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권 –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흔히 우리가 『삼국지』라고 부르는 책에 대해 여기서 새삼 장황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삼국지』는 적어도 수백 년간 민간의 얘기꾼들, 저잣거리의 재간꾼, 불우한 서 생(書生), 할 일 없는 문사) 등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리돼온 역사소설이다. 우리가 흔히 『삼국지연의』의 저자로 알고 있는 나관중(羅貫)은 그 마지막에 나타나 이전에 있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취사 선택과 정리를 거쳐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시킨 사람 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와 용의주도하 게 비교 검토해가며 – 흔히 일곱푼[]의 진실과 세 푼의 허구로 얘기된다- 완결된 나관중의 경이로운 작업 뒤에도 『삼국지』는 여 러 판본(版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체제나 평문, 곁들인 시(詩) 따위의 차이로, 오늘날 중요하게 드는 것만도 홍치본(弘治本) 또는 嘉靖本), 이립옹본(李笠翁本), 이탁오본(李卓吾本), 모종강본(毛崗本)등이 있다.
내가 이 평역 『삼국지』를 시작하기 전에 굳이 대만을 찾은 것은 이미 전해지지 않거나 전해지더라도 우리로서는 입수할 수 없다고 알려진 여러 판본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길지 않은 체류기간 동안 나는 여러분의 도움을 입어 다행히도 이립옹본을 제외한 위의 여러 판본을 모두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검토한 결과 기대와는 달리 각 판본의 우열은 대개 시대순으로 나왔으며, 결국 그 힘든 수 집에서 내가 얻은 것은 어째서 오늘날 모본(本)만이 살아남게 되 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삼국지』를 평역하면서 모본은 그 앞 이탁오본(원명은 李卓吾先生 批評三國志)에서 역사나 인물에 관한 평(評)과 시(詩)를 나름의 안목 에서 바꾸고 김성탄(金聖嘆)의 서문을 단 것인데(여기 대해서는 김성탄 의 이름만 빌렸을 뿐, 위작이라는 주장이 많다) 오늘날 우리나라 『연의 삼 국지』의 대부분이 그걸 역본(本)으로 쓰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우 리나라의 『삼국지』 중에서 김구(金丘庸) 선생의 『삼국지』는 거의 대역(譯)이 가능할 만큼 충실하게 모본(本)을 따랐고, 월탄(月) 『삼국지』는 대강 의역(意譯)한 듯싶다.
따라서 판본을 모종강본으로 결정하자 이내 번역 방식에 문제가 생겼다. 그대로 번역만 한다면 약간 문장이 현대적이 되고 매끄러워 질 뿐, 본질적으로는 앞서 말한 두 『삼국지』와 다를 바가 없고, 따라 서 쓸데없는 노력의 중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다음에 참고로 떠오른 것이 일본의 요시가와 에이지[吉 川나 진순신(陳舜臣)의 방식이었다. 이 역시 참고로 말하면, 우 리나라에서는 고(故) 김광주(金光洲)선생의 그 도입부에서 독창을 보이신 것 외에 대개는 요시가와의 아류라는 혐의가 가는 것들이었 다. 일본식의 중국 이해가 간간 눈에 거슬리는 데다 연대와 사회상 이 잘 맞지 않는 곳도 더러 보였다. 진순신의 경우는 아직 씌어진 지 얼마가 안 돼 그 아류는 눈에 띄지 않는데, 무거운 것을 너무 가볍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나는 몇 가지 방식을 절충하기로 했다. 전체의 구도는 모본을 따르되, 시와 평문(文)은 가감하거나 내 자 신의 것으로 대체하고, 필요한 곳은 변형 · 재구성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특히 힘주어 밝혀두고 싶은 것은 변형과 재구성의 의도이 다. 그것은 구태여 내 『삼국지』를 다른 것과 구별시키기 위한 수단 이라기보다는 『삼국지』에다 현대적 소설 감각을 주기 위함 쪽에 더 큰 목적이 있었다. 흔히 『삼국지』가 우리에게 재미있고 유익하면서 도 어딘가 허황된 전설이나 신화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인물들의 등 장 방식 탓인 듯하다.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가 제대로 밝혀지 지 않은 채 한번 등장하면 곧 천하의 영웅이요 관인후덕한 군주거나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하는 재사) 또는 만부(萬夫)를 홀로 이겨 내는 신장(神將)이 된다. 따라서 도입부와 군데군데 필요한 곳에서 나는 변형과 재구성을 통해 중요한 인물들에게 리얼리티를 주려 했 다. 그러나 그 변형과 재구성은 철저하게 정사에 의지한 것이라 독 자를 한낱 말재주로 현혹시켜 역사를 그릇 알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믿는다.
그다음 이 『삼국지』의 특색으로 밝혀두고 싶은 것은 내가 곁들인 평문이다. 그 평문을 활용하면 이 『삼국지』 한 권으로 얘기하지 못 할 게 없다. 혁명, 권력의 정통성, 전쟁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역사· 철학·과학까지도 모두 거기 끌어들일 수 있다. 처음에 내가 가장 야 심을 부린 곳도 이 부분이었는데, 결과는 솔직히 부끄럽다. 모든 것 은커녕, 처음에 내가 의도했던 것도 다 얘기한 듯싶지 않다. 그러나 이 『삼국지』의 한 특색을 이룰 것임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 에서 감히 밝힌다.
끝으로 하나 더 말할 것은 뒷부분에서의 변형이다. 원전은 제갈량 의 사후가 거의 책 한 권에 가까운 분량이지만 나는 그 3분의 1로 줄여버렸다. 어차피 정사가 아닐 바에야, 박진감과 흥미에서 현저하 게 그 앞부분에 떨어지는 얘기들을 장황히 늘어놓을 필요가 없으리 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무턱댄 삭제가 아니라 주의 깊은 요약이 었던 만큼 중요한 사실(史實)은 원전과 다름없이 남아 있다.
이제 사년사 개월에 걸쳤던 곤혹스러웠던 작업은 끝났다. 내가 여기서 곤혹스럽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일간지 연재라는 발표 양식 말고도 이 작업이 순수한 문학적 창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이유 에서였다. 나이는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었지만 겨우 등단 사년 차의 신예 작가에게 『삼국지연의』 평역이 온당한 창작 활동일 수 있 는가, 하는 울적한 자문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보면 반드시지 난 사 년이 시간과 재능의 낭비였던 것 같지도 않다.
세월이 가면 똑같은 내용이라도 표현하는 방식과 이해하는 태도 가 달라진다. 이제 이 땅에서 번역되거나 재구성된 『삼국지』는 대개 가 한 세대 가까이 오래된 것이 됐다. 『삼국지』가 이 이상 더 읽혀서 는 안 될 책이라면 모르되, 그게 아니라면 이 작업은 이 시대의 누군 가가 해야 했다.
거기다가 듣기로 젊어서는 『삼국지』를 읽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중국 방문 때 들은 말을 허술하게 인용했 다. 원래 속담은 ‘젊어서는 『수호지』를 읽지 말고, 늙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 라’는 중국인들의 속담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이 『수호지』를 읽고 도둑 떼에 들 까 봐 걱정한 부분은 빠뜨린 게 민망스러우나, 늙어 『삼국지』를 읽는 해악은 뒤 집어보면 읽은 젊은이에게 유익함으로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어쨌든 부정확한 속담 인용은 여기서 뒤늦게 정정한다.-평역자 주).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삼국지』에는 젊은이들의 용기와 포부를 길러주고 지혜와 사려를 깊게 하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 를 통해 그 풍성한 『삼국지』의 과일을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그러잖 아도 꾀 많은 늙은이들이 더욱 잔꾀에 밝아질 우려가 있다 하더라도 지난 사 년여의 내 작업이 반드시 뜻없는 일이 되지는 않으리라 믿 는다.
1988년 3월
李文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