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3화 : 패업도 부질없어라, 조위도 망하고

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10권 – 13화 : 패업도 부질없어라, 조위도 망하고


패업도 부질없어라, 조위도 망하고

강유가 장익, 요화, 동궐 등을 이끌고 항복하러 온다는 말을 들은 종회는 크게 기뻤다. 사람을 보내 강유를 장막 안으로 맞아들이게 하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 물었다.

“강백약은 어찌 이리 늦으셨소?”

강유가 얼굴빛을 고쳐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나라의 모든 군사를 거느린 이 몸이외다. 이제 이렇게 온 것도 오히려 빠르다 할 수 있소.”

그 당당한 대꾸에 종회는 오히려 강유를 높이 보게 되었다. 자리 에서 내려와 맞절을 하고 귀한 손님 모시듯 대했다. 강유는 그런 종 회를 슬며시 추켜주었다.

“듣기로 장군은 회남에서 오신 이래로 한번도 그 계책이 어긋남이 없었다 합니다. 사마씨(司馬氏)가 오늘날 저같이 번성하는 것도 모두 장군 덕분이라는 걸 알기에 이 강유는 달게 머리를 숙이는 것 입니다. 만약 등애였다면 죽기로 싸워 결판을 낼지언정 어찌 이리 욕되게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종회는 더욱 강유가 마음에 들었다. 화살을 꺾어 맹 세하며 형제의 의를 맺고 깊이 그를 사랑하였다. 이에 강유는 전에 거느리던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강유는 속으로 그걸 기뻐하며 뒷 날을 보기로 하고 장현을 성도로 돌려보냈다.

한편 등애는 사찬(師纂)을 익주자사로 삼고, 견홍과 왕기에게도 각기 주군을 나눠주어 다스리게 했다. 그리고 면죽에는 축대를 쌓아 자신의 전공을 기린 다음 촉의 여러 벼슬아치들을 불러모아 크게 잔 치를 열었다.

술이 반쯤 오른 등애가 문득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대들은 운 좋게도 나를 만나 이 오늘이 있게 되었다. 만약 다른 장수가 왔으면 틀림없이 모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그 말에 촉의 벼슬아치들이 모두 일어나 그에게 절하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때 검각에서 돌아온 장현이 알렸다.

“강유는 진서장군 종회에게 항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등애는 종회에게 깊이 한을 품었다. 자신이 세운 공을 가만히 앉아서 가로챈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등애는 그대로 있을 수 없다 싶어 글 한 통을 쓴 뒤 사람을 시켜 낙양에 있는 진공(公) 사마소에게 바치게 했다.

‘신 등애는 듣기로 군사를 부리는 것은 먼저 요란스런 소문을 낸 뒤에야 그 내실을 얻게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제 촉을 평정한 기 세를 타고 자리를 말듯 오를 쳐야 할 것입니다. 큰 싸움을 겪은 뒤라 장수와 사졸이 모두 지쳐 있어 얼른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먼 저 농우의 군사 이만과 병 이만을 보내 소금을 굽고 쇠붙이를 달 구며 배를 짓게 해, 물을 타고 태려갈 계책을 준비케 함이 좋겠습니 다. 그런 다음 사자를 보내 이해로 저들을 달래게 하면 오나라는 굳 이 싸우지 않고도 평정할 수 있을 듯싶습니다. 거기다가 또 하나 아 뢸 것은 주 유선의 일입니다. 유선을 잘 대접하며 손휴(休)를 공 격해야지, 그러지 않고 유선을 낙양으로 끌고 가게 되면 오나라 사 람들은 틀림없이 겁을 먹을 것입니다. 그들이 겁을 먹으면 어떻게 우리에게 귀순하라고 권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유선은 잠시 이곳 에 머물게 하였다가 내년 겨울쯤에나 낙양으로 불러들이는 게 낫겠 습니다. 지금은 유선을 부풍왕(扶風王)으로 봉하고, 재물을 그의 신 하들에게 내리시며 그 아들들을 공경으로 삼아 그가 귀순한 것에 은 총을 내리시는 체하십시오. 그리되면 오나라 것들은 한편으로는 위 엄에 눌리고 한편으로는 너그러움에 끌리어 바람에 쓸리듯 우리에 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 같은 글을 읽은 사마소는 등애가 그같이 엄청난 일을 제멋대 로 결정한 데 의심부터 품었다. 이에 먼저 글 한 통을 써서 위관에게 보내고, 이어 등애에게 천자의 조서를 내리게 했다.


‘정서장군 등애는 그 뛰어난 위엄과 재주로 적의 땅 깊이 들어가 함부로 천자를 칭하는 적의 우두머리를 사로잡고 그 항복을 받았다. 군사는 때를 잃지 않고 싸움은 하루를 넘기지 않아 구름 걷듯 자리 말듯 촉을 평정했으니, 옛적 백기(白起)가 강한 초(楚)를 쳐부수고 한신(韓信)이 굳센 조(趙)를 이긴 공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에 등 애를 태위로 올리고 식읍 이만호를 더하며 아울러 그 두 아들도 정 후侯)에 식읍 천호를 내린다.’


그런 조서에 이어 감군 위관이 사마소의 글을 등애에게 전했다. 등애가 말한 일은 천자께 아뢴 뒤에 할 일인 만큼 함부로 벌이지 말 라는 내용이었다.

그걸 읽고 난 등애가 불끈해서 말했다.

“장수가 밖에 있을 때는 임금의 명도 듣지 않는 수가 있다 했다. 내가 이미 조서를 받들어 멀리 싸우러 나왔거늘 내 하려는 바를 누 가 가로막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는 다시 글을 써서 낙양으로 보냈다.

그러잖아도 그 무렵 조정에는 등애에게 반역의 뜻이 있다고 떠드 는 사람이 있어 사마소의 의심이 한층 깊어져 있었다. 그런데 다시 등애가 보낸 글이 이르자 사마소는 처음부터 못마땅해 봉을 뜯었다. 거기에는 대강 이런 내용이 씌어 있었다.


‘이 등애는 명을 받들어 서쪽을 정벌하러 왔고, 이제 역적의 우두 머리는 항복을 했습니다. 마땅히 우선 권도(權道)로 일을 풀어 방금 항복한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 나라의 명을 기 다려 행하자면 오가는 길이 멀어 해와 달만 늘일 뿐입니다. 『춘추(春 秋)』에 따르면, 대부(大)는 나라 밖에 나가 있을 때는 나라를 평안 케 하고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 뜻대로 펼쳐나갈 수 있다 했습니 다. 지금 오는 아직 항복하지 않고 오히려 촉과 힘을 합쳐 맞서려 하 니, 늘상 해오던 데에 얽매여 좋은 때를 놓쳐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무릇 군사를 부림에는 나아가는 데 이름 얻기를 구하지 않고, 물러 나는 데 죄 입기를 피하려 하지 않는다[ 退不避罪] 했습니다. 이 등애가 비록 옛사람의 절도는 없다 해도 끝내 나라에 해를 끼칠 일은 결코 않을 것입니다. 먼저 이 글을 올리고 제 뜻대로 행할 것인 바, 부디 너그럽게 보아주십시오.’


그런 등애의 글을 읽는 사마소는 크게 놀랐다. 가충(賈)을 불러 걱정스레 말했다.

“등애가 공을 믿고 교만해져서 일을 제멋대로 처리하려 한다. 반역할 형상을 드러낸 것이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주공께서는 왜 종회를 높여 등애를 억누르지 않으십니까?” 

가충이 그렇게 깨우쳐주었다. 그 말을 옳게 여긴 사마소는 곧 종 회를 사도(司徒)로 삼고 위관을 감독양로군마로 세운 뒤 위관에게 글을 주어 종회와 함께 등애를 살피게 했다. 등애의 반역을 막기 위 함이었다.


‘진서장군 종회는 나아감에 적이 없었으며 그 앞길을 막을 어떤 굳센 담도 없었다. 여러 성을 손아래 거두고 흩어진 백성들을 거둬 들이니 촉의 큰 군사는 스스로를 결박지어 귀순했다. 꾀를 냄에는 빠뜨림이 없고, 일을 치름에는 공 아닌 게 없으니 이에 종회를 사도 로 삼고 현후(侯)에 봉한다. 아울러 식읍 만호를 더하며, 그 두 아 들도 정후로 올리고 식읍 천호를 내린다.’


위관으로부터 그런 조서를 받은 종회는 곧 강유를 청해 의논했다. “등애는 공이 나보다 높아 태위의 자리에 올랐으나 지금 사마공 (司馬公)은 등애를 의심하고 있소이다. 위관을 감군(監軍)으로 삼아 내게 따로 글을 주고 등애를 억누르라 하는데 백약의 생각은 어떠시오?”

그러자 강유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제가 듣기로 등애는 그 출신이 보잘것없어 어릴 때는 농가에서 소를 쳤다고 합니다. 이제 어쩌다가 음평의 샛길을 찾아내 나뭇가지 를 잡고 벼랑에 매달려 이번의 큰 공을 세웠을 뿐입니다. 그 지모가 좋아서가 아니라 실은 나라의 홍복에 힘입은 거지요. 만약 장군께서 검각에다 이 강유를 잡아두지 않으셨다면 그가 어찌 그런 공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촉주를 부풍왕으로 세우고 촉인들의 마음을 힘써 끌어모으려는 것으로 미루어 그 반역할 뜻은 말 않아도 알아볼 듯합니다. 진공의 의심은 실로 마땅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종회는 매우 기뻐했다. 그 기색을 본 강유가 다시 은 근하게 말했다.

“바라건대 잠시 좌우의 사람을 물려주십시오. 제가 한 가지 은밀히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종회는 두말 않고 곁의 사람들을 모두 장막에서 내보냈다. 강유가 소매에서 지도 한 장을 꺼내놓고 종회에게 말했다.

“이 지도는 지난날 무후께서 초려를 나오실 제 선제께 바친 것입 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익주의 땅은 기름진 들이 천리요 백성은 번 성하고 나라는 부유해 한번 패업을 이뤄볼 만하다 했습니다. 이에 선제께서는 그 말을 따라 성도에다 촉(蜀)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등애가 이제 그곳에 이르렀으니 어찌 머리가 돌지 않겠습니까?” 

등애를 헐뜯는 말에 종회는 턱없이 즐거워하며 지도에 그려진 산 과 내의 형세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강유는 그 물음에 하나하나 아 는 대로 일러주었다.

“그럼 이제 어떤 계책으로 등애를 없애겠소?”

이윽고 종회가 다시 강유에게 물었다. 강유가 역시 미리 생각해 둔게 있다는 듯이나 대답했다.

“진공이 등애를 의심하고 있는 틈을 타면 됩니다. 먼저 조정에 표 문을 올려 등애가 반역하려는 뜻을 품고 있음을 말씀드리십시오. 그 러면 진공은 틀림없이 장군께 등애를 치라는 명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때는 한번 싸움으로 등애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종회는 그 말을 따라 사람을 낙양에 보내 표문을 올렸다. 등 애는 일을 제멋대로 하여 촉인들의 인심을 사고 있으니, 오래잖아 틀림없이 반역하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종회의 표문에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놀랐다. 종회는 또 사람을 풀어 등애가 올리는 표문을 도중에서 가로챈 뒤 그 알맹이를 바꾸어 올렸다. 등애의 필체를 흉내내되 내용은 오만하기 그지없는 표문이었다.

그런 등애의 표문을 읽은 사마소는 몹시 성이 났다. 곧 사람을 종 회의 진채에 보내 등애를 잡아들이라 하는 한편 가충에게 삼만 군사 를 주어 야곡으로 달려가게 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사마소는 또 위 주 조환(曹)을 달래 몸소 어가를 이끌고 싸움에 나서게 했다. 서조 연소제가 사마소에게 물었다.

“종회의 군사는 등애의 군사보다 여섯 배나 많습니다. 이제 종회 에게 등애를 잡게 한 것으로도 넉넉한데 무엇 때문에 명공까지 몸소 나가시려 합니까?”

그러자 사마소가 가만히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벌써 지난날에 한 말을 잊었는가? 그대는 지난날 종회가 반드시 반역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지금 등애 때문에 나가는 것 이 아니라 종회 때문에 나가려는 것이다.”

소제도 마음 놓았다는 듯 따라 웃었다.

“저는 명께서 그걸 잊으셨을까 봐 일부러 물어본 것입니다. 이 미 뜻이 그러하시다면 안심입니다. 그러나 그게 결코 밖으로 새나가 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사마소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떠나려 할 즈음 먼저 간 가충이 또 한 종회에게도 반역의 뜻이 있음을 몰래 일러바쳐왔다. 그런데 어찌 된 셈인지 사마소는 오히려 가충을 꾸짖듯 말했다.

“너를 보내놓고 내가 너를 또한 의심하면 그때는 어쩔 것이냐? 내 가 장안에 이르면 모든 것이 절로 밝혀질 것이니 앞질러 의심하지 말라.”

자신의 속셈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오래잖아 사마소가 장안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종회의 귀에 들어 갔다. 종회는 사마소까지 나선 데 놀라며 강유를 불러 등애를 잡을 계책을 물었다.

“먼저 감군 위관을 보내 등애를 잡아들이게 하십시오. 등애가 만 약 위관을 죽이려 한다면 반역할 뜻이 참으로 있었음을 드러내게 되 는 것입니다. 그때 장군께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그를 치면 됩니다.” 

종회도 그 말을 옳게 여겼다. 곧 위관에게 수십 기를 이끌고 성도 로 가서 등애 부자를 잡아오게 했다. 그 말을 들은 위관의 졸개들이 위관을 말렸다.

“이것은 종(사도가 등(鄧) 정서장군으로 하여금 장군을 죽이게 해 그 반역의 뜻이 드러나게 하려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결코 가 서는 아니 됩니다.”

위관도 그걸 모를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고개 를 가로저으며 짧게 말했다.

“내게도 다 생각이 있으니 너무 걱정 말라.”

이어 위관은 떠나기에 앞서 스무남은 곳에 격문을 띄웠다. 그 격 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나는 조서를 받들어 등애를 사로잡으러 왔을 뿐 그 나머지는 죄 를 물을 게 없다. 만약 일찍이 등애를 버리고 돌아오면 상을 주고 벼 슬을 올릴 것이며, 등애를 도와 아니 나오면 삼족을 멸하리라.’


그리고 두 대의 죄인 싣는 수레를 마련해 끌고 성도로 나아갔다.

새벽닭이 울 무렵 해서, 먼저 보낸 격문을 읽은 등애의 장수들이 모두 달려 나와 위관에게 항복했다. 그때 등애는 아직도 자신의 거 처에서 잠들어 있었다. 위관은 데려간 수십 기만 이끌고 아무도 지 켜주는 이가 없는 등애의 침실로 뛰어들며 소리쳤다.

“폐하의 조서를 받들어 등애 부자를 잡으러 왔다. 등애는 순순히 오라를 받으라!”

자다가 변을 당한 등애는 깜짝 놀라 굴러떨어지듯 침상에서 내려 왔다. 위관은 무사들을 꾸짖어 등애를 묶게 한 다음 마련해 온 수레 에 실었다. 그 소란에 잠을 깨 까닭을 물으러 왔던 등애의 아들 등충 역시 아비처럼 묶여 수레에 실었다.

그때까지 등애 곁에 붙어 있던 장졸들이 비로소 일을 알고 손을 쓰려 했으나 끝내 등애 부자를 뺏어내지는 못했다. 오래잖아 먼지를 자옥이 일으키며 종회의 대군이 달려오자 모두 흩어져 달아나기에 바빴다.

종회와 강유는 말에서 내리기 바쁘게 등애가 거처하던 곳으로 갔 다. 등애 부자가 초라한 죄인의 꼴로 묶여 있었다. 종회는 채찍으로 그런 등애의 머리를 치며 꾸짖었다.

“소나 먹이던 어린것이 어찌 감히 이 같은 짓을 했느냐?”

강유도 옆에서 나라 잃은 원한을 섞어 거들었다.

“하찮은 것이 험한 산길로 요행을 얻어 큰 공을 세우는가 싶더니, 끝내는 오늘 이 꼴이구나.”

악에 받친 등애도 지지 않았다. 모진 욕설로 종회와 강유에게 대들었다. 종회는 그런 등애를 그 아들과 함께 죄인 싣는 수레에 가둬 낙양으로 보냈다.

뜻밖으로 쉽게 등애를 잡고 그 장졸까지 거둬 위세가 더 높아진

종회는 기쁘기 그지없었다. 강유를 잡고 그 기쁨을 털어놓았다. 

“내 오늘에야 평생의 원을 풀었소.”

그러나 강유는 어찌 된 셈인지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

“지난날 한신(韓信)은 괴통(蒯通)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미앙궁( 央宮)에서 화를 당했고, 대부 문종(文種)은 범여(范蠡)의 말을 따라 오호(五湖)로 물러나지 않았다가 칼 위에 엎드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 두 사람이 그리된 게 공이 모자라서였습니까? 모두 이롭고 해로 운 걸 밝게 알지 못하고 때를 살피는 데 재빠르지 못했기 때문입니 다. 이제 장군도 큰 공을 세워 그 위세가 주군을 떨게 할 정도가 되 었으니 옛사람들의 일을 지나쳐 보지 마십시오. 배를 띄워 발자취를 감춘 뒤 지난날 장량이 했던 것처럼 아미령(峨嵋嶺)에 올라 적송자 (赤松子)와 함께 노니는 게 좋을 것입니다.”

종회는 대뜸 강유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걱정하기는커녕 웃 음까지 띠며 말했다.

“공의 말씀은 틀렸소. 내 나이 아직 마흔이 차지 않았소이다. 나아 가 얻을 궁리를 해야 할 때이거늘, 어찌 물러나 한가로이 노니는 쪽 을 고르란 말이오?”

강유는 됐다 싶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종회를 부추겼다.

“만약 물러나 한가롭게 지낼 뜻이 아니시라면 어서 좋은 대책을 세우도록 하십시오. 이 일은 명공의 지모로도 능히 할 수 있으니 이 늙은이는 번거롭게 여러 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백약이 참으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려.”

종회는 흐뭇해 두 손을 비비며 껄껄 웃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강유와 함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의논했다. 생각보다 쉽 게 종회를 꼬드기는 데 성공한 강유는 몰래 후주에게 글을 보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며칠만 더 욕을 참고 견뎌주십시오. 이 강 유는 반드시 위태로운 사직을 다시 평안케 하고, 가린 달과 해를 다 시 밝게 하며, 한실이 끝나 없어지는 일을 막겠습니다.’

한편 종회는 그런 강유의 속셈도 모르고 밤낮 없이 강유와 반역 할 일만 의논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마소에게서 편지가 날아들었다. 종회가 뜯어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사도가 쉽게 등애를 잡지 못할까 걱정되어 군사를 이끌고 장안까지 와 있다. 내가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있음을 먼저 글로 써 알리는 바다.’

그걸 본 종회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군사는 등애보다 몇 배나 되는데 이게 무슨 소리냐? 진공은 내가 혼자 처리하지 못할까 봐 대병을 이끌고 스스로 나왔다지만, 아무래도 의심쩍구나.”

그렇게 중얼거리고 곧 강유를 불러 그 일에 대해 의논했다. 듣고 난 강유가 그런 종회의 의심을 부채질했다.

“임금이 신하를 의심하면 그 신하는 반드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장군은 등애의 일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러자 드디어 종회도 이를 악물었다.

“내 뜻은 이미 결정되었소. 잘 되면 천하를 얻을 것이오, 못 돼도 서촉으로 물러나 지킨다면 유비처럼은 될 것이외다.”

“요사이 듣자니 곽태후가 죽었다 합니다. 곽태후의 유조遺)를 거짓으로 내세워 사마소를 치고 임금을 죽인 그의 죄를 묻는 게 어 떻겠습니까? 명공의 재주라면 중원을 자리 말듯 하고도 남음이 있 을 것입니다.”

“좋소이다. 백약께서 선봉이 되어주시오. 일이 이뤄지면 함께 부 귀를 누리도록 하겠소.”

“명공을 위해서라면 개나 말의 힘이라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만

여러 장수들이 따라주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이 마침 원소절이니 옛 궁궐에다 많은 등불을 걸어놓고 여러 장수들을 청해 잔치를 벌이면서 다짐을 받아두겠소. 내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어김없이 목을 벨 것 이오!”

둘의 의논이 거기까지 이르니 모두 강유가 바라는 대로였다. 이대 로 가면 촉한을 다시 일으키는 날이 머지않다는 생각에 강유는 속으 로 기뻐해 마지않았다.

다음 날이 되었다. 종회는 강유와 더불어 여러 장수를 불러 모아 놓고 잔치를 벌였다. 몇 차례 술이 돈 뒤 종회가 갑자기 술잔을 잡은 채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놀란 장수들이 그 까닭을 묻자 종회가 미리 꾸며 가지고 있던 조서 한 장을 내보이며 말했다.

“곽태후께서 돌아가시면서 이런 조서를 남기셨다. ‘사마소는 남궐 에서 천자를 죽인 대역무도한 자로 장차는 위(魏)마저 빼앗을 것이니 내게 그를 치라는 명을 내리신 것이다. 너희들도 각기 여기에 이름을 얹고 나와 함께 이 일을 이뤄보도록 하자.”

그리고 다시 미리 준비한 격문 한 통을 내밀었다. 그러나 놀란 장 수들은 서로서로 얼굴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종회는 장수들이 얼른 따르지 않는 걸 보고 칼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누가 이 명을 어기겠느냐? 그런 자는 목을 베리라!”

거기 놀란 장수들은 종회의 말을 아니 따를 수가 없었다. 그 자리 에서 종회가 시키는 대로 뜻을 함께한다는 글 아래 이름을 적어넣 었다.

종회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장수들을 모두 궁궐 안에 가두고 군사를 풀어 엄히 지키게 했다. 강유가 그런 종회에게 가만 히 말했다.

“내가 보니 장수들은 아무래도 따라주지 않을 듯합니다. 모조리 땅에 묻어버리는 게 좋겠습니다.”

그게 자신의 힘을 줄이려는 속셈인 줄도 모르고 종회가 한술 더떴다.

“나는 이미 궁궐 한 구석에다 큰 구덩이 하나를 파게 하고 아울러 큰 몽둥이 수천 개를 다듬게 했소. 따르지 않는 자는 모조리 때려 죽 여 묻어버릴 것이오.”

하지만 그것도 하늘의 뜻인지, 그 일은 뜻밖에도 곁에 있던 종회 의 심복 장수 구건(丘建)을 통해 궁궐 안에 갇힌 장수들에게 알려지 고, 다시 궁궐 밖에 있는 장수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바깥에 있는 장수들 중에 제일 먼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호연(胡淵)이었다. 궁궐 안에 갇힌 아비 호열(胡烈)로부터 그 소식이 담긴 글을 받은 호연은 곧 바깥에 있는 모든 영채에 그 일을 알렸다. 성난 각 영채의 장수들이 호연의 장막으로 몰려와 말했다.

“우리가 비록 죽게 된다 한들 어찌 역적을 따를 수야 있겠소?”

그런 장수들의 뜻을 안 호연이 결연히 말했다.

“정월 열여드렛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쳐들어가기로 합시다.” 

그리고 그날 쓸 계책까지 밝혔다. 감군 위관은 그런 호연의 계책 을 옳다 여겼다. 거기 따라 군마를 정돈하는 한편 궁궐 안에 갇힌 장 수들에게도 그걸 알리게 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지 알 리 없었으나 예감이란게 있던지, 어 느 날 아침 종회가 강유를 잡고 말했다.

“어젯 밤 꿈에 큰 뱀 수천 마리가 나를 물었소. 이게 좋은 꿈이겠 소? 나쁜 꿈이겠소?”

“꿈에 용이나 뱀을 보는 것은 모두가 좋은 조짐이올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유는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가는데 들떠 별 생각 없이 종회 를 달래놓고 보았다. 그 말에 마음을 놓은 종회가 이야기를 다른 데 로 돌렸다.

“이제 구덩이도 다 팠고 몽둥이도 마련됐으니 장수들을 끌어내 한 사람 한 사람 물어보는 게 어떻겠소?”

강유는 그 말을 받아 일을 더욱 급하게 몰았다.

“그자들은 모두 따를 마음이 없어 보였습니다. 오래 두면 반드시 화를 일으킬 것이니 일찍 죽여 없애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자 종회는 강유에게 무사들을 이끌고 가서 궁궐 안에 갇힌 장수들을 끌어내오게 했다. 강유는 명을 받기 바쁘게 움직였다. 그 러나 촉한의 부흥은 하늘의 뜻이 아닌지, 막 무사들을 이끌고 떠나 려던 강유가 갑자기 가슴을 쓸어안고 앓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좌우에서 부축해 일으켰으나 제정신을 되찾은 것은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겨우 몸을 추스려 종회가 시킨 대로 하려는데 문득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궁궐 밖에서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소리가 매우 시끄럽습니다.” 

그 말을 종회가 얼른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 그러나 미처 회 보가 오기도 전에 함성이 크게 일며 여기저기서 수많은 군사들이 쏟 아져 들어왔다.

“이것은 틀림없이 갇혀 있는 장수들이 꾸민 짓입니다. 먼저 그들 을 죽여야 합니다.”

강유가 그렇게 권했으나 종회에게는 그걸 따를 시간조차 없었다. 어느새 저편 군사들이 궁문 안으로 짓쳐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종회는 급했다. 얼른 전각 문을 닫게 하고 몇 안 되는 자기편 군사 를 전각 지붕 위로 올려보냈다. 종회의 군사가 기왓장을 벗겨 던지 니 그 통에 이쪽저쪽에서 수십 명이 죽었다.

궁궐 밖 사방에서 불길이 오르는 가운데 저편 군사들이 전각문을 부수고 쏟아져 들어왔다. 종회는 스스로 칼을 빼들고 막아서 대여섯 명을 베어 죽였다. 그러나 뒤이어 쏟아지는 화살을 어쩌지 못해 고 슴도치같이 되어 쓰러졌다.

그런 종회를 목 벤 군사들이 전각 위에 있는 강유를 에워쌌다. 강유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그들을 베었으나 불행히도 다시 가슴앓이 가 시작되어 견뎌낼 수가 없었다. 더 싸울 수 없음을 알고 하늘을 우 러러보며 크게 외쳤다.

“내 계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 

그리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니 그때 강유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종회와 강유가 죽은 걸 안 위관은 피를 보고 날뛰는 장졸들을 진 정시켰다.

“모든 군사들은 각기 영채로 돌아가라. 가서 왕명을 기다리고 있으라.”

그러나 군사들은 일이 그 지경이 되도록 종회를 꼬드긴 강유에게 원수를 갚는다며 그 배를 갈랐다. 그 쓸개가 달걀만큼이나 컸다. 군 사들은 다시 성안을 뒤져 강유의 가족까지 모두 죽인 뒤에야 겨우 저희 영채로 돌아갔다.

한편 등애의 부하들은 종회와 강유가 죽는 걸 보자 등애의 죄는 씻겨진 걸로 알았다. 밤길을 마다않고 잡혀간 등애를 구하러 뒤쫓아 갔다.

그 소리를 들은 위관은 깜짝 놀랐다.

“등애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나다. 그런데 만약 그가 놓여난다면 나는 죽어도 장사 지낼 땅조차 없을 것이다.”

위관이 그렇게 걱정하자 호군(護軍) 전속)이 나와서 말했다. 

“지난날 등애가 강유성을 칠 때 나를 죽이려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장수들이 말려 겨우 이 한목숨을 건졌는데 이제 그 원수를 갚을까 합니다.”

전속이 그렇게 스스로 나서자 위관은 기뻤다. 전속에게 군사 오백을 주며 등애를 죽이라 했다.

전속은 면에서 이제 막 풀려나 성도로 돌아가려는 등애를 따라 잡았다. 그러나 등애는 전속이 이끈 군사 역시 자기를 구하러 온 옛 부하들인 줄 알고 마음 놓고 있다가 갑자기 덤벼든 전속의 한칼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 아들 등도 어지럽게 싸우는 군사들 틈에 서 죽었다.

한번 인 피바람은 촉 쪽으로도 옮아 붙었다. 장익(張翼)을 비롯한 몇몇 장과 태자 유선, 한수정후 관이(關)도 그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죽었다.

관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삼국지』 정사(正史)에 달리 전하는 바가 있다. 관운장에게 죽은 방덕의 아들 방회龐會)가 위의 장수가 되어 종회를 따라왔다가, 촉이 망하자 관이를 비롯해 남은 관운장의 후손 들을 모조리 잡아죽였다고 한다. 인과로 풀이하기에는 너무도 끔찍 한 복수극이다.

놀란 군민들이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서로 밟고 밟히는 통에 죽 은 머릿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종회와 등애, 강유의 죽음으 로 시작된 성안의 소동은 보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왕명을 받 고 먼저 이른 가충이 방을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킨 뒤에야 겨우 혼 란은 가라앉았다.

위는 위관을 남겨 성도를 지키게 하고, 후주는 낙양으로 데려갔 다. 그런 후주를 뒤따른 것은 상서령 번건과 시중 장소, 광록대부 초주, 비서랑 극정 등 몇 사람뿐이었다. 요화와 동궐은 모두 병을 핑계로 따라가지 않고 있다가 슬픔과 울분 속에 죽었다.

후주가 낙양으로 끌려간 것은 위 경원(景元) 오년의 일이었다. 위 가 촉을 멸망시킨 걸 기뻐해 연호를 바꾸니 그는 곧 함희(咸熙) 원 년이 되었다.

그해 봄 삼월 오나라 장수 정봉은 촉이 이미 망해버린 걸 보고 군 사를 거두어 저희 나라로 돌아갔다. 중서승 화핵이 오주 손휴에게 아뢰었다.

“오와 촉은 입술과 이 같은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옛말에 입술 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 했습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사마소는 반드 시 오마저 삼키려 들 듯하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한층 더 나라의 방비를 엄히 하도록 하십시오.”

손휴는 그 말을 옳게 여겨 따랐다.

육손의 아들 육항(陸抗)을 진동대장군에 형주목으로 삼아 강구를 지키게 하고, 좌장군 손이(孫異)는 남서의 여러 험한 길목을 지키게 했다. 또 강을 따라 수백 곳에 둔전하는 영채를 지어 노장 정봉에게 맡기고 위병의 침입을 막게 했다. 촉이 망하고도 이십 년이나 더 오 를 버티게 해준 방비였다.

한편 후주가 낙양에 이르렀을 때는 사마소도 이미 조정으로 돌아 와 있었다. 사마소가 끌려온 후주를 꾸짖었다.

“공은 황음무도하여 어진 이를 내쫓고 다스림을 그르쳤으니 이치 로 보아 마땅히 주륙을 당해야 할 것이오.”

그 말에 후주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어찌할 줄 몰랐다. 곁에 있는 문무 벼슬아치들이 입을 모아 사마소를 말렸다.

“주가 나라의 기강을 잃었으나 다행히 일찍 항복했으니 마땅히 죄를 용서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에 사마소는 못 이긴 채 그 말을 따르고 유선을 안락공(公) 에 봉했다. 그리고 살 집을 마련해줌과 아울러 매달 쓸 물건과 비단 만 필에 남녀 종 백 명을 주었다. 유선의 아들 유요(劉)와 촉에서 따라온 번건, 초주, 극정도 모두 후(侯)에 봉헌했다.

황호는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쳤다 해 무사들로 하여금 저자에 끌어내게 하고 여럿이 보는 앞에서 사지를 찢어 죽였다. 하지만 정 사의 기록은 아니다.

그때 촉의 건녕 태수 곽과는 아직도 위에 항복하지 않고 있 었다. 위가 어떻게 후주를 대접하는가를 살핀 뒤에 뜻을 정하기로 하고 사람을 가만히 낙양으로 보냈다. 후주가 안락공의 벼슬까지 받 고 평안히 지낸다는 걸 알자 드디어 위에 항복했다.

곽과가 항복한 다음 날 후주는 몸소 사마소를 찾아가 그 앞에 절 하고 너그러운 처분에 감사했다. 사마소는 크게 잔치를 열어 유선을 대접하며 음악으로 그의 마음을 떠보았다.

먼저 위악(魏)을 들려주고 거기 맞춘 춤을 보여주자 유선을 따 라온 촉의 벼슬아치들은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빛을 띠었으나 유선 은 즐거워할 뿐이었다.

다음에 사마소는 촉인을 시켜 촉악(蜀樂)을 들려주어보았다. 그때 도 촉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으나 유선은 아무렇지도 않 은 듯 웃고 떠들었다. 술이 얼큰해진 사마소가 가충을 보고 말했다.

“사람이 정이 없다 해도 어찌 저 같을 수가 있겠는가? 설령 제갈공명이 살아 있어 도왔다 해도 저런 됨됨이로는 오래 나라를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강유 따위겠는가!”

그리고 후주 유선을 향해 물었다.

“이 생각나지 않으시오?”

“이렇게 즐겁게 지내니 그곳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유선이 사마소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사람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 보였다. 한참 뒤 후주는 옷을 갈아입으려고 술자리를 떴다. 극정이 뒤따라 가만히 일렀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촉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하셨습니까? 만 약 그가 다시 묻는다면 울면서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선친의 묘소가 멀리 촉 땅에 있으니 서쪽만 바라보아도 슬픕니다. 어느 날 하루 생 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렇게 하면 진공은 반드시 폐하를 풀 어주어서 촉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입니다.”

후주는 그 말을 머릿속에 새겨듣고 다시 술자리로 돌아갔다. 술이

한창 거나해진 사마소가 다시 물었다.

“정말로 촉 땅이 그립지 않으시오?”

후주는 각정이 시킨 대로 울며 말하려 했으나 눈물이 나지 않아 그저 눈을 감고 각정의 말을 되뇌었다.

“어찌하여 극정이 한 말과 비슷하오?”

듣고 난 사마소가 그렇게 물었다. 눈을 뜬 후주가 깜짝 놀라 사마소를 쳐다보며 털어놓았다.

“실은 말씀하신 대롭니다.”

그러자 사마소와 좌우에 앉았던 사람들은 모두 소리내어 웃었다.

사마소가 지레짐작으로 해본 소린지, 사람을 시켜 후주와 극정이 하 는 말을 엿듣고 한 소린지는 알 수 없으나, 후주의 사람됨이 변변치 못함은 그로써 더욱 뚜렷이 드러난 셈이었다.

사마소는 그런 후주의 못남을 성실함으로 여겨 그 뒤로는 다시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뒷사람들은 그 일을 이리저리 말하고 있으 되, 뉘 알랴, 실은 그게 후주가 한목숨을 지키는 데 가장 좋은 계책 일 수도 있는 것을. 게다가 이 일도 정사의 기록에는 없다.

한편 위의 조정 대신들은 사마소가 서천을 거둬들인 공을 내세워 그를 왕으로 봉하자는 표문을 위주 조환에게 올렸다. 그때 조환은 이름만 천자일 뿐 자신의 뜻을 내세울 처지가 못 되었다. 정권이 모 두 사마씨의 손에 있으니 감히 그 청을 마다하지 못하고 사마소를 진왕(王)으로 세웠다. 뿐만 아니라 그 아비 사마의는 선왕(宣王), 그 형 사마사는 경왕(景王)으로 올려 한층 사마씨의 위세를 더했다. 사마소의 아내 왕씨(王氏)는 왕숙(王肅)의 딸로 사마소와 사이에 아들 둘을 낳았다. 큰아들은 사마염(司馬炎)인데, 인물과 생김이 우 람하고 씩씩했으며, 머리칼을 펴고 서면 땅바닥에 드리우고 팔이 길 어 손은 두 무릎을 지났다. 사람됨이 밝으면서도 무(武)에 뛰어났고 담량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둘째 사마유(司馬)는 형과 달랐다. 성정이 부드럽고 따뜻하며, 몸가짐이 겸손하고 검소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도 깊 어 사마소가 그를 더 사랑했으나, 그 형 사마사가 아들 없이 죽어 그 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했다.

사마소는 평소에 늘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천하는 우리 형님의 천하다.”

라 했다. 따라서 형 사마사의 뒤를 잇는다는 점으로 보나, 자신의 정애로 보나 둘째 사마유를 세자(世子)로 세우려 들지 않을 수 없었 다. 산도가 그런 사마소를 말렸다.

“맏이를 제쳐두고 그 아래를 세워 뒤를 잇게 하는 것은 예에도 어 긋날 뿐만 아니라 상서롭지 못한 일입니다.”

가충, 하증(何), 배수(秀) 등도 역시 산도를 편들어 말했다. 

“맏왕자께서는 총명하고 신무하시어 세상에서 드문 재주를 지니셨습니다. 또 사람들의 바람이 이미 그분에게로 모아지고 있고, 타고난 용모도 한낱 남의 신하로 머물러 있을 상(相)이 아닙니다.” 

그래도 한번 사마유에게로 기울어진 사마소의 마음은 얼른 바뀌지 않았다.

태위 왕상, 사순의)까지 나서 사마소를 말렸다. 

“전에도 맏이를 제쳐놓고 그 아래를 세웠다가 나라가 어지러워진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부디 깊이 헤아려주십시오.”

그렇게 되자 사마소도 드디어 마음을 돌렸다. 사마염을 세워 세자로 삼았다.

세자를 정하는 일이 매듭지자 다시 대신들이 몰려와 말했다. 

“올해 양무현에 하늘이 한 사람을 내려보냈는데 키가 두 길이나 되고 발자국 길이가 석 자 두 치나 되며, 머리는 희고 수염은 푸른 데다 누런 홑옷에 누런 머리띠를 매고 있었다 합니다. 그 사람이 명 아주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민왕(民王)으로 너희에게 알린다. 천하는 주인이 바뀌어야 태평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거리를 떠돌기 사흘 만에 홀연 자취를 감추었는데, 이는 전하에게 상서로운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열두 줄 면류관을 쓰시고 천자의 정기를 앞세우시어 위 엄을 높이도록 하십시오. 금은으로 짠 수레에 여섯 필 말을 매심과 아울러 왕비는 황후(皇后)로, 세자는 태자(太子)로 올려 세우심이 마 땅할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사마소는 속으로 가만히 기뻤으나 그에게는 천자의 자리에 오를 운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부중으로 돌아와 밥상을 받다 가 중풍을 맞고 쓰러졌다.

다음 날이었다. 사마소의 병세가 위급하단 말을 듣고 태위 왕상, 사도 하증, 사마 순의와 여러 대신들이 문안을 왔다. 그때 사마소는 이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손가락으로 세자 사마염을 가리키 고 죽었다. 그해 팔월 신묘(卯)날의 일이었다.

“천하의 큰일은 모두 진왕에게 달려 있었소. 먼저 세자를 진왕으 로 세운 뒤에 장례를 치르는 게 좋을 듯하오.”

하증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그를 따라 그날로 사마염을 진왕으로 세웠다. 사마염은 하증을 승상으로 삼고 사마망(司馬望)은 사도, 석 포(苞)는 표기장군, 진건은 거기장군으로 올렸으며 그 부친 사마 소에게는 문왕(文王)이란 시호를 바쳤다.

사마소의 장례를 마친 뒤 진왕(王) 사마염은 가충과 배수를 궁 안으로 불러들여 물었다.

“일찍이 조조가 말하기를 만약 천명(天命)이 내게 이른다면 나도 주문왕(周)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했다는데 그게 정말이오?”

가충이 얼른 대답했다.

“조조는 대를 이어 한의 녹을 먹은 이로 사람들이 그에게 역적의 이름을 붙일까 겁이 나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아들 조 비로 하여금 천자가 되게 하려는 뜻임에 분명합니다.”

“고(孤)의 부왕(父王)은 조조와 견주어보아 어떠한가?”

사마염이 한층 속셈을 드러내 보이며 다시 그렇게 물었다. 가충이 그가 묻는 뜻을 알아차리고 열을 올려 듣기 좋은 말을 골랐다. 

“조조는 비록 공이 이 땅 전체를 뒤덮을 만했으나 아래로 백성들 은 그 위세에 머리를 그렸을 뿐 그 덕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은 아 니었습니다. 또 그 아들 조비가 뒤를 이어서 백성들을 모질게 끌어 다 부리고 동서로 싸움을 벌여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 뒤 선왕(宣王, 사마의) 경왕(景, 사마사)께서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우시 고 널리 은덕을 베푸시니, 천하의 인심은 그리로 돌아선 지 오래됩 니다. 거기다가 문왕(文王, 사마소)께서는 촉을 아울러 공이 우주를 두를 만한데, 조조 따위 하고야 어찌 견줄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자 힘을 얻은 사마염이 드디어 속셈을 바로 드러내었다. “조비가 한의 왕통을 이었다면 고는 어찌 위의 왕통을 잇지 못하 겠는가?”

가충과 배수 두 사람이 입을 모아 그런 사마염보다 한술 더 떴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서는 조비가 한으로부터 왕통을 이어받던 옛 일을 본받으십시오. 수선대(受禪臺)를 쌓아 천하에 널리 알리고 대 위에 오르시는 것입니다.”

그 말에 사마염은 몹시 기뻐하며 뜻을 굳혔다.

다음 날이었다. 사마염은 칼을 찬 채 궁궐로 들어갔다. 그 무렵 위 주 조환은 연일 조회를 열지 않고 있었다. 까닭 없이 마음이 어지러 워 몸둘 곳을 모를 지경이었다.

사마염이 그런 위주를 찾아 똑바로 후궁으로 들어오자 위주 조환 은 놀랍고 두려웠다. 얼른 용상에서 내려가 사마염을 맞아들였다. 서로 자리를 잡고 앉은 뒤에 사마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위의 천하는 누구의 힘으로 이룩되었다 생각하시오?”

그 갑작스런 물음에 위주 조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두가 진왕(王)의 부조(父祖)께서 내리신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염이 뜻 모를 웃음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내가 보기에 폐하는 문(文)도 도(道)를 말할 수 있을 만큼이 되지 못하고 무(武)에도 나라를 경영할 만큼 밝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어 째서 덕 있는 이에게 나라의 주인 자리를 물려주지 않으십니까?”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알아들은 위주는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잊었다. 그때 마침 그 자리에 있던 황문시랑(門侍郞)장절이 조환 을 대신해 큰 소리로 말했다.

“진왕의 말씀은 옳지 못하십니다. 지난날 위무황제(魏武皇帝, 조조) 께서는 동쪽을 쓸고 서쪽을 쳐 없애며 남쪽을 무찌르고 북쪽을 쳐부 수어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결코 쉽게 이 천하를 얻으신 것은 아니 었습니다. 거기다가 지금의 주상은 덕은 있을지언정 죄는 없는데 어 찌하여 남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란 말입니까?”

사마염이 벌컥 성을 내어 그런 장절의 말을 받았다.

“이 나라는 원래 대한(漢)의 것이었다. 그런데 조조가 천자를 끼 고 제후를 호령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위왕이 되어 한실을 찬탈했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는 삼대에 걸쳐 위를 도와 오늘이 있게 했다. 위가 천하를 얻은 것은 결코 조씨가 잘해서 그리된 것이 아니고 실 은 우리 사마씨의 힘이었다. 온 세상이 모두 그 일을 알고 있는데 이 제 내가 왜 그런 위를 물려받지 못한단 말이냐?”

그러자 장절도 지지 않고 맞섰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나라를 도둑질하는 역적의 짓이오!” 

그 소리에 사마염은 더욱 성이 났다.

“좋다. 그러면 나는 한을 위해 원수를 갚아주려 한다. 안 될 게 무어 있느냐?”

그러고는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이놈을 끌어내 때려죽여라!”

그 말에 무사들이 장절을 끌어내 바로 그 전각 아래서 때려죽였 다. 덜컥 겁인 난 위주 조환은 사마염에 무릎을 꿇고 울며 목숨을 빌 었다. 사마염은 아무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켜 전각을 나가버렸다. 조환은 급한 나머지 가충과 배수를 잡고 물었다.

“일이 매우 급해졌소. 이제 나는 어찌해야 되겠소?”

가충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하늘이 정한 운수가 이미 다했으니 폐하께서는 하늘의 뜻을 거 스르려 하지 마십시오. 마땅히 한의 헌제가 했던 일을 본받아 수선 대를 고치시고 대례(大禮)를 갖춰 제위를 진왕께 물려주도록 하십시 오. 위로 하늘의 뜻을 받들고 아래로 백성들의 마음을 따라 그리하신다면 폐하 스스로를 지키시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조환은 별수 없이 그 말을 따랐다. 가충을 시켜 수선대를 고치게 한 뒤 동짓달 갑자일로 날을 잡아 사마염에 제위를 넘겨주었다. 문 무의 벼슬아치들을 두루 모아놓고 위주가 몸소 전국傳國)의 옥새를 받쳐올리니 꼭 사십오 년 만에 조비가 한 짓을 그 손자가 그대로 당 한 셈이었다. 뒷사람이 그 일을 두고 노래했다.

위는 한을 삼키고 진은 위를 삼키니 魏吞漢室晋吞曹

돌고 도는 하늘의 이치 빠져나갈 길 없구나. 天運循環不可逃

가련하다 장절은 나라를 위해 죽었으나 張節可憐忠國死

주먹 하나로 어찌 태산 높은 걸 막을 수 있으랴. 卷恁障泰山高

수선대 위로 오른 사마염에게 옥새를 바친 조환은 대를 내려가 신하의 옷으로 바꿔 입고 벼슬아치들 틈에 끼어 머리를 숙였다. 사 마염이 수선대 위에 자리 잡고 앉자 가충과 배수가 칼을 짚고 좌우 로 갈라서더니 조환에게 명했다.

“조환은 폐하께 두 번 절하고 땅에 엎드려 명을 기다리라.”

조환이 그대로 하자 가충이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사마염의 명 을 전했다.

“한(漢)건안 이십오년 위가 한으로부터 나라를 물려받은 지 어느 덧 사십오 년이 지났다. 이제 하늘이 내리신 위(魏)의 복록은 끝나고 천명은 진(晋)으로 넘어왔다. 사마씨는 공과 덕이 하늘과 땅에 가득 해 가히 황제의 바른 자리로 나아갈 만하므로 이에 위를 이어받는다. 너를 진류왕(陳留王)에 봉하고 금용성(金城)에 머물러 살게 할것이니, 이 시각으로 곧 떠나라. 부름이 없으면 결코 경도(京都)로 들어와서는 아니 된다.”

그 말을 들은 조환은 울며 절하고 물러났다. 태부 벼슬에 있는 사 마부(司馬孚)가 그런 조환 앞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

“신은 한번 위의 신하가 되었던 몸입니다. 끝내 위를 저버리지 않 을 것입니다.”

사마부는 사마의의 아우이다. 사마염은 그러는 사마부를 갸륵히 여겨 괘씸함을 억누르고 오히려 그를 안평왕(王)으로 높였다. 그러나 사마부는 끝내 받지 않고 물리쳤다. 위의 마지막 충신은 오 히려 사마씨 가운데서 나온 셈이었다.

그날 문무의 모든 벼슬아치들은 대(臺) 아래서 두 번 절을 올리고 세 번 만세를 불러 위를 대신한 진을 받아들였다. 사마염은 나라 이 름을 대진)이라 하고 연호를 바꾸어 그해를 태시(始) 원년으 로 삼으며 천하에 크게 사면령을 내렸다. 이로써 위의 천하는 아주 끝나버린 셈이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흥망이 무상함을 노래했다.

진이 하는 짓 위와 같아 晋國規模如魏王

진류왕의 자취 산양공을 닮았구나 陳留蹤跡似山陽

수선대 앞의 일 두 번 거듭되니 重行受禪臺前事

돌아보며 그때의 쓸쓸함을 거두네. 回首當年止自傷

산양공(山陽公)은 조비(曹丕)에게 쫓겨난 한(漢) 헌제가 받았던 작위였다. 그 조비의 손자인 조환이 천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진류왕으

로 내려섰으니 이 또한 인과응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진제 사마염은 사마의를 높여 선제(宣帝)로, 큰아버지 사마 사는 경제(景)로, 아버지 사마소는 문제(文帝)로 시호를 올렸다. 그 리고 일곱 사당을 지어 윗대 조상들의 공덕을 기렸다. 그 일곱 사당 에 든 신위의 으뜸은 한정서장군(漢征西將軍) 사마균(司馬鈞)으로 사 마염의 육대조였다. 그다음은 오대조인 예장 태수

사마량(司馬亮), 그다음은 고조인 영천 태수 그다 사마전(司馬), 음은 증조부인 경조윤 그리고 다음이 할아비 사마방(司馬防)인 선제 사마의였다. 거기다가 큰 아버지인 경제 사마사와 아버지인 문제 사마소를 합쳐 일곱이었다.

큰 탈 없이 위를 둘러엎은 진제 사마염은 새 왕조를 여는 데 따르 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지자 다시 천하를 하나로 아 우르는 일에 눈길을 돌렸다. 매일 신하들을 불러모아 동오마저 삼킬 의논으로 밤낮을 지샜다.


여기서 망해버린 위를 개괄하고 아울러 마지막 삼국의 힘을 비교 해보자.

위는 건안 이십오년 시월 조비가 헌제에게서 선양받은 뒤로 문제 () 조비, 명제(明) 조예, 그리고 삼소제(三少帝)로 불리어지는 조방·조모·조환을 합쳐 오대 사십오년 만에 망했다. 뒷날 무제(武 帝)로 추존된 조조를 더하고, 그가 위(魏公)이 된 건안 십팔년부터 치더라도 육대 오십이 년 만에 망한 셈이다. 그 위를 세우기 위해 피를 뿌리고 죽어간 수많은 맹장 열사(烈)며 치러야 했던 수백 번의 싸움을 돌이켜보면 허망할 만큼 짧았던 왕조의 수명이었다.

삼국의 영토 크기는 대강 천하 열세 주 가운데서 위가 온전한 일 곱 주와 세 주의 일부를 지배했고, 오가 온전한 주 하나와 다른 두 개 의 주 대부분, 촉은 온전한 주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삼국의 인구는 위가 촉을 멸망시킬 때를 기준으로 위가 사백이십구만, 촉이 백팔만 정도였으며, 오가 멸망했을 때의 인구는 약 이백오십육만이었다. 촉의 멸망과 오의 멸망 사이에는 이십 년의 시차가 있다는 걸 감 안한다 할지라도 영토와 인구로 본 삼국의 국력 비교는 대략 위가 여섯에 오가 둘, 촉이 하나 정도로 말할 수 있을 듯싶다. 그런데 이 제 그 여섯과 하나를 합친 진(晋)이 겨우 둘로 버티는 오를 노리는 형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