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08화
‘좋아. 그럼 누가 먼저 손을 쓰는지 두고보자고….’
이드는 아래로 향해 있던 일라이져를 완전히 늘어트렸다.
순간 이드는 단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가디언 측은 물론 제로 쪽에서도 웅성이기 시작했다.
대전을 위해 나선 두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하시는 거예요?’
라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있기가 답답했었나 보다.
‘뭐하긴, 싸우고 있지.’
‘그것도 싸움 이예요?’
‘싸움은 싸움이지.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는 자존심 싸움.’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칫, 자존심은 무슨…. 오래 끌지 마세요. 그래야 제 시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다구요.’
과연 그녀의 말대로 태양은 하늘 한 가운데 걸려있었다.
‘쩝, 어떻게 넌 주인의 자존심 보다 점심이 더 중요하냐?’
‘흥, 언제 이드님이 자존심 챙긴 적 있어요? 그런 적이 있어야 내가 이드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죠.’
‘야!’
이드는 자신을 무시하는 라미아의 발언에 발끈해서 소리쳤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도 모르게 유치하기만 한 말싸움을 해나갔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십 분이 흘렀다.
단의 자세 역시 한 점의 흐트러짐 없이 똑 같았다.
이미 두 사람의 등뒤에 있는 양측은 처음의 긴장감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십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긴장감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이드와 단이 마주 바라보기 시작한지 이십 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제로 측에서부터 두 사람의 이 지루한 대치 상태를 풀어줄 말소리가 들렸다.
“맞아! 어디선 본 것 같다 했더니, 저 소년 록슨에서의 첫 전투 때 가디언 측에서 싸웠다는 확인되지 않은 두 명의 실력자 중 한 명이야!!”
“어쩐지… 나도 어디서 본 것 같더라니…”
일부러 크게 말하는 것인지 놀라서 그러는 것인지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컸다.
아마도 전자일 가능성이 컸다.
같은 제로의 단원인 만큼 단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일부러 그가 듣기를 바라며 크게 말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감상이라도 하듯 일라이져에 머물러 있던 단의 시선이 이드의 전신을 아래위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대단한 실력이라고…. 미카에게 들었다.”
단이 고개를 신경써야 보일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 입을 열었다.
아주 듣기 좋은 베이스 톤의 목소리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들려있던 도가 그 위치를 바꾸었다.
뒤쪽에서 앞쪽으로.
이드가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닌 먼저 공격하겠다는 의미를 가진 자세.
그는 미카에게 전해 들었던 이드에 대한 이야기로 이드를 인정한 것이었다.
이드는 그의 말에 미카라는 이름을 중얼거리며 기억해 냈다.
그런 그의 손은 어느새 들어 올려져 있었다.
“실례지만, 미카라는…. 분과는 어떤 사이시죠?”
“사제(舍第)다. 미카가 인정한 그 실력, 직접 겪어보겠다. 먼저 선공을 취하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검이 우우웅 거리는 울음을 토하며 현오(玄烏)색 검강을 싸아 올렸다.
주위의 빛을 흡수해 버릴 듯 검은 현오색의 검강은 무엇이든 부셔버릴 듯한 기세였다.
“재미 있겠네요. 오시죠.”
답을 하는 순간 일라이져의 검신을 따라 일 미터가 넘는 은백색 검강이 피어올랐다.
무형검강에 의한 강기였다.
“내가 듣기론 붉은 색의 검강 이었다고 들었는데…. 그것만은 아닌 모양이군.
우선은…. 망(忘)!”
쿠우우웅…
마치 빈 허공을 베어내는 것 같은 초식이었다.
이드는 주위에 검은 어둠을 드리우며 날아드는 안개와 같은 형태의 검강에 일라이져를 앞으로 떨쳐냈다.
그 모습은 전혀 검초를 펼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엉성해 보였다.
“저에게도 비슷한 초식이 있죠. 무형기류(無形氣類)!!”
일라이져의 검신에서 무형기류가 펼쳐지자 은백색의 안개 같은 검기가 검은 안개를 막아나갔다.
마치 마법과 같았다.
검은 안개와 백색 안개의 싸움.
하지만 정작 그 안개를 내 뿜은 안개의 주인들은 이미 자신들의 자리에서 몸을 감추고 있었다.
이어서 날카로운 검격 음이 들려온 곳은 처음 단이 서있던 곳에서 한참 오른쪽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하앗… 무형일절(無形一切)!!”
이드는 한 번의 검격으로 서로의 거리가 벌어지자 마자 거대한 반달형의 검강을 날렸다.
마치 거대한 배가 밀려오는 듯한 느낌의 검강이었다. 이드는 검강의 뒤를 바짝 쫓아 단에게로 날아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단은 빠르게 다가오는 은백의 검강을 피할 생각도 않하고 있었다. 오히려 손에 쥔 도를 앞으로 쭉 뻗으며 강렬한 기합을 발했다.
“첨인(尖刃)!!”
쓰아아아악.
단의 도에서 가공할 예기가 뻗어 나왔다. 이드는 현오색 검기가 한데 모이며 뾰족한 하나의 바늘처럼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런 검기라면 무형일절을 받아내진 못하더라도 돌파하고 들어와 자신에게는 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급히 금리도천파의 신법으로 몸을 허공에 날렸다. 때를 맞추어 무형일절의 검기를 뚫고 들어온 검은 실과 같이 변한 검강이 이드가 있던 자리를 스쳐지나갔다.
이드는 그 느낌에 허공 중에 그대로 검을 그어 내렸다. 헌데 일라이져가 휘둘러 진 곳은 원래 단이 서있던 곳이 아니라 그 위쪽의 허공이었다.
“어딜 도망가시나. 무형극(無形極)!!”
일라이져의 검신에서 무수히 많은 벌 때와 같은 무형의 기운이 뿜어졌다. 그 기운은 곧 바로 무형일절을 피해 몸을 날린 단에게 날아들었다. 그의 몸 한 치 앞에서 은백색을 뛰기 시작한 기운들의 정체는 마치 콩알만한 작은 기운들이었다.
콰콰콰쾅….. 파파팡….
“크욱… 쿨럭…. 이런…. 원(湲)!!”
마치 큼직한 철퇴에 정신없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정신 없어하던 단은 어느새 자신이 다시 떨어져 있다는 것과 자신을 덮쳐오는 무형일절을 인식했다. 자신이 작은 구멍만 뚫고서 내버려둔 은백색 검강.
단은 이미 피하기 늦었다는 것을 알기에 최대한 몸을 낮추며 도를 빙글 돌렸다. 순간 그의 도에서 검은 빛 기운이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그렇게 흘러나온 기운은 주위로 퍼지지 않고 단을 중심으로 일정한 영역을 정해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그 흐름은 숙식간에 소도를 더했다.
덕분에 이드의 검강이 검은 기운에 달했을 때 그 흐름의 속도는 실로 확인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무형일절의 검강은 그 흐름에 휘말려 듣기 거북한 소리를 내며 흐름을 따라 완만한 각도로 하늘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후아~ 무형일절을 그 이상의 흐름에 실러 날려버렸단 말이지. 좋은 수법.”
이드는 그의 수법을 높이 평가했다. 원이라는 수법은 상대의 흐름을 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흐름으로 상대를 끌어드리는 수법이었다.
그사이 단은 잔기침을 삼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전신은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이미 무형극으로 인한 타격으로 적지 않은 충격과 내상을 입었다. 그 위에 진기의 소모가 과도한 원의 수법을 사용한 덕분에 내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는 중에도 단은 도를 지팡이 삼아 몸을 지탱하거나 아래로 내려트리지 않았다.
하지만 전투는 더 이상 무리다. 단은 저 앞에 서있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나 강한 소년이었다. 미카가 대단하다 평가하긴 했지만 그것도 모자른 평가였다. 아마도 자신의 사제는 이 소년의 능력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단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카의 말 덕분에 싸우게 된 상대는 너무 만족스러웠다. 비록 자신이 지긴 했지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전투를 한 때문에 기분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쿨럭쿨럭…. 흐음…. 대단한 실력이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더 강해진다면 룬의 검 브리트니스와 겨룰 만 하겠다.”
“칭찬 감사합니다.”
이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피식 웃어 버렸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존재와 비교해 주었으니, 고맙다고 해야하나?
‘그런데…… 브리트니스? 브리트니스….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 뭐였지?’
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의 말에 곧 그 생각은 한 쪽으로 치워져 버렸다.
“칭찬은 아니다. 쿨럭…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그리고 또 한 너와 같은 실력자와 겨룬 만큼 나는 졌지만 상당히 만족스럽다. 쿨럭쿨럭….”
다시 한번 잔기침을 내 뱉은 단은 조금은 떨리는 불안한 손길로 도를 도집으로 돌려보내며 처음 인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드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 이상의 실력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골수무인이 인사를 한 것이다.
이드는 그 모습에 황급히 마주 포권해 보였다. 인사를 마친 단은 조용히 뒤로 돌아 제로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마자 같이 있던 마법사들이 치료를 위해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단은 그들을 뒤로 물리고 안쪽으로 들어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치료하겠다는 자존심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저 뒤쪽으로 한참이나 물러나 있던 사제가 돌아와 승자의 이름을 외쳤다.
“마, 마지막…. 대표전. 승자는 이드님입니다. 대표전의 결과… 총 다섯 번의 대전 중 세 번을 승리한 가디언 팀이 이번 대표전의 최종 승자가 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
가디언들이 서 있는 쪽에서 기쁨에 찬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불리한 상황에서의 목숨을 건 싸움도 피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지켜야 할 조국의 수도도 안전히 지킬 수 있었으니 그들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것은 오늘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이드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그 함성 소리는 이드라는 이름을 외치며 더욱 격렬해졌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승리의 주역은 이드였기 때문이었다.
또 방금 보여주었던 그 전투의 수법들과 강렬함이 그들을 흥분시켰던 이유도 있었다.
끝도 없이 치솟던 함성소리는 본부장의 손짓에 의해 점점 줄어들며 다시 조용해졌다.
가디언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제로 측에서 존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는 입맛이 쓰다는 듯 쩝쩝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확실히 존의 입장에선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승리가 확실할 것 같았던 전투가 자신의 몇 마디 말로 인해서 완전히 뒤집어져 버렸으니 어떻게 아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선은…. 그쪽의 승리를 축하하오. 대단한 실력자들이 많았소. 인상 깊었던 가디언도 있었고.”
“고맙소. 그럼 이제 제로는 다시 물러가는 것이요?”
놀랑은 인사보다는 제로의 약속을 먼저 챙겼다.
그에겐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요. 약속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오. 우리는 지금 이 길로 파리 점령을 패배로 인정하고 물러날 것이오. 하지만 조만간에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오. 그때는 이번과 다른 결과를 장담하지.”
“나 역시. 그때는 당신이 말했던 사실을 철저히 조사해. 당신의 말에 휘둘리는 일이 없게 할 것이요.”
존은 놀랑의 말에 동그란 눈으로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런 존의 입가엔 뜻을 알 수 없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 재밌어지겠군.”
확실히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기대될 만큼.
다시 제로 측으로 돌아간 존은 단원들을 챙기며 강시들을 한쪽으로 몰아세웠다.
철수하겠다고 말했으면서 돌아갈 생각은 않고 강시들을 한쪽에 몰아세우다니.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그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존은 그 시선을 느끼며 품속에 지니고 있던 보통 스크롤의 두 배 크기를 자랑하는 스크롤을 꺼내 찢었다.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을 저장해 둔 스크롤.
“리아 아푸아 세이닝(영역 지정 봉인)!!”
파아아아..
존의 생소한 시동어와 함께 스크롤의 붉은 빛이 백 수십여의 강시들 주위를 둥글게 휘돌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강시들의 희미한 그림자만을 남기며 미세한 틈도 없이 완벽히 감싸 버렸다.
다음 순간 붉은색의 기운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거대한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순식간에 줄어들어 어른 주먹만한 구슬로 변해 땅에 떨어졌다.
구슬이 떨어진 곳에는 있어야 할 강시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었다. 강시들이 서 있던 곳 역시 오목하게 파여 거대한 홈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 홈의 크기는 방금 전 강시들을 휘감던 붉은색 둥근 기운과 그 크기가 같았다.
“…. 봉인.”
이드는 제로 중 한 명이 붉은색의 구슬을 집어드는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분명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저 모습은 봉인 마법이다.
강시들과 깊게 파인 땅의 일부분은 저 작게 압축된 붉은 구슬 안에 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런 봉인 마법은 고위 마법으로 지금은 사용할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구나 스크롤로 제작하기는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구슬을 챙긴 제로의 단원들은 다시 다섯 명씩 한 조를 이루었다.
그중 한 명씩은 꼭 손에 작은 스크롤을 들고 있었다.
“약속된 길의 문을 열어라. 텔레포트!!”
그것이 시작이었다.
한 조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스크롤을 찢으며 시동어를 외쳤다.
그럴 때마다 다섯 명의 인원이 빛과 함께 사라졌다.
이드는 그들의 모습에 록슨의 일이 생각났다.
그 세 명도 스크롤을 사용해서 사라졌었다.
“쩝, 대단하군. 저렇게 많은 스크롤이라니… 스크롤을 찍어내는 기계라도 있는 건가?”
이드뿐 아니었다.
다른 가디언들 역시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그만큼 스크롤. 특히 텔레포트와 같은 마법이 걸린 스크롤은 구하기 힘들었다.
헌데 저 제로라는 단체는 나타날 때마다 저 스크롤을 써대고 있는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미아가 번쩍 고개를 들며 발악하듯 이드를 향해 외쳤다.
“잡아욧!! 이드님, 빨리 텔레포트 하지 못하게 잡아요. 어서~!!!!”
파아아앙.
질문은 없었다.
이드는 급박하다 싶은 라미아의 외침에 분뢰보의 보법을 사용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빨랐는지 이드가 뛰쳐나간 자리가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모두 스크롤을 사용한 후였다.
이드는 존의 놀란 얼굴이 내 뻗은 손앞에서 희미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땅에 내려섰다.
츄아아아악.
“칫, 늦었나?”
이드는 뒤로 쭉 밀려나는 몸을 바로 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존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스크롤을 사용한 상대를 잡아내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드는 머리를 긁적이며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그 주위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가디언들과 오엘이 서있었다.
이드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라미아의 급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움직이긴 했지만 이유를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무슨 일인 거야? 잡으라기에 얼결에 뛰어나가긴 했지만….’
이드는 느릿한 걸음으로 라미아를 향해 다가가며 물었다.
“이드님은 브리트니스라는 이름 들어보신 적 없어요?”
“아…. 어디서 비슷한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게 왜? 혹시 그 브리트니스라는 것에 대해 알아?”
“네, 알아요. 몇 번 들어보진 못했지만. 확실히 기억해요.”
이드는 어느새 라미아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주위 사람들은 갑작스런 상황에 뭔가 묻고 싶었지만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모습에 뭐라 쉽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중요한 일이에요. 이드님도 아시죠? 여섯 혼돈의 파편 중 한 조각인 페르세르라는 이름. 제가 기억하기론 브리트니스는 바로 그의 검의 이름이에요.”
“뭐…. 뭐야앗!!!!!”
이드는 생각도 못한 명칭과 이름에 주위에 누가 있다는 것도 잊은 채 입을 쩍 벌리며 소리쳤다.
혼돈의 파편이라니. 이곳으로 날아와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도 그 이름이 라미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드는 급히 라미아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정말이야? 그 말 정말이냐고?”
“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가 기억하기론 확실해요. 페르세르가 가진 네 자루의 검 중 하나 브리트니스!”
이젠 라미아도 주위사람이 듣던 말던 입을 열었다. 자신 역시도 이드만큼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하, 하지만…. 분명히 이곳에 날아온 건 나뿐이잖아.”
“네, 그건 확실해요. 하지만 이미 그가 잊어버렸다고 했던 검이기도 해요. 이드님도 아시잖아요. 저희가 없을 때 그가 가일라를 공격했었다는 거…”
“그래, 맞아. 그때 그랬어. 검이 사라졌다고….. 아, 미안.”
이드는 그제야 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이 라미아의 어깨를 힘주어 잡고 있었던 것을 알고는 급히 손을 내놓았다.
“괜찮아요. 그보다…. 존이 말했던 브리트니스가 페르세르의 것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확인해볼 필요는 있어요. 만약 정말 페르세르의 검이 맞다면, 그 검에 어떤 힘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말을 마친 라미아는 이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드도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특히 라미아의 말 중에서 검이 가진 힘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카르네르엘이 말했던 봉인의 아티팩트. 라미아가 신경 쓰고 있는 부분도 그것일 것이다.
“꼭….. 확인해야지.”
그때였다.
점점 진지해져 가는 분위기에 쥐죽은 듯 가만히 있던 제이나노가 이야기가 끝난 듯하자 슬그머니 다가온 것이었다.
“저기…. 무슨 일이에요?”
어느새 이드와 라미아 주위로 그들을 아는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