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17화 : 다시 올려지는 출사표
다시 올려지는 출사표
학소에게 사람을 보내고 얼마 안 돼 홀연 근시가 들어와 위주 조 예에게 알렸다.
“양주사마(馬) 대도독 조휴가 급한 표문을 올려왔습니다.”
조예가 얼른 그 표문을 받아 읽어보니 대강 이러했다.
‘동오(東吳)의 파양 태수 주방(周魴)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겠다고 하며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주방은 그 사람을 통해 일곱 가지 일을 들어 동오를 깨뜨릴 수 있다고 내세우며 빨리 군사를 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신 홀로 처결할 일이 아닌 듯싶어 삼가 아뢰오며 하명을 기다립니다.’
조예는 그 표문을 어상(御) 위에 펼쳐놓고 사마의와 함께 읽었다. 읽기를 다한 사마의가 조예의 물음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 생각을 밝혔다.
“이 말은 매우 이치에 닿는 데가 있습니다. 틀림없이 동오를 쳐 없앨 수 있을 듯하니 바라건대 제게 한 갈래 군사를 나눠주십시오. 가서 조휴를 도와 싸우겠습니다.”
그때 줄지어 서 있던 관원들 중에 한 사람이 나와 말했다.
“오나라 사람들의 말은 이리저리 뒤집어 한가지로 되는 법이 없 으니 믿을 게 못 됩니다. 주방은 지모가 있는 자로서 틀림없이 진심 으로 항복하려는 게 아닌 듯합니다. 우리 군사를 꾀어들여 해치려는 속임수이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모두가 그 사람을 보니 그는 건위장군 가규)였다.
“그 말 또한 아니 들을 수 없으나 한번 다가온 기회를 놓칠 수도 없습니다.”
사마의가 가규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의견에 잠시 머뭇거리던 위주가 마침내 뜻을 정 했다.
“그렇다면 중달은 가규와 함께 가서 조휴를 도우시오. 오나라 사 람의 속임수에 넘어가지도 않고, 한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도 않는 길은 그뿐인 성싶소.”
두 사람이 말없이 거기에 따르니 이에 이번에는 위와 오의 한바 탕 싸움이 벌어지게 됐다.
위군은 대강 세 갈래로 길을 나누어 오로 쳐들어갔다. 조휴는 대군을 이끌고 지름길로 환성을 치러 가고, 가규는 전장군 만총과 동 환(東) 태수호질(質)을 이끌고 양성을 뺏으러 갔다. 그리고 사 마의는 자신이 거느린 군사를 몰아 지름길로 강릉을 덮치러 갔다. 그때 오주(吳) 손권은 무창 동관에 머물러 있었다. 위군이 몰려 온다는 소식을 듣자 여러 벼슬아치들을 불러놓고 물었다.
“파양 태수 주방이 몰래 표문을 올려 이르기를 ‘위의 양주도독(揚 州都督) 조휴는 우리 오로 쳐들어올 뜻이 있는 듯하다’ 했소. 이에 주 방은 일곱 가지 그럴듯한 일을 늘어놓아 속임수로 위병을 우리 땅 깊숙이 끌어들인 뒤 복병을 놓아 잡을 작정인 듯하오. 이제 위병이 정말로 세 길로 나누어 오고 있다 하니 경들의 뜻은 어떠하오?” 그러자 고옹이 나서서 말했다.
“그같이 큰일은 육손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권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두말 없이 고옹의 말대로 했다. 육손을 보국대장군 평북대원수로 삼은 뒤, 어 림군을 거느리고 왕사(王師)를 그의 뜻대로 하게 했다. 백모(白旄, 털 이 긴 쇠꼬리를 장대 끝에 매달아둔 기)와 황월(黄鉞, 황금으로 장식한 도끼 로 천자가 정벌할 때 지니는 병기)을 내려 문무백관이 모두 육손의 말을 듣게 하였으며, 손권 자신도 육손과 더불어 채찍을 드는 의식을 함 으로써 육손의 위엄을 더 크게 했다.
육손은 그런 손권의 과분한 처우에 감사하며 영을 받은 뒤 곧 자 기가 쓸 장수를 골랐다.
“특별히 두 사람을 뽑아 좌우도독으로 삼고, 우리도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적을 맞았으면 합니다.”
육손이 그렇게 말하자 손권이 물었다.
“그 두 사람이 누구요?”
“분위장군(奮威將軍) 주환(朱桓)과 유남장군(綏南將軍) 전종(全琮) 입니다. 그 둘이면 신을 도와 적을 깨뜨릴 만합니다.”
육손이 그 둘을 믿는다면 손권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주환을 좌도독으로 삼고 전종을 우도독으로 삼아 육손과 함께 가게 했다. 이에 육손은 강남 여든한 개 고을과 형주의 병마 칠십만을 모두 이끌고 세 길로 나누어 밀고 나아갔다. 주환은 왼쪽에 두고, 전종은 오른쪽으로 하며, 자신은 가운데에 자리 잡은 형태였다.
좌도독 주환이 육손을 찾아보고 말했다.
“조휴는 위주의 친척으로 대임을 맡게 되었을 뿐 지모도 용맹도 보잘것없는 장수올시다. 이제 주방의 꾐에 빠져 우리 땅 깊숙이 들 어왔으나 원수께서 한번 군사를 들이치시면 그는 반드시 싸움에 져 쫓겨갈 것입니다. 싸움에 진 조휴가 돌아가는 길은 두 갈래밖에 없 으니, 하나는 협석이요 다른 하나는 계차 입니다. 두 길 모두 험하 기 그지없는 산기슭의 좁은 길이지요. 바라건대 저와 전종에게 각기 일군을 나눠주시고 그곳에 가서 매복하게 해주십시오. 먼저 통나무 와 돌을 굴려 그 길을 막고 양쪽에서 들이치면 조휴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휴를 사로잡은 뒤 똑바로 밀고 나가면 손에 침 한 번 뱉는 힘으로 수춘을 얻을 수 있고 허창과 낙양까지 엿볼 수 있지 요. 실로 만세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좋은 기회올시다.”
“그것은 그리 좋은 계책이 아닌 듯하오. 내게 묘책이 있으니 맡기시오.”
육손이 한번 살피는 법도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주환은 그런 육손이 섭섭했다. 마음속에 불평을 품은 채 물러났다.
육손은 제갈근을 비롯한 장수들에게 강릉을 지키면서 사마의의 군사를 막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여러 갈래 군마를 정돈해 나아갈 채비를 했다.
그 무렵 조휴의 군사는 벌써 환성에 이르렀다. 주방이 달려 나와 맞으며 조휴의 장막을 찾았다.
“얼마전 족하의 글을 받으니 거기서 말하고 있는 일곱 가지 일이 모두 이치에 닿는 듯했소. 이에 천자께 말씀드려 크게 군사를 일으 키고 세 갈래로 길을 나누어 오게 되었소. 만약 이번에 강동을 얻게 된다면 족하의 공이 적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족하 가꾀 많은 사람이라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이가 더러 있소. 내 생 각에는 족하가 결코 나를 속이지는 않을 것 같으나 왠지 마음에 걸 리는구려.”
주방을 본 조휴가 넌지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주방이 슬피 울 더니 갑자기 뒤따르는 사람이 찬 칼을 뽑아 제목을 찌르려 했다. 조 휴가 놀라 그런 주방을 말렸다. 주방이 칼을 짚은 채 말했다.
“내가 그 일곱 가지는 말씀드렸으나 한스럽게도 내 마음속은 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이는 오나라 사람들이 우리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계책에 빠진 듯합 니다. 만약 장군께서 그 사람들의 말을 믿는다면 저는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 충심을 하늘만은 아실 것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칼로 제목을 찌르려 했다. 조휴는 더욱 놀라 황황히 주방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가 우스갯소리를 한 것뿐이오. 그런데 족하가 어찌 이러시오?”
그러자 주방은 칼로 제 머리칼을 잘라 땅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나는 충심으로 공을 기다려 왔는데 공은 나를 우스갯감으로 삼 으셨구려. 이제 부모가 내려주신 머리칼을 잘라 내 충성된 마음을 드러내 보일 뿐이오.”
주방이 그렇게까지 나오니 조휴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간곡하 게 주방을 달래고 크게 잔치를 벌여 마음을 풀어주었다.
잔치가 끝나고 주방이 돌아간 뒤 홀연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건위장군 가규가 장군을 뵈러 왔습니다.”
“들라 이르라.”
조휴는 그렇게 말하고 가규를 기다렸다. 곧 가규가 들어왔다.
“무슨 일로 왔는가?”
조휴가 가규를 보고 묻자 가규가 조심스레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동오의 군사가 함빡 환성에 몰려 있을 듯하 니 도독께서는 가볍게 나아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저를 기다려 양쪽 에서 협공하셔야만 적을 쳐부술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조휴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네 감히 내 공을 뺏으려 드는구나. 그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냐?”
“제가 듣기로 주방이 머리칼을 잘라 맹세했다 하지만 그게 바로 속임수올시다. 옛적 요리(要離, 오왕 합려의 신하로서 자객이 되어 경기를 죽임)는 제 팔을 베어 보이며 믿게 해놓고 끝내는 경기(慶忌)를 찔러 죽였습니다. 그런 자들을 깊이 믿어서는 아니 됩니다.”
가규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그렇게 까닭을 밝혔다. 그러나 조휴는 더욱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이제 막 크게 군사를 내려 하는데 네 어찌 감히 그런 말로 우리 군사들의 마음을 흩어지게 하느냐?”
그러고는 좌우를 꾸짖어 가규를 끌어내다 목 베라 했다. 여러 장 수들이 그런 조휴를 말렸다.
“아직 군사를 내기도 전에 먼저 장수를 목 베는 것은 이롭지 못한 일입니다. 바라건대 잠시 그 일을 미루어주십시오.”
조휴도 차마 가규를 죽일 수는 없어 못 이긴 체 그 말을 따랐다. 잠시 가규를 진채 안에 가둬두게 하고 스스로 일군(軍)을 내어 동 관부터 뺏으러 갔다.
오래잖아 주방도 가규의 일을 들었다. 바른 소리를 하고도 오히려 병권만 빼앗기고 갇혔다는 소리에 남몰래 기뻐하며 말했다.
“조휴가 만약 가규의 말을 들었다면 동오는 반드시 패하고 말았 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도리어 그를 가둬버렸다니, 이는 하 늘이 나로 하여금 공을 세울 수 있게 도운 것이다!”
그러고는 가만히 사람을 환성으로 보내 육손에게 조휴가 떠난 일을 알렸다.
그 소식을 들은 육손은 곧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앞에 있는 석정(石亭)은 비록 산길이나 매복하기에 좋은 곳이다.
먼저 석정을 차지하고 넓은 곳에 진세를 펼친 뒤에 위군을 기다리는게 좋겠다.”
그리고 서성에게 영을 내려 선봉으로 앞서 나가게 했다.
한편 조휴도 그때 주방을 앞세우고 석정 쪽으로 군사를 몰아오고 있었다. 한참 가다가 조휴가 주방에게 물었다.
“앞으로 가면 어떤 곳이 나오는가?”
“앞에는 석정이란 곳이 있습니다. 군사를 머무르게 할 만한 곳이지요.”
주방이 그렇게 대답했다. 조휴는 그런 주방의 말을 믿었다. 모든 군사며 수레 병기를 석정으로 끌어모으게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살피러 나갔던 군사가 돌아와 알렸다.
“앞에 오병이 있습니다. 머릿수가 많고 적은 것은 알 수 없으나 산 어귀를 차지하고 있는 게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 말에 조휴는 깜짝 놀랐다.
“주방은 군사가 없을 거라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이냐?”
그렇게 말하며 주방을 찾아오게 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주방은 수십 기를 데리고 어디론가 가버린 뒤였다. 그 소리를 들은 조휴는 크게 뉘우쳤다.
“내가 적의 계책에 떨어졌구나! 하지만 그렇다 한들 두려워할 거 야 무어 있겠는가? 힘을 다해 싸울 뿐이다.”
그러고는 장보(張)를 불러 영을 내렸다.
“너는 선봉이 되어 수천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라. 오병과 싸워 먼 저 그 허실을 알아오라.”
이에 장보는 군사 몇천을 데리고 앞서 나가 오병과 부딪쳤다. 양편 군사가 마주 보고 둥글게 진세를 벌인 뒤 장보가 말을 몰고 나가 크게 소리쳤다.
“적장은 어서 나와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오병 쪽에서 서성이 말을 박차고 달려 나왔다. 곧 장보와 서성 사이에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장보는 서성의 적수가 못되었다. 몇 합 싸우지도 못하고 힘에 밀려 달아났다.
“아무래도 제 힘으로는 서성의 용맹을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쫓겨간 장보가 조휴를 찾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기병을 써서 이겨야겠다.”
조휴가 그렇게 말하며 계책을 짰다. 장보는 군사 이만을 데리고 석정 남쪽에 매복하고, 설교(薛喬)는 또다른 이만으로 석정 북쪽에 매복하게 한 뒤 말했다.
“나는 내일 군사 천 명을 이끌고 나가 싸우다가 거짓으로 진 체 쫓기며 적을 북쪽에 있는 산중으로 유인해 들이겠다. 그때 포소리를 신호로 삼아 삼면에서 뛰쳐나와 적병을 치면 반드시 크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두 장수는 각기 군사 이만씩을 받아 조휴가 지정해준 곳으 로 매복하러 갔다.
하지만 육손이라고 두 손 처매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도 나름대로 계책을 세운 뒤 주환과 전종을 불러 말했다.
“그대들 둘은 각기 삼만군을 이끌고 석정 산길을 돌아 조휴의 진 채 뒤로 나아가라. 불을 지르는 걸 신호로 내가 가운데서 대군을 이 끌고 뛰어나가면 조휴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주환과 전종은 그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군사를 데리고 육손이 시킨 대로 나아갔다.
밤 이경쯤이 되어 주환이 이끈 오병은 위군의 진채 뒤에 이르렀 다. 바로 위장(魏將) 장보가 매복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장보는 오병이 벌써 거기까지 온 줄은 몰랐다. 많은 인마가 다가오는 소리 를 듣고 뛰어나가 어디서 온 군사인가를 물어보려 하는데 주환이 한 칼로 장보를 베어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대장인 장보가 그렇게 어이없이 죽자 위병들은 제대로 싸워보지 도 않고 흩어져 달아났다. 주환은 후군에게 영을 내려 불을 지르게 함으로써 육손에게 신호를 보냈다.
한편 전종도 위병의 진채 뒤를 돌다 보니 바로 위장 설교의 진채 뒤에 이르게 되었다. 적이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군사를 휘몰아 덮 치자 설교와 그 군사는 당해내지 못했다. 헤아릴 수 없는 인마만 잃 고 조휴가 있는 본채로 쫓겨 들어갔다.
그 뒤를 주환과 전종이 뒤쫓아 휩쓸고 드니 조휴의 진채는 크게 어지러워졌다. 서로 치고 밟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물어지 기 시작했다.
조휴는 일이 글렀다 싶었다. 황망히 말에 올라 협석으로 난 길로 달아났다. 그러나 서성이 다시 대군을 이끌고 나타나 그런 위군을 짓두들겼다. 그 바람에 위군은 죽는 자를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 고, 겨우 목숨을 건진 자도 옷과 갑주를 죄다 벗어던진 채였다.
크게 놀란 조휴는 협석 길로 접어들어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달아 났다. 한참 가다 보니 한 떼의 군마가 샛길에서 뛰쳐나왔다. 조휴는 적인 줄 알고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으나 다행히도 앞선 장수는 가 규였다. 조휴는 그를 알아보고 다소 마음이 가라앉았으나, 이번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일었다.
“내가 공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참패를 하고 말았구려!”
조휴가 그렇게 탄식하자 가규가 오히려 좋은 얼굴로 달래듯 말 했다.
“지금은 지난 일을 탓하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빨리 이 길 을 벗어나도록 하십시오. 만약 오병들이 나무와 돌로 이 길을 끊어 버린다면 그때는 정말로 우리 모두가 위태롭게 됩니다.”
이에 조휴는 말을 몰아 앞서고 가규는 뒤쫓는 적을 내쫓으며 따 랐다. 가규는 숲과 나무가 빽빽한 곳이나 길이 험하고 좁은 곳에는 깃발을 많이 꽂아두어 복병이 있는 듯 꾸몄다. 뒤쫓는 오병을 속이 기 위함이었다.
가규의 계책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한참 뒤에 서성이 이르러 보 니 산기슭에 희끗희끗 깃발이 눈에 띄는 게 위의 복병이 있는 듯 보 였다. 함부로 뒤쫓지 못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버렸다. 덕분에 조휴는 더 큰 괴로움을 당함이 없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었다.
조휴가 싸움에 져서 쫓겨갔다는 소식은 사마의의 귀에도 들어갔 다. 이미 한 머리가 무너진 이상 혼자서는 어찌해볼 수가 없어 사마 의도 군사를 돌리고 말았다.
한편 육손은 장수들을 보내놓고 이긴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기다 리고 있었다.
오래잖아 서성과 주환, 전종이 차례로 돌아와 싸움에 이긴 걸 알 림과 동시에 빼앗은 것들을 바쳤다. 수레며 병장기에 소와 말, 나귀 와 노새, 곡식과 베 따위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었고 항복한 군사만도 수만이 넘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손권은 크게 기뻤다. 육손에게 태수 주방과 여러 장수들을 모두 데리고 오(吳)로 개선하라 일렀다.
육손이 그대로 하자 손권은 문무 관원을 모두 데리고 무창성(武昌 城) 밖까지 나가 맞아들이고, 육손과 함께 일산을 쓴 채 돌아왔다. 그리고 그 싸움에 나갔던 모든 장수에게 상을 내린 다음 머리칼이 잘린 주방을 위로했다.
“경은 머리칼을 잘라 이같이 큰일을 이뤘으니, 그 공과 이름은 마 땅히 죽백에 씌어져 뒷세상에 전해질 것이오.”
이어 주방을 관내후로 봉하고, 크게 잔치를 열어 군사들의 수고로움을 달래주었다.
육손이 손권에게 전했다.
“지금 위는 조휴가 크게 지고 쫓겨가서 간담이 오그라 붙었을 것 입니다. 이때 글을 닦아 사람에게 주어 촉으로 보내시고 제갈량더러 군사를 몰아 나오라 하십시오. 우리 오와 촉이 양쪽에서 짓쳐들면 위는 뭉그러지고 말 것입니다.”
손권도 그 말을 들어보니 귀가 솔깃했다. 곧 국서를 써서 서천으로 보냈다.
때는 촉한 건흥 육년이었다. 위의 도독 조휴는 동오의 육손에게 석정에서 크게 패해 수많은 인마와 군기를 잃고 나니 임금 대하기가 부끄럽고도 두려웠다. 그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병이 되어 낙양에 이 르자마자 등창이 터져 죽었다. 위주 조예는 그런 조휴를 불쌍히 여 겼다. 특히 명을 내려 후하게 장사 지내주었다.
오래잖아 사마의도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돌아왔다. 마중을 나갔던 장수 중에 하나가 물었다.
“조도독의 군사가 싸움에 졌으니 원수(元)께서 막으셔야 할 터 인데 어찌하여 이토록 급히 돌아오셨습니까?”
사마의가 대답했다.
“내가 헤아리기로 제갈량이 우리 군사가 패한 걸 알면 반드시 그 빈 틈을 타 장안을 공격할 것 같소. 만약 농서가 위급해지면 누가 구 하겠소? 그 때문에 이렇게 돌아온 것이오.”
사마의의 그 같은 대답에 어떤 사람은 두려워했고 어떤 사람은 비웃으며 헤어졌다. 두려워한 이는 그의 날카로운 꿰뚫어봄을 알아 서였고, 비웃는 이는 싸움에 지고 쫓겨왔으면서도 되잖은 핑계를 대 고 있다 여긴 탓이었다.
한편 동오는 육손의 말을 들어 서촉으로 글을 보내고 조휴를 크 게 이긴 일을 알림과 아울러 군사를 내어 함께 위를 치자고 졸랐다. 한편으로는 저희들의 위세를 자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친을 청해 오는 글이라 이를 본 후주는 크게 기뻤다. 곧 사람을 시켜 그 일을 한중에 있는 제갈공명에게 알렸다.
그 무렵 공명은 몇 년에 걸친 양병의 결실을 알차게 거두고 있었 다. 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씩씩했고 말은 튼튼했으며, 군량과 말 먹이 풀도 넉넉했다. 싸움에 필요한 병기며 여러 기구들도 빠짐없이 갖추어 이제 막 군사를 내려 하는데 후주로부터 사람이 와 그 같은 말을 전했다.
공명 또한 그 같은 동오의 요청이 기껍기 그지없었다. 곧 크게 잔치를 열어 여러 장수를 모아놓고 군사를 낼 의논을 했다.
그런데 미처 잔치가 제대로 어울리기도 전이었다. 문득 한 줄기 거센 바람이 동북쪽에서 일어 뜰을 쓸며, 거기 서 있던 소나무를 꺾 어놓았다. 그 뜻밖의 불길한 조짐에 장수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 었다. 공명이 가만히 점괘를 뽑아보더니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이 바람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한 사람의 큰 장수를 잃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장수들은 누구도 그런 공명의 말을 얼른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기분을 가다듬어 술잔을 드는데 문득 사람이 들어와 알렸다.
“진남장군 조운의 맏이 조(趙)과 둘째 조광(趙)이 승상을 뵈 러 왔습니다.”
장수들은 모두 별 생각 없이 그 말을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 지 공명은 술잔을 땅에 내던지며 탄식했다.
“자룡이 갔구나!”
그때 조운의 두 아들이 들어와 공명 앞에 엎드려 곡하며 알렸다.
“아버님께서 지난밤 삼경 무렵 돌아가셨습니다.”
나이 들어 무거운 병을 앓던 조운이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눈감은 것이었다. 공명이 쓰러질 듯 비틀하며 큰 소리로 울었다.
“자룡이 죽었으니 나라는 기둥이나 대들보가 무너진 격이요, 나는 한 팔을 잃은 셈이로구나. 이제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장수들도 하나같이 눈물을 흘렸다.
공명은 곧 조운의 두 아들을 성도로 보내 후주를 뵙고 부친의 상 당한 일을 아뢰게 했다. 후주도 조운이 죽었다는 말을 듣자 목을 놓아 곡을 했다.
“짐이 어렸을 때 자룡이 아니었던들 난군(軍) 속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후주의 그 같은 말은 바로 당양 장판벌의 옛일을 가리키는 것이 었다. 그때 조자룡이 품에 품고 조조의 백만 대병 사이를 무인지경 가듯 달려 구해낸 아두阿)가 바로 후주 유선(禪)이었기 때문이 었다.
후주는 곧 조서를 내려 조운에게 대장군을 추증하고 시호를 순평 후(順侯)로 했다. 그리고 성도의 금병산 동쪽에 장사 지냄과 아울 러 묘당을 세워 철마다 제사를 올리게 했다.
생각하면 『삼국지』 전편을 통해 조운만큼 고루 갖춘 장수도 드물 다. 그는 장수로서 일생 패배를 몰랐고 신하로서도 한 점 티를 남기 지 않았다. 관우, 장비, 마초가 각기 빼어남도 많았으나 또한 흠될 곳 도 있어, 마침내 관우, 장비는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마초는 그 생전 에 그렇게도 자주 참담한 패배를 맛보았던 것에 비하면 실로 복된 일생이었다 할 만하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그런 조운을 노래했다.
상산 땅에 범 같은 장수 있어, 常山有虎將
용맹과 슬기 모두 관우, 장비와 맞설 만했다. 智勇匹關張
한수에서 공훈 이루고 漢水功勳在
당양에서는 그 이름 드날렸다. 當陽姓字彰
두 번이나 어린 주인 구하고, 兩番扶幼主
한마음으로 선주께 보답하니 一念答
청사는 그 충렬을 적어 青史書忠烈
꽃다운 행적 길이 백세에 전한다. 應流百世芳
한편 조운의 옛 공을 못 잊은 후주는 후한 장례만으로는 마음이 차지 않았다. 맏아들 조통을 호분중랑장(虎賁中郎將)으로 삼고 둘째 아들 조광을 아문장(門將)으로 삼아 조운의 묘를 지키게 했다. 조 통과 조광은 그 같은 주의 은덕에 감사하고 그 명을 받들어 물러 났다.
조운의 장례가 대강 치러졌을 무렵, 다시 한중에서 사람이 와서 알렸다.
“제갈승상께서는 이미 군마를 나누어 싸울 채비를 갖추셨습니다. 영만 계시면 오늘이라도 군사를 내어 위를 칠 것이라 합니다.”
이에 후주는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제갈량이 다시 군사를 내는 일에 관해 물었다.
“아직은 가볍게 움직일 때가 아닌 듯합니다. 위와 오의 움직임을 좀더 살핀 뒤에 왕사를 내심이 옳을 것입니다.”
신하들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했다. 그 바람에 후주도 마음이 놓 이지 않아 얼른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다시 근시가 들어와 알렸다.
“제갈승상께서 양의(楊儀)를 보내 출사표를 올려왔습니다.”
후주가 양의를 불러들이자 양의는 출사표를 바쳐 올렸다. 후주는 표문을 어안에 펼쳐놓고 읽어나갔다.
‘선제께서는 한(漢)을 훔친 역적과는 함께 설 수 없고, 왕업(業) 은 천하의 한모퉁이를 차지한 것에 만족해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여기시어 신에게 역적을 칠 일을 당부하셨습니다. 선제의 밝으심은 신의 재주를 헤아리시어, 신이 역적을 치는 데에 재주는 모자라고 적은 강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역적을 치지 않으면 도리어 왕업이 망할 것이니 어찌 일어나 치지 않고 앉아서 망하기만을 기다 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그 일을 신에게 맡기시고 의심하지 않으셨 습니다………[先帝慮漢賊不兩立, 王業不偏安,故託臣以討賊也,以先帝之明 量臣之才故知臣伐賊才弱敵强也,然不伐賊王業亦惟坐而待亡 孰與伐 之 是以託臣而弗疑也·
공명의 표문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성도의 벼슬아치들이 안 일에 젖어 출사를 반대할 줄 꿰뚫어보고, 먼저 그 편안偏, 한 지방 에 할거하여 그것으로 만족해 함)부터 선제를 빌려 깨우쳐주고 있었다. 후주도 섬뜩 그 뜻을 깨닫고 다음을 읽어나갔다.
‘신은 그 같은 선제의 명을 받은 뒤로 잠자리에 누워도 편안하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입에 달지 아니했습니다. 북으로 위를 치려 하 면 먼저 남쪽을 평정해야 되겠기에 지난 오월에는 노수를 건넜습니 다. 거친 땅 깊숙이 들어가 하루 한 끼를 먹으며 애쓴 것은 신이 스 스로를 아끼지 않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왕업을 돌아보고, 성도에서 만족해 앉아 있을 수는 없다고 여겨, 위태로움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선제께서 남기신 뜻을 받들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게 좋은 계책이 못 된다고 말했습니다[受命之日 寢不安席食不甘味,惟思北征 宜先入南 故五月渡濾,深入不毛 並日而 食 臣非不自惜也,顧王業不可偏安於蜀都 故冒危難以奉先帝之遺意,而議者謂爲非計].
이제 적은 서쪽에서 지쳐 있고 동쪽에서도 힘을 다 쓴 끝입니다. 병법은 적이 수고로운 틈을 타라 했으니 지금이야말로 크게 밀고 나 아갈 때입니다. 거기에 관해 삼가 아뢰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疲於西 又務於東 兵法乘 此進趨之時也,謹陳其事如左].
고제께서는 그 밝으심이 해나 달과 같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는 (그 슬기로움이) 깊은 못과 같았으나, 험한 데를 지나고 다침을 입으 시며 위태로움을 겪으신 뒤에야 비로소 평안하게 되시었습니다. 그 런데 이제 폐하께서는 고제에 미치지 못하시고 곁에서 꾀하는 신하 도장량이나 진평만 못하시면서도 긴 계책으로 이기고자 하시며 편 히 앉으신 채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십니다. 이는 바로 신이 얼른 알 지 못할 첫 번째 일입니다[明日月 謀臣淵深 然涉險被創 危然後安. 今陛下未及高帝 謀臣不如良平 而欲以長策取勝 坐定天下 此臣之未解一也], 유요()와 왕랑(王郞)은 모두 일찍이 큰 고을을 차지하여, 평안 함을 의논하고 계책을 말할 때는 성인을 끌어들였으되, 걱정은 배에 가득하고 이런저런 논의는 그 가슴만 꽉 메게 하였을 뿐입니다. 올 해도 싸우지 아니하고 이듬해도 싸우러 가기를 망설이다가 마침내 는 손권에게 자리에 앉은 채로 강동을 차지하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 다. 이는 바로 신이 풀 길 없는 일로 생각하는 두 번째입니다[繇 郎各據州郡 論安言計 動引聖人 群疑滿腹 衆難塞胸 今歲不戰 明年不征 使孫權坐大 倂江東 此臣之未解二也].
조조는 지모와 계책이 남달리 뛰어나고 군사를 부림에는 손자, 오 자를 닮았으나, 남양에서 곤궁에 빠지고 오소에서 험한 꼴을 당하 며, 기련에서 위태로움을 겪고, 여양에서 쫓기고, 북산에서 지고, 동 관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겨우 한때의 평정을 보게 되었습니 다. 그런데 신같이 재주 없는 사람이 어찌 위태로움을 겪지 않고 천 하를 평정하려 들 수 있겠습니까? 그게 신이 알지 못할 세 번째 일 입니다[曹操智計 殊絶於人 其用兵也 仿佛孫吳 然困於南陽 險於鳥巢 危於 祁連 逼於黎陽 幾敗北山 殆死潼關 然後偽定一時耳,臣才弱 而欲以不危 而定之 此臣之未解三也].
조조는 다섯 번 창패를 공격했으나 떨어뜨리지 못했고, 네 번 소 호를 건넜으나 공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복(李服)을 써보았으나 이복이 오히려 뺏어버렸고, 하후에게 맡겼으나 하후(夏侯)는 패망하 고 말았던 것입니다. 선제께는 매양 조조가 능력 있다고 추키셨으나 오히려 그 같은 실패가 있었는데 하물며 신같이 무디고 재주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반드시 이기기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신이 알 수 없는 네 번째 일입니다[曹操五攻昌覇不下 四越巢湖不成 任 用李服 李服圖之委任夏侯 而夏侯敗亡 先帝每稱操為能 猶有此失況臣下 何能必勝 此臣之未解四也
신이 한중에 온지 아직 한 해가 다 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 운, 양군, 마옥, 염지, 정립, 백수, 유합, 등동과 그 아랫장수 일흔남 짓을 잃었습니다. 언제나 맨 앞장이던 빈수·청광이며 산기(散騎), 무기(武)를 잃은 것도 천 명이 넘는 바 이는 모두 수십 년 동안 여러 지방에서 모아들인 인재요 한 고을에서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약 다시 몇 년이 지난다면 이들 셋 중 둘은 줄어들 것이니 그때는 어떻게 적을 도모하겠습니까? 이것이 신이 알 수 없는 다섯 번째 일 입니다[自臣到漢中 中間期年耳. 然喪趙雲,陽羣,馬玉, 閻之, 丁立, 白壽, 劉郃,鄧銅 及曲長 屯將七十餘人,突將無前 賓叟青光 散騎武騎一千餘人. 此皆數十年之內所糾合四方之內精銳,非一州之所有,若復數年 則損三分之 二也.當何以圖敵此臣之未解五也].
지금 백성들은 궁핍하고 군사들은 지쳐 있습니다. 그러나 할 일을 그만둘 수는 없는 것이, (할 일을 그만둘 수 없음은 곧) 멈추어 있으나 움직여 나아가나 수고로움과 물자가 드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일찍 적을 도모함만 못합니다. 그런데도 한 고을의 땅에 의 지해 적과 긴 싸움을 하려 하시니 이는 신이 알 수 없는 여섯 번째 일입니다[民兵疲而事不可息:事不可息 則住與行 勞費正等, 而不及早 圖之 欲以一州之地 與持久 此臣之未解六也],
무릇 함부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게 세상일입니다. 지난날 선제께 서 초(楚) 땅에서 (조조와의 싸움에 지셨을 때 조조는 손뼉을 치며 말하기를 천하는 이미 평정되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뒤에 선제께서 는 동으로 오와 손을 잡고 서로 파촉을 얻으신 뒤 군사를 이끌고 북 으로 가시어 마침내는 하후연을 목 베게까지 되었습니다. 이는 조조 가 계책을 잘못 세워 우리 한(漢)이 설 수 있게 해준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하되 뒤에 오가 맹약을 어기매 관우는 싸움에 져서 죽고 선제께서는 자귀에서 일을 그르치시어 조비는 다시 천자를 참 칭할 수 있었습니다[難事也,昔先帝敗軍於楚當此之時 曹操拍手謂天下已定. 然後先帝東連吳越西取巴蜀 擧兵北征 夏侯授首此曹之失計 而漢事將成也,然後吳更違盟 關羽毀敗 秭歸蹉跌曹不稱帝]
모든 일이 그러하니 미리 헤아려 살피기란 실로 어렵습니다. 신은 다만 엎드려 몸을 돌보지 않고 죽을 때까지 애쓸 뿐 그 이루고 못 이룸, 이롭고 해로움에 대해서는 미리 내다보는 데 밝지 못합니다 [凡事如是難可逆料 臣鞠躬盡瘁死而後已,至於成敗利鈍非臣之明所能逆 覯也].’
흔히 ‘후출사표(後出師表)’라 부르는 이 두 번째의 출사표에 대해 서 사람들은 대개 제갈량이 쓴 것이 아니라 뒷사람의 위작(僞이 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연의』의 저자가 지은 것은 아니며 다른 책 에서도 이미 이전부터 선보이고 있다. 어느 할 일 없는 문사가 지어 보탰는지는 모르나 제법 전(前)출사표의 품격과 멋을 흉내 내 고 있다.
기실이야 어쨌든 얘기는 다시 『연의』로 돌아가자. 공명이 올린 두 번째 출사표를 다 읽은 후주는 매우 흐뭇했다. 곁의 신하들이 이리 저리 한 말로 흔들리던 마음을 한가지로 정하고 공명에게 조칙을 내 려 출사를 허락했다.
명을 받은 공명은 다시 삼십만 대병을 일으키고 위연에게 전부를 맡김과 아울러 선봉으로 세웠다. 사마의가 미리 헤아린 대로 이번에 는 진창(陳倉)길로 군사를 몰아오는데, 그 기세는 첫 번째 출사에 못지않았다.
오래잖아 위의 세작이 그 소식을 탐지해 낙양에다 알렸다. 사마의가 그 일을 위주에게 아뢰자 위주는 널리 문무의 벼슬아치들을 불러
모아 의논을 시작했다. 대장군 조진이 나와 말했다.
“신이 지난번 농서를 지킬 때 공은 적고 죄가 커서 늘 황공스러움 을 이기기 어려웠습니다. 바란건대, 이번에 다시 한번 신으로 하여 금 대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게 해주십시오. 반드시 제갈량을 사로잡 아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계책이 있는가?”
위주가 못 미더운 듯 물었다. 조진이 얼른 대답했다.
“신이 얼마 전에 한 장수를 얻었는데 여러 가지로 놀랍기 그지없 습니다. 예순 근 큰 칼을 쓰고, 천리정완마(千里征撫馬)를 타며 두 섬 지기 힘이 드는 철태궁(鐵胎弓)을 잘 씁니다. 또 따로이는 세 개의 유성추를 감추고 있어 백 번을 던지면 백 번을 다 맞히는 재주가 있 습니다. 실로 혼자서 만 명을 당할 용맹과 무예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누구인가?”
“농서군 적도 사람으로 이름은 왕쌍(王)이며 자는 자전(全)이 라고 합니다. 이 사람을 선봉으로 쓴다면 신이 보증을 설 수 있습니 다.”
조진이 그렇게까지 추켜세우자 조예도 믿는 마음이 생겼다. 기꺼 이 조진의 말을 따라 왕쌍을 불러들이게 했다.
이윽고 불려온 왕쌍을 보니 키는 아홉 자에 얼굴은 검고 눈동자는 노랬다. 곰의 허리요, 호랑이 등을 가졌으니 얼른 보아도 여느 장 수 같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