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권 – 2화 : 창천에 비끼는 노을
창천에 비끼는 노을
정치로부터 그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민중은 일쑤 종교가 내 세우는 축복과 구원을 믿고 기대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이 밝은치 자(者)는 민중이 지나치게 종교에 빠져드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헤아림이 깊은 식자(識者)는 오히려 그걸 근심한다. 어떤 가르침의 참됨과 거룩함은 종종 믿는 무리의 늘어남과 세속적인 가멸음[]이 쌓임에 반비례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열에 아홉은 정치로 춥고 허 기져 찾아간 민중의 몸과 마음을 더욱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믿음과 우러름을 사온 가르침에서조 차도, 그 회당이나 사원이 가장 크고 화려하며, 요란한 말과 몇 푼의 돈으로 구원을 사려는 무리가 가장 많을 때가 바로 그 가르침이 가 장 썩고 더럽혀진 때와 일치함을 자주 볼 수 있으니, 하물며 출발부터가 세상을 속이고 사람의 눈과 귀를 홀리는 사된 가르침에 있어서랴.
후한(後漢)도 저물어가는 영제 때의 세상이 또한 그러하였 다. 조정이 썩어 모든 관리가 벼슬하는 도둑놈, 즉 관비(官)라 불 릴 지경이 되니,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은 자연 요사스런 가르침에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그런 희평(熹) 오년 구월 어느 날이었다.
바람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風蕭蕭兮易水寒
장사 한번 떠남이여,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壯士一去兮不復還
이런 옛 전국시대의 협객 헝가荊軻)의 노래로 유명한 역수(易水) 가에 작은 초당이 하나 있었다. 병으로 벼슬길을 물러난 선비가 은 거하며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별채의 한 방에서는 다시 조정의 부 름을 받게 된 그 선비가 아끼는 두 제자를 불러놓고 천하 일을 근심 하고 있었다.
“지금 세상은 요사스런 기운으로 뒤덮여가고 있다. 한중漢中)지 방에는 장릉(陵), 장형(張衡) 부자로 이어지는 오두미도(五斗米道) 란게 널리 퍼지고 있고, 중원에는 도사 우길(吉)로부터 비롯된 이 른바 태평도(太平道)가 마른 풀밭에 이는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특 히 태평도는 몇 년 전 거록(鉅) 땅의 장각(張)이란 자가 자칭 남 화노선(仙)이란 늙은이로부터 태평경(太平經, 또는 태평요술)을 물려받은 뒤로부터 갑자기 세력이 늘어나 이제는 청주(靑州), 유주 (幽州), 연주(州), 기주(冀州)를 비롯해 멀리 서주(徐州), 양주(揚州), 예주(州), 형주(州)에까지 미치고 있다 한다. 머지않아 반드시 천 하의 큰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선비의 이름은 노식(盧植), 자, 관례 때 받는 이름) 는 자간(幹)으로 탁군(涿郡) 탁현이 고향이었다. 어려서부터 당대 의 석학인 마융(馬融)의 문하에 들어 역시 뒷날 큰 학자가 된 정현 (鄭玄) 등과 함께 배웠는데, 일찍 고금을 두루 통했다는 평을 들었 다. 그의 학풍은 정밀하면서도 장구(章句)에 얽매이는 법이 없었고, 한섬[石] 술을 마실 만큼 호방하였으나 시사(詞)는 그리 즐겨하지 않았다. 성정이 굳세고 절의를 숭상하였으며, 젊을 때부터 뜻이 커 서 크고 작은 지방관청[州郡]의 부름에는 응하지 않았다. 영제 건녕 (建寧) 연간(서력 168~172년)에 박사(博)로 처음 벼슬길에 나섰으 나 오래잖아 문무를 겸한 재주가 인정되어 구강(江) 태수를 제수 받고 남쪽 오랑캐[江]의 난을 평정했다.
뒷날 병을 얻어 고향인 탁군으로 돌아온 그는 병이 나은 뒤에도 어지러운 조정으로 돌아가는 대신 역수 가에 초당을 얽고 다시 학문 에 정진하여 『상서장구(尙書章句)』, 『삼례해고(三禮解詁)』등의 책을 쓰는 한편 그의 명성을 듣고 원근에서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위해 문 하를 열었다.
그러기를 몇 년. 다시 남쪽 오랑캐가 난을 일으키자 조정은 구강 태수 시절의 선정으로 그들 오랑캐의 신임과 존경을 받고 있는 그를 이번에는 여강(江) 태수로 불렀다. 따라서 할 수 없이 문하를 닫게 된 그는 여러 제자 가운데서도 특히 아끼던 그 두 사람을 불러 작별겸 뒷날을 위하여 당부삼아 천하 일을 말하고 있었다.
“방사니 술사(術)니하는 자들이나 무당과 점쟁이 따위가 간사한 말과 교묘한 속임수로 어리석은 백성들을 홀려 재물을 빼앗 고 부녀를 희롱하는 것은 전에도 있어온 일입니다. 때가 오면 스스 로 그 어리석음을 깨닫고 흩어져 생업으로 돌아가려니와, 오히려 천하를 위해 근심해야 할 염통과 창자의 병은 조정에 있지나 않을는 지요?”
아랫자리에 단정히 앉아 노식의 말을 듣고 있던 두 제자 가운데 서 하나가 조심스레 반문했다.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다른 하나 보다 대여섯은 더 많아 보이는 쪽이었다. 키가 여덟 자(이때의 자는 지 금보다 짧아 한 자가 24센티미터 정도)에 첫눈에 상대방을 압도할 만큼 위엄 있는 풍채였는데, 그에 못지않은 것이 우렁찬 목소리였다. 스 승 앞이라 낮춘다고 낮춘 것이지만, 마치 깊은 굴에서 울려나오는 호랑이의 울음이나 먼 데서 들려오는 우레소리처럼 방 안이 온통 그 울림으로 가득했다.
그 제자의 이름은 공손찬(公孫瓚), 자는 백규伯)였는데 요서遼 영지) 사람이었다. 한미한 집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고을의 낮은 벼슬아치 [郡吏]가 되었으나, 태수가 그 인물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외딸을 주어 사위로 삼은 뒤, 멀리 노식의 문하로 유학을 보내 주었다. 뒷날 동북의 효웅(梟雄)으로 천하의 원소(袁紹)와 자웅을 겨 루게 될 그를 진작에 알아본 태수의 안목도 놀랍지만 나이 이미 스 물을 넘고 처자까지 있는 몸으로 몇 년씩 집을 떠나 학문에 전념하고 있는 그 또한 분명 예사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보이는 정성이나 열의만큼 성취가 따라주지 못해 그것이 갑작스레 떠나야 하 는 스승에게는 한 가닥 아쉬움이었다.
따지고 보면 공손찬의 말은 일견 옳았다. 태평도를 믿는 무리가 날로 늘어가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하층 백성들 사이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아직 어떤 위험스런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보다는 궁궐 안에서 암우愚)한 천자를 싸고 돌며 갖은 못된 짓 을 다 저지르고 있는 열 명의 간특한 환관[常侍쪽이 병이라면 훨 씬 무서운 병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공손찬의 생각은 너무 단순하고 평범했다. 외척과 더불어 후한 사회를 안에서 무너지게 한 환관의 화는 이미 멀리 화 제 때부터 시작되었다. 환관이 정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중 상시(中)가 되고 난 뒤인데 원래 넷밖에 두지 못하게 된 그 중상 시가 열 명으로 늘어나 황제의 신임을 받게 되면서 외척을 당할 만 한 세력으로 자라난 탓이었다. 그러나 외척의 권위는 황제가 바뀌거 나 섭정하던 모후(母后)의 죽음으로 흔들리게 되지만, 환관은 비교 적 영향이 적어 그 뒤 몇 차례의 권력 다툼에서 환관은 항상 이길 수가 있었다. 화제 때 환관 정중(鄭衆)이 정권을 잡고 있던 외척 두 씨(竇일족을 죽이고 후侯)에 봉해진 일이나, 순(順) 때 손정 () 등 열아홉 명이 역시 외척 염현閻顯) 등을 죽이고 열후列侯) 가 된 일, 그리고 환제(桓帝) 때에 선초(單初), 당형(唐衡) 등이 대장 군 양기(梁冀)를 자살케 한 것과 영제 때에 조절(節) 등이 역시 대 장군 두무(竇武)를 자살케 한 것 따위가 그 대표적인 예였다.
거기다가 다시 두 번에 걸친 ‘당고(黨錮)의 화환관들이 깨끗한 선비 들을 당인(黨人)으로 몰아 내쫓은 일종의 당파 싸움)’를 일으켜 또 하나의 적대 세력인 이른바 청의(淸)라는 선비들을 조정에서 내몰고 죽이 자세상은 온전히 환관들의 것이 되고 말았다. 황제는 흔히 십상시 (十常侍)라고 불리는 열 명의 환관들에게 둘러싸인 허수아비가 되 고, 착하고 어진 이들이 모두 떠나버린 조정에는 환관들과 선을 댄 간신배들만 득실거리게 된 까닭이었다.
환관들은 개인적인 탐욕이나 그 위세에 기댄 피붙이[族黨]들의 횡 포로도 나라에 큰 해를 끼쳤지만 무엇보다도 큰 잘못은 황제에게 권 하여 공공연히 벼슬자리를 판 일이었다. 돈으로 산 벼슬이고 보니 모든 벼슬아치들은 그 밑천 뽑기에 바빠 심지어 이떤 곳에서는 세금 이 한 해 수확량의 몇 배에 이르기도 했다. 때로 외상으로 벼슬을 팔 기도 했는데, 그때는 벼슬자리의 값이 현금 때의 두 배 이상이었다 고 한다. 그러나 일년만 지나면 그걸 갚고도 남는 것이 있었다 하 니, 백성들이 당한 수탈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같은 일을 이미 한차례 벼슬살이를 한 적이 있는 노식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새삼 환관의 폐해를 말하는 제자를 약간 민 망스런 눈길로 내려보던 노식이 곧 타이르듯 말했다.
“백규의 말뜻은 알 만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종기나 드러난 병 은 다스리기가 쉽다. 네가 이제 말하고자 하는 십상시는 이미 선제 (先帝) 때부터 천하가 다 아는 한나라 조정[漢朝]의 종기요, 병이다. 머지않아 누군가에 의해 반드시 다스려질 것이다.
또 나도 지금은 여강 태수로 가지만 오래잖아 조정의 부름이 있을 것이다. 듣기에 채옹(邕), 양표(楊彪), 마일제(馬日磾), 한설(韓說) 등의 뜻을 같이하는 옛 벗들도 비록 동관(東觀, 궁중의 장서각)의 한직이긴 하나 이미 낙양에 돌아와 있다 한다. 모두가 충의로 힘을 합치면 길이 없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태평도의 무리는 이 나라의 숨은 종기요, 드러나지 않은 병이다. 아직은 아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으나 한번 겉으로 드러나 면 온몸의 피가 썩고 오장육부가 짓무르는 괴로움을 이 나라와 백성 들이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병(兵)을 풀어 잡아들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공손찬의 대꾸는 여전히 씩씩했다.
“아직은 아무것도 드러난 것이 없는데 무슨 죄목으로 그들을 잡 아들이겠느냐? 더구나 저들은 아직 백성들의 믿음과 사랑을 받고 있는 데 비해 관부(官府)는 오히려 도둑 떼보다 더 큰 미움과 원망을 받고 있다.”
그제서야 공손찬도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다. 스승의 뜻을 다시 한번 헤아려보려는 듯이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한구석에서 조용히 그들 사제 간이 주고받는 말을 듣고 있 던 다른 제자 하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특히 저희를 부르신 것은 달리 내리실 말씀이 있어 서인 줄 짐작되옵니다만………….”
어눌한 것 같으면서도 되도록 말수를 줄이려는 화법이었다. 이제 스승님의 뜻은 대강 짐작할 듯도 하오니 저희가 해야 할 바나 일러 주십시오, 란 뜻이 뒤에 숨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한없이 겸손하고 부드럽게 들렸다.
나이는 겨우 열일곱 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얼굴이었는데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크고 그윽한 눈이 며 우뚝한 코, 볼까지 축 늘어진 두툼한 귓밥이나 미소가 떠도는 듯 한 붉은 입술 같은 데서는 곁에 앉은 공손찬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공손찬의 위엄이 굳세고 거친 힘에 의지하고 있다면 그의 것은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덕에서 우러난 듯한 위엄이었다. 거기다가 일어서면 무릎까지 닿을 것 같은 긴 팔도 이 상하게 귀인의 상을 더하는 것 같았다.
그 소년의 성은 한실(漢)의 종친인 유(劉)요 이름은 비(備)에 자 는 현덕(德)으로, 스승인 노식과 마찬가지인 탁군 탁현이 고향이 었다. 핏줄로 따지면 전한(漢) 경제(景帝)의 현손이 되는데, 중산정 왕(中山) 유승(勝)의 아들 유정(劉貞)이 탁록정후(涿鹿亭侯)가 되면서 탁군에 자리 잡고 살게 된 유씨의 한 갈래였다.
그의 조부 유웅(劉雄)은 효렴(孝廉, 효자염리의 준말로 인구 이십 만에 한 명씩 뽑은 일종의 관리 등용 제도)에 뽑히어 동군(東郡)의 현령을 지 냈고, 그의 아비 유홍(劉弘)도 대를 이어 지방관리를 지냈으나, 그가 어렸을 적에 죽었다. 그 바람에 홀어머니의 밑에서 자라게 되니 자 연 살이가 어려워져 어렸을 때는 신을 삼고 돗자리를 짜 살림을 돕 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노식의 문하에 들어 배울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의 정성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집안 아저씨 뻘 되는 유원기(元起)의 도움 덕 분이었다. 유비의 비범함을 보고 일찍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어오던 그는 유비가 열다섯 나던 해 자신의 아들 유덕연(劉德然)과 나 란히 노식의 문하로 유학을 보냈다. 제법 나이 차가 남에도 유비와 공손찬이 형제처럼 마음을 터놓고 사귀게 된 것은 아마도 남의 도움 을 받아 배움을 얻게 된 서로의 비슷한 처지 때문이었으리라.
유비가 오히려 나이 든 공손찬보다 더 잘 자신의 속마음을 읽고 물어오자 노식은 대답 대신 잠시 미소와 함께 어린 제자를 바라보았 다.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묘한 느낌을 주는 아이였다. 남달리 잘생 긴 것도 아닌데, 여러 제자들 사이에 끼어 앉아 있으면 무슨 환한 빛 에라도 둘러싸인 듯 한눈에 드러나는 얼굴이었고, 일곱 자 다섯 치 의 키도 열 자가 넘는 다른 제자보다 더 우뚝해 보였다.
배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남다른 재주가 있는 것 같지도 않 고, 그렇다고 힘써 서책에 매달리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대강을 이 해하는 데는 누구보다 빨랐다. 거기다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사람 과의 사귐이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온화한 미소뿐 지나치리만큼 말 수가 적고, 움직임에도 애써 남의 비위를 맞추려 들려는 흔적이 보 이지 않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그와 사귀기를 원하는 동문들 이 몰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가르침에 엄격하여 제자들 앞에서는 좀체 웃음을 보이지 않는 노식 자신마저도 그 어린 제자만 대하면 까닭 없이 샘솟는 애정과 기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되고 마는 것이 었다.
잘 닦고 다듬으면 천하를 담을 만한 그릇, 어쩌면 내 삶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해도 이 아이를 가르친 일 하나만으로 충분할는 지 모른다. 그것이 유비를 대할 때마다 느껴지는 노식의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사실 갑작스런 조정의 부름을 받고 출사(出)의 결의를 굳힐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그 유비였다. 문하에 거 두어들인 지 겨우 이태 남짓, 아직은 학문도 제대로 터를 잡지 못한 어린 제자를 두고 떠나야 하는 스승의 아쉬움 때문이었다.
“무릇 권세란 재물과 같아서 위로 높은 묘당(廟堂)의 것이건 아래 로 낮은 민초들 사이의 것이건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 어지는 법이다. 이미 말했듯, 태평도의 무리 역시 지금은 백성들 사 이의 사사로운 믿음으로 행세하고 있지만, 이대로 세력이 불어나면 머지않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처음에는 따르는 무리만으로 만족 할지 모르나, 차츰 힘이 생기면 관부를 얕보게 되고, 마침내는 천하 를 넘보게 될 것이 뻔하다. 실로 이 스승이 근심하는 바다………….”
노식은 유비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태평도에 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 태도로 보아, 겉으로는 세상일에 무심한 채 학문에만 전념하고 있었던 것 같은 그 몇 년 동안에도, 실은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유비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스승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기야 전에도 이런 무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은 경우가 다르니, 그것은 무엇보다도 저들의 가르침이 그럴듯하고 백 성을 홀리는 수법이 자못 절묘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빌려와 그 현묘함을 꾸미고, 병을 치료하되 부적 태운 재 를 탄 물[符]을 마시게 하여, 요행 병이 나으면 자기들의 영험함 덕택이요, 낫지 않으면 믿음이 없거나 죄를 다 씻지 않았다 하여 병 자의 탓으로 돌리니,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거짓과 속임수를 알아차릴 수가 없다.
거기다가 또 저들의 검은 속셈을 짐작하게 하는 것은 요즘 들어 항간에 퍼지고 있는 괴이쩍은 노래[] 때문이다.
푸른 하늘은 이미 죽었으니 蒼天已死
마땅히 누른 하늘이 서리라. 黃天當立
때는 바로 갑자년 歲在甲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天下大吉
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이겠느냐? 푸른 하늘은 지난 건녕 이년 온덕전(溫德殿)에 떨어져 군신을 놀라게 한 푸른 뱀에 빗대어 우리 한조를 말했음에 분명하고, 천하가 뒤집히는 해로 잡고 있는 갑자년 은 이제 몇 해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짧은 동안에 이한의 천하 를 엿볼 만한 세력이 저들 말고 누가 있겠느냐? 거기다가 저들은 또 가르침의 머리에 노자 외에 황제(黃帝)까지 내세워 황로지학(老 學)이라 부르거니와, 특별히 누른 빛깔을 숭상하니 그 참요의 누른 하늘은 저들 스스로를 가리키고 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이다.”
“그렇다면 저희가 해야 할 바는 무엇이옵니까?”
그제서야 공손찬도 어두운 표정이 되어 다시 그렇게 물었다. 노식 은 거기서 다시 한동안 두 제자를 번갈아 살피더니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스승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머지않은 난세의 예감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난세를 말해왔으나 내가 보기에 지금까 지는 그저 여러 조짐일 뿐이다. 진정한 난세가 오면 그 참상은 말과 글로 그려낼 수 있는 바가 아닐 것이다. 뜻을 강호(江湖)에 둔 지오 래이면서도 내가 이렇게 서둘러 혼탁한 조정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작은 힘이나마 보태 그 참혹한 난세를 막아보고자 함이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우리 몇몇 깨끗한 선비 [淸]만으로 과연 한 나라 조정의 오랜 고질인 환관의 횡포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의심 스럽다. 잘해야 또 다른 당고의 화나면할까 말까 한데, 무슨 힘이 남아 이름 없는 백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세력의 모임과 흩 어짐까지 관여할 수 있겠느냐? 거기에 바로 다른 제자들을 제쳐놓 고 너희 둘만 따로 부른 까닭이 있다.
너희 둘은 책 읽기를 즐겨 경전의 장구(句)에도 밝지 못하고, 시 사(詞)에 빠져 문장을 곱게 다듬지도 않았다. 배우는 자로서는 마 땅히 그 게으름에 벌을 받아야 하나, 내가 크게 너희를 꾸짖지 않은 것은 그래도 너희가 배움의 큰 가지와 줄기는 항상 잡고 있기 때문 이며, 시절 또한 장부가 장구에 매달리고 시사나 읊조리며 보낼 수 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난세가 이르면, 필요한 것은 문장과 학식이나 사사로운 수 양이 아니라 그것들을 활용하고 실천하는 힘이다. 나는 백규의 씩씩 하고 굳건한 기개와 현덕의 부드러우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끄는 몸 가짐에서 그와 비슷한 힘을 느낀다.
이제 각기 집으로 돌아가거든 비록 초야(野)에 있더라도 더욱 그 힘을 길러 흔들리는 우리 한나라를 떠받드는 기둥이 되거라.
저들이 요사한 가르침으로 백성을 현혹시키거든 너희는 참된 덕 으로 깨우쳐주고, 거짓과 속임으로 불측한 세력을 키워가거든 인의 와 협행(行)으로 흩어버려라. 이미 한의 천하는 백 사람의 벼슬아 치보다 한 사람의 옳은 선비가 더 많은 백성을 보살필 수 있는 세상 이 되고 말았다. 이게 너희에게 특히 일러주고 싶던 말이었다. 그 뜻 을 알겠느냐?”
노식은 그렇게 말을 맺고 둘을 바라보았다. 믿음보다는 막연한 기대에 찬 눈길이었다.
“네.”
다시 공손찬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러나 유비는 말없이 무언가 를 생각하더니 이윽고 겁먹은 듯 더듬거리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 비는 스승님의 문하에 든 날이 짧아 아직은 크신 가르침의 대강조차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거기다가 나이는 어리며 천성 또한 게으르고 어리석어 홀로 깨우칠 재간도 없으니 다만 아득할 뿐입 니다………..”
한껏 자신을 낮추면서도 정작 중요한 말은 상대방이 스스로 하도 록 만드는 묘한 여운이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억지로 꾸민 티가 없 어, 상대방은 그걸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기꺼운 마음으로 모든 걸 스스로 털어놓게 했다.
스승인 노식도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문하를 닫고 떠나는 바람에 유비를 세상으로 돌려보내기는 해도 그의 나이 열일곱은 너 무 어렸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한다, 더 채우고 더 닦아야 한다, 노식 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임지인 여강(江)으로 떠날 채비에 바빠 이미 숙성한 공손찬과 똑같은 당부를 한 것인데, 유비가 다시 그걸 상기시킨 셈이었다. 거기다가 노식은 조정에 들어서면 충신이요 지 사였지만, 물러나 책을 잡으면 당대에서 손꼽는 학자였다. 보다 많 은 배움을 구하는 어린 제자가 어찌 기특하지 않으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유비의 속을 떠보기라도 하듯 말했다.
“장부에게 따로 배움의 터가 있고, 달리 정한 스승이 있을 수 있 겠느냐? 그리고 네 나이 열일곱도 반드시 어리지만은 않다. 더구나 너는 이미 관례까지 치르지 않았느냐?”
“제가 듣기에 백리 길을 갈 사람은 세 끼 밥만 싸들고 가면 되지 만만리 길을 갈 사람은 석 달 양식을 지고 떠나야 된다고 들었습니 다…….”
예사 아닌 포부를 밝히는 동시에 아직도 스승에게 무언가를 구하 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그제서야 노식도 더 말을 돌리지 않았다. “실은 여강을 소란스럽게 하는 오랑캐를 토평(討平)할 일과 어지 러운 조정으로 돌아갈 일에 마음이 뺏겨 잠시 네 나이를 잊은 듯하 다. 스스로 행도(行)하기에 모자람이 있다고 느낀다면 달리 스승 을 구해 그 모자람을 채우는 일도 옳으리라. 내가 알기로 지난날 나 와 동문수학한 정강성, 정현의 자)이 아직 수백 문도(門徒)와 함 께 향리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길이 멀지만 네가 굳이 더 배 우기를 원한다면 그에게 너를 추천하는 글을 써주겠다. 조금 전 백 규와 너에게 한 당부는 마음에 새겨 잊지만 않으면 된다.”
노식은 유비가 입 밖에 내지 않은 청을 스스로 헤아려 들어주었 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모두 우러러보는 스승까지 소개해주겠다고 나왔다. 정현은 뒷날 학문만으로 공(公)의 칭호를 얻고, 그 고향 땅 은 정공향(鄭公鄕)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그 덕을 기리기 위해 생전 에 이미 통덕문(通德門)이 세워졌을 정도의 대학자였다. 그가 크게 일으킨 훈고학(訓學)은 송대 주자학에 이어 명대 양명학, 청대 고 증학으로 이어가는 중국 유학의 정맥(正脈)이 된다. 듣고 있던 공손 찬도 슬몃 욕심이 일어 유비와 함께 정현에게 천거해줄 것을 청했으 나 노식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백규는 이미 나의 문하에 든지 여러 해 되었으니 그만 요서로 돌아가보도록 하라. 가솔들과 주군을 떠난 지도 오래거니와 몇 권의 서책을 더 읽느니보다 더 급하고 중한 일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서안을 당겨 정현에게 유비를 추천하는 글을 쓰 기 시작했다. 들으니 스승의 말도 옳아 공손찬도 더는 조르지 않았 다. 얼마 전에도 영지까지 내려온 오환족(烏丸族)으로 요서 일대가 소란스럽다는 소식을 인편에 들은 적이 있었다.
노식이 다 쓴 편지를 다시 훑어보고 있을 때 문 밖에서 가동) 의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뢰옵니다. 원근의 여러 문인(門人)들이 어르신께서 출관(出關) 하신단 말을 듣고 본채 대청에 모여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조정의 부름을 전하는 이가 다녀간 지 하루도 안 되었는데, 벌써 소문이 원근에 퍼진 듯했다. 노식이 가보니 관자(冠)만도 백여 명 이 모여 있었다. 모두 한때 노식에게 가르침을 받은 부근의 젊은 선 비들로, 혹은 존경하는 스승에게 석별의 정을 표하고자 혹은 오랜 칩거 끝에 다시 벼슬길에 나서는 스승의 장도를 축하하고자 각기 술과 떡을 빚고 소와 닭을 잡아온 터라, 초당의 넓지 않은 뜰은 그들이 데려온 가복들로 저잣거리처럼 왁작거렸다.
그렇게 되고 보니 언제나 강도(講道)와 문학(問學)으로 엄숙하던 노식의 초당은 오래잖아 별사辭)와 축원이 얽혀 떠들썩한 잔치터 로 변했다. 노식도 평소의 엄격함을 버리고 자애로운 사부(師父)로 돌아가 제자들과의 마지막 정을 나누었다. 제자들이 차례로 올리는 잔을 한 잔도 사양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칠현금(七絃琴)과 축(祝) 에 맞추어 전에는 입에 담지 않던 시사까지 읊조렸다. 다만 평소와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언제나 힘주어 가르쳐온 충의와 더불어 동문 간의 굳은 결속을 잔치가 파할 때까지 몇 번이고 거듭 당부한 일이었다.
“임금과 스승과 아비가 한가지라면[君師一體] 너희들은 모두 형 제이다. 불의와 불충에 빠지는 형제가 있으면 서로 꾸짖어 말리고,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어나는 형제가 있으면 서로 힘을 모아 도와줄 것을 잊지 말아라.”
결국 집안 아저씨 유원기가 유비를 위해 한 일은 겨우 몇 푼의 학 자를 대준 게 아니라, 노식의 문하를 중심으로 한 유력한 인맥에 닿 게 해준 것이었다. 유비의 앞날을 위해서는 소중한 밑천이 되는 인 맥이었다.
이튿날 유비는 임지인 여강으로 떠나는 스승 노식을 동문들과 함 께 십 리나 전송한 뒤 공손찬과도 작별을 했다. 공손찬은 요서까지 갈 마필을 구하러 유주성(幽州城)으로 가고, 유비는 정현선생을 찾 아 학업을 잇기 전에 어머니와 학자를 대줄 유원기를 찾아보기 위해 탁현 누상촌(樓桑村)으로 가기 때문에 더는 함께 갈 수가 없었다.
“형님,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다시 뵙게 될는지요…”
갈림길에 이르러 유비가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공손찬의 소매를 잡았다. 원래 모질지 못한 유비의 감상 탓도 있지만, 둘 사이의 정 또한 그에 못지않게 깊었다. 하나는 의지 없는 고아이고 하나는 홀 어머니의 외아들로서 다같이 남의 도움으로 학업을 닦게 된 것뿐만 아니라, 말수가 적고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는 너그러운 성격에 있어 서도 둘은 비슷했다. 그밖에 고리타분한 경학(經學)이나 사장詞章) 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은 점도 수많은 동문 가운데서 그들 둘이 남달리 가까워진 이유가 되었다. 따라서 나이 차이가 대여섯이나 되 는 데다, 하나는 관례조차 앞당기고 집을 나선 소년인 데 비해 하나 는 이미 성혼하고 지방관리를 지낸 경험까지 있는 청년이었음에도, 둘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나이 든 공손찬이 좀 단순 하고 직선적인 데 비해 어린 유비 쪽이 오히려 생각 깊고 우회적인 것이 나이에서 오는 어떤 거리감을 좁혀준 까닭이었다. 거기다가 사 이가 가까워질수록 예를 잃지 않고 손위인 공손찬을 깍듯이 형님으 로 모시는 유비의 겸손한 몸가짐도 무뚝뚝한 공손찬의 마음을 움직 여 그 무렵 둘 사이는 피를 나눈 형제나 다름없었다.
마음이 굳기로 철석같다는 공손찬도 그런 유비의 눈물을 보자 역 시 눈시울이 불그레해지며 유비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우, 너무 상심 말게. 만난 자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는 법 [會者定離]이라면, 헤어진 자는 또한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지 않 겠나?”
“뵙고 싶어도 요서 땅은 이곳에서 수백 리 산과 들이 첩첩이 가로 막혀 있으니…….”
“그렇지만 날랜 말로 달리면 하룻길일세. 거기다 그곳에는 오환의 좋은 말들이 많으니 아우가 그리울 때는 한달음에 달려오겠네. 학업 이나 빨리 끝내고 돌아와 있게.”
“저도 언제든 형님이 뵙고 싶으면 그리로 달려가겠습니다.” “그것도 좋지. 아니, 모든 것이 뜻 같지 못하면 차라리 그리로 옮 겨오게. 그곳은 변방이라 선비(鮮卑)며 오환 같은 오랑캐 무리가 수 시로 넘나드는 거친 곳이지만 그만큼 장부의 뜻을 펴볼 만한 곳이기 도 하네. 거기다가 이 형이 비록 재주 없지만 그곳에 약간의 기반은 있네. 자네까지 힘을 합치면 정말 두려울 게 없을 것이네.” “새겨듣겠습니다.”
하지만 뒷날 그들이 맺게 될 깊고 오랜 인연에 견주어보면 그 이 별은 기실 잠깐 동안의 나눔에 지나지 않았다. 공손찬이 천하를 다 투는 싸움에서 불행하게 죽는 날까지 둘은 혈육이나 다를 바 없는 정으로 힘을 합쳐 난세를 헤쳐나가게 된다.
공손찬과 눈물로 헤어진 유비는 서둘러 탁현 누상촌으로 향했다. 노식이 초당을 세운 역수는 탁군 안고현(縣) 땅이어서 누상촌까 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해 질 녘에나 닿을까 말까 한 거리였다. 스승 을 배웅하고 공손찬과 헤어지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겨 벌써 해 가 중천에 솟은 때문이었다.
얼마를 가다 보니 제법 넓은 개울 하나가 앞을 가로막았다. 적어 도쉰 장(丈)은 되는 너비에 두 자 깊이는 되어보였는데, 여름 장마에 씻겨간 뒤 다시 손을 보지 않은 탓인지 아무리 둘러봐도 징검다
리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유비는 신을 벗고 바지를 걷은 채 물을 건너기 시작했 다. 늦가을이 되는 구월도 이미 중순을 지난 데다 북쪽이라 물이 몹 시찼다. 거기다가 물 가운데는 보기보다 깊어 내를 건넌 유비의 아 랫도리는 물에 함빡 젖어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불이라도 피워 떨 리는 몸을 녹이고 젖은 옷을 말린 뒤에 떠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 빠 그럴 틈도 없었다. 그래서 젖은 바지를 입은 채 다시 길을 떠나려 할 때였다. 누군가가 부른 것 같아 뒤를 돌아보니 냇물 저쪽에서 한 늙은이가 유비를 부르고 있었다.
“섰거라. 귀 큰 어린 놈아.”
귀담아 들어야 겨우 알아들을 만큼 낮았지만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허름한 차림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늙은이였 는데, 별나게 희고 긴 수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는 없는 모습이었 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관례까지 치른 자신을 어린 놈이라고 함부 로 불러대는 것도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워낙 나이가 든 노인이라 유비는 할 수 없이 큰소리로 물었다.
“어르신, 무슨 일이십니까?”
“다리도 없고 배도 없으니 이 늙은 것이 어떻게 물을 건너란 말이냐? 네놈이라도 업어 건네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마치 유비가 다리를 부수고 배를 없애버리기라도 한 듯한 말투였다.
그 같은 늙은이의 말투가 다시 귀에 거슬렸으나 유비는 말없이 건너온 냇물로 다시 들어갔다. 상대는 늙은이인 데다 자신은 이미 젖은 몸이었다. 너무도 당당한 그 늙은이의 요구도 예사롭지 않았 다.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까닭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번 젖은 몸이어서인지 물은 한층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나 유비는 낯빛도 변하지 않고 건너가 하인이라도 부리고 있는 듯한 그 늙은이를 들쳐 업었다. 늙은이는 보기보다 무거웠다. 또래에서는 힘 깨나 쓰는 유비였지만 개울을 다 건넜을 때는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 이었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그 늙은이를 개울가에 내려놓은 뒤 였다.
“이런 내 정신 보게. 보퉁이를 저쪽에 두고 왔구나. 네놈을 부르는 데 급해서 그만…….”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유비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다시 나무 라는 투로 늙은이가 말했다. 그제야 유비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 다. 흔한 유건(儒巾)하나 쓰지 않은 누더기 차림이었지만 어쩐지 민 촌의 무지렁뱅이 늙은이 같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스승 노식의 초당을 찾곤 하던 이름 모를 은사(隱士)들 에게서 느껴지던 분위기 같은 것이 그에게서도 느껴졌다. 그때 노인 이 다시 소리쳐 꾸짖었다.
“이런 멍청한 녀석 같으니. 너는 내가 보퉁이를 두고 왔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유비가 얼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나 늙은이는 한층 큰소리로 나무랐다.
“네가 어딜 가서 그 보퉁이를 찾는단 말이냐? 잔말 말고 다시 나 를 업어라.”
그러자 어지간한 유비도 은근히 부아가 일었다. 일부러 사람을 괴 롭히려 드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탓이었다. 거기다가 더 이상 그곳 에서 지체하다가는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길도 바빴다. 그러나 유비는 다시 말없이 그 늙은이를 업었다. 그냥 떠나 버리면 이미 한 수고까지 소용없어져 버리지만 한 번 더 다녀오면 그 수고는 두 배로 남게 된다,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랜 뒤였다. 다행히 그 늙은이는 한 번 더 냇물을 건너갔다 오는 것으로 더는 유비를 괴롭히려 들지 않았다. 그 대신 냇가의 마른 풀 위에 털썩 앉 으며 전과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유비라고 합니다.”
“좋은 상(相)이다.”
“무슨 말씀이온지…….”
“만 가지 상 가운데서도 마음의 상相]이 제일 중하다는 뜻이다.”
늙은이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험한 눈길이 되어 다그쳤다.
“네놈은 혹시 나를 황석선생(黃石先生)쯤으로 넘겨짚은 거 아니 냐? 그리하여 장자방(張子房)처럼 천서(書)라도 얻어걸릴까 하여 내게 이리 인심을 쓴 것이렷다?”
물론 유비도 황석공(黄石公)과 장량(張)의 옛일은 들어 알고 있 었다. 그러나 황석공이 다리 위에서 두 번씩이나 벗어던진 신을 주 워주었다는 장량을 흉내낸 건 결코 아니었다. 유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받았다.
“옛일은 다만 옛일일 따름입니다. 시대가 다르고 사람이 다른데 어찌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너는 어째서 두 번째로 나를 업고 건널 생각을 했느냐? 무엇을 바라고 한 번 더 수고로움을 참았더냐?”
늙은이가 다시 살피는 눈길로 돌아가 유비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 제서야 유비도 그 늙은이의 두 눈에서 심상치 않은 빛을 알아보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잃어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두 번 째로 건너기를 마다하게 되면 첫 번째의 수고로움마저 값을 잃게 됩 니다. 그러나 한 번 더 건너면 앞서의 수고로움도 두 배로 셈쳐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늙은이의 눈에서 한층 강한 빛이 뿜어나왔다.
“네 나이 올해 몇이냐?”
“열일곱입니다.”
“벌써 그걸 알고 있다니 무서운 아이로구나.”
“네…….?”
“그게 바로 개같은 선비들이 입만 열면 짖어대듯 말하는 인의의 본체다. 그걸로 빚을 주면 빚진 자는 열 배를 갚고도 아직 모자란다 고 생각하며, 그걸로 다른 사람을 부리려 들면 그 사람은 목숨을 돌 보지 않고 일하게 된다.”
“……”
“나도 네게 빚을 졌으니 호된 값을 물어야겠구나.”
“그런 뜻이 아니옵고…………….”
“하나 일러주마. 그걸 쓸 때는 결코 남이 네가 그걸 쓰고 있다는 걸 알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유비가 빙긋이 웃었다.
“저는 저 자신도 그걸 잊고자 합니다.”
“거기까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유비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인의 눈에 서는 그대로 불꽃이 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거의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만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목소리를 가다듬어 물었다.
“어디 사는 누구냐?”
“탁현 누상촌에 사는 유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탁록정후의 후예겠구나. 누구에게서 배웠느냐?”
“노식선생님의 문하에 잠깐 있었습니다만…….”
“노자간(幹)이? 머릿속에는 귀신들의 말과 고집만 잔뜩 들어 있는 그 되다 만 작자가 널 길렀다고?”
늙은이는 아무래도 못 믿겠다는 듯이 그렇게 되물었다. 나이는 줄 잡아 십여 년 차이가 나 보이지만, 말투로 미루어보면 스승 노식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유비는 그 늙은이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면서 공손히 물었다.
“스승님을 잘 아십니까?”
“알지. 더벅머리로 책을 끼고 마음 늙은이의 문하를 드나들 때부 터 알고 있다. 실은 오늘도 그 작자를 만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는 길이다.”
“스승님은 아침 일찍 여강으로 떠나셨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바로 그걸 말리려고 멀리서 달려왔는데 한 발 늦었다. 너는 태뢰(太)의 소를 아느냐?”
“네.”
“뿔이 곧고 잡털이 섞이지 않은 소를 골라 콩을 먹이고 비단으로 소를 치장함은 그 소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라의 제사에 그 고기를 쓰고자 함이니, 어리석은 소는 백정의 도끼가 정수리에 떨어질 때에 야 비로소 슬퍼한다. 벼슬도 그와 같으니, 내 그걸 말리려고 자간을 찾아가는 길이다.”
“사람이 학문을 닦음은 장사치가 귀한 구슬을 구해 살 사람을 기 다리는 것과 같다고 들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쓰지 않을 바에야 학 문을 닦아 무얼 하겠습니까?”
“으음, 노자간의 머리에 가득 들어 있던 죽은 사람들의 말과 글이 어느새 너에게도 옮았구나.”
그러더니 늙은이는 다시 한번 유비의 얼굴을 구석구석 뜯어보았 다. 그걸 통해서 그의 지난날과 앞일을 한꺼번에 알아내겠다는 듯이 나 세밀한 눈길이었다.
“아깝구나. 하지만 사람은 저마다 정해진 길이 있으니 어쩌겠느 냐? 동덕(同德, 도가에서 이상화한 원시적 자급자족 상태)과 천방(天, 역 시 도가에서 이상화한 원시적 무정부 상태)이 멀다면 요순(堯舜)의 가르침 도 세상을 위한 한 가닥 길은 되리라.”
이윽고 늙은이는 그렇게 탄식했다. 노식 아래서 유가(儒家)의 글밖에 읽은 적이 없는 어린 유비에게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늙은이는 유비가 무엇을 물을 틈을 주지 않고 갑자기 어 조를 바꾸어 먼저 유비에게 물었다.
“그래, 이제 네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장부가 품은 뜻 중에 제세안민(濟世安民)보다 더 큰 것이 있겠습 니까?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케 하는 것이 제 뜻입 니다.”
“무엇으로 그 뜻을 이루겠느냐?”
“우선은 새로운 스승을 구해 부족한 배움을 이으면서 천천히 생 각해보겠습니다. 다행히 스승님께서 떠나시면서 북해(北海)의 정강 성[鄭]선생께 저를 천거해주셨습니다.”
“그다음은 묘당에 높이 올라 큰 관과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로 는 예악을 말하고 아래로는 오형(五刑)으로 다스릴 작정인가?”
“이 비 비록 아는 바는 적으나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평 안케 하는 길이 어찌 예악과 오형뿐이겠습니까? 하지만 반드시 그 길뿐이라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허리에는 대장인(大將印)을 차고 두 손은 부월(斧鉞)을 받든 채 삼군(三軍)과 오병(五兵)을 몰아,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四 夷]를 토벌하고 안으로는 역적을 주멸할 작정인가?”
“마찬가지로 대장부의 일이 어찌 반드시 그뿐이겠습니까만, 만약 그래서 세상이 평온하고 백성들이 각기 그 삶을 즐거이 누릴 수 있 게 된다면 또한 마다하지는 않겠습니다.”
“내 짐작이 틀림없다면 너는 한실의 종친이다.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 한나라를 일으키고 키우신 열성(列聖)의 피가 제 몸에도 흐르고 있음이니 잠시라도 가볍게 여길 수 있겠습니까? 비록 몸은 궁 벽한 곳에 영락해 있으나 마음은 궁궐 안에 있듯 높게 가지라는 어 머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유비의 말 어디가 우스운지 갑자기 늙은이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비로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이제서야 잠시 네 등을 빌린 값을 하게 되었다. 가자.”
그 늙은이가 영문을 몰라 얼떨떨한 유비를 데리고 간 곳은 거기 서 멀지 않은 마을 입새의 고목 아래였다.
“너는 이미 말을 많이 하면 마음이 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제 나 도 말을 좀 아껴야겠다.”
늙은이는 그렇게 말한 뒤 머리 위의 고목을 가리켰다.
“지금 내가 너에게 하려는 말은 이 고목의 몸으로 다하고 있다. 네 마음의 귀로 들어보아라. 그럼 나는 길이 바빠 가봐야겠다.”
그 말에 유비는 나무를 한번 올려다볼 겨를도 없이 떠나려는 늙 은이에게 물었다.
“어르신의 크신 이름은 어떻게 되옵니까?”
“칡뿌리나 캐고 고사리나 꺾으며 산골에 숨어 사는 늙은이에게 무슨 이름이 있겠느냐? 뒷날 네 스승을 만나거든 그저 상산(常山)의 한 나무꾼 늙은이 [樵翁]라고 하면 된다.”
말을 마친 늙은이는 그대로 휘적휘적 제 갈 길을 떠나갔다. 아직도 미진한 유비가 무어라고 말하며 뒤따르려 하자, 뒤돌아보지 않은 채 한마디 덧붙였을 뿐이었다.
“이 귀 큰 어린 놈아, 이제 셈은 끝났다.”
그제서야 유비도 따라가봐야 소용없다는 걸 느끼고 그 늙은이가 가리킨 나무 쪽으로 돌아섰다. 넉넉히 세 아름은 됨직한 나무로 줄 잡아 몇백 년은 돼 보이는 고목이었지만, 오래된 시골 마을 초입에 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종류였다.
유비는 약간 실망이 되었으나 아무래도 그 늙은이가 실없는 소리 를 한 것 같지는 않아 찬찬히 그 나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높이 열 장쯤 될까, 그러나 너무 늙은 탓인지 높은 곳의 가지들은 이미 말라 죽어 있었고, 단풍진 잎이 붙어 있는 가지는 아래로 채 절반이 안 되 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가지들도 한결같지는 않았다. 어떤 가 지는 이미 반쯤이 검게 썩은 잎들로 지저분했고, 어떤 가지는 노랗 게 잘 단풍이 든 잎으로 아름다웠다. 고목 줄기에서 뻗은 가지와 뿌 리에서 새로 돋은 가지의 차이였다. 하지만 그걸로 그뿐, 아무리 올 려다보아도 그 늙은이가 그것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얼른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제법 따끈하긴 해도 역시 늦가을 볕이라 그런지 한자리에서 움직 이지 않고 서 있자 유비의 젖은 몸이 차차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비는 여전히 꼼짝도 않고 서서 그 고목을 응시했다. 마음속으로는 그 늙은이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그렇게 한 식경이나 지났을 무렵이었다. 얼어붙은 듯 서 있던 유 비가 갑자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 니 품안을 더듬어서 서찰 한 통을 꺼내서는 망설임 없이 찢어버렸다. 전날 스승 노식이 그를 위하여 정현선생에게 쓴 추천장이었다.
그 뒤 거의 뛰듯이 집으로 달려가던 유비가 딱 한 번 걸음을 멈춘 것은 고향 집 앞의 큰 뽕나무 앞에서였다. 이미 날은 저물었지만 동 편에서 뜨는 열아흐레 달빛으로 거무스레하게 드러나는 그 뽕나무 는 마치 임금의 행차 때 쓰는 뚜껑 있는 수레 같은 모양이었다. 어렸 을 적 그 가지 위에 올라 소꿉동무들에게,
“나는 다음에 천자가 되어 이런 수레를 탈 테야.”
라고 으스대다가 어른들에게 호된 꾸중을 들은 추억이 서린 나무 였다. 그러나 또한 그 턱없는 말 때문에 짚신을 삼고 돗자리나 치는 처지에서 벗어나 노식의 문하에 들게 해준 소중한 인연의 나무이기 도 했다. 그 일을 전해 듣고 남다르게 여긴 먼 친척 유원기가 발벗고 나서 유비의 뒤를 보아주게 된 까닭이었다. 유비가 거기서 잠시 음을 멈춘 것은 그런 추억에서 오는 어떤 감회 때문이었으리라.
막 자리에 들려던 유비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돌연한 귀가에 놀랐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의젓한 선비가 되어 돌아오리라 기대했던 외아들이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돗자리를 짜는 틀을 찾는 일이었다.
“돗틀은 광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그건 왜 찾느냐?”
“내일부터 다시 돗자리를 짜렵니다.”
영문을 몰라 묻는 어머니에게 유비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네 스승이 벼슬살이를 떠났다고 하지 만일껏 시작한 학업을 중도에 그만두고 다시 돗자리를 짜겠다니?”
“일하지 않고 먹는 것은 도둑과 거지뿐입니다. 그런데 제게는 갈땅이 없으니 거지나 도둑이 되지 않으려면 다시 돗자리를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먹고사는 일이라면 원기 아저씨가 넉넉히 보아주고 있다. 너는 달리 스승을 구해 더욱 힘써 글을 배워야 한다.”
“글이란 이름자만 쓸 줄 알면 넉넉하다고 한 이도 있습니다. 더 배워봐야 이미 죽은 사람들의 말이나 글로 공연히 머리만 썩일 뿐입 니다.”
그러자 비로소 아들의 변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어머니가 놀람 과 걱정에 휩싸이며 물었다.
“옛 성현의 가르침을 죽은 사람의 말과 글이라고 하다니? 네가 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느냐?”
“어머님께서는 그럼 지금 세상이 글이 모자라고 성현의 가르침을 몰라서 이같이 어지럽다고 믿으십니까?”
그렇게 반문한 유비는 이어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털 어놓았다. 그리고 인근에 널리 알려진 효자답게 노인이 가리킨 고목 을 보며 느낀 것까지 모두 말함으로써 놀람과 걱정에 빠진 홀어머니 를 안심시켰다.
“그 고목은 바로 우리 한조(漢)였습니다. 나무가 오래되면 높이 있는 가지부터 마릅니다. 그리고 땅에 가까워올수록 살아 있는 것들 이 늘지만 그것도 그 고목의 줄기에서 시작한 가지는 오래잖아 말라 들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뿌리는 의지했으되 땅의 힘을 빌려 새로 돋은 가지는 싱싱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또 하나의 거목으 로 자라리라 믿어집니다. 저는 바로 그런 가지가 되고 싶습니다. 이미 말라가는 등걸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힘을 빌려 새로 돋 고 싶습니다. 시들어가는 한실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백성들 속에 서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힘입어 스스로 자라보겠습니다. 고조(高 祖)께서 한낱 정장(亭長)으로 역도(役徒)들을 이끌고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시어 천하를 바로잡으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