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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232화


“저기, 언니.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곳 말이야. 소위 뒷골목이라고 말하는 곳 아니야?”

조금은 어두운 건물 사이사이로 빠지는 좁은 골목길을 비켜나가던 라미아가 앞서 걸어가는 센티를 불렀다.

“응. 맞아.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나지?”

마치 멋있지? 라고 묻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이드는 주위를 돌아 보았다. 하지만 멋있다는 말을 해주기엔 좀 힘들었다. 햇살이 닿지 않아 색이 바래버린 건물의 벽들 사이로 나있는 골목길. 거기에 더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뭉클거리는 이 길에서 분위기라. 절래절래. 고개가 저절로 저어졌다. 별로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이런 곳을 멋지게 느낄 정도로 이드의 감성은 특별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으로 온 거야? 언니 친구 소개시켜 준다고 했잖아.”

그랬다. 지금 이드와 라미아를 이곳으로 안내해온 것은 센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주겠다는 말 때문이었다. 헌데 갑자기 뒷골목이라니. 이상했다. 자세히 살피지 않아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이 뒷골목에는 작은 집도 지어져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라미아의 물음에 센티는 뭔가를 감추고 있는 사람처럼 씨익 웃어 보였다.

“내 친구가 여기 있으니까.”

이드는 그 말에 주위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곳에 집이 있을 리는 없고, 이런 곳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친구분. 도둑 이예요?”

짝, 소리를 내며 라미아의 손바닥이 마주쳤다.

“맞아, 도둑이라면 이런 곳에서…”

라미아는 순간 그레센의 도적길드를 생각해냈다. 몸도 약하다면서 도둑친구는 언제 사귄건지. 라미아는 대답해보라는 듯 센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얼굴에 조금 전과 같은 미소를 떠올리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땡~! 아쉽지만 틀렸어. 지금은 도둑이 아니거든.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제로가 이 도시를 장악한 뒤로는 도둑질이나 강도같은 짓은 못해. 가디언 정도의 실력을 가진 도둑이 아니라면 말이야. 뭐, 그 정도 실력을 가졌다면 도둑으로 활동할 이유도 없겠지만…”

“그거 혹시 제로에게 장악 당한 도시의 치안이 좋아졌다는 것과 상관있는 거야?”

이드는 센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가디언 본부에 있으면서 제로의 도시치안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 솔직히 그럴 줄은 몰랐는데… 제로의 사람들은 능력자로서의 능력을 사용하더라고. 경찰들이야 그냥 따돌리면 그만이고 들키지만 안으면 장땡인데. 이 능력자들은 그게 안돼더래. 어디에 숨어도, 아무도 모르게 물건을 훔쳐도, 정령술이나 마법같은 걸로 귀신같이 알아내서는 찾아와서 그 일을 한 녀석만 잡아간다는 거야. 그러니 어떻게 도둑질을 하겠니? 아무리 도둑질을 잘해도 결국은 잡혀가는데. 거기다 유치(留置)기간도 보통의 두 배나 되니까 도둑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거지. 요즘은 도둑들이 경찰들을 그리워한다니까. 그 사람들하고 라면 쫓고 쫓기는 맛이 있지만, 이 능력자들은 그런 것도 없이 갑자기 들어와서는 달랑 잡아 가버리니까 말야.”

“확실히 정령이나 마법을 사용하면 그런 일이야 간단하지.”

“하지만 그건 이렇게 도시를 장악했을 때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지, 국가에서는 하지 못하는 일이죠.”

이드는 자신을 바라보고 답하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나의 국가를 대상으로 해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레센에서 도둑이란 존재가 사라졌을 것이다. 하나의 국가를 대상으로 이런 방법을 사용하기엔 마법사와 정령사가 모자란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수 백, 수 천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그만큼의 능력자들도 없거니와 일을 시작했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과로로 쓰러져 버릴 것이다. 대신 이렇게 도시를 장악하는 경우에는 그 관리 범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싸그리 잡아 내는게 가능해지기도 한다. 일 예로 그레센 국가간의 전쟁 중에 정복된 영지나 마을에서 오히려 도둑이 줄어버리는 경우도 있는 것도 이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법사와 정령사들이 사라지고 나면 도둑은 다시 생겨난다. 인간들이 존재하는 한 도둑이란 것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곳 지그레브 또한 마찬가지.

“그럼 언니 친구 분이란 분은 이런 곳에서 뭘 하는거죠? 지금은 도둑이 아니라면서요.”

골목이 끝나 가는지 골목의 끝이 햇살로 반짝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보장사를 시작했어.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몰래 엿듣거나 엿듣고 알려주지.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것도 일종의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어. 음… 아까 땡! 한 걸 취소하고 딩동댕으로 바꿔야 되겠다. 정보가 곧 돈인 지금 세상에 그것도 도둑질이지.”

그때였다. 센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 하나의 호리호리한 인영의 그림자가 생기더니 낭랑한 날카로운 목소리가 골목 안을 울렸다.

“자~알 한다. 아주 시장바닥에서 떠들고 다니지 그러냐? 온 지그레브 사람들이 다 듣게 말이야. 도대체 정신이 있어 없어?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로 때문에 몸조심하고 있는데!”

그 말에 센티가 낼름 혀를 내어 물며 골목길을 나섰다. 그와 함께 보이는 상대의 모습은 신경질적으로 생긴 십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아하하… 미안. 나와 있는 줄 몰랐지. 자, 이쪽은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소꿉친구 호로. 그리고 이쪽은 일이 있어서 지그레브에 찾아온 가디언인 이드와 라미아. 인사해.”

그녀의 소개에 이드와 라미아는 간단히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반대로 호로라 불린 여성은 잠시 굳어진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다 센티의 목을 잡고 흔들었다. 그녀가 센티를 바라보는 눈은 마치 철천지원수를 바라보는 듯한 그런 눈길이었다.

“네가, 네가 결국 우리들을 파멸로 몰고 가려고 작정을 했구나. 가디언이라니… 우리가 하는 일을 가디언한테 알려줘? 죽어라!!”

“케엑… 커컥… 그… 그게…. 아…”

정말 숨이 넘어가는 소리다. 호로는 센티가 말도 못하고서 얼굴을 파랗게 물들일 때가 되서야 놓아주었다. 그것도 때마침 들려온 라미아의 말이 있었던 덕분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명년오늘이 센티의 제삿날이 될 뻔했다.

“좋아. 내가 이 두 사람을 봐서 한번 봐준다. 너 또 한번 아무한테나 그렇게 입을 놀리면… 정말 묻어 버릴거야.”

“커컥… 내가 다 이야기 할만하니까 했지. 어디 내가 너한테 안 좋은 일 한적 있어?”

분하다는 듯 발끈해서 소리치는 센티였다. 하지만 은근히 자신을 노려보는 호로의 표정에 가만히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방금의 말은 그녀로서도 찔리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센티를 눈빛으로 침묵시킨 호로는 자신을 다시 소개하고는 두 사람을 그녀의 천막으로 안내했다. 골목의 끝. 그곳엔 높은 건물들에 둘러 쌓인 커다란 공터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일부러 만들어 놓은 듯한 이 공터는 건물들 사이사이로 나있는 십여 개의 골목길의 중앙에 위치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여러 개의 굴을 파두는 여우 굴 같았다. 그리고 그 공터를 따라 여러 개의 천막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십여 명의 남자들이 각자 편한 자세로 흩어져 있었다. 이드와 라미아는 호로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들의 뜨거운 눈길을 받아 넘겨야 했다. 하지만 호로와 같이 있는 때문인지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천막은 상당히 간단하고 또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여기저기 손을 본 흔적이 있는데 반해서 천막 안을 채우는 물건은 많지가 않았던 것이다. 호로는 자신의 업무를 보던 자리에 앉으며 일행들에게 반대쪽에 놓인 자리를 권했다.

“근데, 무슨 일로 온 거야? 가디언까지 데리고서… 부탁할 거라도 있어?”

그렇게 말하는 호로의 시선이 이드와 라미아를 향했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제로의 정보를 원할지도 모른다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어진 센티의 말은 두 사람이 원하는 정보가 뭘까하고 생각하던 호로를 힘 빠지게 만들었다.

“아니, 그냥 놀러온 거야. 내가 친구 소개해주겠다고 데리고 온 거지.”

“… 하아~ 센티.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만 여긴 아무나 함부로 데려오는 곳이 아니야. 알겠어? 위험하다면 위험할 수 있는 곳이란 말이야. 아무나 데려오면, 너도, 우리도 위험할 수가 있다구. 그러니까…”

그 후 꽤 오랜 시간. 호로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흐음… 내공이란 걸로 이 녀석 몸 약한걸 낳게 해줬다니, 우선 고마워. 그런데 가디언들이 이곳엔 무슨 일로 온 거야? 아직 한번도 제로에게 장악된 도시를 가디언이 되찾기 위해 싸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야.”

가디언이라면 떠오르는 게 그저 전투밖에 없는 건가? 순간 그런 생각이 이드의 머리를 스쳤다.

“아니요. 센트 누나에게도 말했지만 싸우려고 온 게 아니죠. 그저 만나러 온 거예요. 가디언으로서가 아니라 능력자로서. 게다가 저희 둘은 가디언이긴 하지만 명령을 받진 않아요. 그러니까 가디언으로 보지 마세요.”

“뭐, 그렇다면 그런 걸로 알겠어.”

이드의 말에 쉽게 대답한 호로는 한쪽에서 음료를 들고 와 권하며 슬쩍 지나가는 투로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요즘 제로가 몬스터와 같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있거든. 제로가 장악하고 있던 도시에서 제로의 대원들이 떠나는 경우도 있고. 그거… 사실이야?”

역시 정보길드란 말이 맞긴 한 모양이다. 그 소문을 가디언인 이드와 라미아를 통해 확인하려고 하다니 말이다.

“네, 맞아요.”

숨길 필요는 없다. 세르네오가 비밀로 해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기 있는 제로의 대원들도… 도시를 떠나게 되나?”

조심스럽게 묻는다. 하기사 정보장사 이전에 도둑이었으니 상당히 관심이 갈만한 의문일 것이다. 제로가 떠나면 다시 도둑으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는 호로의 그 기대 어린 눈길에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아니요. 떠나지 않을 겁니다. 이미 떠날 제로의 대원들은 모두 도시를 버리고 떠났으니까요. 이곳을 비롯해 몇 몇 도시에 남은 제로의 대원들은 그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죠. 몬스터와 같은 편이 되기 싫다는…”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잠깐동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쳇, 좋다 말았네. 대장이 하라면 군말 없이 따를 것이지.”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녀의 눈에 별다른 불만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도시를 버리고 몬스터와 함께 움직이지 않은 지그레브의 제로 대원들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느낌이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들의 도둑생활 이전에 몬스터가 문제일 테니, 그런 몬스터에 붙지 않은 걸 좋게 생각한 모양이다.

“근데 이곳에 있는 제로의 대원들. 모두 얼마나 되는지 혹시 알아요?”

사각형의 작은 퍼즐조각을 만지작거리며 라미아가 물었다. 호로의 천막을 장식하던 물품 중의 하나인 알록달록한 색깔의 퍼즐이었다.

“글쎄, 정확하진 않아. 너희들도 들었겠지만 직접 만날 기회가 드물거든. 그렇다고 그 놈들이 머무는 곳에 침입할 수도 없고. 대충 오십 명 내외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야.”

“그럼 그 중에 혹시 누가 대장은요?”

그 말에 호로는 잠깐 기다리라는 듯 한 손을 들어 보이고는 책상 서랍에서 몇 가지 서류를 꺼내 뒤적였다. 이번 질문에 대해서는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음, 새로 들어온 소식은 없군. 앞서와 같이 대장이 누군지도 불분명해. 확인한 바로는 명령을 내린 사람은 세 사람이 있어.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

“어떻게 생긴 사람들인데요?”

“원래 이거 정보료 받아야 하는 거야. 알아만 둬. 센티에게 내공을 가르쳤다니까 그냥 가르쳐 주는 거야. 우선 두 남자 중 한 명은 검을 사용하는 사람인데,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아. 이름은 페인 숀. 나이는 삼 십대 중반에 평범한 얼굴. 그리고 머리는 마음대로야. 몇 번 볼 때마다 엉망인데, 전혀 손질을 하지 않는 모양이야. 딱 봐서 번개 맞은 머리면 이자야. 다른 남자는 퓨라는 이름의 마법산데, 이 놈에 대해서는 정말 몰라. 항상 로브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본 적도 없고, 목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어. 남은 여자는 데스티스라는 이름이었는데, 장님인 것 같더라. 항상 두 눈을 감고 다녀. 이게 우리가 모은 정보의 모든 것이야. 제로에 대해서는 하나, 하나가 정말 알아내기 힘들어. 근데 이런 건 알아서 뭐 하려는 거야?”

“제로의 대원들을 만나려고 온 거잖아요. 최소한 상대가 누군지는 알아야죠.”

그 말 대로였다. 누군가를 만날 때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조금이라도 있는 편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보장사를 하는 호로가 가장 잘 알고 사실이었다. 그때 천막의 입구 부분이 슬쩍 벌어지며 가느다란 실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봐. 사장. 손님 왔어.”

그 말에 호로는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 봉투를 손에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기다릴래? 손님 접대는 금방 끝나는데.”

“아니, 일 봐. 우린 그만 가볼게.”

호로는 센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사람은 함께 천막을 나섰다. 들어올 때와는 달리 공터에 나와 있던 사람들은 없었다. 단지 한 천막 주위에 세 명의 남자가 빈둥거리듯 서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저곳에 손님이란 사람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천막을 나선 네 사람은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어느새 햇빛이 하늘 꼭대기에서 비추고 있었다. 덕분에 들어 올 때 어둡기만 하던 골목까지 환하게 햇살이 비쳐 들어왔다. 그것은 점심 시간이라도 같다는 말이 된다.

“오늘은 코제트가 일하는 식당으로 가서 점심 먹자. 그 집이 지그레브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점이거든.”

이드와 라미아로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좋은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자는데 뭐 때문에 반대를 할 것인가. 다만, 그렇게 유명한 음식점이라면 자리가 있을지가 걱정될 뿐이었다. 식당으로 향하는 동안 센티가 코제트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그녀에게서 들은 코제트는 음식점을 하는 게 꿈이라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음식을 맛있게 만들 줄 아는 코제트였기에 식당을 운영하는 걸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식당을 운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이 년 전 지금의 음식점에 취직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식당의 최고 인기인이라고 한다. 주방에서는 그 특유의 요리 솜씨로 부 주방장의 위치에 있고, 손님들에겐 모델 급의 몸매에 금발의 탐스런 머리를 가진 웨이트레스로 인기인 것이다. 물론 그 손님들이란 대부분이 남자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식당 앞은 상당히 북적거리고 있었다. 이 층의 건물을 통째로 식당으로 운영하고 있으면서도 식당에 들어가길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인기 있는 식당인 모양이긴 한 것 같았다. 이드는 역시 생각 대로라는 생각을 하며 센티를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은걸. 그냥 집으로 가는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 말에 센티는 검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경험 없는 동생을 데리고 술집에 들어가는 형과 같은 투로 말을 했다.

“노. 노. 노. 저 ‘캐비타’는 항상 저래. 저기서 식사를 하려면 그냥 가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기다리기 싫다면 식사시간이 아닐 때 찾아오는 방법 뿐이야. 더구나 예약도 받지 않아. 특별히 이층 전체를 빌린다면 예약을 받아주지만, 그때도 이층 전체를 채울 정도의 인원이라야 된다는 조건이 붙을 정도야. 한마디로 ‘캐비타’의 요리를 먹으려면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건 당연한 거란 이야기지.”

그렇다면 저렇게 기다릴 걸 알고 찾아왔다는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드로서는 저기 끼어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저기 사람들 사이에 끼어 부대끼긴 싫었다. 특히 라미아가 있을 때는 그 정도가 심해지지 않던가. 그 생각이 라미아에게 흘렀는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싫어요. 언니, 언니가 대표로 가서 서 있어요. 저희는 여기서 들어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호오~ 나도 그래주고 싶지만 어쩌지? ‘캐비타’ 주인이 같이 오는 사람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서 마련한 건지 모르겠지만, 줄 서는데도 규칙이 있거든. 들어와서 먹을 사람들은 전부 앞에 와서 기다리라는 것. 대표로 세워두는 건 없어. 그렇게 되면 그 서 있던 사람만 들어가서 식사할 수 있지. 그리고 여기서도 예외는 있는데, 노약자와 장애인은 사람을 대신 세워도 되고, 그냥 예약을 해둬도 돼. 하지만… 너희 둘은 거기 해당되지 않는단 말이야. 히히히!”

끝에 미소짓는 센티의 표정은 꼭 배부른 고양이가 자신의 눈앞에 지나가는 생쥐를 어떻게 가지고 놀까 생각할 때 지어 보이는 것과 같은 표정이었다. 방금 전 도둑친구를 소개한 것도 그렇고, 이런 이상한 규칙들이 있는 식당에 안내한 것도 그렇고, 오늘은 두 사람을 놀리려고 나온 게 아닌가 생각되는 센티였다. 결국 이드와 라미아는 식사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대열 맨 뒤쪽에 가서 섰다. 그러자 하나, 하나 모여들기 시작하는 주위의 시선들. 이미 각오한 것들이었다. 이드와 라미아는 그 시선들을 모두 흘려보내며 멍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드들 앞으로 이십 명 정도의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이드들의 차례까지는 시간이 제법 많이 걸릴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이드의 생각과는 달리 줄은 금세 줄어들었다. 요리가 맛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빨리 먹는 건지, 아니면 옆에서 빨리 먹으라고 재촉하는 사람이 있는 건지. 세 사람은 이십 분이 채 되지 않아 식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푸른색으로 통일된 단순한 복장에 갈색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성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저 모습을 보면 앞서 온 사람들에게도 저렇게 고개를 숙였을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하루에 적어도 수 백, 수 천 명이 드나들 듯한 이곳 ‘캐비타’에서 저렇게 인사하면 목이 아프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고개를 숙였다 다시 들어서 손님을 확인하던 웨이트레스 아가씨 이드의 일행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는지 순간적으로 앗! 하는 표정이더니 곧 얼굴 가득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양쪽으로 묶어 내린 머리와 어울려 상당히 귀엽게 보였다.

“오랜만이네, 센티. 그 동안 잘 들르지도 않더니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부셔서 왕림하셨나?”

“하하… 조금 바빠서 말이야. 근데 우리 자리 안내 안 해줘? 여기 나만 있는 게 아니라구. 오늘 내가 여기 매상 올려주려고 모처럼 손님도 모셔왔는데 말이야.”

그녀의 말에 웨이트레스는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드는 순간 벌써 이드와 라미아의 존재는 확실히 그녀의 뇌리에 새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세 사람을 비어있는 식탁 중 하나에 안내했다. 어차피 하나 밖에 비어있지 않은 식탁이라 따로 찾을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식탁이 자리한 곳은 제법 괜찮은 위치였다. 벽 쪽에 붙어 있긴 했지만 위치 상 가게 안의 정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라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웨이트레스는 같이 들고 왔던 물 잔을 내려두고 손에 작은 메모지와 볼펜을 들었다.

“자, 그럼 뭐 먹을래? 뭘 드시겠어요?”

“… 왜 저 두 사람에게 말할 때하고 나한테 말할 때가 틀려지는 거야?”

하지만 센티의 그런 투정에도 웨이트레스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시해 버렸다.

“잔말 말고 빨리 주문이나 해!”

“… 코제트는 주방에 들어가 있는 거야?”

“당연히. 이렇게 바쁜 시간인데 당연한 거 아냐?”

센티는 그 말에 코제트에게 식사를 맡겨 버렸다. 이드와 라미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먹어보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끙끙거리기보다는 만드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는 게 몇 배 나은 것이다. 이드는 웨이트레스 아가씨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식당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넓은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갖가지 다양한 요리를 기다리거나 먹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기대감과 만족감이 감돌고 있었다. 맛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았다. 그때 센티의 목소리가 이드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너희들 제로를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할 거야?”

말을 꺼낸 그녀의 눈엔 때 이른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곧 나올 요리를 기다리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이곳에서의 일을 마치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쉬웠다. 자신의 성격이 괄괄해서 여기저기 빨빨거리고 다니긴 했지만, 몸이 약한 관계로 한계가 있었다. 덕분에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의 수도 적었다. 호로를 제외하고도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은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일주일에 한번 만나보기 힘들었다. 그 외에 코제트가 있긴 했지만, 식당 일로 몸이 바쁜 그녀는 이렇게 센티가 직접 찾아와서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외의 시간은 집에서 므린씨와 함께 보내는 것이다. 성격이 괄괄한 것 역시 이런 생활을 좀 쉽게 풀어가기 위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런 생활 중에 이드와 라미아가 나타난 것이다. 자신의 건강을 찾아 줬으며, 몇 일간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었다. 그런 그들이 떠난다는 생각이 들자 잡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이런 센티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라미아가 간단히 대답했다.

“제로의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대답을 해주느냐, 해주지 않느냐에 따라서 목적지가 달라지겠지만, 일 주일 후엔 떠날 거야.”

“흐음… 그럼 말이야. 그 일이란 거. 바쁘지 않으면 좀 더 우리 집에 머무르지 않을래?”

그 말에 라미아가 센티를 멀뚱이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뭐, 별 뜻은 없지만 너무 일찍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워. 또 우리 아버지도 만나보지 못했잖아. 내가 그 내공이란 걸 배운 걸 아시면 너희들을 보고 싶어 하실 텐데 말이야. 그러니까 좀 더 머물다 가라.”

그 말에 라미아는 빙긋 웃었다. 센티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 몇 마디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을 때였다. 코제트와 처음 들어설 때 봤던 웨이트레스가 커다란 쟁반에 먹음직스런 요리들을 담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여기 너희들이 먹을 것 나왔다. 그런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코제트는 요리들을 내려두고는 비어있는 의자에 턱하니 앉아서는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식사시간은 요리사에게 있어서 가장 바쁘고 힘든 시간일 것이다. 더구나 이곳처럼 수 백 명의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서 쉬지 않고 요리를 준비하다 보면 금세 지쳐버린다. 남자도 중간중간 쉬어 주어야 하는데, 그보다 체력 면에서 떨어지는 여성은 어떻겠는가. 더 자주 쉬어 줘야 하는 것이다. 요리를 하다가 쓰러지게 할 생각이 없다면 말이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코제트가 쉬는 시간이었다.

“별건 아니야. 근데 쉬는 시간이면 우리하고 같이 먹지 않을래? 어차피 점심은 아직 안 먹었을 거 아니야.”

“안돼! 요리사가 요리할 때 배가 부르면 요리 맛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넌 내가 저번에 말해 줬는데 그새 까먹었니?”

코제트의 가벼운 핀잔에 센티가 혀를 쏙 내밀었다. 그때였다.

“크아아악!!”

이층으로부터 쿠당탕하며 뭔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갑작스런 소리에 혀를 빼물던 센티는 그만 혀를 깨물어 그 고통에 찬 비명 못지 않은 고통스런 비명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고, 일층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요리들이 목에 걸리는 등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모르긴 몰라도 체한 사람도 꽤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일층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한데 모여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향했을 때 다시 한번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악!!”

앞선 고통에 비명과는 달리 이번엔 놀람과 공포에 찬 여성의 비명소리였다.

“피아!”

그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멍하니 앉아 있던 코제트와 센티가 벌떡 일어났다. 지금 들린 비명성의 주인이 그녀들이 아는 사람인 듯 했다. 비명소리를 이어 다시 한번 뭔가가 부셔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출발 신호였다. 코제트와 센티가 급히 이층으로 발길을 옮기려는 것이다. 이드는 그런 두 사람을 급하게 붙잡았다. 아무리 상황이 급한 것 같다지만 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별다른 대처능력이 없는 사람이 뛰어드는 것은 상황의 악화만을 불러올 뿐이었다. 이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코제트의 손목을 놓으면서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잖아요. 제가 앞장서죠.”

그 뒤를 자연히 라미아가 뒤따랐고, 코제트와 센티도 그제야 자신들이 너무 급하게 서둘렀다는 것을 알고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이 층으로 향해 있는 계단은 그리 많지 않았다.

“피 냄새.”

이드는 몇 개의 계단을 밝았을 때 비릿한 혈향을 맞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혈향이 날 정도라면 꽤나 피를 많이 흘렸을 것이다. 제일 처음 비명을 지른 사람의 피가 아닐까 생각된다. 처음의 비명은 고통으로 인해 흘러나오는 비명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 층으로 올라선 이드의 눈에 보이는 것은 계단의 반대쪽에 구깃구깃 몰려 있는 식당의 손님들과 그 손님들의 앞쪽에 주저앉아 떨고 있는 웨이트레스. 그녀는 이드들이 식당에 들어설 때 맞아준 웨이트레스였다. 아마 그녀가 피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녀와 이드들이 올라온 사이에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문제의 인물들이 있었다. 칙칙한 푸른빛에 붉은 핏방울을 떨어트리고 있는 단검을 쥔 남자와 한 쪽 팔이 잘리고 배에 긴 검상을 입고서 쓰러져 간신히 호흡을 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 앞에서 반 동강 나버린 롱소드를 들고서 있는 검은 머리의 동양인 남자. 그 중 요사한 푸른빛이 흐르는 단검을 쥐고 있는 남자의 눈에 은은한 혈광이 흐르고 있는 것이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이드가 물었다. 딱히 누군가를 정해서 의문을 표한 것은 아니었다.

“크르르르…”

하지만 이런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이드는 자신의 말에 팩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혈광이 넘실거리는 안광을 발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내심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와 마주서 있던 동양인 남자가 그대로 몸을 날렸다. 소리도 없이 조용히 몸을 던진 것이다. 보통의 상황이라면 거의가 성공을 할 공격이다. 그러나 미친놈은 상상외의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혈광이 넘실거리는 남자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단순히 휘둘렀을 뿐인데도 그 엄청난 속도와 힘 때문에 일류 고수의 일 초를 보는 듯 느껴졌다.

“크윽…. “

몸을 날렸던 동양인 남자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짧은 단검을 바라보며 급히 검을 끌어당기며 몸을 웅크리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가슴에서 몸이 이등분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막 몸의 동작이 끝났다고 생각된 순간.

투아아앙!!

마치 해머로 쇳덩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양인 남자의 몸은 그대로 계단을 향해 튕겨 날아갔다. 정말 단순한 완력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괴물 같은 힘이었다.

“확실히 이상이 있는 놈이야.”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남자의 등을 향해 한 쪽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드의 손이 그 남자의 등에 닿는 순간 날아오던 모든 힘이 이드의 팔을 통해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렸다.

투화아아아…

이드는 손을 움직여 그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마치 솜뭉치를 움직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힘의 흐름을 읽고 따르는 화경(化經)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땅바닥에 내려앉을 때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이미 반 동강이 되어 버렸던 검이 다시 한번 반으로 부러져 버렸다. 검에 가해진 충격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충격이 그대로 동양인 남자에게 전해져 버렸다가 이드가 그것을 풀어 버리자, 그때서야 검에 갇혀 눌려 있던 힘에 검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을 하자면 절정고수 소리를 들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저 남자는 단순한 힘만으로 이런 일을 해낸 것이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드는 검격의 충격으로 팔이 굳어버린 남자를 향해 물었다.

“… 버서커의 저주가 걸린 단검이다.”

“푸우~”

이드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설명은 짧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완벽한 내용을 담은 설명이기도 했다. 버서커. 일명 광전사(狂戰士)라 불리는 그들은 극도의 분노를 느끼는 한순간 분노의 정령에 지배를 받아 탄생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언제나 어떤 버서커나 똑같았다. 피의 향연. 버서커로 변해 버리는 순간 오로지 피만을 볼 뿐인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버서커로 변하는 순간 모든 육체적인 기운과 생명의 기운을 극도로 뽑아내서 사용하기 때문에 금방 죽어버린다는 점이다. 덕분에 혈풍이 불어도 오래가진 못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착안해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버서커의 저주라는 마법 물품이다. 버서커는 한번 변해 버리면 그 엄청난 힘으로 모든 것을 파괴한다. 하지만 그 버서커를 변신과 해제가 가능하게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탄생한 물품으로 위급할 때 이를 사용함으로서 스스로 버서커가 되어 상대를 도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물품 자체가 정신에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결과가 좋지 않아 사용하지 않는 물품이었다. 헌데 그런 물건을 지금 저 사내가 들고서 폭주 기관차처럼 씨근덕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 될 수 있는 한 빨리 재우는 게 모두에게 좋겠군.”

그 말과 함께 슬쩍 들려진 이드의 손가락 끝에 매우 허허로운 기운이 맺히더니 한순간 허공중에 녹아 들어가 버렸다. 무음, 무성의 천허천강지(天虛天剛指)가 시전 된 것이다. 하지만 버서커도 단순히 이름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천허천강지가 이드의 손가락 끝에서 발출되는 순간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는지 그대로 몸을 옆으로 날린 것이다. 덕분에 지강은 그가 있던 자리를 지나 바닥에 내리 꽂혔다.

“끼… 끼아아아악!!!”

그게 하필이면 피아의 바로 옆이란 게 문제였다. 갑작스레 바로 발 옆의 바닥이 푹 파이자 그녀가 다시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이런, 이런….”

이드는 피아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머리를 긁적였다. 조금만 운이 없었다면 그녀나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지강에 격중 되었을 것이다.

“크르륵… 크르륵…”

천허천강지의 흔적을 바라본 버서커 남자가 이드를 바라보며 비웃듯 그르륵 거렸다. 이드는 그 모습에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그대로 몸을 날렸다.

“미친놈이 누굴 비웃는 거야! 분뢰보!”

이드의 고함소리와 함께 이드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버서커의 사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의 빠르기였다. 더구나 이드의 손은 어느새 버서커 남자의 어깨 견정혈(肩井穴)로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정확하게 정중되지는 못했다. 혈도를 모르면서도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건지 피하지는 못하고 몸을 돌린 것이다. 덕분에 이드의 손가락은 목표에서 벗어나 버서커의 가슴을 찔러버렸다. 하지만 점혈을 위한 지공이라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버서커에게 공격의 기회를 주게 된 덕분에 이드는 자신의 배심으로 다가오는 단검을 피해내야 했다.

“좋아. 그럼… 우선 좀 맞아라!”

그 말과 동시에 이드의 사지로 차가운 묵색의 기운이 흘렀다 싶은 순간 이드의 몸이 자신을 피하려는 버서커를 향해 날랐다. 놈도 전력의 차는 확실히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버서커가 된 원판의 힘이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각철황격(馬脚鐵荒激)!!”

허공중에 검은색 몽둥이 같은 이드의 다리 그림자가 하나, 둘 만들어지며 버서커의 사방을 제압하며 죄어 들어왔다.

“크아아아악!!!”

놈은 자신이 빠져나갈 곳이 없음을 알았는지 커다란 고함을 내지르며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는 단검을 사방으로 휘둘렀다.

카캉.. 카캉… 퍼퍽… 카캉… 퍼퍽… 퍼벅…

검과 강기가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하지만 마구 휘두르는 것과 정확한 법칙대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엔 차이가 있는 것. 더구나 더 확실한 실력의 차가 있기 때문인지. 쇳소리 사이로 한번씩 이드의 발차기가 성공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많이 들려왔고 일 분 여가 지나는 순간부터는 오직 버서커의 몸에 이드의 각격이 적중되는 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이게 끝이다.”

이드는 마지막 일격으로 버서커의 턱을 차올리며 땅에 내려섰다. 그와 동시에 버서커 역시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털썩!

그대로 넘어간 버서커의 양팔은 뼈가 부러졌는지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손에 쥐어진 단검을 그대로 잡혀 있었다. 또한 그르륵 거리는 소리가 버서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만큼 무수한 타격을 받았으면서도 기절도 하지 않은 것이다. 실로 광전사라고 불릴 만한 것 같았다.

“정말 절정고수가 버서커로 변했다가는 큰일 나겠군.”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도 단검을 굳게 쥐고 있는 손의 혈도를 짚어 손에서 단검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단검이 떨어지는 순간. 그르륵 거리던 남자가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때를 기다린 듯 한 쪽에 몰려서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박수 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 모습이 마치 권투 시합을 끝낸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는 관중 같았다. 이드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죄 없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한 쪽 손을 바닥을 향해 살랑 흔들었다. 극히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그 순간 이드의 장심에서 흘러나온 내력이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옭아매어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드도 그 검을 직접 잡아들진 않았다. 아티팩트에 걸린 마법 정도에 쉽게 걸려들 이드는 아니지만, 이런 물건을 조심해서 나쁠 이유는 없는 때문이었다. 그 사이 심한 중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남자에게 다가갔던 라미아가 다가오며 고개를 흔들었다. 상처가 너무 심했고, 출혈이 너무 많았던 때문에 손을 쓰기 전에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그런 라미아의 모습에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축 늘어트리고 있던 남자가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이드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라미아에게 검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검을 잠시 바라보다 마법을 시전해 단검에 걸린 마법을 조사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마법이 꼬였어요. 이건 단순히 버서커의 저주란 마법만 걸린 게 아니라 스트렝스 마법에다 헤이스트 마법까지 걸려 있어요. 대충 오 백 년 이상은 묵은 검으로 보이는데,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마법들 간의 간섭이 있었던 모양이예요. 그러다 최근에 사용하면서 그것들이 이상 현상을 일으킨 거죠. 이건 사용 못 해요. 이젠.”

이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고 있는 동양인 앞에 검을 내려놓았다. 고장 나 버린 마법검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인이 있는 것. 자신이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제로다.”

누군가 아래층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뒤를 이어 몇 몇의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 층까지 들려왔다. 이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라미아를 바라보았다. 제로. 일주일이나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될 줄 알았던 그들이 이 자리에 온 것이다. 이곳의 사건을 듣고 달려온 듯 했다. 정부의 사람들은 모조리 내보낸 그들이기 때문에 경찰이 할 일도 그들이 하는 것이다. 잘만 하면 앞으로 몇 일이나 남은 기간을 한참 줄여 제로의 대원들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도 못한 일로 예상보다 빨리 만나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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