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0화


이드 일행들의 숙소는 크라인 황태자가 지내던 별궁으로 정해졌다. 그가 즉위하면서 숙소를 황궁으로 옮겼기 때문에 별궁이 비었는데,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던 일행들에게 머물도록 허락한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이곳은 상당히 아름다운데다 크다. 당연히 방도 많으므로 일행은 각자의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이드는 8시쯤에 별궁을 나섰다. 우프르에게 들은 대로라면 훈련은 아침 8시부터 있기 때문이다. 이드 뒤로는 그래이와 일리나 그리고 세레니아가 따라왔다. 궁의 뒤쪽에 있는 연무장은 별궁과는 거의 정반대쪽이라서 황궁을 둘러가야 했다. 연무장까지의 거리는 대략 10분 정도. 연무장은 원형으로 되어있는데 지름이 200미터 이상이었다. 그리고 그 연무장 뒤로 작은 숲이 있었고, 연무장 앞으로는 작은 대와 쉴 수 있는 막사가 있었다.

연무장에는 각자의 갑옷을 걸친 기사 200여 명이 도열해 있었다. 그래도 기사라서 그런지 질서 정연히 서있었다. 가르칠 사람이 10분 이상이나 늦었는데도 말이다. 그런 그들의 앞으로 은은한 기도를 가진 10여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그들이 바로 기사단장들과 소드 마스터들인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뒤로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연무장으로 들어서는 이드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의아한 듯 갸웃거리는 인물도 있었고, 이드를 알아보는 인물들도 있었다. 이드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이드와 얼마 동안 같이 있었던 대지의 기사단 3명과 라스피로 공작을 치기 위해 같이 갔던 태양의 기사단 단장과 수하 몇 명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드를 몰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스피로 공작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은 거의 비밀이었기에 기사단들에게 퍼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이드가 궁에 있는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궁에서도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드는 그들의 앞으로 가서 대위에 올라서지 않고 대 앞에 서서는 그들을 향해 외쳤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군요. 저는 이드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분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그래이와 일리나 양이 저를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느 정도 공작님께 이야기를 들었을 줄 압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할 것들은 상당히 힘들 것입니다. 단단히 각오하고 시작하셔야 할 겁니다. 모두 아셨습니까?”

이드는 한 번도 이런 자리에 서보지 못해서 자신이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해놓고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 역시 이드의 이런 말에 약간 어색한 듯했다. 그들 중에는 이드가 자신들의 교관이라는 말에 불만을 토하는 이도 있었다. 사실 누가 보더라도 이드는 전혀 검을 잡을 사람 같지는 않았다.

‘하~ 저런 것들이 꼭 있지. 겉만 보고….. 저런 것들은 일찌감치 잡아놔야 훈련도 잘 받는다 말이야. 내 잘난 체를 하는 것 같지만…. 어쩌겠어, 편하게 진행하려면….’

“우선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내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떤가? 내 실력을 보고 싶습니까?”

이드의 물음에 몇몇이 잘되었다는 듯 그렇다고 대답했다.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이었다. 기사라 체면 때문에 예의는 지키고 있었지만 이드가 자신들을 가르칠 만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드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일라이져를 꺼냈다.

‘효과 면에서는 일라이져가 더 좋겠지?’

“뭐가 좋을까나…..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화려한 것이 좋으려나? 보자, 그런 게…… 난화 십이식? 그게 좋으려나?”

이드는 펼칠 검결을 정한 후 모두 연무장의 끝으로 물러서게 한 다음 연무장의 중앙에 섰다. 그리고는 일라이져에 검기를 주입시켜 롱소드 정도의 크기로 만들었다. 이드가 일라이져에 생성시킨 검기는 약간의 은은한 붉은색이었다. 연무장의 끝에서 보고 있던 기사들뿐만 아니라 일리나들까지도 놀라고 신기해했다.

이드는 검기를 형성한 일라이져를 들고 난화 십이검의 기수식을 취했다. 일라이져를 아래로 살짝 내리고 다른 손은 살짝 늘어져 있는 듯한 아주 부드러운 기수식이었다. 그런 후 이드가 천천히 움직이며 검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그렇게 빠르지도 않고 그렇게 늦지도 않았다.

그런 이상한 움직임에 기사들과 그래이들이 의아해할 때 이드가 첫 식인 난화(亂花)를 펼쳤다. 이드가 부드럽게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두르자 이드의 검을 따라 꽃잎이 날듯이 검기들이 하늘을 날며 이드의 몸을 감쌌다. 곧바로 이식인 풍화(風花), 삼식인 낙화(落花), 사식인 혈화(血花), 오식인 화령화(華靈花)……………. 마지막 식인 백화난무(百花亂舞).

이드는 춤을 추듯이 검기를 뿌리며 난화 십이식을 펼쳐냈다. 그의 검식에 따라 검기가 날았으나 주위에 피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공력을 조정하여 어느 정도 뻗어나간 후 중간에 중화되도록 했기 때문이다. 기사들과 그래이 등은 붉은 꽃이 나는 곳에서 춤을 추는 듯한 이드를 멍히 바라보다가, 이드가 검식을 모두 끝낸 뒤에 집합명령을 내린 후에야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여 대열을 갖추는 데도 멍했다. 이드가 보여준 것에 대해 이해가 잘되지 않는 것이었다.

“자~ 다 잘 보았겠지?”

그러나 이드의 대답에 순순히 답하는 이는 몇 없었다. 모두 이드의 검식에 의문을 가진 것이었다. 사실 이건 중원의 무인들이 본다면 한눈에 알아볼 것이겠으나 여기서는 아니었다. 단지 소드 마스터에 오른 이들만이 이드가 검식을 펼치는 주위에 마나가 회오리 치는 것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검식은 보면서 그것에 대항하듯 머리 속으로 그려나가야 하는데 이들은 멍히 감상만 했으니………………. 그것은 드래곤인 세레니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이드가 펼치는 검기의 마나 분포도 느꼈지만 자신이 그렇게 공중에서 중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마나를 잘 다룰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하~ 이것들은 고등검술을 보여줘 봤자 헛수고야……. 그럼 이건 알아보겠지? 참월(斬月)!”

이드가 휘두른 일라이져로부터 푸른, 주위를 서늘하게 하는 검기가 발출되어 200미터 앞에 있는 나무 옆의 바위를 둘로 나누어 버렸다. 원래는 나무를 목표로 했으나 옆에 일리나가 있어서 목표를 약간 수정한 것이다. 그녀는 목적 없이 나무나 숲을 훼손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찌했든 이번에는 효과가 확실했다. 모두들 갈라져 버린 바위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드의 주목이라는 말과 함께 몸을 굳히고는 대열을 정비했다.

“그럼 아직까지 내 실력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나?”

“아닙니다.”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웅장하게 대답했다.

“좋아 지금부터 훈련에 돌입한다. 각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라.”

그러자 그의 말과 함께 모두 연무장에 나누어 섰다.

“지금부터 집중력 훈련에 들어간다. 모두 검을 들고 서서 눈을 검 끝에 모으고 한눈팔지 마라. 내가 지시할 때까지 유지한다. 한눈파는 사람은 이리 끌어내서 할 것이다. 그리고 하다가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일체 신경 쓰지 말도록. 실시.”

이드의 실력을 본 기사들은 전혀 의문 부호를 붙이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이드는 기사들에게 명령해놓은 다음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막사 쪽으로 일행과 걸어가 앉았다. 그곳에는 차와 약간의 과자가 놓여있었다. 이드는 자리에 안으며 과자를 들어 깨물었다. 그래이는 그런 이드를 바라보다가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이드, 저기 기사들 저렇게 세워놔서 뭘 하는데?”

“음~ 이 과자 맛있는데… 저거 집중력 훈련이야.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면 집중력부터 키우는 것이 우선이야. 집중력을 키워 놓으며 자신을 다스리게 되고 그러면 자신들의 검술 역시 조금은 늘겠지. 그다음에 다른 검술을 가르치든가 해야지.”

“이드, 기사 분들은 모두 집중력은 대단하잖아. 그런데 왜 다시 견습기사처럼…”

이드는 옆에 따라놓은 차를 마시며 답했다.

“견습기사처럼? 체. 내가 보니까 저번에 라스피로 공작을 잡기 위해 갔다가 검은 기사와 싸웠을 때 태양의 기사들인가? 하여튼 그들은 전혀 침착하지 못했어. 그중에 몇 명은 침착하게 대항해 나갔지. 그러나 그건 일부야. 나머지는 우왕좌왕했었어. 그러니 정신 상태를 확실히 해야지. 일리나, 세레니아 먹어요. 이거 맛있는 것 같은데.”

이드는 또 다른 과자를 들며 일리나와 세레니아에게 권했다. 그때 다시 그래이가 물어왔다.

“그런데 난 왜 집중력 훈련을 안 한 거냐?”

“그거? 간단해. 내가 저번에 네 몸속의 마나를 돌린 적 있지? 그리고 지금도 그 길을 따라 돌고 있고. 그게 네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있는 거지. 그게 집중력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영향을 미치는 거야.”

“그런가? 그럼 난 운이 좋은 거네? 그럼 난 저런 거 안 해도 되는 거야?”

“그건 네 마음대로지. 뭐,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아니, 하는 게 좋겠다. 넌 어떻게 보면 주위가 좀 산만해. 저리 가서 너도 서.”

그래이는 괜히 말 꺼내 봤다는 표정으로 걸어가서 첫 번째 대열 옆에 서서는 검을 빼들고는 검의 끝을 노려보았다.

그런 기사들과 그래이를 보며 일리나가 아까 전부터 의문 나는 점을 물어왔다.

“이드… 저 집중력 훈련은 기본이기는 하지만 오래 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하시려고…”

“걱정 없어요. 어느 정도 속성시킬 방법이 구상되어 있거든요? 거기다 저기 있는 기사들 중 훈련이 필요한 건 보통 기사들이죠. 기사단장급들과 소드 마스터들은… 뭐, 좀 더 집중력을 튼튼히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또다시 과자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세레니아를 옆에 앉히고는 혼자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옆에 앉아 있는 세레니아는 이드를 바라보며 이드가 중얼거리는 말을 열심히 담아 들었다.

지금 이드가 하고 있는 것은 13클래스의 마법이었다. 그것도 어떤 마법 스펠이 아니라 13클래스 전체의 큰 뼈대를 이루는 이론이었다. 아마 그것만 설명하는 데도 쉬지 않더라도 몇 일은 걸릴 만한 분량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는 일리나 역시 어느 정도의 공부가 되리라.

그렇게 1시간 정도가 그냥 지나가 버리자 힘들고 지치는지 한눈파는 기사들이 생겨났다. 이드는 그들을 귀신같이 찾아서 자리를 이동시켜 기사단장이나 소드 마스터 앞으로 옮기게 해버렸다. 아무리 그들이라지만 상관 앞에서 어떻게 한눈을 팔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나자 땀을 흘리고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드가 그들을 보면서 일어났다.

“다시 한번 이야기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자세를 유지한다.”

그리고는 옆의 세레니아를 불러 세웠다. 그런 이드를 보며 일리나 역시 일어나 옆으로 다가왔다.

“세레니아, 마법 시행해봐요. 범위는 연무장 전체로 하고 환상을 보이게 해봐요. 진짜 같은 환상, 이런 데 무언가 나타나더라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이드의 말에 세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법을 시전했다.

“씽크 이미지 일루젼!!”

연무장 밖에 있는 이드는 주위에 마나가 이상하게 형성되어 있을 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연무장 안에서는 적잖은 혼란이 일고 있었다. 물론 기사단장들과 소드 마스터 급들은 가만히 있었으나 그들의 뒤쪽으로 보통 기사들은 몇 명을 시작으로 검을 휘두르거나 몸을 굴리고 있었다.

그걸 보며 이드는 천마후 공력으로 외쳤다.

“내 말을 명심하도록.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그리고 넘어지고 검을 휘두르는 녀석들도 당장 자세를 취해.”

공기를 울리는 이드의 목소리에 어느 정도 정신이 든 기사들은 다시 검을 들었다. 그러나 상당히 혼란스러워했다. 그들도 아마 마법으로 환상이 보이게 한다는 걸 알았겠지만 속수무책인 것이다. 더구나 마법을 펼치는 당사자가 드래곤, 더구나 드래곤 로드 급임에야…

그러나 이드의 명령으로 자세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흐트러졌다. 그때마다 이드는 천마후를 시전했다.

이드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사들과는 달리 기사단장들과 소드 마스터 그리고 그들과 같이 서 있는 그래이를 바라보았다.

“음… 세레니아, 저기 저 녀석들만 따로 좀 더 세게 해줘요.”

이드의 말에 세레니아는 문제없다며 다시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자 그들도 상당히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검을 휘두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그러고 있을 때 보통 기사들 역시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드는 그들을 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렇게 놔두면 심심하지는 않겠지!”

그러면서 다시 과자를 입에 물었다. 세레니아 역시 차를 입에 가져갔다.

일리나는 그런 이드를 바라보다가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저런 식으로 훈련하는 것은 보지 못했었다.

‘음~ 이드의 저 훈련은 확실히 단기간에 집중력 훈련을 마스터 할 수 있겠어. 그런데 이드는 어떻게 저런 걸 생각해 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일리나는 앞에 놓인 과자를 입에 물었다. 누가 만든 건지 맛있었다.

1시간이 지나자 두 쪽 모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듯 처음과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후룩~ 음…. 이제 좀 익숙해졌다 이거지?”

이드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옆에 있던 세레니아 역시 일어나려 했지만, 괜찮다는 말로 말렸다.

“좋아. 오늘 내로 집중력, 정신력 훈련을 끝내주지…. 번뇌마염후(煩惱魔焰吼).”

이드가 연무장을 바라보며 조용조용히 노래 부르듯 소리를 냈다. 일리나와 세레니아는 무슨 짓인가 하고 바라보던 중 이드의 주위로 이상하게 마나가 형성되는 것을 느낄 뿐,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연무장은 달랐다. 모두 땀을 흘리며 흔들거리기도 하고 검을 내리기도 했다. 쓰러지는 이 역시 있고, 검을 휘두르기도 했다.

그걸 보며 일리나와 세레니아는 의아했다.

“마법도 아닌데 그냥 소리를 내어 기사들을 흔들어놓다니……”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던 이드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나 기사들이 괴로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궁금한 것이 생긴 일리나와 세레니아가 물었다.

“이드, 어떻게 한 거죠? 마법은 아닌 것 같은데…..”

“번뇌마염후라는 건데…. 어떤 건지는 말하는 데 한참 걸리고….. 대충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괴로운 것, 무서운 것을 자극하는 거죠. 한마디로 그들의 머릿속에 잠재되어 있는 그런 것들을 번뇌마염후로 증폭시켜서 현실화 비슷하게 하는 거죠. 각자의 괴로움을 나타내므로…. 효과는 만점이죠. 지금은 약하게 해놔서 그렇게 큰 충격은 없을 거예요.”

일리나와 세레니아는 이드의 말을 듣고 단지 노랫소리만으로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될 리가 없었다.

이드는 그렇게 저녁때 훈련이 끝날 때까지 번뇌마염후와 마법으로 그들을 괴롭혔다. 가다가 쓰러지는 기사들이 있을 때는 소리를 질러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훈련이 끝날 시간이 되어서 마법과 번뇌마염후를 거두자 모두들 그 자리에서 그냥 뒹굴어버렸다.

그중에는 그래도 이드가 내공 훈련을 시킨 그래이와 기사단장, 소드 마스터들은 버티고 서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당장이라도 누워버리고 싶은 표정들이었다.

“좋아, 오늘 정신력 훈련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각자 해산해서 돌아가 쉬십시오.”

이드의 말과 함께 사람들은 그 자리에 그냥 들어누워버렸다. 거기에는 주저앉는 기사단장들도 보였다.

이드는 그들을 한 번 보고는 일리나와 세레니아를 데리고 연무장을 나서려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어 뒤돌아섰다.

그런 이드를 보며 일리나와 세레니아 역시 의아한 듯 멈춰 섰다.

이드는 연무장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섰다.

“천령활심곡(天靈活心哭). 피로는 풀어야 내일 훈련을 무리 없이 하겠지? 아~하아~아~.”

맑게 울리는 목소리가 연무장을 한참 동안 울렸다.

십 분에 가까운 천령활심곡을 운용한 이드는 뒤돌아섰다.

그런 이드를 보며 같이 뒤돌아서는 일리나와 세레니아의 눈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드를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연무장을 벗어나 걷는 이드에게 세레니아가 설명을 요구했다. 정중하게….

“천령활심곡이라고 번뇌마염후와는 거의 반대라고 보면 됩니다. 이 곡은 주위의 마나를 움직여 사람의 몸을 순환하게 하여 그 사람의 피로를 풀게 하는 거예요. 물론 내 목소리로 그 사람에게 맞게 마나를 공명시켜서 말이죠.”

이것 역시 번뇌마염후와 같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마나 응용 방법이었다.

그날 저녁에 그래이는 저녁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방으로 가서 일찌감치 누워버렸다.

그런 그래이를 보고 일란과 하엘이 물었지만, 이드가 훈련을 같이 받고 있다는 말로 간단히 대답했다.

그리고 저녁때쯤에 이스트로 공작과 우프르, 그리고 크라인 폐하께서 직접 별궁을 찾았다. 접대실에 다과를 내어오며 시녀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모두 자리에 앉자 제일 먼저 이스트로가 입을 열었다.

“자네, 도대체 오늘 무슨 훈련을 시킨 건가? 궁금하군….. 손자인 샤이난 녀석이 들어오더니 저녁도 먹지 않고 방으로 가서 골아떨어졌더군. 그런데 몸에는 먼지나 그런 건 없단 말이야?”

“거기다 내가 연구실에서 느끼기로 연무장 쪽에서 마법을 사용한 듯 마나의 움직임이 잡혔어.”

우프르 역시 궁금한 듯 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별거 아닙니다. 정신교육 좀 시켰죠. 집중력도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거기다 빨리 하기 위해서 일루젼 마법으로 환상까지 만들어 내서 방해했죠. 그렇게 하루 종일 했으니 정신적으로 피로할 수밖에요. 몸 역시 하루 종일 검을 들고 있었으니 좀 피로하겠지만 끝날 때 피로는 풀어서 보냈습니다.”

이드의 말을 들으며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지. 그럼 확실히 성과가 있겠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지?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데. 역시 젊은 사람은 머리가 잘 돈단 말이야.”

그때 크라인이 그런 말을 들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말이야. 나도 그 훈련을 같이 받으면 안 될까?”

크라인의 말에 공작과 우프르가 안된다며 막았다.

“전하, 전하께서는 공무가 바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훈련을 받으신다면 그것을 누가 처리하겠사옵니까.”

“하지만 나는 조금밖에 검을 다루질 못하지 않습니까.”

“전하, 그것은 우선 모든 것이 전하께 맞춰지고 난 후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알았습니다. 이스트로 공작.”

다음날은 이드도 늦지 않고 연무장에 도착했다. 연무장에는 기사들이 어제와 같이 도열해 있었다. 천령활심곡으로 피로를 풀고 푹 자서 그런지 어제와 같이 생생해 보였다.

그래이도 이드와 같이 와서는 제일 앞줄에 가서 섰다.

이드는 앞에 서서는 기사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집중력 훈련은 어제로 끝났습니다. 오늘은 보법 연습을 하겠습니다. 이 보법은 여러분이 검을 쓸 때 사용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사용 범위가 넓습니다. 이것은 크게 두 번의 움직임으로 나누어지고, 작게는 각 방향으로의 움직임으로 나누어지므로 총 24개의 움직임으로 나누어집니다. 우선 제가 보여 드리죠.”

그리고는 이드는 전에 그래이에게 가르쳤던 풍운보(風雲步)를 시전했다.
이드의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어디로 움직일지 헷갈리는 그런 움직임이었다.
이 풍운보는 중원에서 주로 개방의 인물들이 쓰던 보법이었다.

이드가 보법을 한번 선보이고 나서, 그래이, 일리나와 나누어 기사들에게 가르쳤다.
모두 어느 정도 모법의 순서를 익힌 후부터는 스스로 연무장과 숲으로 돌아다니도록 했다.

점심때까지 그렇게 계속 걸어 다니자 기사들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익숙해져갔다.
이드는 각자 점심 식사 후 다시 모일 것을 명령하고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자, 지금부터는 오전에 익힌 보법의 응용에 들어갑니다. 지금부터 나뭇잎이 한 사람에 두 개씩 날아가 부딪히려 할 것입니다. 모두는 그걸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개가 익숙해지면 세 개, 세 개가 익숙해지면 네 개로 늘릴 것입니다. 자, 실시.”

이드는 기사들을 흩어놓고 바람의 하급 정령인 실프를 불러 실프 하나에 나뭇잎 두 개씩을 맡기고는 훈련에 들어갔다.

“대단하군요. 이드, 어떻게 실프를 200이나 소환하는지……”

일리나가 자리에 앉은 이드를 바라보며 말했다.

“뭐, 별로 힘은 안 들어요. 시르드란과의 계약 때문인지 저만큼 소환한다 해도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아요. 거기다 마나가 소모되는 만큼 어느 정도 바람을 통해 마나가 유입되고 있거든요.”

그날 역시 훈련이 끝날 때쯤에는 모두 쓰러져 있었다.

“하, 경치 좋다……”

이드는 주위의 경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이드가 있는 곳은 왕궁과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히르스 숲이다.
황궁과 가까운데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유명하다.
수도에 사는 사람이나 왕족, 귀족들의 좋은 휴식처로 인정받고 있는 숲이다.

이드가 히르스 숲의 어느 작은 언덕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름답게 펼쳐진 숲과 작은 언덕 주위로 피어 있는 꽃들과 동물들.
이드의 허리에 걸려 있는 일라이저 역시 숲이라는 점이 좋은지 약동하는 듯했다.

이드가 그런 숲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훈련을 위해 나온 것이었다.
훈련의 내용은 신법으로 뛰어다니며 나무나 무엇이든 간에 바로 앞에서 피하는 것이었다.
그것과 함께 그 나무의 나뭇잎을 하나씩 베어 떨어뜨리는 것이다.

물론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드가 한 가지 가르친 것이 있는데, 개방의 풍운십팔봉법(風雲十八棒法) 중에 풍운만류(風雲萬流)를 변형해 검식으로 바꾸어 가르쳤다.
이것은 한 가지 초식이나 이름 그대로 바람과 구름의 만 가지 흐름을 담고 있는 것으로, 달려가며 어떤 방향에서도 나뭇잎을 벨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풍운만류를 완전히 연성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사단장이나 소드 마스터들, 그리고 그래이는 빼고 말이다.
나머지는 마나를 느낄 줄 모르고 내공 심법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실력을 닦아 소드 마스터에 오르면 가능할 것이다.

“황궁에만 있다가 이렇게 나오니까 정말 좋아요.”

이드의 권유로 같이 나온 하엘 역시 굉장히 좋아했다.

이드가 하엘을 데리고 나온 이유는 자신이 돌아가는 길을 알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지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기에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하엘, 내 말 좀 들어볼래?”

“그래요, 무슨 일인데?”

“전에 내가 말한 것 있지? 내가 신에게 묻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프리스트를 만난 것도……”

“그래서?”

“그래서 지금 여기서 너를 통해 신께 말해 보겠다는 거지.”

“하지만 이드, 전에도 말했었지만 신께서 직접 인간에게 답해 주신 적은 없었어. 그리고 나는 아직 그렇게 수련을 쌓지 못했는데……”

“괜찮아. 너는 디바인 파워를 사용할 수 있잖아? 단지 내가 하는 말을 디바인 파워를 사용해서 기도하면서 전하면 되는 거야.”

“하지만……….”

이드가 그런 하엘을 보며 옆에 있는 세레니아에게 주위에 마법을 걸 것을 부탁했다.

“알았어, 해볼게. 하지만 그렇게 기대는 하지 마…..”

“그럼그럼. 절대 부담 가질 필요는 없는 거야. 기도 드릴 내용은, 차원을 넘어선 라미아의 주인이 이리안님께 물을 것이 있어 이렇게 전언을 드립니다.”

“……????”

하엘은 이드의 말에 의문을 가졌으나 그러려니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쥔 디바인 마크에서 은은한 빛이 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온몸 전체로 그 빛이 번져 나갔다.
그리고 그 빛은 완전히 하엘을 감쌌고, 하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