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1화
세레니아와 일리나는 약간 물러서서 보고 있었다.
[[당신인가요? 라미아의 주인이자 차원을 넘어선 자…….]]
빛이 은은하게 떨리는 듯하면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만들어냈다.
그 목소리는 자연처럼 안온하고 편안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렇습니다. 제가 당신을 청했습니다.”
[[라미아의 주인인 그대가 말인가요? ……. 말해보세요.]]
“제가 물을 것은 차원을 넘는 문제입니다. 우연찮게 이리로 오게 되었으나 원래는 이곳과는 다른 세계의 사람입니다. 돌아가는 방법이 없을까요? 라미아에게 물었으나 이것은 모르더군요.”
라미아… 사실 이드는 라미아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라미아의 제작에 신 역시 참여하였으므로 라미아를 통해 직접 신에게 전언을 올려도 된다.
거의 직접회선 수준이다.
그러나 이드는 아직 그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어서 하엘을 통해 어렵게 전언을 올린 것이다.
거기다 라미아를 만들며 이런저런 정보를 넣었으므로 거의 신과 아는 것이 같을 정도였다.
그 정도니 지금까지 주인을 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드는… 보는 사람에 따라 미인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말이면 될까?
[[그런가요? 그거라면 라미아도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사실 저도 잘 모른 답니다.
단지 어둠과 빛, 그 근원과 창조주께서만 알고 계실지 그리고 그분들 역시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군요.]]
“저 역시 그 말은 들었습니다…… 혹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드의 물음에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이리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말이 오래전부터 있었답니다.
태초에 빛과 어둠께서 자신들의 일부를 떼어 각자의 분신을 만드시고 그 두 분신을 제어할 인을 만들어 차원의 틈새로 던지셨다.
그 인들을 모아 쥐는 자에게는 그분들과 같이 차원을 바라보는 영광을 얻으리라…… 이런 내용이었죠.
이 두 가지 인이 어떤 건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이 말이 사실인지조차도요.]]
“휴~ 그런가……….요?”
그러면서 이드는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이드의 왼쪽 팔목에는 작은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어둠과 빛, 그분들은 어디서나 존재하시지요.
그대가 간절히 원한다면 그분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대 라미아의 주인…. 그대가 신계에 들 때 만나도록 하지요.
그대가 차원을 넘을 수 있길….]]
그 말을 끝으로 서서히 하엘의 주위에 있던 빛이 사라져갔다.
그러나 이드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이거다…. 동굴에 있던 벽에 ‘차원을 다스리는 인…’이라고 쓰여 있었어….
그럼 내가 중원의 지하 동굴에서 보았던 두 가지 반지와 지팡이는….. 빛과 어둠의 결정체인가?………
이게 그거라면 왜 다시 중원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지?’
이드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하엘이 오랜 기도에서 깨어난 듯 눈을 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화는 모르는 듯했다.
세레니아가 그런 하엘을 바라보며 마법을 거두었다.
이드는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는 정신을 차렸다.
“하~~ 복잡하군……”
이드는 그 날 팔에 차여져 있는 이름이 차원의 인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멍히 보냈다.
그러나 얻은 것은 없었다.
어떻게 차원을 넘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러다 내린 결론은 어둠과 빛을 찾자는 것이었다.
찾자고 노력만 한다면 찾을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고 이드는 며칠 동안 기사들에게 개방의 용형 구식(龍形九式)을 가르치는 것으로 훈련을 마쳤다.
이드가 개방의 무공을 가르친 이유는 군대와 제일 비슷해서이다.
개방은 인원수가 가장 많은 방파로 싸울 때도 많은 인원이 움직인다.
그래서 많은 인원이 싸우는 군대와 가장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드의 훈련을 모두 마친 기사들은 각 부대로 돌아가 자신들이 배운 것을 그대로 다른 이들에게 훈련시켜 나갔다.
그걸 보며 공작이 고마워했다.
그 일을 마친 이드는 방에서 그래이드론의 정보와 라미아의 정보를 살펴보며 어둠과 빛에 대해 알아보려 했으나 헛것이었다.
전체적인 정의는 나와 있으나 그들에 대해 자세히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드는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다.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고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천천히 하자…..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 지금은 로드에게 가르치는 일과 일란과 크라인 돕는 거나 해야겠다……..”
이것이 이드가 고민에 빠져 그래이드론과 라미아의 정보를 훑어보기 5일째 되는 날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막상 하려 하니 세레니아를 가르치는 일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냥 다니면서 기사들이 이드가 한 대로 훈련시키는 것을 고쳐주거나 도와주는 것 정도.
그리고 그 훈련에는 한 명씩의 마법사가 따른다.
그리고 이드가 그들에게 다가갈 때마다 기사들이 깍듯하게 예를 갖추었다.
이드의 실력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스승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해서 이드의 황궁 생활은 상당히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드는 자신에게 궁 밖으로 놀러가자고 조르는 여자아이를 바라보며 곤란해하고 있었다.
“오빠 나가자~ 응?”
지금 이드를 조르고 있는 소녀는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이였는데 나이는 14~5세 정도로 보였다.
그녀의 이름은 시르피 드 아이넬 아나크렌으로 크라인 황태자의 한 명뿐인 동생이다.
할 일이 없어진 뒤부터 시르피와 놀아주었는데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궁 밖으로 나가자고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로서는 며칠 동안 자신과 놀아준 이드가 상당히 편한 상대였다.
물론 그녀의 아버지나 오빠를 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그녀와 놀아줄 상황이 아니므로 이드에게 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놀아주는 것에 대해서는 크라인 역시 완전히 이드에게 넘긴 상태였다.
처음 그녀와 놀아준 며칠 후, 크라인이 이드에게 그녀를 좀 돌봐달라고 부탁해왔던 것이다.
요즘 바빠지는 통에 그는 할 일이 태산이고 전 황제는 아파 누워있기 때문에 그녀를 돌봐줄 사람은 있어도 그녀와 이렇게 놀아줄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이드에 대해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아빠와 오빠같이 편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더구나 공주인 그녀가 이드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것도 크라인이 허락한 문제였다. 뭐… 허락받지 않아도 그렇게 했을 그녀지만 말이다.
“하지만 사르피… 크라인 오빠가 반대할 거야…”
이드는 소용없을 줄 알지만 한마디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괜찮아. 크라인 오빠도 오빠만 괜찮다고 하면 뭐든 해도 된다고 했단 말이야.”
“응?…”
“알았어. 나가자… 나가자구…”
결국 이드가 지고 말았다. 사실 15살짜리 귀엽게 생긴 소녀가 조르는데 어떻게 매정하게 거절하겠는가… 뭐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나가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고… 그렇게 입고는 못 나가.”
이드의 말대로 지금 시르피가 입고 있는 옷은 화려한 드레스였다. 그런 걸 입고 돌아다닌다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는 시르피를 데리고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방에는 드레스 등의 옷을 놓아두는 전용 룸이 따로 있었다.
시녀들과 이드는 그중에서 제일 무난하다 한 걸로 골라 시르피에게 입혔다. 그녀가 입은 옷은 단색의 원피스였다. 중산층의 평민들이 잘 입을 그런 옷이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원피스의 천이 아주 고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나가겠다는 말에 그녀의 유모가 반대는 하지 못하고 호위기사만이라도 데리고 가기를 원했으나 그들까지 데리고 가면 엄청나게 귀찮아질 것을 예감한 이드가 거절해 버렸다.
수도는 그 중앙에 광장이 위치해 있는데 광장에는 다섯 개 방향으로 크게 길이 나 있다. 그 길은 네 개의 성문과 연결되었는데 그 주위로 시장과 저택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길은 궁과 연결되었는데 광장과의 거리는 약 700미터 정도로 다른 나라에 비해 가깝다.
이드와 시르피는 가까운 거리이기에 광장까지 걸어간 후 그다음 시르피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런데 성문을 나서서 걷는 이드에게 한 가지 문제점이 떠올랐다.
‘차차… 나도 길을 잘 모르는데 누굴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앞에서 걷고 있는 시르피를 한번 바라보았다.
‘에라, 관둬라. 모르면 물으면 되지 뭐…’
광장의 중앙에는 3단으로 된 아름다운 분수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수도의 광장이다 보니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기도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시르피는 재미있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광장에는 그렇게 재미있는 게 없었다. 광장에서는 함부로 소란을 피우거나 하면 안 된다는 규율이 있기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드는 시르피를 데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이 있는 방향은 대충 알고 있어서 묻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르피의 손을 붙잡고(애가 자꾸 한눈을 팔아서 잊어버릴 뻔했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이드와 시르피에게 지나가는 남성들의 눈이 꽂혔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누나와 귀여운 동생이 놀러 나온 것으로 보인 것이다.
거기에 시르피가 입고 있는 옷은 그녀에게 아주 잘 어울렸다. 잠시 후 길거리에 형성되어 있는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은 항상 그렇겠지만 상당히 활기차 보였다.
여기저기 무언가를 팔려는 사람, 사려는 사람, 물건을 선전하는 사람, 묘기를 부리는 사람 등등…
시르피는 그런 것을 보면서 이드의 손을 끌고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다녔다. 그렇게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다.
시르피 역시 지치는 기색도 없이 여기저기 다니더니 서서히 지치는 모양이었다. 이드는 그런 시르피를 보며 시간을 재보았다.
“시르피, 점심 먹으러 갈까? 점심시간도 다 됐는데 말이야.”
“응! 그래요, 오빠. 그런데 어디서 먹을 건데요.”
그렇게 묻는 시르피의 물음에 이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 괜찮아 보이는 음식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르피, 저 음식점은 어때? 오후의 햇살.”
“와~ 이름은 좋네요. 저기로 가요.”
그 음식점은 식당만 전문으로 하는 2층 음식점인 듯했다.
식당에는 손님이 붐비고 있었다. 그걸 본 이드는 2층으로 가려 했으나 2층은 벌써 다 차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1층의 한쪽 남아있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시르피 역시 많은 사람과 시끄러운 소리가 약간 적응이 되지 않는 듯했다.
“시르피 뭐 먹을래?”
“나? 음… 난 오빠하고 같은 걸로 먹을래…”
“그럴래?”
그러면서 이드는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 여 종업원을 불렀다. 그녀는 이드를 보며 다가와서는 이드의 주문을 받았다.
“여기 오리구이를 부드럽게 해서요. 그리고 야채무침 좀 가져다 주세요. 그리고 시르피 후식으로 푸딩? 그래, 푸딩 하나하고 차 하나 가져다 주세요. 차는 부드러운 거 아무 종류나요.”
그렇게 주문하고 이드는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물을 들었다. 시르피는 식당 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2층은 모르겠지만 1층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귀족처럼 보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거의가 모험가나 수도에 사는 평민처럼 보였다. 그런 시르피의 눈에 약간 특이한 이들이 보였던 모양인지 이드를 불렀다.
“오빠 저기 봐. 저 사람들 모험가인가 봐… 근데 특이하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 무리의 모험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르피의 말대로 특이한 모험가 파티였다.
왜냐하면 그 파티 인원들이 전부 여자라는 점이었다. 물론 여자로 보일 만큼 예쁘다는 것이 아니다. 파티의 인원은 검을 쓰는 듯한 여인이 두 명이고(허리에 검이 걸려 있다), 여 사제 한 명, 여자 마법사 한 명과 그녀의 옆에 앉은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그녀들은 이곳 식당에서 눈길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었다(또 일부는 지금 들어온 이드와 시르피에게 가 있고 말이다).
여성들만 있다는 점 말고도 그녀들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나이는 제일 어려 보이는 단발머리 소녀가 17세 정도로 보이고,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검을 차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20세 정도로 보였다.
한마디로 모두들 젊다는 것이었다. 그녀들 역시 아직 식사가 나오지 않은 듯 앞에 음료수를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단발머리의 소녀가 시르피를 바라보았다.
시르피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자 자신 역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시 그녀가 손가락을 펴서 열일곱을 펴 보이자 시르피 역시 손을 펴서 열다섯임을 알렸다.
그러자 그녀도 살짝 웃으며 동료들에게 무어라고 하는 듯했다. 잠시 후 그녀들이 이드와 시르피에게 시선을 돌렸고 다시 단발머리 소녀에게 뭐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가 일어나 시르피와 이드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활짝 웃으며 시르피에게 말을 건네 왔다.
“안녕! 나는 이쉬하일즈라고 해, 너는 이름이 뭐니?”
그녀는 밝게 말했다.
“응, 나는 시르피, 시르피라고 해요.”
그녀는 시르피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이드에게로 돌렸다.
“나는 이드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드의 말에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미소지으며 시르피와 이드에게 말했다.
“저희와 같이 합석하지 않을래요? 일행들도 동의했는데 내가 소개시켜줄게요.”
그러자 이드가 대답하기도 전에 시르피가 답해버렸다.
“정말? 정말 그래도 돼지? 좋아 가자.”
시르피는 이드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이드는 할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이드는 걸으면서 이쉬하일즈라는 소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있었다.
‘특이하지 않은 아이가 저 모험가 파티에 끼어있다고 했더니 백타 쪽인가?’
그녀는 그녀의 일행 있는 자리로 가서 시르피와 이드를 앉힌 다음 자신들의 일행을 소개했다.
“그럼 내가 우리 일행들을 소개할게요. 이쪽은 우리 일행의 리더인 카르디안, 그리고 이쪽은 검을 쓰는 건 언니와 거의 비슷한 수준인 레나하인, 그리고 여기 사제님은 아직 견습인데 크라네, 그리고 여기 마법사인 세인트, 그리고 이쪽은 시르피, 그리고 이쪽은 이드라고 한데요.”
서로 통성명이 이루어졌을 때 식사가 나왔다.
시르피와 이드의 식사 역시 같이 나왔는데 식당의 시선이 거의 몰려있던 참이라 식사를 가져오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고 곧바로 들고 나왔다.
그녀들이 시킨 식사의 양은 상당했다. 거의 성인 남자 같은 수가 먹는 양이었다.
보통 여자들은 기사들이라 해도 몸의 크기 때문에 남자보다는 적게 먹게 된다. 물론 몇 일 굶었다면 말이 달라지지만 말이다.
‘이중에 대식가가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이드였다.
그렇게 그 여성 일행들과 이드들은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드의 예상대로 대식가가 있었다. 바로 이쉬하일즈였다.
‘백타를 하니 많이 먹어야겠지…….’
그때 시르피가 일행을 향해 물었다.
“모험가 분들이신가요?”
시르피의 대답에 레나하인이 상냥하게 답했다.
“맞아, 모험가지….. 세상의 이런 저런 걸 보고 싶어서 말이야.”
“와~ 그럼 던전 같은데도 가보셨겠네요? 그런데 왜 파티에 남자는 없어요?”
시르피가 두 가지 질문을 한꺼번에 해댔다. 엄청 궁금했었나 보다.
“던전? 가보기는 했는데 별로였어. 그냥 길 찾기가 어려울 뿐이었어 대단한 게 아닌지 보물 같은 것도 없고 몬스터 역시 대단한 건 없었어, 그리고 남자 동료가 없는 건 의도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우리들이 같이 다니게 됐는데 그다음에 동료를 받아들이려 해도 그렇게 실력이 좋은 사람이 없더라고…. 실력도 없는 사람은 오히려 짐일 뿐이니까 말이야.”
“음…그런가?”
시르피가 그런가 할 때 세인트가 말을 이었다.
“그럼그럼, 저번에도 검 좀 쓴다고 잘난 체하던 2명이 있었는데 막상 오거 2마리가 나타나자 검 몇 번 쓰지도 못하고 꽁지 빠지게 도망가더라…”
“와~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요? 그런데 언니는 마법 잘해요?”
“물론이지…..이래 봐도 5클래스까지 마스터한 천재라구….그리고 카르디안도 검을 엄청 잘 쓰지 보통 남자들은 상대도 안 될걸?”
그런 대답에 시르피는 카르디안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르디안이 살짝 웃어주었다.
그때 이쉬하일즈가 시르피에게 물었다.
“시르피 너는 뭘 좀 할 줄 아니?”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물어본 듯했다.
그러자 시르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빠가 검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어 아직 잘은 못하지만 오빠가 검을 쓰면 이뻐진다고 했거든.”
사실 이드는 시르피와 놀아주면서 시르피에게 그래이 등에게 가르쳤던 금강선도(金强禪道)와 백화검무(白花劍舞)를 가르쳤다.
물론 기초만 간신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검을 잡아본 적이 없는 그녀에게 갑자기 그런 걸 가르친다고 잘하게 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가 가르칠 때 이뻐진다고 한 것은 검무를 연성하면 그 검결에 따라 몸이 다져지므로 예뻐진다는 소리다.
그 예로 검무나 검을 쥐고 있는 강호낭자들 중에 뚱뚱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 말이 맞기는 하지. 시르피 너희 오빠는 검을 잘 쓰니?”
카르디안과 레나하인은 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
“응! 오빠가 검을 잘 쓴다고 할아버지가 말한 적이 있어!”
“응…시르피 오빠가 잘하는 모양이구나…”
그때 이쉬하일즈가 다시 이드에게 물어왔다.
“그럼 이드는 뭘 잘해요?”
그녀의 물음에 이드는 입안에 든 야채를 넘기며 대답했다.
“나도 검을 조금 쓸 줄 알아…”
“정말요?”
카르디안이 그렇게 말하며 이드를 바라보았으나 검을 쓰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소도 하얀 것이 검을 쥐는 손 같지가 않았다.
검을 쓰는 사람은 검을 쓰는 사람의 손을 알아볼 수가 있다.
그런데 이드의 손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정말인가? 헷갈리네….’
그때 이드의 눈에 몇 명의 인물들과 같이 걸어오는 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저번에 아나크렌의 수도로 텔레포트하며 본 그 능글능글한 인물이었다.
이드는 그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일행은 이드를 보고는 의아한 듯 이드가 보고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일제히 다른 사람의 눈살도 찌푸려졌다.
거만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여행으로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일행으로서는 완전 밥맛인 것이다.
그러나 일행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지도 모르고 녀석들은 일행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들은 저번에 본 그 속 느글거리는 인간과 그 옆과 뒤로 5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거의 대부분이 검을 차고 있었다.
그중에는 기사들이 차는 검을 가지고 있는 인물도 하나 있었다.
그 중에 가운데 서 있던 그는 다시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이드들과 카르디안 일행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이렇게 모여 계시다니 혼자 보기 아깝군요. 저희들과 같이 자리하시겠습니까? 저희들이 아름다우신 여성분들께 식사와 차를 대접하고 싶군요.”
“아니요! 저희는 식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저희끼리 재미있게 이야기 중이니 성의는 감사합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카르디안이 아까 시르피와 이드에게 하던 부드러운 말과는 달리 차갑게 단칼에 잘라서 이야기해버렸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약간 굳어갔다.
그러다 그의 눈에 우연히 이드가 들어왔다.
“아~ 여기서 다시 아가씨를 만나는군요. 저번에 실례한 걸 사죄하는 뜻에서 사과를 하고 싶은데….”
그러나 이드의 반응은 카르디안보다 더했다. 이드는 저 인간이 정말 재수 없어했다.
“저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사양합니다. 귀찮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만. 저희끼리 식사 중입니다.”
그는 이드의 이야기에 입을 꼭 다무는 듯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기사의 검을 차고 있는—여기서 기사의 검이란 아나크렌 제국의 기사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검이다. 검에는 각자 기사단의 문장과 가문의 문장을 넣게 된다. 꼭 이 검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지만 거의가 이 검을 사용하고 있다—청년이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검 위에 과시하듯 손을 얹으며 이야기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레이디 분들. 저는 푸르토 칸 데티눔이라고 합니다. 바람의 기사단 소속의 기사입니다. 이분 레이디께 제 친우가 약간의 실례를 범한 듯하데 제가 사과의 뜻으로 차를 사고 싶습니다만.”
은근히 자신이 기사라는 것을 내세우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일행과 이드를 더욱 신경질스럽게 했다.
물론 시르피는 무슨 말인지,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저의 대답은 아까와 같습니다. 이만 물러나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끼리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이드의 대답에 푸르토라는 기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귀족인 자신이 정중하게 말했는데도 평민으로 보이는 것이 이런 식으로 대답하니 거만한 자존심이 구겨진 것이다. 그는 구겨진 얼굴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이드들을 한 번 보고는 일행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그들을 보며 시르피가 궁금한 듯 모두에게 물어왔다.
“그런데 왜 그래요? 저 사람이 정중하게 차를 사겠다고 했는데….”
시르피의 물음에 활달한 이쉬하일즈가 대답했다.
“그건 말야, 저 녀석들의 수작이야. 만약에 우리들이 못생겼으면 실수를 하더라도 사과 한마디 안 할 놈들이란 거지. 그런데 좀 이쁘다 싶으니까 한 번 꼬셔볼까 하는 생각으로 접근한 거야. 아까 봤지? 거만하게 걸어오는 거… 난 그런 녀석들은 질색이야. 시르피, 너도 저런 인간들은 조심해야 돼.”
그런 이쉬하일즈의 말에 레나하인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맞아 맞아. 확실히 우리들이 미인이기는 하니까!”
그녀의 말에 기분이 나빠졌었던 일행들이 다시 웃었다.
“근데 언니들, 여기 묶을 건가요? 아니면 곧바로 갈 건가요?”
시르피의 물음에 이쉬하일즈가 답했다.
“우리들은 오늘 여기 왔거든. 여기 수도는 처음 와보니까 여기 얼마간 있을 생각이야. 거기다 지금 당장 어딘가 가야 할 일은 없거든, 그렇죠? 언니?”
“그래. 지금은 당장 가봐야 할 곳도 없으니 여기 얼마가 있다 갈 거란다.”
“시르피, 네가 잠잘 곳 아는 곳 있으면 소개 시켜줄래?”
이쉬하일즈의 물음에 시르피가 활짝 웃었다.
“정말? 그럼 우리 집에 가자! 우리 집이 꽤 넓어서 방도 많아.”
“그래도…. 시르피, 아무나 집에 초대해도 되는 거야? 너 그러다 집에서 야단 맞는다. 그리고 내가 농담한 거야. 네가 어떻게 좋은 여관을 알겠니?”
“괜찮아! 우리 집에 내 맘대로 초대해도 괜찮아. 오빠도 아무 말 안 할 거야. 응? 우리 집에 가자, 응 언니들“
시르피가 조르자 그녀들도 당황했다. 자신들이야 여관에서 묶든 시르피의 집에서 묶든 상관이 없지만 시르피의 집에서 정체도 모르는 여행자들을 받아들일지 문제인 것이다.
그때 이드가 한마디했다.
“시르피의 말대로 하세요. 시르피네 집은 넓거든요.”
이드까지 이렇게 말하자 일행들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제 그만 가죠. 시르피, 이제 이분들과 같이 돌아가자. 구경도 잘했잖아.”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