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222화
촤자자자작…. 츠즈즈즈즉…..
황당하게도 허공에 몇 번을 휘둘리던 메이스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번개가 황금빛의 보호막을 형성해 버린 것이다. 그 보호막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무형기류를 가볍게 막아 내더니 무형대천강과 마주치며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빛이 가신 후 오우거의 몸은 3미터 정도 뒤로 밀려나 있었다. 땅 위로 두 개의 직선이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정작 밀려난 오우거는 전혀 충격이 없는지 곧바로 다시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드는 오우거가 바로 앞까지 닥쳐 와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라참마인(壽羅斬魔刃)!!”
기합성과 함께 일라이져의 검신으로부터 십수 줄기의 강사가 뿜어져 나와 오우거의 전신으로 덮쳐 들었다. 지금 상황이라면 방금 전 보였던 메이스의 보호막도 없을 것이고, 십여 군데에 동시에 메이스를 휘두를 수도 없을 것이다. 과연 일라이져의 몸체에서 뽑아진 강사 중 몇 개가 오우거의 전신을 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나머지 몇 개가 오우거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어 올 때였다.
치지지직.
이드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따끔거리는 대기의 느낌에 일라이져를 거둠과 동시에 분뢰보를 밟아 순식간에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이드가 서 있던 그 자리로 백색의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뿐만 아니었다. 백색의 번개는 그대로 이드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번개는 다름 아닌 오우거의 은색 뿔에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칫, 저건 완전히 번개 오우거구만… 수라섬광단(壽羅閃光斷)!”
츠콰콰쾅.
번개와 검강이 부딪히며 강한 폭발음을 일으켰다. 오우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번개의 위력은 6서클의 체인 라이트닝과 맞먹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정말 저 뱀의 말처럼 적수를 찾아보기 쉽지 않겠어.”
정말이었다. 6서클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가진 번개를 사용하는 데다, 검강을 깨 버릴 수 있는 메이스, 그리고 보통의 오우거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에 힘까지. 이드는 손에 쥐고 있던 일라이져에 힘을 더하며 바질리스크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저 녀석은 아직 날 건드리지 못했다. 이 정도면 승부가 났다고 생각해도 좋을 텐데… 아니면 꼭 승부를 봐야겠나?”
하지만 바질리스크는 쉭쉭대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이드를 유심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꼭 기회를 노리는 것처럼. 이드는 역시 뱀은 뱀이구나 생각하며 뒤로 몸을 물렸다. 본신의 내공을 사용한다면, 무형검강결이나, 수라삼검으로도 충분히 저 번개 오우거를 처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가 겁을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적은 이들이 두려움을 느껴 물러나게 하는 것. 그렇다면 정말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절실하게 느껴질 만한 것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을 찾자면 12대식만큼 확실한 게 없을 것이다. 분뢰보를 이용해 순식간에 오우거와의 거리를 벌린 이드는 제자리에 서며 일라이져를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이드의 전신 혈도를 달리는 우후한 진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동하던 진기는 서서히 이드의 몸으로 표출되며 이드의 전신과 일라이져를 황금빛으로 감싸 안으며 허공으로 뻗어 올라가 빛의 탑을 만들었다. 아니, 아니… 그것은 검이었다. 거대한 황금빛의 검. 이드의 전신이 하나의 검이 되어 검강을 쏘아 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 높이가 무려 70미터. 70미터에 이르는 검강이라니.
“카핫. 이번에 확실하게 끝내 주마. 12대식 천황천신검(天皇天神劍)!!”
이드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천황천신검의 기분 좋은 무게감을 느꼈다. 번개 오우거도 뭔가 이상한 걸 느꼈는지 쉽게 달려들지 못하고 이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거리는 50미터.
쿠오오옹
“끝이다. 번개 오우거. 일천검(一天劍)!!”
하늘을 치 뚫어 버릴 듯 꼿꼿이 세워져 있던 이드의 팔과 일라이져가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황금빛 검강도 함께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때야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느꼈는지 오우거가 자리를 피하려 했다. 천황천신검의 길이는 70미터. 현재 오우거가 서 있는 곳은 50미터 지점. 20미터만 도망가면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우거의 발이 내려쳐지는 검보다 빠를 리가 없었다.
구우우우우
오우거는 공기를 억누르며 닥쳐오는 황금빛 검을 바라보며 은빛 뿔에 한가득 번개를 생성시키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과과광….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내려오던 황금빛 검강은 오우거와의 충돌로 잠시 멈칫하는 듯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잠시일 뿐이었다. 거대한 황금빛의 검강은 그대로 지면으로 떨어지며 주위로 묵중한 충돌음을 퍼트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드는 천황천신검을 내려친 자세 그대로 바질리스크를 한번 바라보고는 다시 진기를 운용했다.
“천황천신검 발진(發進)!”
황금빛 거검. 땅에 내려서 있던 천황천신검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드와 일라이져를 포함하고 있던 천황천신검이 이드의 말과 함께 이드와 떨어지며 천천히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런 천황천신검이 향하는 곳으로는 천여 마리의 몬스터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몬스터들은 먼저 있었던 검은 회오리 때문인지 자신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황금빛 검강의 모습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것이 검은 회오리는 일정한 느린 속도로 다가갔지만, 이 천황천신검은 점점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결국 천황천신검 앞에 있던 몬스터들은 자신들을 향해 덮쳐 오는 천황천신검을 보며 발악하듯 괴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었다. 천황천신검의 검극이 수백의 몬스터들과 충돌하는 순간 검강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듯 그대로 폭발해 버린 것이다.
콰콰콰쾅… 쿠콰콰쾅….
이드는 폭발과 함께 튕겨 날아오는 돌덩이와 여러 가지들을 호신강기로 막아 내며 땅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누가 갈아 놓은 듯한 브이자 형태의 깊은 홈이 지금 뿌연 모래먼지로 뒤덮인 곳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아마 수백의 몬스터가 저 폭발에 말려들었을 것이다. 이드는 결과는 확인해 보지도 않고서 바질리스크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 정도면 만족하겠는가.”
쉬이익…. 쉬이익….
바질리스크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몬스터들을 돌아보며 쉭쉭거렸다. 그에 몬스터들은 잘됐다는 듯 뒤로 돌아 쌍둥이 산 사이에 있는 길을 향해 빠른 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 바질리스크의 쉭쉭거리는 소리가 철수 신호였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들 앞으로 몬스터의 무리를 이끌 듯 하피가 날고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바질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돌려 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런 바질리스크의 눈에선 살기와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이대로 돌아갈 겁니다. 그대는… 우리가 다른 곳을 공격하더라도 다시 나타나 우리를 막을 것인가요?’
이드는 그 물음에 손에 들고 있던 일라이져를 허리의 검집에 꽂아 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곳에 나의 친인들이 몇 있기 때문에 내가 나선 것뿐이다. 그대들이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것에 관해서는…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그대들이 몰려온다면 나는 다시 싸울 것이다.”
‘그렇다면 좋아요. 우리도 당신과는 싸우기 싫어요.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당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우리는 당신이 있는 곳을 공격하지 않을 거예요.’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바질리스크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바질리스크가 땅 위를 기어가는 속도는 보통의 몬스터 이상이었다. 그런 능력이 있으니 다른 몬스터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때 이드는 한 가지 생각난 것이 있어 큰 소리로 바질리스크를 불러 세웠다.
‘말해 보세요.’
“아까 네가 인간들을 향해 엄청난 살기를 뿜는 걸 느꼈다. 너뿐만 아니라 다른 몬스터도 그런 것 같은데… 왜 그런 거지?”
‘천적이란 걸 아시나요?’
고개를 끄덕였다. 천적.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관계에서 잡아먹는 생물을 말하는 것 아닌가.
‘그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되겠군요. 인간이 싫습니다. 꼭 인간들을 몰아내야 우리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바질리스크는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다시 되돌아섰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이드의 등 뒤로부터 굉장한 함성이 터져 올랐다.
우와와아아아아…
몬스터들이 물러갔다는 것에 대한 안도.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 영웅의 탄생에 대한 환호. 그들의 함성에는 그 세 가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이드는 그 함성을 들으며 몸을 돌려 라미아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번엔 올 때와는 달리 천천히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대열을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서로 환호하며 정신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모습에 상급자들도 크게 탓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라미아를 중심으로 서 있는 마법사 늙은이들과 뭐라 설명하기 곤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디언들의 모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걱정과는 달리 가디언들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들은 멍한 표정이 모두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 대신 이드는 다른 사람에게 잡혀 쓸데없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바로 제일 뒤쪽에서 군인들을 지휘하던 사람. 번쩍거리는 모자에 빳빳하게 다려진 옷을 입고 있는 군인 아닌 군인인 장군이 이드를 잡고 있었다.
“정말, 정말 대단한 실력이네. 자네 가디언이지? 정말 대단해. 어떻게 단신으로 그 많은 몬스터를 쫓아 버렸는지. 자넨 영웅이야. 이곳 파리의 영웅. 하하하하…. 이제 파리는 자네가 있어 안전할 것일세. 자네는 파리 시민 모두의 영웅이야.”
하나같이 이드를 추켜세우는 말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드로서는 그런 말이 귀찮을 뿐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는 무슨 소리를 어떻게 들을지 알 수 없다. 생각과 함께 이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에 따라 이드의 앞으로 가로막고 웃고 있던 장군의 웃음도 자연스레 그쳐져 버렸다. 대신 그 웃음이 가신 자리로 은근한 두려움이 차 들어오고 있었다. 대단한 위력으로 몬스터를 쓸어 버린 힘. 하지만 그 힘이 지금 자신을 마땅치 않게 생각한다고 생각하자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온 것이다. 이드는 장군의 몸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그의 곁을 지나갔다. 장군이 아무 말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아무도 이드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수고하셨어요. 이드님.”
“아, 그래. 라미아. 그리고… 세르네오와 틸은 잠시 절 좀 따라와 주실래요?”
이드는 반갑게 자신을 맞아 주는 라미아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에 멀뚱히 서 있는 세르네오와 틸을 불렀다. 두 사람은 이드의 말에 그제야 정신이 든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 특히 마법사들은 라미아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한 표정이지만, 이드가 두 사람만 부르는 모습에 뭐라 하지 못했다. 몰랐으면 모르되 방금 전 내보인 두 사람의 엄청난 실력을 보자 함부로 말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흥분해 있는 군인들을 지나치며 제이나노가 있는 병원 쪽으로 향했다. 그동안 뒤쪽에 따라오는 두 사람은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침묵은 오래가지 못했다. 싸움을 좋아하는 만큼 성격도 털털하고 답답한 걸 싫어하는 틸이 먼저 입을 연 것이었다.
“잘 보라고 해서 보긴 했지만… 녀석 너무 엄청난 걸 보여 줬어.”
이드는 그의 말에 슬쩍 미소 지었다.
“그래도 볼 만했을 텐데요.”
“크크큭, 확실히 볼 만했지. 그렇고 말고. 모든 무공을 하는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최후의 경지를 본 것인데. 확실히 볼 만했지. 정말 그 황금빛 검의 모습을 봤을 때는 온몸의 세포가 모두 일어서는 느낌이었으니까.”
“흐음. 이번에 다시 한번 붙어 보고 싶으신가 보죠?”
이드는 틸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며,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정작 틸은 평소의 모습답지 않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아니. 나는 네게 검으로가 아닌 주먹으로 졌었다. 그런 상황에서 황금빛의 검은 내 쪽이 자격 미달이지. 그것도 한참. 하지만 말이다. 후에… 내가 정말 산중 왕인 호랑이가 된다면, 그때 가서 한번 부탁하지. 그러니까 거절이나 하지 마라.”
“좋지요. 그럼 기다리고 있어 보죠. 틸이 산중 왕이 되기를요.”
그렇게 이드가 틸과 이야기하는 사이 라미아는 세르네오의 옆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내용은 제이나노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별다른 불만 없이 이드와 라미아가 실력을 숨긴 것에 대해 이해해 주었다. 솔직히는 이해했다기보다는 두 사람이 실력 발휘를 할 기회가 없었다고 생각해 버렸다. 확실히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병원으로 다가가는 것에 맞추어 치렁한 사제복을 걸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다름 아닌 제이나노였다. 그는 네 사람의 얼굴을 보더니 그들을 한쪽으로 데리고 갔다. 병원과도 꽤나 떨어진 작은 공터가 그곳이었다.
“아까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을 보니까 이드가 했던 말이 모두 이해되는 느낌이었어요.”
공터에 도착하면서 제이나노가 꺼낸 말이었다. 제이나노는 병원에서 나와 가만히 전장을 바라보다 라미아와 이드가 펼쳐 보이는 마법과 무공의 모습에 경악했던 자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이드가 말했던 역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만약 라미아와 이드가 보인 저 힘으로 도시들이 몬스터로부터 지켜지고 몬스터들만이 죽어 나간다면, 그것은 카르네르엘이 말했던 순리가 아닌 것이다. 그만큼 방금 전 전투에서 이드와 라미아가 보여 준 마법과 무공의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저런 힘이라면 충분히 순리도 역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 그럼 결정도 했겠네. 어떻게 할 거야? 우리를 따라갈 거야?”
그 말에 제이나노는 슥 뒤를 돌아 파리를 한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요. 전 이곳에 남아서 지금까지 하던 사제 일을 하겠어요. 아무래도 그게 제가 해야 할 일 같아요. 리포제투스님께서는 제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라고 하셨지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리포제투스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게 지금 제이나노 사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는 건가요?”
어느새 제이나노에게 말을 거는 이드의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제이나노는 그의 말에 입가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느낌. 저 말은 처음 자신이 이드와 라미아를 만나면서 했던 말이었다. 리포제투스님은 날 이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저 두 사람을 따라가게 하신 것일까. 제이나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이드. 지금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제 바람이에요. 또한 그렇게 하고 싶은 제 마음이지요.”
“훗, 잘됐군. 그렇다면, 이제 나와 라미아는 그 수다에서 해방된 건가?”
“아니, 수다라니요. 저는 어디까지나 제 생각과 리포제푸스님의 교리에 따른 설명을 했을 뿐인데 그것을 수다라고 하시면 제가 슬프지요. 더구나 이드와 라미아가 번번이 제 말을 막았잖아요. 그러면서 수다에 시달리기는 무슨…”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야? 따라간다. 안 간다. 누가 어딜 가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한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세르네오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대충 제이나노와 나누었던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드와 라미아가 떠난다는 것에서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틸도 마찬가지였다. 이드는 두 사람의 의문에 등 뒤쪽 막 전투가 끝나고 바쁘게 뭔가를 정리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돌아보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우선, 가디언 본부로 가죠. 가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제이나노도 같이 갈 거지?”
“물론이죠. 친구가 가는데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라는 뜻에서 배웅은 해 줘야지요.”
“좋아. 가디언 본부가 저쪽으로 가야 되지?”
이드와 제이나노는 천천히 파리 시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을 뒤따라오던 라미아가 세르네오와 틸에게 자신들이 파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었다. 둘은 바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잡으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세르네오는 가디언 본부를 운영하면서, 틸은 용병 일을 하면서 세상을 겪어 본 만큼 강한 힘을 바라는 군대나, 정부에 이드와 라미아가 발목을 잡힐 경우 그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할 거라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의 얼굴에는 오랜 지기를 떠나보내는 아쉬움만이 남아 있었다. 가디언 본부까지는 거리는 꽤 멀었다. 하지만 덕분에 파리 시내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는데, 몬스터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큰 건물 속으로 대피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저런 일이 벌어질 터였다. 그러나 오늘 왔던 몬스터들은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이드가 바질리스크에게 확실히 말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친인이 있다고. 그들이 가디언 본부에 다다른 것은 병원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만이었다. 가디언 본부 앞 정문에는 여전히 디엔과 디엔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두 사람도 몬스터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디엔은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라미아에게 달려가 푹 안겼다.
“아우~ 우리 귀여운 디엔. 이 누나가 말이야. 디엔을 무섭게 하는 괴물들을 모두 쫓아 버렸단다. 누나 잘했지?”
“응, 누나 고마워. 누나 정말 좋아. 쪽.”
디엔은 라미아의 볼에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라미아는 다시 한번 디엔을 안아 올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 표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라미아는 디엔을 내려놓고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디엔, 누나하고, 형은 할 일이 있어서 또 가 봐야 해. 누나가 다음에 올 때까지 장난치지 말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알았지?”
“흐응… 안 가면 안 돼? 지금 왔잖아.”
라미아는 디엔의 말에 곱게 웃으며 자신의 아공간에서 스크롤 세 장을 끄집어 냈다.
“자, 이것 줄게. 디엔이 정말, 정말 누나하고 형이 보고 싶으면, 또 찢어. 그럼 누나하고 형이 올게. 그리고 또 괴물이 우리 디엔을 괴롭히려 와도 찢고. 알았지?”
디엔은 자신의 손에 쥐어 주는 스크롤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제이나노와 세르네오를 바라보았다.
“정말 급한 일이 있으면, 불러요. 올 수 있으면 올 테니까.”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디엔이 들고 있는 스크롤을 가리켜 보였다. 세 장이나 주었으니, 알아서 쓰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도 그런 뜻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말 바로 갈 거야? 이제 곧 점심시간인데…”
그 말에 이드와 라미아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니. 우리도 할 일이 있거든. 지금도 하던 일을 팽개치고 달려온 거야. 점심도 그곳에 있고.”
“그럼. 다음에 봐요. 그리고 세르네오, 혹시라도 그 말뿐인 장군이란 인간이 와서 묻거든 무조건 모른다고 딱 잡아 떼 버려.”
세르네오는 이드의 말에 걱정 말라는 듯 두 팔을 활짝 펴 보였다.
“걱정 마. 이곳이 어디야? 바로 천하의 가디언 본부라구. 여기서는 설사 대통령이라도 자기 맘대로 못 해.”
이드와 라미아는 그녀의 자신만만한 말투에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볼 일이 있으면….”
“두 사람에게 리포제투스님의 축복이 함께하실 거예요.”
“어이, 다음엔 꼭 붙어 보기다.”
“누나, 형. 다음에 꼭 와야 돼. 알았지.”
각각의 인사말에 미소로 답하며 라미아는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순간 모두의 눈에 빛의 잔상만이 남았다. 하지만 라미아와 이드, 두 사람은 알까? 지금 돌아가면 텅 비어 버린 소풍 바구니뿐이란 것을. 그리고 그 위에 남아 있는 독수리 깃털의 의미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