. 13클래스를 전하는 대신 받은 대가였다.

하지만 드래곤의 입장에선 또 달랐다.

드래곤 하트를 가진 존재는 비록 인간의 껍질을 쓰고 있어도 드래곤이었다. 더욱이 드래곤 하트의 힘에 휘둘리는 것도 아니고, 완벽히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뿐인가. 또 있다.

바로 라미아. 그레이드론의 딸. 이드는 그녀의 계약자였다.

이런 인연이 겹치고 겹친 끝에 드래곤에 있어 이드는 남이 아니었다. 비록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같은 동족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굳힐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수일 전 있었던 영혼의 관 습격. 그날 이드는 혼돈의 파편인 존 워스를 죽이고 흡수했다.

안티로스를 지키고 있던 스케스틱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직접 볼 수 없었을 뿐, 대략적인 상황은 파악했다.

인간이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드래곤이었다.

멀리서 전해지는 강렬한 마나 파동을 선명하게 읽어 낸 결과였다.

뭐, 처음부터 영혼의 관을 향해 탐지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드래곤의 위대함이다.

드래곤의 선천적인 능력에 더한 탐지 마법의 결과는 천리안에 버금갔다. 그로 인해 스케스틱은 전투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드가 발산하는 치밀하고 끈끈하며 무한한 내공.

존 워스의 정밀하고 무거운 내공.

존 워스의 마나는 신선하면서도 익숙했다. 깊은 혼돈을 품은, 숨 막히는 암흑의 냄새가 나는 마나는 외계에서 지겹도록 상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드의 내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리 감지 능력이 뛰어나도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전투다. 그것을 살피는 일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이드가 내공으로 뿜어내는 마나는 손에 잡힐 듯 선명했다.

그 복잡성과 치밀한 결합력이라니.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서 살피는 것만으로도 가죽이 베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특히 전투의 막바지에 이르러 이드가 화산처럼 분출하던 마나. 스케스틱은 그것에서 매우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바로 드래곤 브레스,

이드의 검강은 마치 드래곤의 브레스를 검의 형태로 고정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아무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동족의 브레스를 알아보지 못할까.

브레스의 그 강렬하고 원초적인 힘은 드래곤이라면 대륙 끝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절대 잘못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랄까.

그것을 느낀 순간, 이드에 대한 감사와 기대가 한층 더 커졌다.

이드와 함께라면 외계에서 고생 중인 동족들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났다.

혼돈의 파편을 완전히 소멸시킬 수도 있다. 그 죽여도 죽지 않는 지랄 맞은 놈들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날의 존 워스처럼,

“그걸 직접 봐야 했는데.”

전투를 훤히 꿰뚫어 본 스케스틱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존 워스가 죽은 후 그가 차원의 인에 흡수되는 순간에 대해서는 무엇하나 인지할 수 없었다. 그건 마나의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어떤 법칙이 행사된 것 같았다.

그러니 그 순간이 아쉽다면 직접 두 눈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을 파악한 스케스틱은 습격에 함께하지 못했음에 대해 처음으로 안타까워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저 지긋지긋한 혼돈의 파편 중 하나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순간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더욱이 놀랄 일은 그에 그치지 않았다.

라미아의 손에서 완성된 초인 마법.

세상을 구성하는 새로운 법칙이 완성되는 순간은 스케스틱에 있어서도 다시 볼 수 없는 거대한 위업이었다.

존 워스가 차원의 인에 흡수되는 것과 달리 법칙의 완성은 선명히 알 수 있었던 스케스틱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쉬웠다.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라미아가 그 위업을 세우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게 놀라운 날을 경험한 스케스틱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이드가 돌아옴으로 벌써 혼돈의 파편 둘이 소멸했고, 새로운 법칙이 세워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세상이 흔들렸다.

비록 아직 그 충격은 일부를 제외하고 크지 않지만 남은 혼돈의 파편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예상한다면 분명 마지막에 가서는 커다란 변화로 나타날 것 같았다.

물론 아직은 그 변화가 좋은 것일지 아니면 나쁜 것일지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어느 쪽이라도 자신들 드래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길고 긴 시간이 쌓여야 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변화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겠지.”

혼돈의 파편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꼭 필요했다.

혼돈의 파편이 존재하는 이유를 살폈을 때, 그 이유가 세상의 변화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충격적이었던가.

그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한 스케스틱이다.

무려 창조주의 안배다. 이번에 나타난 혼돈의 파편이 이드의 존재로 인해 소멸한다고 해도 과연 끝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제이의 혼돈의 파편이 나타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세상은 변해야 했다. 발전해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가속하는 흐름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드다.

히죽.

냉미남인 스케스틱의 얼굴에 그와 어울리지 않는 짙은 웃음이 떠올랐다.

“위기라고 여겼는데, 이런 변화를 바로 옆에서 함께 할 수 있게 되다니. 어쩌면 운이 좋은 것일지도..

스케스틱은 벌써 이드의 다음 움직임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당장 지하실에서는 라미아가 그녀가 완성한 초인 마법을 가르치고 있다. 과연 그것은 또 어떤 변화를 가속하게 될 것인가.

“후후후.”

“저기…….”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던 스케스틱은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그곳에는 은색 기사단 소속의 기사가 있었다. 그녀는 곤란한 얼굴을 하고서는 말했다.

“거기 계시면 너무 사람들 눈에 띄어요. 당분간 정숙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래서 그런데.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실례했다.”

스케스틱은 얌전히 요청에 따랐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