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2권 – 9화 : 드디어 패자(者)의 길로
드디어 패자(者)의 길로
동군. 낙양 동쪽 팔백리, 옛 위(衛)나라에 설치된 군이다. 스물셋 의 한창 나이 때 환관들의 참소를 당해 그 속현(屬縣)인 돈구(頓丘) 의 현령을 지낸 이래 그곳은 조조와 인연 깊은 땅이 되었다. 그로부 터꼭십년뒤 이번에는 동군의 태수가 되어 선정(善政)을 펴다가 부친 조숭이 일억만 전으로 삼공의 하나인 태위 자리를 사는 걸 보 고 초현으로 낙향해 가게 된다. 벼슬을 팔고 사는 조정에 실망하여 병을 핑계대고 물러난 것이었다.
그 뒤 동탁을 치기 위해 의병을 일으켰다 실패함으로써 동군은 다시 한번 조조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관동의 제후들이 불화와 반 목 속에 뿔뿔이 흩어진 뒤, 싸움에 진 외로운 의병을 이끌고 근거도 없이 떠도는 조조를 흑산적(黑山賊)이란 도적의 무리가 불러들인 까닭이었다.
흑산적이란 황건란을 틈타 각처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도적떼가 서로 연결되어 이룬 세력이었다. 원래 그들은 흑산(黑山), 백파(白 波), 우각(牛角), 비연(飛), 뇌공(公), 우독 등 크면 이삼만이요, 작 으면 이삼천의 무리로 여기저기 산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 다가 영제(靈帝)말 장연(張燕)이란 괴수를 중심으로 흑산이란 이름 아래 뭉쳐 세력 백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조정은 이를 진압할 힘이 없어 한때 하북의 여러 주군이 그 세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뒷날 그 우두머리 장연이 표를 올려 투 항하니 조정은 그를 평난(難) 중랑장으로 삼고, 또 다른 우두머리 양봉(楊奉)을 흑산교위(黑山校尉)로 삼아 무리를 다독이게 했다. 이 에 한때 흑산적은 진정된 듯도 보였으나 동탁이 도성을 장안으로 옮기고 천하가 어수선해지자 그들은 또다시 무리를 지어 일기 시작 했다.
그들 가운데에 우독과 백(白), 휴고(眭固) 등은 무리 수십만을 모아 위군과 동군을 위협했다. 이때 겁을 먹은 동군 태수 왕굉肱) 이 조조에게 구원을 청해왔다. 흑산적이 조조를 불렀다 함은 바로 이런 사정을 달리 이른 말이었다.
조조는 휘하의 의병들을 이끌고 복양에서 백요의 군사들을 크게 깨뜨렸다. 그걸 본 우독과 휴고의 무리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니 동 군은 곧 평온해지고 동군은 사실상 조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때 조조에게 왕굉을 대신해 동군 태수를 맡게 한 게 원소였다. 한복(韓)을 위협해 기주를 빼앗은 뒤 힘을 기르는 데 열중하던 원소는 장안으로 표문을 올려 조조의 공을 아뢴 뒤 조조를 동군 태수 로 추천했다. 지난날 공손찬과 싸울 때 공손찬을 도운 흑산적을 물 리쳐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함과 아울러 그 기회에 조조와 긴밀하 게 맺어져 필요하면 그의 힘을 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때껏 대권을 잡고 있던 동탁은 아직 조조에 대한 노여움이 풀 어지지 않았으나 황제를 움직여 조조를 동군 태수로 삼았다. 이왕에 조정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관동의 일이요, 또 그 동군은 이미 사 실상 조조의 손안에 들어가 있다는 걸 알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 다는 식으로 동탁이 선심을 쓴 덕분이었다.
조조에게는 호랑이가 날개를 얻은 일이나 다름없었다. 의병이란 군사를 움직이는 구실을 마련하는 데도,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 동군 태수가 됨으로써 그의 군사들 은 관군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군자도 세금을 거두어 쓸 수 있게 되 었다.
조조는 곧 동무양을 치소(治所)로 삼고 동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 같은 난세에서 가장 빨리 세력을 키워가는 길은 다른 세력을 깨뜨려 그 근거지와 군사들을 아우르는 길이었다. 조조는 그 상대를 먼저 아직 남아 있는 부근의 흑산적으로 잡았다. 머릿수는 많았지만 오합지중이나 다를 바 없는 흑산의 무리가 그 같은 조조의 공격을 당해낼 리 없었다. 이듬해 봄이 되자 우독, 휴고 등의 무리는 조조에게 많은 군사만 보태준 뒤 동군 근처에서 사라지 고, 드디어 조조는 한 땅의 주인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흑산적을 돕던 어부라(於羅)란 흉노의 추장을 내황에서 크게 쳐부수고 돌아온 며칠 뒤 조조는 한바탕 크게 잔치를 벌여 장졸들을 위로했다. 그때 이미 조조에게는 처음 진류 땅을 떠날 때보다 배가 넘는 장수와 모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과 함께 술잔을 들던 조조 는 돌연 한 가닥 시흥이 솟았다.
흥겨움과 기쁨의 시흥이기보다는 쓰라림과 슬픔의 시흥이었다. 드디어 젊은 날 한실에 바쳤던 충성의 맹세를 철회하고 패자) 의 길로 들어선 사십 줄의 자신과 어지러운 세상으로 신음하는 백성 들, 그리고 이제는 대의보다 영웅들의 감춰진 야망을 위해 죽어가게 될 장졸들에 생각이 머무르자 갑자기 비감에 젖어든 탓이었다.
“제공들, 내 호리행(蒿里行,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글의 일종)한 수 읊 겠소이다.”
조조가 잔을 놓으며 그렇게 말한 뒤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했다.
관동에 의로운 이들 있어 關東有義士
흉한 무리 치고자 군사를 일으켰네. 興兵討群凶
맹진에서 만나 처음 기약할제 初期會盟津
마음은 모두 임금 계신 도성에 있었으되 乃心在咸陽
힘을 모음에 가지런하지 못하고 軍合力不齊
혹은 앞서고 혹은 머뭇거렸네. 躊躇而雁行
세력과 이익 사람을 다투게 하고 勢利使人爭
끝내는 서로 죽이며 돌아섰네. 嗣還自相狀
거기서 조조는 잠시 읊조리기를 멈추었다. 형양(滎陽)에서 패주하던 자신의 참담한 모습이 새삼스런 비분으로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곧 목소리를 가다듬어 계속했다.
회남에서는 임금이 참칭되고 淮南帝稱號
옥새는 북쪽에서 새겨지니 刻璽於北方
갑옷과 투구에는 이가 생기고 鎧甲生蛾風
수많은 백성 싸움에 죽네. 萬姓以死亡
흰 뼈 들판에 널려 있고 白骨露於野
천리에 닭 우는 소리 들리지 않으니 千里無鷄鳴
살아남은 자 백에 하나나 될까 生民百遺一
생각하면 애가 끊기는 듯하네. 念之斷人腸
조조의 읊조림이 끝나자 흥겹던 술자리는 한동안 숙연해졌다. 그러다가 하후돈이 끝내 의아로운 듯 조조에게 물었다.
“주공, 회남에서 제호(帝號)를 참칭한다면, 원술이 이미 제라도 했단 말씀입니까?”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돌아가려는 손견을 가로막던 그의 눈길을 잘 기억하고 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칭제할 자가 있다면 틀 림없이 그가 가장 먼저일 것이다.”
조조가 조용히 대답했다. 그때 조인(曹仁)이 다시 물었다.
“북쪽에서 옥새를 새기는 자란 원소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그는 이미 작년에도 한 번 옥새를 새겼다.”
원소가 그 전해에 이미 옥새를 새겼다는 것은 실패로 끝난 원소의 새로운 황제 추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직 한복과 갈라서기 전이던 그해 정월 원소는 한복과 함께 조조에게 유주목(幽州牧)으로 있던 유우(劉虞)를 제위에 올리자는 제안을 해온 적이 있었다. 일은 유우의 거절로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조조는 그 일을 통해 원소의 가슴속에 숨은 야심의 크기만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 내막 을 잘 알지 못하는 조인은 알 수 없다는 듯한 눈길로 조조를 바라보 며 물었다.
“그럼 원소가 모반을 꾀한 적이 있단 말입니까?”
그때 장수들 틈에 끼어 앉았던 모사 하나가 조조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렇소이다. 지난해 정월에 종실 한 사람을 제위에 추대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소.”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띤 얼굴로 조조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주공의 노래는 방금 수십만 도적의 무리를 깨치고 돌아 온 영웅의 것이 못됩니다. 문사의 감상은 죽은 자를 더 무겁게 여기 되, 남의 우두머리 된 이의 경륜은 언제나 산 자를 위주로 펼쳐져야 합니다. 지금 이 뜰 안과 뜰 밖의 장졸들은 한결같이 주공을 위해 창 검과 시석을 두려워 않고 싸워온 이들입니다. 주공께서는 마땅히 이 자리를 흥겨움과 기쁨으로 차게 하여 이들 장졸들을 위로해야 할 것 입니다.”
사실 조조도 반드시 죽은 자를 위한 감상에만 빠져 있는 것은 아 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죽은 자를 더 무겁게 여김으로써 산자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위해 죽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뜻도 숨어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방금 충언을 한 모사만은 그런 조조의 속마음을 알 만한 사람이었다.
그 젊은 모사의 이름은 순욱), 자는 문(文)으로 영주 영 음 땅 사람이었다. 그 조부 순숙(荀淑)은 순(順), 환(桓) 시절 에 널리 이름이 알려졌던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는 세상에서 ‘순팔 룡(荀龍)’으로 불려지는 여덟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둘째 곤(昆)과 여섯째 상이 특히 뛰어나 곤은 제남상(濟南相)을 지냈고 상은 사공(司空)에까지 올랐다. 순욱은 바로 그 곤의 아들이 었다.
순욱은 어려서부터 그 재주가 뛰어나 사람들은 그를 왕좌지재(王 佐之)라 불렀다. 일찍이 효렴에 천거되어 수령(守令)의 벼슬을 받았고 이어 동탁이 도성에 들어오자 그를 항보령(令)으로 삼았 다. 그러나 순욱은 그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천으로 돌아가 부로(父 老)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영천은 사방이 싸우기에 좋은 땅입니다. 천하에 변란이 일면 항 상 군사들이 이곳에서 부딪게 되니 오래 머물 땅이 못 됩니다. 기주 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든 땅을 버리기 싫어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이때 기주 태수 한복은 순욱이 오겠다는 말을 듣자 말까지 보내어 그를 맞아들이게 했다. 순욱은 할 수 없이 자기 일족만 이끌 고 기주로 옮겨 갔으나 순욱이 당도했을 때는 이미 원소가 기주의 주인이 된 뒤였다.
원소도 순욱의 재주는 들어 알고 있는지라 상빈(上賓)의 예로 그를 맞아들였다. 순욱의 아우 순심(荀諶)과 같은 군의 신평(評), 곽도(圖) 등이 원소로부터 벼슬을 받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 나 이내 순욱은 원소의 그릇이 큰일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걸 헤아리 고 조조에게로 찾아왔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살 때였다. 조조 또한 순욱의 재주를 들어 알고 있어 크게 기뻐하며 그를 맞아들였다.
“그대는 나의 자방(子房, 장향의 자)이 되어주시오.”
조조는 그렇게 간청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동탁에 대 해서 물었다. 순욱이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동탁은 포학이 점점 심해지니 머지않아 반드시 비참한 끝을 보 게 될 것입니다. 그를 치려고는 아무 힘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에 조조는 더욱 기뻤다. 앞날을 내다보는 순욱의 안목은 영 천 땅의 지세를 말한 일로 그 밝음이 이미 증명된 바였다. 순욱 일가 가 기주로 옮기고 오래잖아 영천 땅은 동탁이 보낸 이각군의 무자비 한 노략질을 당해 많은 백성들이 재물과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런 순욱이 조조의 마음속을 헤아리지 못할 리 없었다. 그런데도 죽은 자보다 산 자를 무겁게 여기라고 말한 까닭은 자신의 비감(悲 感)이 지나친 탓이라는 걸 깨닫자, 조조는 재빠르게 감정을 전환시 켰다. 그 특유의 드높은 소리로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무려면 내가 여러 장졸들의 노고를 가벼이 여기기야 하겠소? 아마도 내 노래가 지나쳤던 것 같소. 자, 이제부터 흥겹게 잔을 듭 시다.”
그리고 먼저 한 잔을 들이켠 뒤 여러 장수와 모사들에게도 술을 권했다. 자리는 이내 흥겹게 어우러졌다. 그런데 다시 그로부터 오래잖아 사람이 와 알렸다.
“장안에서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온 이가 있다고 합니다.”
조조가 그를 들이게 하고 보니 장사치를 가장해 장안으로 보냈던 세작 가운데 하나였다. 조조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
“동탁이 사도 왕윤 등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왕사도가 무슨 힘이 있어 동탁을 죽였단 말이냐?”
“여포와 이숙의 도움을 받아 그를 모살했다 합니다.”
그리고 그 세작은 자세히 일의 전말을 고했다. “물러가 있거라.”
듣기를 마친 조조는 그렇게 그를 돌려보낸 뒤 장수와 모사들에게 물었다.
“이제 동탁이 죽었다 하니 우리는 무엇을 어찌했으면 좋겠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홍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여포 따위에게 조정과 천자를 맡겨서는 안 됩니다. 머지않아 또 다른 동탁이 생겨날 것입니다. 급히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가 미 리 화근을 없애는 게 좋겠습니다.”
조조도 그 점이 염려스러웠다. 왕윤과 황완 등이 일을 꾸몄다 하 나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여포였기 때문이다.
조조는 그 여포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제 그 본색을 드러내어 닭 모 가지 하나 비틀 힘이 없는 조정의 늙은 대신들을 위협해 새로운 동 탁이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군사를 일으켜 장안으로 진격하는 것은 성급한 일 같았다.
이에 조조는 대답 대신 가만히 순욱을 보았다. 순욱은 무겁게 고 개를 저은 뒤 일어나 말했다.
“주공께선 아직도 움직이셔서는 아니 됩니다. 비록 여포가 시랑 (豺狼)이 같은 무리라 하나 천자가 그 손안에 있고 또 지금 대국을 주재하고 있는 것이 사도 왕윤인 이상 아직도 대의명분은 그쪽에 있 습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오히려 천자와 조정 대신에 항거하는 역 적으로 몰릴 염려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또 하나 미덥지 못한 것은 동탁의 잔당입니다. 동탁은 죽었으나 그가 거느린 병마는 아직 고스 란히 보존되어 있으니 반드시 뒤탈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왕윤은 채옹을 죽이고 동탁의 네 장수에게 끝까지 사면을 허락하지 않았으 니 누가 칼을 손에 쥐고서 잡혀 죽기를 기다리겠습니까? 주공께서 는 당분간 이곳에서 병마를 쉬게 하시면서 형세의 변화를 보아 거기 에 대처하는 게 옳을 것입니다.”
마치 조조의 마음속을 읽고 있기나 한 듯한 대답이었다. 하나 빠 진게 있다면 천자의 신임을 깊게 하기 위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 라는 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동탁이 죽고 조정 대신들이 대권을 되 찾은 듯 보여 안심하고 있을 어린 천자에게 조조가 군사를 몰고 들 어가 대권을 빼앗을 경우, 열에 아홉은 동탁과 같은 부류로 의심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약, 순욱의 자)의 말이 옳소. 가벼이 군사를 움직여 낭패를 당하느니보다는 이곳에서 당분간 형세를 살피는 것이 좋겠소. 이 일 은 그리 정하고 모두 술이나 드시오.”
조조는 그렇게 말하여 기고만장한 무장들의 의견을 누르고 기다리기로 했다.
과연 일은 며칠 안 돼 예측대로 발전해갔다. 이각과 곽사, 장제, 번조가 십여만 양주 사람들을 모아 장안으로 진격한다는 소식이 들 리는가 싶더니, 이어 여포가 싸움에 져서 달아나고 장안성이 떨어졌 다는 전갈이 들어왔다. 그러나 더 기막힌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선평문 문루 아래서 사도 왕윤을 죽인 이각과 곽사는 잠시 생각 한 뒤 엉뚱한 쪽으로 의논을 맞추었다.
“이왕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천자를 죽여 대사를 도모하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는가?”
“그러세. 아예 여기서 일을 맺어버리세.”
그리고 둘은 칼을 빼들고 소리를 치며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때 함께 온 괴수 장제와 번조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아니 되오. 오늘 급하게 천자를 죽이면 사람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을까 두렵소이다. 전에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를 주인으로 받들 며 우리가 장안에 들어온 걸 구실 삼아 제후들이 입관(入關)하기를 기다림만 같지 못하오. 그들을 깨뜨려 먼저 그 깃과 날개를 잘라버 린 뒤에 천자를 죽이면 천하를 도모해볼 수도 있을 것이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었다. 이에 이각과 곽사는 그 말을 좇아 칼을 거두었다. 이때 누각 위에서 헌제의 선유가 내려왔다.
“왕윤이 이미 죽었거늘 어찌하여 군마를 물리지 않는가?”
이각과 곽사 등 네 사람은 거기에 대답했다.
“신 등은 왕실을 위해 역적을 죽였으니 그 공이 적지 않은 터이나 아직 벼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에 감히 물러나지 않고 성지(聖旨)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황제가 마지못해 물었다.
“경들이 원하는 관작은 무엇인가?”
그러자 이각, 곽사, 장제, 번조는 제각기 바라는 벼슬 이름을 댔다. 헌제는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들어주었다. 이각은 거기장군 지양후 (池陽侯)에 사예교위 가절월(假節)을 삼고, 곽사는 후장군 가절월 에 병조정(秉政)을 겸하게 했다. 번조는 우장군 만년후(萬年侯)에 봉했으며 장제는 표기장군 평양후(平陽侯)를 삼고 나머지 이몽(李 蒙), 왕방(方) 등의 무리도 모두 교위로 삼았다. 그제서야 이각의 무리는 천자께 사은하고 군사를 궐 밖으로 물리었다.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지 못한 권력의 승계자가 그걸 메우기 위 해 즐겨 이용하는 방법의 하나는 앞사람의 정통성과 권위에 의지하 는 방법이다. 거기서 죽은 전임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산 후임자를 위해 전임자의 신화가 조작되고 업적의 과장이 일어난다. 그러함으 로써 그를 이은 후임자도 정통성과 권위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각의 무리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변방의 미천한 장수였고, 그 얼마 전까지도 동탁의 사병 우두머리에 불과하던 그들이 한나라의 대권을 잡기 위해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죽은 옛 주인뿐이었다. 이 에 그들은 수하 장졸들에게 명하여 동탁의 시신을 거두게 하는 한편 성대한 장례식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동안 동탁의 시신은 어디론가 없어지고, 효수되었던 머 리도 부서져 흩어져버렸다. 며칠을 두고 장안을 뒤졌으나 찾은 것은 부서진 피골(骨) 몇 조각에 지나지 않았다. 이각의 무리는 어쩔 수없이 그것에다 향나무로 사람의 형체를 짜 맞추어 시신을 대신케 했
다. 그리고 크게 제사를 지낸 뒤, 왕자의 의관과 관곽(棺)을 갖추 고 날을 가려 미오()에 장사지내려 했다.
그런데 장례일이 되자 갑자기 뇌성이 일며 큰 비가 쏟아졌다. 금 세 평지에도 물이 몇 자나 쌓이고 동탁의 관곽은 벼락을 맞아 시체 가 드러났다. 할 수 없이 이각의 무리는 맑은 날을 가려 다시 장례를 치르려 했으나 그날 밤 또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세 번째로 개장 (改葬)을 해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관은 흙 밖으로 나와 있고, 몇 조각 피골마저 벼락에 타 없어져버렸다. 하늘이 동탁을 미워함이 그 와 같았다.
하지만 대권을 잡은 이각과 곽사는 조금도 두려워함이 없이 동탁 에 못지않은 폭정을 폈다. 백성을 학대함도 그러려니와 천자를 구박 함은 더했다. 헌제의 좌우에 몰래 심복들을 풀어놓아 그 일거일동을 낱낱이 살피게 할 정도였다. 동탁을 본받아 민심을 수습한답시고 인 망 높은 주준(朱)을 불러 태복에 앉혔지만, 조정에서도 마찬가지였 다. 대소 관원들의 벼슬이 그 두 사람의 말 한마디에 오르고 내렸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홀연 이각과 곽사에게 급한 전갈이 들어왔다.
“서량 태수 마(馬)과 병주 자사 한수가 십여만 대군을 이끌고 장안으로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적을 쳐 나라를 평안케 하 려 한다고 떠든다는 것입니다.”
이각과 곽사에게는 갑작스러운 내습이었지만 사실 거기에는 숨은
내막이 있었다.
마등과 한수는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 조정의 대신들 가운데서 내응할 사람을 찾았다. 거기에 가담한 것이 시중 마우(馬)와 간의대부 충소(种邵), 좌중랑장 유범(範) 세 사람이었 다. 세 사람은 가만히 헌제에게 상주하여, 마등을 정서장군, 한수를 진서장군으로 삼은 뒤 밀조를 주어 이각의 무리를 치게 한 것이다. 그 같은 내막은 알 길이 없었으나, 대군이 장안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말에 이각의 무리는 크게 놀랐다. 곧 이각, 곽사, 장제, 번조 네 우두머리가 모여 적을 막을 계책을 궁리했다.
모사 가후)가 일어나 말했다.
“서량, 병주 두 곳의 군사들이 밀려온다 하나 크게 근심할 일은 못 됩니다. 도랑을 깊게 파고 성벽을 높여 굳게 지키기만 하면 멀리 서 온 그들은 식량이 떨어져 스스로 물러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 다. 그때 군사를 내어 그 뒤를 치면 마등과 한수를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왕방(王)과 이몽(李)이 나란히 일어나 반대했다.
“그건 좋은 계책이 못 됩니다. 원컨대 저희에게 군사 만 명만 내어 주신다면 선 채로 마등과 한수의 목을 잘라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나가 싸운다면 반드시 지고 말 것이오.”
가후가 한마디로 그들의 말을 막으려 들었다. 그러나 왕방과 이몽 이 목소리를 합쳐 소리쳤다.
“만약 우리 두 사람이 이 싸움에 진다면 목을 쳐도 좋습니다. 그러 나 우리가 이긴다면 공 또한 우리에게 그 목을 내주어야 할 것이오!” 그런 두 사람의 기세는 자못 씩씩했다. 이각과 곽사도 그런 그들 의 기세에 넘어가고 말았다. 군사 만 오천을 헤아려 내주며 마등과 한수를 막게 했다.
이몽과 왕방은 기꺼운 마음으로 장안을 떠나 이백팔십 리쯤 떨어 진 곳에 진채를 세웠다. 오래잖아 서량의 군사들도 그곳에 이르렀 다. 이몽과 왕방은 각기 군사를 이끌고 그들을 맞으러 나갔다. 서량 쪽에서는 마등과 한수가 말고삐를 나란히 잡고 나오더니 왕방과 이 몽을 손가락질해 꾸짖은 뒤 좌우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라를 저버린 저 역적 놈들을 누가 가서 사로잡아 오겠느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소년 장군이 씩씩하게 소리치며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그리고 손에 장창을 비껴든 채 준마를 박차 날듯 달려 나가는 그 의 모습을 보니 얼굴은 관옥(玉)같고 두 눈은 샛별같이 빛났다. 호랑이 몸에 원숭이 팔이요, 표범의 배에 이리의 허리였다. 다름아 닌 마등의 아들 마초(馬)로 그때 겨우 나이 열일곱 살이었지만 씩 씩하고 날래 이미 그를 당할 자가 없다는 평판이 나돌 정도였다. 왕방은 상대가 어린 걸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말을 달려 맞았다. 그러나 몇 번 말이 어우르기도 전에 마초의 한 창에 찔려 말 아래로 떨어졌다.
왕방이 한 창에 찔려 죽는 걸 보자 이몽은 두 눈이 뒤집혔다. 의기 양양하게 말을 몰아 자기의 진채로 돌아가는 마초를 향해 살같이 말 을 달렸다. 마초는 그걸 모르는 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멀리서 애 가 탄 마등이 큰 소리를 질러 알렸다.
“조심해라. 네 뒤에 따라오는 자가 있다!”
미처 마등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느새 마초는 이몽을 사로잡아 말 위로 싣고 있었다. 원래 마초는 이몽이 뒤쫓아 오는 것을 알 고 있었으나 짐짓 모르는 체하다가 이몽이 창을 들어 찌르려 하자 잽싸게 몸을 뒤틀어 피했다. 그리고 말이 서로 스쳐갈 때, 원숭이 같 은 팔을 내뻗어 헛창질에 당황한 이몽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한꺼번에 두 주인을 잃어버린 이몽과 왕방의 군사는 가을바람에 가랑잎 흩어지듯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마등과 한수는 그들을 쫓아가며 죽이고 사로잡아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곧바로 애 구(隘口)에 이른 뒤에야 군사를 멈춘 뒤 사로잡은 이몽을 목 베어 한 층 기세를 올렸다.
이각과 곽사는 이몽과 왕방이 마초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가후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그의 계책을 중히 여겼다. 각 곳의 관을 굳게 지키며 적이 싸움을 돋우어도 맞서 싸우 지 아니했다. 과연 서량군(西凉軍)은 채 두 달도 못 돼 군량과 말 먹 일 풀이 아울러 떨어지자 별수없이 돌아갈 의논을 했다.
이때 장안성 안에서 내응하기로 한 세 사람 중 시중 마우馬)의 가동(家)한 놈이 다시 일을 그르쳤다. 마우가 가까이 두고 부리는 종이라 주인과 유범, 충소가 꾸미는 일을 대강 알고 있던 그는 서량 군이 이길 가망이 없다는 걸 알자 문득 딴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이 각과 곽사를 찾아가 마우와 유범, 충소 등이 밖에 있는 마등과 한수 의 편이 되어 내응하기로 한 사실을 일러바쳤다. 이각과 곽사는 크 게 성을 내어 그들 셋의 가족은 물론 부리는 사람까지 모조리 죽이 게 한 뒤 그들 세 사람의 목을 나란히 성문 위에 매달게 했다.
마등과 한수는 이미 군량이 다한 데다 안에서 호응하기로 한 그들 셋마저 죽은 걸 알자 드디어 진채를 뽑아 군사를 물렸다. 이각과
곽사는 장제와 번조에게 군사를 주어 그런 마등과 한수를 뒤쫓게 했다.
그렇게 되자 가후가 예측한 대로 서량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마등 을 뒤쫓게 된 장제는 마초가 죽기로 싸워 물리쳤으나 한수를 뒤쫓게 된 번조는 그대로 승승장구하여 진창 땅까지 쫓아갔다.
쫓기던 한수가 돌연 말을 세우고 번조를 향해 소리쳤다.
“공과 나는 원래 같은 고향 사람인데 어찌 이리 무정하게 쫓으시오?”
원래 번조와 한수는 다 같은 고향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젊었을 적 에는 약간의 친분도 있었다. 이에 번조는 문득 마음이 흔들렸으나 곧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했다.
“위에서 받은 명은 어길 수가 없소이다.”
번조의 마음이 약간이나마 움직였음을 눈치 챈 한수가 더욱 간곡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렇게 온 것 또한 나라를 위해서일 따름이오. 공께서는 너 무 핍박이 심하시구려.”
그러자 번조는 한수를 살려주고 싶었다. 문득 말 머리를 돌리더니 자기 군사를 수습해 장안으로 돌아갔다.
그때 번조의 진중에는 이각의 조카 이별(李別)이란 자가 있었다. 번조가 한수를 살려 보내는 걸 보고 가만히 그 아재비 이각에게 알 렸다. 그 말을 들은 이각은 몹시 노했다. 금세 군사를 일으켜 번조를 치고자 했다. 가후가 곁에서 가만히 말했다.
“아직 민심이 안정되지 않은 터에 자주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좋 지 않습니다. 장제와 번조가 싸움에 이긴 공을 치하하는 술자리를 만들어 둘을 청하십시오. 그 자리에서 번조를 잡아 죄를 묻고 목을 베시면 힘들이지 않고 뜻하신 바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그의 꾀에 의지해 마등과 한수를 이긴 뒤라 이각은 성난 가운데도 기꺼이 가후의 말을 들었다. 서둘러 큰 잔치를 마련하고 장제와 번 조를 청했다. 싸움에 이기고 돌아온 장수를 위로한다는 명목이니 누 구도 그런 이각을 의심치 않았다. 장제와 번조도 흔연히 참석했다. 그런데 술자리가 반쯤 무르익었을 무렵이었다. 그때껏 좋은 말로 장제와 번조의 공을 추켜세우던 이각의 안색이 갑자기 변하여 번조 를 꾸짖었다.
“번조는 어찌하여 한수와 몰래 통하고 모반을 꾀하는가?”
그 말에 번조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미처 무어라고 변명을 늘어 놓기도 전에 칼과 도끼를 든 무사들에 둘러싸여 나간 뒤 오래잖아 목만 잔치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걸 본 장제는 죄도 없이 더럭 겁이 났다. 그대로 땅에 엎드려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각이 그런 장제를 부축하여 일으키며 말했다.
“번조는 모반을 꾀했기에 주살했을 뿐이오. 공은 내가 깊이 믿는 장수인데 무어 두려워할 게 있겠소?”
그리고 번조의 군사를 장제가 아울러 거느리게 했다. 동탁 아래서 는 같은 열(列)의 장수였으나 어느새 이각의 수하로 떨어지고 만장 제는 두말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홍농으로 가 머물렀다.
이각과 곽사가 스스로의 힘으로 서량의 대군을 깨뜨렸다는 소문이 돌자 제후들은 아무도 감히 장안을 넘보지 않았다. 그러자 가후 는 이각과 곽사에게 여러 차례 권하여 백성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힘 있는 호걸들과는 연결을 지어두게 하니 비로소 조정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장안의 소식을 거기까지 듣자 조조는 문득 불안해졌다. 그대로 이 각과 곽사의 세상으로 천하가 안정돼 버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마 등과 한수가 기병(起兵)할 때 함께 군사를 내지 않은 게 은근히 후회 가 될 지경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조에게 크게 힘을 늘릴 기회가 왔다. 청주(靑 州)에 다시 황건적이 인 것이었다. 전에도 황건의 잔당들이 여기저 기서 소요를 일으킨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큰 규모는 아니었다. 그 런데 이번에는 삼십만이 넘는 대군으로, 비록 각기 우두머리는 달 라도 흑산적처럼 서로 연결하여 삽시간에 청주를 휩쓸어버렸다. 동군과 청주는 삼백 리 남짓,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거 리였다. 날랜 기병을 내어 달려오면 이틀로 넉넉히 짓밟을 수 있었 다. 거기다가 이미 청주를 휩쓴 황건의 서쪽 전봉과 조조가 다스리 는 동군의 변경 관병은 부딪기 시작했다.
조조는 다시 순욱을 불러 의논했다.
“지금 서쪽에는 이각과 곽사 두 도적이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 하고 있고, 동쪽에는 백만 황건이 일어 백성을 도륙하고 있소. 전일 공은 군사를 기르며 쉬기를 진언하였으나 등과 배에 각기 용서 못할 도적의 무리가 있으니 더는 앉아서 저들이 날뛰는 꼴을 구경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소이다. 만약 군사를 일으킨다면 어느 쪽을 먼저 쳐야 할 것 같소?”
“황건의 무리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소. 장안은 이각과 곽사가 자못 선정을 펴 인심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하니 아직은 더 곪기를 기다려 째야 할 종기요. 그런데 황건을 먼저 치되 지금은 때가 아니라니 그건 또 어찌 된 까닭이오?”
그러자 순욱은 조용히 대답했다.
“황건의 무리는 아직 일어난 지 오래지 않아 예기가 제법 날카롭 습니다. 거기다가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연주목 유대와 제북상 포신 이 힘을 합쳐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기든 지든 그들이 황건의 기세 를 무디게 한 뒤에 주공께서 나서면 힘은 반이 들고 공은 배를 이룰 것입니다.”
조조는 속으로 은근히 급했으나 순욱의 말을 듣고 보니 또한 옳았 다. 급한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여전히 장안과 청주의 형세만 살폈다. 그런데 사흘도 안 돼 일은 순욱이 예측한 대로 되었다. 제북상 포 신이 연주군의 주리 만잠과 몇몇 종자를 이끌고 동군으로 달 려왔다.
“그때 낙양에서 뿔뿔이 흩어진 뒤에 오래 뵙지 못했소이다. 오늘 은 무슨 일로 이렇게 급히 달려오시었소?”
몸소 관사 밖으로 나가 포신을 맞아들인 조조가 자리를 정하기 바쁘게 물었다. 그러자 포신은 쓸데없는 말은 다 빼고 곧바로 달려 온 까닭을 밝혔다.
“조공(曹公)께서 연주목을 맡아주셔야 거센 물결 같은 황건의 기세를 꺾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연주의 주리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길입니다.”
“나더러 연주목을 맡으라니? 연주는 유대가 맡고 있지 않소?”
“유공(公)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간밤에 도적에게 해를 입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때 함께 온 만잠이 곁에서 거들었다.
“처음 도적이 연주 경계에 나타났을 때 제북상께서는 우리 사군 (使君)께 간했습니다. ‘적은 무리가 백만이나 되어 백성들은 한결같 이 두려워 떨고 우리 사졸들은 싸울 마음이 없으니 대적하기 어렵습 니다. 하오나 도적들을 가만히 살피건대 한결같이 치중輜重)을 제 대로 갖추고 있지 않기로 그 약한 곳을 찌르는 계책을 세워보았습니 다. 먼저 군사와 백성들의 힘을 모아 굳게 지키면 적은 싸우려야 싸 울 수도 없고 공격해야 이길 수도 없어 저절로 흩어져갈 것입니다. 그때 가리고 골라 뽑은 군사들로 요해(要害)가 될 만한 곳을 점검하 고 있다가 그들을 치게 하면 능히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군께서는 제북상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군사를 내어 도적 들과 맞붙어 싸우다가 기어이 해를 입고 마신 것입니다. 따라서 지 금 우리 연주는 주인 없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연주가 비록 보잘 것없는 땅이라 하지만 하루도 주인이 없어서는 안 되겠기에 제북상 께 의논하여 이렇게 태수님을 찾아 뵙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수) 보퉁이를 내려놓았다. 치소인 동무양을 중심 으로 동군의 십여 개성은 이미 조조란 용이 놀 물로는 좁아져 있었 다. 그런 때에 저절로 천하 열세 개 주 가운데 하나인 연주가 굴러 들어오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조조는 기쁨을 내색하지 않
고 오히려 엄숙한 낯빛으로 말했다.
“비록 이 조조에게 약간의 군마가 있다 하나 관원의 인수는 사 사로이 주고받는 것이 아니외다. 반드시 조정의 명에 따라야 할 것 이오.”
그 말에 포신이 격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 신도 또한 한나라의 신하로서 그 이치를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조정은 이각과 곽사 두 도적이 틀어잡고 있어 폐하의 성덕이 올바로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루도 연주를 주인 없이 비워둘 수가 없어 편법을 쓴 것입니다. 조정의 허락은 먼저 도적들 을 물리치신 뒤에 받아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조는 기어이 인수를 받지 않았다. 이에 포신은 사람을 장안으로 보내 황건적이 크게 일어 유대가 죽은 일과 조조를 연주목 으로 삼아달라는 글을 올리게 했다.
글은 먼저 조정을 관장하는 태복 주준에게 들어갔다. 그러나 미처 황제에게 아뢰기도 전에 이각과 곽사의 부름을 받았다. 주준이 조당 에 이르니 이미 다른 관원들도 모두 그리로 불려나와 있었다.
“지금 산동 일대에 크게 황건이 일었다 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각과 곽사도 소문을 들은 듯 자못 근심스런 얼굴로 백관에게 물었다. 태복 주준이 나서서 말했다.
“그 일이라면 꼭 한 사람 천거할 인재가 있소이다.”
“그게 누구요?”
“황건의 무리를 깨뜨리는 일은 조맹덕(曹孟德)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듯하오.”
“맹덕은 지금 어디 있소?”
이각과 곽사가 한꺼번에 주준에게 물었다.
“그는 지금 동군의 태수로 있소이다. 휘하에 많은 용장, 모사와 날래고 씩씩한 사졸들이 있으니 이 사람을 연주목으로 삼아 황건을 치 게 하면 며칠도 안 돼 그 무리를 깨뜨려 흩어버릴 것이오.” “그렇지만 연주목은 따로 있지 않소?”
이각이 주준에게 물었다.
“그는 이미 죽었소.”
그제서야 주준은 포신이 올린 글을 내보였다.
이각과 곽사에게 달리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앞날에 대한 긴 안 목이 없는 그들에게는 자기 군사들을 상하지 않고 도적의 무리를 없 앨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기쁠 지경이었다. 이각은 그날 밤 안으로 조 조에게 연주목을 내림과 아울러 포신과 함께 힘을 다해 도적을 치라 는 조서를 얻어내 동군으로 보냈다.
성지(聖旨)를 받은 조조는 곧 제북과 연주의 잔병들을 수습한 포 신과 함께 황건을 치러 나갔다. 조조와 황건의 무리가 처음으로 크 게 부딪친 곳은 수양 동쪽이었다. 이때 황건은 연주목 유대, 임성의 상(相) 정수) 등을 죽이고 기세가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조조는 힘들게 싸워 간신히 적의 예봉을 꺾었다. 그러나 이때 제 북상 포신은 적진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해를 입고 말았다. 시체를 찾지 못한 조조는 나무를 깎아 포신의 시체를 대신하여 후하게 장례 를 치러 준 뒤 곧장 황건을 쫓아 제북까지 이르렀다.
더 버틸 수 없게 된 황건의 무리는 그제서야 조조에게 항복을 받 아들여줄 것을 애원했다. 계략에 밝은 조조가 궁한 쥐를 기어이 잡 으려다 손가락이 물리는 것과 같은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못 이긴 체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이니 항복한 도적의 무리가 삼십만이요, 그들 을 따르던 백성이 남녀 합쳐 백만이 넘었다. 뿐만 아니라 산동 일대 는 고스란히 조조의 세력 아래 들어와 지금까지 의지했던 동군에 비 교할 바가 아니었다.
조조는 항복한 황건의 무리로부터 젊고 날랜 자를 뽑아 자기 군 사로 삼았다. 이른바 청주병(靑州兵)이란 군사들로 동탁의 서량병(西 兵) 못지않게 조조의 앞날에 중요한 힘이 된다.
다스리는 땅이 불어나고 인구가 늘자 조조에게 무엇보다도 필요 한 것은 그를 도와줄 인재였다. 장수로는 하후돈, 하후연, 조홍, 조 인, 이전, 악진 등이 있고 모사로는 당대 제일의 재사)라는 순 욱과 그의 조카 순유 등이 있었으나 십만이 넘는 대군과 백만이 넘 는 백성을 거느리고 다스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걸 짐작한 순 욱이 한 사람을 추천했다.
“제가 듣기로 연주에 뛰어난 현사(賢)가 하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누구요?”
조조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순욱이 대답했다.
“동군 동아 사람으로 성은정(程)씨요, 이름은 욱(昱)이라 하며, 자는 중덕(仲德)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라면 나도 전에 이름을 들은 적이 있소.”
그러고는 사람을 보내 정욱을 찾게 했다.
정욱)은 키가 여덟 자세 치에 수염이 몹시 볼만하여 위엄이 있는 풍채였다. 그의 재주와 담력을 보여주는 일화로는 이런 게 있다.
처음 황건이 일어날 때였다. 현승(丞) 왕탁(度)이 내응하여 창 고에 불을 지르는 바람에 이미 성이 황건적에게 떨어진 줄 안 현령 은성을 넘어 달아나고, 백성들도 남녀노유 할 것 없이 부근의 거구 산(山)으로 피해버렸다.
정욱도 얼결에 함께 피하기는 하였으나 곧 사람을 보내 왕탁의 무리를 정탐하게 했다. 왕탁은 빈 성을 얻었으나 지킬 힘이 없어 성 밖 오륙 리 되는 곳에다 무리를 머무르게 해놓고 있었다. 이에 정욱 은 현(縣)의 대성(大姓)인 설방(房) 등에게 말했다.
“이제 왕탁이 성을 얻고도 그 안에 있지 못하는 걸 보니 세력을 짐작할 만합니다. 저것들은 다만 노략질이나 하러 왔을 뿐 굳게 성 을 지킬 뜻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 성으로 돌아가 그걸 지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우리 성은 높고 두꺼우니 돌아가 굳게 지키기만 하 면 왕탁의 무리는 오래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어디론가 저희 패거리를 찾아갈 것인데 그때 그 뒷덜미를 치면 넉넉히 깨뜨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방을 비롯한 유지들은 이내 정욱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현 리들과 백성들은 얼른 따르지 않았다. 적이 서쪽에 있으니 동쪽에 피해 있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었다.
“현의 벼슬아치들과 백성들이 성으로 돌아가기를 원치 않으니 어쩌면 좋겠소?”
설방을 비롯한 사람들이 근심스레 물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을 헤아리지 못해 그렇습니다.”
정욱은 그렇게 말한 뒤 몇 사람의 인마를 보내 동쪽 산 위에다 깃 발을 세우게 하고, 설방에게는 백성들을 충동케 했다.
“적이 이미 동쪽에도 이르렀다!”
설방은 동쪽 산 위에 있는 자기편의 사람과 깃발을 가리키며 그 렇게 소리치고 급히 산을 내려가 비어 있는 성을 차지하자고 권했 다. 돌아가기를 거부하던 현리와 백성들도 그제야 어쩔 수 없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정욱이 현령까지 찾아 백성들과 함께 굳게 지키니 왕탁의 무리는 성을 공격해도 떨어뜨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다른 데로 떠나가 려 할 때 정욱은 현리와 백성들을 이끌고 성문을 나와 그 뒤를 들이 쳤다. 이에 왕탁의 무리는 대패하여 달아나고 동아 고을은 온전할 수 있었다. 실로 눈부신 정욱의 기지 덕분이었다.
또 정욱은 공손찬과 원소의 틈바구니에 끼어 갈피를 못 잡던 생 전의 유대에게 적절한 충언을 올린 것으로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져 있었다. 그때는 원소보다 공손찬의 세력이 컸건만 정욱은 한마디 로 공손찬의 패망을 잘라 말하고 유대로 하여금 원소와 손잡게 했다. 그러나 정욱은 누구 밑에서도 벼슬살이를 하려 들지 않았다. 한번 은 유대가 그를 기도위로 삼으려 들었으나 병을 핑계로 받지 않았 다. 조조가 찾아갔을 때도 정욱은 산중에서 책만 읽고 있었다. 그러 나 조조가 절까지 올리며 간곡하게 도움을 청하자 정욱도 마침내 조조를 따라나섰다.
“전에는 남의 밑에서 벼슬살이를 않겠다더니 이번에는 어쩐 일이시오?”
이상히 여긴 마을 사람 하나가 그렇게 물었으나 그는 빙그레 웃 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넘치는 패기와 번득이는 재치를 통해 나타 나는 조조의 가능성을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려웠음이리라.
조조의 기쁨은 정욱을 얻은 데 그치지 않았다. 순욱과 마주 앉은 정욱이 또 한 사람의 기재(奇)를 추천한 까닭이었다.
“나는 고루하고 아는 게 적어 공의 추천을 받을 만한 그릇이 못 됩 니다. 공의 고향 사람 중에 곽가(郭)란 이가 있는데 실로 뛰어난 현 사라 할 수가 있습니다. 어째서 그를 끌어들이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잊을 뻔하였소!”
그제서야 순욱도 곽가를 기억해내며 무릎을 쳤다.
곽가는 자가 봉효(奉)로 영천 양택 사람이었다. 일찍부터 천하 가 어지러워질 줄 알고, 이름을 숨긴 채 영걸스럽고 빼어난 이들과 오가며 속된 무리들과는 상종을 않으니, 비록 널리 이름이 알려지지 는 않았지만 아는 이는 모두 그 재주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 또한 처 음에는 북쪽의 원소에게 몸을 의탁하러 갔으나 곧 떠나왔는데, 그때 원소의 모사 신평(辛)과 곽도郭圖)에게 남긴 원소의 인물평은 다 른 사람에게까지 인용될 만큼 유명하다.
“무릇 지혜로운 자는 주인을 찾는 데 깊이 헤아려야 하니, 그래야 만 틀림없이 공명을 이룩할 수가 있소. 원공(公)은 헛되이 주공(周 公)을 본받으려 하나 아직 사람을 쓸 줄 모르는 것 같소. 일을 많이 벌이나 꼭 필요한 것은 적고, 지모를 좋아하나 결단성이 없소이다.
함께 천하의 큰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패왕(王)의 업적을 이룩하 기는 어려울 것 같소.”
그런 곽가를 상객(上)의 예로 맞은 조조는 그와 한나절이나 천 하의 일을 의논한 뒤 그가 나가자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
“나를 도와 큰일을 이룩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저 사람일 것이다.” 곽가도 조조 앞을 물러나와 여럿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야 참주인을 만났다!”
그렇게 조조의 사람이 된 곽가는 다시 또 한 사람을 천거했다. 회 남성덕 땅의 유엽(劉)이란 이로 광무제의 적
조조는 즉시 사람을 보내 예를 갖추어 그를 청했다.
자손이었다.
유엽 또한 기꺼이 왔다. 그리고 또 두 사람을 천거해 올렸다. 한 사람은 산양군 창읍 사람으로 자를 백녕(伯)으로 쓰는 만총(滿寵) 이요, 다른 하나는 같은 산양군 무성 사람 여건(呂)이었다. 조조는 둘 모두 들은 이름이라 서둘러 사람을 보냈다.
만과 여건이 다시 한 사람을 추천하니, 진류의 평구 땅 사람 모 개(毛)로 조조는 또한 사람을 보내 그도 맞아들이게 했다. 하나같 이 당대의 제일급 모사들이었다.
그 무렵 조조를 찾아든 것은 모사들뿐만 아니라 무장들도 있었다. 그중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우금(禁)이었다. 그는 태산 거평 사람으로, 자를 문칙(文)이라 하였는데 무리 수백을 이끌고 조조 에게 투항해왔다. 조조는 그가 말을 잘 다루며 무예에 뛰어난 걸 보 고 전군사마로 삼았다.
그다음은 전위(典韋)였다. 하루는 하후돈이 한 장대한 사내를 이끌 고 조조 앞에 나타났다. 조조가 누구냐고 묻자 하후돈이 대답했다.
“이 사람은 진류 땅의 전위라는 장사입니다. 용력이 남달라 일찍 부터 진류 태수 장막(張邈)에게 몸을 의탁했으나, 그 아랫것들과 뜻 이 맞지 않아 수십 명을 때려죽이고 산중에 숨어 있었습니다. 제가 사냥을 나갔다가 산중에서 범을 쫓아 개울을 건너뛰는 그의 모습을 보니 범보다 더 사납고 날랬습니다. 이에 특히 그를 이리로 데려와 주공께 천거하는 것입니다.”
조조도 한눈에 비범함을 알아볼 만했다.
“내가 이 사람의 용모를 보니 크고 씩씩함이 남다르다. 반드시 힘 또한 남다를 것이다.”
조조가 그렇게 말하자 하후돈이 신이 나서 자랑했다.
“저 사람이 일찍이 친구를 위해 원수를 갚아준 일이 있는데, 죽인 자의 목을 잘라 저잣거리를 지나갔으나 수백 명이 뻔히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지금 쓰는 무 기는 두 자루 갈래 난 쇠창[鐵戟]으로 그 무게가 팔십 근이나 되지 만 그걸 끼고 말 위에 올라 휘두르는 모습은 나는 듯 가벼워 보일 정도입니다.”
그 말을 듣자 직접 그걸 확인하고 싶어진 조조는 하후돈을 시켜 보기를 청했다. 조조의 명을 받은 전위는 실제로 팔십 근 쇠창 두 자루를 들고 말 위에 뛰어올라 나는 듯 닫고 멈추는데, 창 그림자와 사람의 그림자가 한덩이로 엉겨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몸놀림이 빨 랐다.
전위가 한창 솜씨 자랑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홀연 바람이 일며 조 조장하(下)의 큰 깃발이 쓰러지려 했다. 여러 군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바로 세우려 했으나 워낙 바람이 세어 세울 수가 없었다. 그걸 본 전위가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한 손으로 깃대를 잡으며 소리 쳤다.
“모두 물러서라.”
그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던지 군사들은 얼결에 모두 깃대를 놓고 물러섰다.
그러나 전위가 한 손으로 잡고 있는 깃대는 그새 뿌리라도 내린 듯 세찬 바람 속에서도 꿈쩍 않았다.
“실로 그 옛날 악래(惡來)와 같은 장사로구나!”
그걸 본 조조가 감탄했다. 악래란 은나라 때의 이름난 장사였다. 조조는 전위를 장전도위로 삼고 입고 있던 비단옷을 벗어줌과 아울 러 좋은 말과 안장도 내렸다. 조조의 인재를 반기는 마음이 대개 그 러했다.
그 뒤로도 조조를 찾아오는 사람은 끊이지 않았다. 글을 한 이라 면 뛰어난 모사요, 무예를 닦은 이라면 범 같은 맹장이라 차차 조조 의 위세는 산동 일대를 떨쳐 울렸다.
수십만의 군사와 수백의 양장(良將), 모사를 거느리게 되자 참고 억눌러온 조조의 야망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하를 다 투기 시작하기 전에 조조는 먼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일가 권속을 자기의 세력권 안으로 불러들여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 는 적대 세력에게 인질로 내주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때 조조의 아버지 조숭(曹嵩)을 비롯한 일가족 사십여 명은 낭 야 땅에서 숨어 지내고 있었다. 원래 진류 땅에 있다가 조조가 주동 이 된 관동 제후들의 의병이 동탁 타도에 실패하자 동쪽 멀리 피해 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낭야가 비록 산동의 한쪽 끝이라고는 해도 조조가 근거하고 있는 동군으로부터는 천리에 가까웠다. 조조의 보 호가 온전하게 미치지 못하는 땅이라 일가를 거기 그대로 둘 수 없 었다.
조조는 생각 끝에 태산 태수 응소(應劭)를 보내 부친 조승과 일가 노유(老)를 낭야에서 모셔오게 했다. 천하쟁패에 뛰어들기 위한 채비의 마지막 마무리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