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삼국지 (개정판) 9권 – 2화 : 긴 꿈은 백제성에서 지고
긴 꿈은 백제성에서 지고
이때 큰 공을 세운 육손은 이긴 군사를 휘몰아 촉의 잔병을 뒤쫓 다가 기관(關)을 지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말 위에서 앞을 보니 강물을 끼고 있는 산발치에 한 줄기 살기가 하늘을 찌르듯 솟고 있었다. 육손은 얼른 말고삐를 당겨 말을 세우 고 뒤따르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에 틀림없이 매복이 있소. 군사를 가볍게 내몰아서는 아니 될 것이오.”
그리고 군사를 십여 리나 물려 사방이 트인 곳에 자리 잡았다. 대 강진채를 얽고 적을 막을 채비를 갖춘 육손은 매복했던 적이 뒤쫓 아오기를 기다렸으나 묘하게도 적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이에 육 손은 군사 몇을 내보내 앞을 살펴보게 했다.
“앞에는 어떤 군사도 있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돌아온 군사들이 그렇게 알렸다. 육손은 도무지 믿을 수 가 없었다. 말에서 내려 높은 곳으로 올라가 그쪽을 살펴보았다. 여전히 살기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다시 한번 가서 자세히 살펴보아라.”
육손이 군사들을 되돌려보내며 엄히 일렀다. 그러나 돌아온 군사 들의 말은 전보다 더했다.
“진채는커녕 사람 하나 말 한 필 없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해가 서산으로 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살기는 오 히려 더해 감을 본 육손은 이번에는 특히 믿을 만한 사람만 골라 뽑 아 보내 살펴보게 했다.
“아무래도 사람은 없고, 다만 강변에 돌무더기 팔구십 개가 어지 럽게 널려 있었을 뿐입니다.”
돌아보고 온 사람이 다시 그같이 알렸다. 육손은 더욱 이상했다. 군사들을 풀어 근처 토박이 몇을 불러오게 했다. 오래잖아 부근에 사는 사람 몇이 육손 앞에 불려왔다.
“누가 저 어지러운 돌무더기를 쌓았는가? 그리고 어찌하여 저 돌 무더기 틈에서 살기가 치솟는가?”
육손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저곳의 지명은 어복포(魚腹浦)인데, 전에 제갈량이 서천으로 들 어가는 길에 잠시 군사를 풀어 그 같은 진세를 벌여놓은 것입니다. 돌을 주워다가 물가 모래벌판에 쌓은 것인데 그때부터 무슨 구름 같 은 기운이 저 안에서 치솟았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육손은 더욱 이상했다. 얼른 말에 올라 수십 기만 딸린 채 그 석진(石陣)을 보러 갔다. 조그만 언덕에 올라가 내려다보니 사면 팔방에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이 열린 석진이었다.
“저것은 다만 사람을 홀리는 잔재주일 뿐이다. 저까짓 게 무슨 쓸 모가 있겠는가!”
이윽고 살피기를 마친 육손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그리고 몇 기만 딸린 채 산언덕을 내려가 그대로 석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돌무더기가 놓인 형태를 이모저모로 뜯어보고 있는 육손에게 부장 하나가 걱정스레 말했다.
“벌써 날이 저뭅니다. 도독께서는 어서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그제서야 육손도 무언가 꺼림칙했다. 그 부장의 말대로 돌무더기 사이를 벗어나려는데 홀연 미친 듯한 바람이 일었다. 점점 거세진 바람은 잠깐 사이에 모래를 날리고 돌을 굴릴 만큼 되었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온통 캄캄해지며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돌더 미들은 삐죽삐죽 일어나 칼을 세워둔 것처럼 보이고 바람에 쏠려 만 들어진 모래언덕도 마치 높은 산과 같아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바 람에 이는 물결 소리도 창칼이 부딪고 북과 징이 울리는 듯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 석진 속으로 들어갔던 육손은 깜짝 놀랐다.
“내가 제갈량의 계책에 빠졌구나!”
그렇게 탄식하며 빠져나가보려 했으나 어디가 어딘지 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자 육손은 더욱 놀라고 정신이 어지러웠다.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허둥거리고 있는데 문득 한 늙은이가 말 앞에 나타나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장군은 이 진채에서 나가고 싶으시오?”
“어르신께서 아신다면 부디 나갈 길을 일러주십시오.”
다급해진 육손이 매달리듯 말했다.
늙은이는 육손의 말을 듣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팡이를 끌며 천천히 앞장을 섰다. 늙은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니 정말로 아무런 장애 없이 돌무더기로 만든 진에서 빠져나갈 수가 있었다. 다시 원래의 산 언덕으로 되돌아간 뒤에야 육손이 그 늙은이에게 물 었다.
“어르신네는 어떤 분이십니까?”
늙은이가 아무것도 감추는 기색 없이 스스로를 밝혔다.
“나는 제갈공명의 장인 되는 황승언이란 사람이외다. 지난날 내 사위가 서천으로 들어갈 때 저 진을 펼쳤는데 이름은 팔진도(八陣 圖)라 하오. 여덟 문이 서로 번갈아가며 변화를 부리는 바, 여덟 문 은 각기 휴(休), 생(生), 상(傷), 두(杜), 경(景), 사(死), 경(驚), 개(開) 로 불리오. 날마다 때마다 서로 호응해 변해 그 시작과 끝을 짐작하 기 어려우니 그야말로 십만 정병에 견줄 수 있소이다. 사위가 떠나 면서 이 늙은이에게 말하기를 ‘뒷날 동오의 대장이 이 진陣)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인데 그때 그를 진 밖으로 내보내주어서는 아니 됩 니다’ 하였소. 그런데 오늘 내가 산중 바위 위에서 보니 장군이 바로 사문(死門)을 통해 진 속으로 들어가더구려. 이 진을 알아보지 못하 고 들어갔으니 틀림없이 길을 잃게 될 줄 알았소. 사위가 당부한 대로 하자면 그대로 못 본 체하는게 옳겠지만, 이 늙은이는 평생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해왔소. 차마 장군이 그 속에서 죽는 꼴을 볼 수 없어 특히 생문(生門)으로 끌어내드린 것이오.”
그 늙은이가 바로 제갈공명의 장인이 된다는 말에 육손은 한층 감격했으나 감사보다 더 급한 것은 그 신기한 진법에 대한 궁금증이 었다.
“어르신께서는 저 진법을 배우셨습니까?”
육손이 그렇게 묻자 황승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그 변화가 하도 무궁해서 배울 수가 없었소이다.”
그 말을 듣자 육손은 더욱 그 늙은이의 도움이 고마웠다. 하마터 면 자신이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고 진 속에 갇혀 죽게 된 걸살 려준 까닭이었다. 황망히 말에서 내려 두 번 세 번 절하고 자기 진채 로 돌아갔다.
“공명은 참으로 누운 용[臥龍]이었구나! 나 따위가 미칠 바 아니다.”
진채로 돌아간 육손은 그렇게 탄식하고 곧 군사를 돌리게 했다. 오(吳)가 크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촉군을 추격해 서천까지 가지 않은 일과 공명의 재주를 과장하려는 의도가 어울려 만들어낸 한 토 막 야담이리라.
육손이 군사를 물리려 하자 장수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말했다.
“유비는 싸움에 져서 세력이 다했습니다. 고단하게 성 하나에 의 지하고 있으니 그를 쳐 없애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때도 없을 것입 니다. 그런데 이제 도독께서는 어찌하여 까짓 돌무더기 몇 개를 보 고 군사를 물리려 하십니까?”
육손이 조금도 흔들리는 기색 없이 그 까닭을 밝혔다.
“나는 저 석진 때문에 물러가려는 것이 아니다. 위(魏)가 있지 않소이까? 위주 조비는 그 간사함이나 속임수가 그 아비 조조와 조 금도 다를 바가 없소. 이제 우리가 촉병을 뒤쫓아 멀리 간 걸 알게 되면 반드시 그 빈틈을 타 동오로 쳐내려올 것이외다. 그런데 우리 가 서천 깊이 들어가 있어서는 무슨 수로 급히 군사를 되돌릴 수 있 겠소?”
그러고는 장수 하나를 뽑아 촉군의 뒤쫓음을 막게 하고 대군을 되돌렸다.
군사를 물리기 시작한 지 사흘이 채 못 돼 한꺼번에 세 곳에서 사 람을 보내 급한 소식을 알려 왔다.
“위의 장수 조인이 군사를 이끌고 유수로 나오고 있습니다.”
“조휴가 동구로 밀고 들어옵니다.”
“조진은 남군으로 짓쳐오고 있습니다.”
이어 다시 그 세 가지 소식을 합친 전갈이 이르렀다.
“조인, 조휴, 조진이 이끄는 세 갈래 인마는 합쳐 십만이나 되는 대군입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우리 땅으로 밀려오고 있는데 그 속셈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육손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로 내가 헤아린 대로구나. 이미 군사를 내어 막게 하였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한편 효정, 이릉의 싸움에서 동오의 육손에게 대패한 뒤 백제성으 로 쫓겨난 선주는 때마침 군사를 이끌고 찾아온 조운의 도움으로 겨우성을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때서야 선주께로 되돌아온 마량은 이미 자기편 군사가 산산조각이 난 걸 보고 걸음이 더딘 걸 후회했으 나 이미 늦은 뒤였다. 하릴없이 때늦은 공명의 전갈이나 전했다. 듣 고 난 선주가 탄식했다.
“짐이 진작에 승상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 같은 대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무슨 낯으로 돌아가 성도의 여러 신하들을 대 한단 말인가!”
그리고 백제성에 그대로 눌러 앉았다. 변두리 작은 성에 궁궐이 있을 리 없었으나 역관을 고쳐 영안궁(宮)이라 이름하고 다시 동오를 칠 근거로 삼았다.
“장수들은 대강 어찌 되었는가?”
일단 성안이 수습되자 선주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장수들의 안 부가 궁금해 물었다. 가까이서 모시는 신하가 아는 대로 아뢰었다.
“풍습, 장남, 부동, 사마가 등은 모두 이번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그 말에 선주는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한동안 흐느끼다 다시 물 었다.
“강북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황권(黃權)은 어찌 되었는가?”
“황권은 강북의 군사들을 이끌고 위로 항복해 가버렸습니다. 그 가솔들을 잡아와 죄를 묻도록 하십시오.”
그 일을 잘 아는 다른 신하가 나서서 그렇게 말했다. 선주는 무겁 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권은 강 북쪽에 있다가 오병들에게 길을 끊겨 돌아올래야 돌 아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찌할 도리가 없어 위에 항복한 것이니, 이는 짐이 황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이요, 황권이 짐을 저버린게 아니다. 그런데 어찌 그 가솔들을 함부로 죽이겠는가? 그 일은 두 번 다시 말하지 말라.”
그때 위에 항복한 황권은 그쪽 장수들의 인도를 받아 조비를 만 나고 있었다. 조비가 떠보듯 물었다.
“경이 이제 짐에게 항복한 것은 옛적 진(陳)이나 한(韓)이 한(漢)에 항복한 걸 따른 것인가?”
그러나 황권이 울며 말했다.
“신은 제(蜀)의 은혜를 두텁게 입어 특히 강북의 모든 군사를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손 때문에 길이 끊겨 촉으로 돌아갈 수가 없고 또 오에 항복할 수도 없어 폐하께 항복하러 온 것입니다. 싸움에 진 장수로 목숨만 건져도 다행스러운데 어찌 감히 옛사람들 흉내까지 내려 하겠습니까?”
조금도 감추고 꺼리는 게 없는 대답이었다. 그 솔직한 대답에 조 비도 황권을 믿었다. 기꺼이 그를 받아들이고 진남장군을 내렸다. 그러나 황권은 굳이 벼슬을 마다하고 받으려 들지 않았다. 그게 촉 (蜀)에 대한 의리 때문인 걸로 본 신하 하나가 조비에게 나아가 말 했다.
“촉에서 돌아온 세작의 말을 들으니 촉주(蜀)는 황권의 가솔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황권은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신과 주는 마음으로 믿어온 사이옵니다. 제가 비록 폐하께 항복하였으나 이게 저의 본마음이 아닌 줄 알 것인즉 결코 신의 가솔들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잘라 말했다. 조비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히려 그런 황권을
무겁게 여겼다. 그러나 충의를 내세우는 뒷사람은 그렇지가 못했다. 시를 지어 황권을 꾸짖었다.
오에 항복할 수 없다면서 위에는 어찌 항복했나. 降不可却降曹
충의는 두 조정을 섬기는 게 아닌 법. 忠義安能事兩朝
실로 애석하다, 황권은 한 번 죽음을 아꼈네. 堪歎黃權惜一死 陽書
춘추의 글쓰는 법 어찌 가벼이 보리.
한편 조비는 촉과 오의 싸움이 스스로 예측한 대로 맞아가자 슬몇 딴생각이 일었다. 가만히 가후를 불러 물었다.
“짐은 이제 천하를 통일하고자 하는데 먼저 촉을 쳐야 하겠소? 오를 쳐야 하겠소?”
가후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유비는 영웅의 재질이 있고, 제갈량은 안에서 나라를 잘 다스리 고 있습니다. 또 동오의 손권은 일의 차고 빈곳을 잘 알며 육손도 유비를 뒤쫓는 대신 험하고 요긴한 땅에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강과 호수를 건너 있으니 오 또한 급히 도모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또 신이 보기에 우리 장수들 중에는 유비나 손권과 맞설 만한 장수가 없고 설령 폐하께서 몸소 나가신다 해도 반드시 모든 게 갖추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가만히 지키면서 그들 두 나라에 다른 변고가 있기를 기다리는 게 가장 나을 듯합니다.”
하지만 조비는 한번 먹은 마음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짐은 이미 세 갈래 대병을 보내 동오를 치게 하였소. 이기지 못 할 까닭이 어디 있겠소이까?”
그렇게 반문하며 고집대로 밀고 나가려 했다. 마침 그 자리에 있 던 상서 유엽이 가후를 편들어 말했다.
“요사이 동오는 육손이 촉의 칠십만 대군을 쳐부순 뒤라 아래위 가 한마음이 되어 있습니다. 거기다가 동오는 또 강과 호수를 끼고 있어 갑작스레 뒤엎기 어렵습니다. 꾀가 많은 육손도 반드시 우리에 대한 준비를 해두었을 것입니다.”
“경은 전에는 내게 오를 치라고 권하더니 이제는 오히려 말리는 구려. 그게 무슨 까닭이오?”
조비가 알 수 없다는 듯 유엽을 보고 물었다. 유엽이 대답했다.
“때가 같지 아니합니다. 그때는 동오가 여러 차례 촉에 패한 뒤라 기세가 꺾여 있었습니다. 들이치면 이길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러나 이제 동오는 촉을 완전히 쳐부수어 기세가 백배나 올라 있습니 다. 쳐들어간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조비는 뜻을 바꾸려 들지 않았다.
“짐의 뜻은 이미 결정되었다. 경들은 다시 여러 소리 말라!”
그렇게 말하고는 몸소 어림군을 이끌고 조인, 조휴, 조진의 세 갈 래 병마를 뒷받침해주러 나섰다. 그때 마침 초마(馬)가 급히 달려 와 알렸다.
“동오는 이미 우리를 맞을 채비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여범(範)은 군사를 이끌고 조휴를 막아섰으며, 제갈근은 남군에서 조진을 막고 있습니다. 또 주환(桓)은 군사를 이끌고 유수로 나와 조인에 게 맞서고 있습니다.”
유엽이 거기 이어 다시 조비를 일깨웠다.
“그것 보십시오. 이미 채비가 갖춰져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폐하께서 가셔도 얻을 게 없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조비는 끝내 그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장졸들과 더불어 오를 치러 떠났다.
그때 조인과 맞서고 있던 오의 장수 주환은 나이 겨우 스물일곱 이었으나 담력이 세고 지략이 많았다. 손권은 몹시 그를 아껴 특히 그에게 유수를 맡겼다.
주환은 조인이 대군을 이끌고 와 유수에 앞서 선계부터 먼저 뺏 으려 함을 듣고 군사를 모두 선계로 보냈다. 유수성을 지키기 위해 남긴 것은 겨우 오천 기 남짓이었다. 그런데 다시 문득 소식이 왔다.
“조인이 대장 상조에게 영을 내려 제갈건, 왕쌍과 더불어 정병 오 만을 이끌고 유수성을 치라 했다고 합니다. 지금 상조가 이끄는 군 사들이 이리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 뜻밖의 소식에 성안의 장졸들은 모두 두려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환이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이기고 지는 것은 장수에게 달려 있지 군사들의 머릿수에 달린 것은 아니다. 병법에 이르기를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군사[客兵]는 배(倍)가 되고 안에서 지키는 군사[兵]는 그 절반이라도 오히려 안 에서 지키는 군사가 바깥에서 쳐들어오는 군사를 이길 수 있다 했다. 지금 조인은 천리를 달려와 그 인마는 지치고 고단하다. 거기 비 해 우리는 높은 성에 의지해 남쪽으로는 큰 강을 끼고 있고 북으로 는 험한 산을 등졌다. 편안함으로 수고로운 적을 기다리는 것이요, 주인이 되어 손님을 맞는 셈이니 이것이야말로 백 번 싸워 백 번 이 길 수 있는 형세라 할 수 있다. 설령 조비 스스로 온다 해도 걱정될 게 없는데 하물며 조인 따위겠느냐?”
주환은 그렇게 장졸들의 기운을 돋워놓고 다시 영을 내렸다.
“모든 군사들은 깃발을 뉘어놓고 북소리를 내지 말라. 마치 아무도 지키지 않는 성처럼 보이게 하라!”
이에 군사들은 모두 그대로 따랐다.
이윽고 위의 장수 상조가 정병을 이끌고 유수성에 이르렀다. 가만 히 보니 성벽 위에 인마가 없는 게 아무도 지키지 않는 성 같았다. 상조는 마음을 놓고 급히 군사를 몰아 성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위군(軍)이 성벽 근처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소 리 포향이 울리더니 깃발이 일제히 세워지며 칼을 비껴 든 주환이 앞장서 말을 몰고 달려 나왔다.
주환은 똑바로 상조를 덮쳐 놀란 상조를 단 세 합에 베어버렸다. 적장이 한칼에 토막나 말에서 떨어지는 걸 본 오병들은 힘이 났다. 엄청난 기세로 밀어붙이니 위병은 그대로 뭉그러졌다. 주환의 대승 이었다. 위병은 그 한바탕 싸움에 수많은 시체만 남겨놓고 멀리 달 아나버렸다.
대군을 이끌고 뒤따라오던 조인도 성하지 못했다. 선계에서 소식 을 듣고 달려 나온 오병을 만나 그 또한 대패했다. 수많은 군사만 잃고 위주에게로 쫓겨가 그 경위를 말하니 조비도 오병의 만만찮은 채비에 크게 놀랐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조비가 장수들을 돌아보며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 장수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았으나 하나도 신통한 게 없어 의논만 요란스러운 데 다시 급한 소식이 왔다.
“조진과 하후상이 남군을 에워쌌으나 안에는 육손의 복병이 있 었고 바깥에는 제갈근의 복병이 있었습니다. 그 두 곳 복병이 앞뒤 에서 한꺼번에 들이치는 바람에 거기서도 우리 편이 대패했다고 합 니다.”
하지만 나쁜 소식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다시 나는 듯 탐마 가 달려와 알렸다.
“조휴도 여범에게 여지없이 패했습니다.”
결국 세 갈래 군마가 모조리 참패해버린 셈이었다. 그제서야 조비 가 한탄했다.
“짐이 가후와 유엽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과연 이렇게 패했구나!”
거기다가 때는 더위가 한창인 여름이었다. 병이 크게 번져 군사들 은 열에 예닐곱이 병으로 쓰러졌다. 이에 조비는 하는 수 없이 군사 를 낙양으로 되돌렸다.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오와의 화친만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편 백제성에 있던 선주는 병이 들어 영안궁에 누웠다. 그러나 늙은 탓인지 여러 가지 약을 써도 병은 낫지 않고 차차 깊어갈 뿐이 었다.
장무) 삼년 여름, 선주는 마침내 병이 온몸에 퍼져 일어나기 어려움을 알았다. 먼저 죽은 관, 장 두 아우를 생각하고 슬피 우니 그 때문에 병은 더욱 심해졌다. 두 눈이 어쩔어찔해 보이지 않자 곁 에서 모시는 사람들마저 싫어져 모두 꾸짖어 내쫓을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홀로 침상에 누워 지내는데, 어느 날 홀연 음습한 바람 이 일며 등불이 껌벅거렸다. 이상하게 여긴 선주가 그쪽을 보니 등 불 아래 두 사람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곁에서 모시는 신하들이 또 들어온 줄 알고 귀찮게 여긴 선주가 성나 꾸짖었다.
“짐은 속이 편치 않아 너희들은 물러가 있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 런데 무슨 일로 또 왔느냐?”
그러나 두 사람은 그 같은 꾸짖음을 듣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선 주가 이상한 느낌에 그들을 자세히 보니 앞선 것은 관우였고 뒤에 있는 것은 장비였다. 깜짝 놀란 선주가 그들을 보고 말했다.
“그대들인가? 그대들 두 아우가 와 있었구나.”
그러자 관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입니다. 하늘의 상제(上帝)께서 저 희 두 사람이 평생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 걸 귀히 여기시어 저희를 모두 신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제 형님께서도 저희들과 만나게 되 실 날이 머지않은 듯합니다.”
그 말에 선주는 기쁨 반 슬픔 반으로 크게 울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두 아우는 보이지 않았다.
괴이쩍게 여긴 선주는 곧 사람을 불러 시각을 물어보았다. 때는 삼경 무렵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선주가 문득 탄식했다.
“이제 짐이 이 세상을 떠날 날도 머지않았구나!”
그러고는 곧 사람을 성도로 보내 승상 제갈량과 상서령 이엄(李 嚴) 등을 불러오게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안궁으로 달려와 선 주의 유명을 받으라는 전갈과 함께였다.
전갈을 받은 제갈량과 이엄은 선주의 둘째 아들인 노왕(魯王) 유 영(劉永)과 셋째 양왕(王) 유리(劉理)를 데리고 영안궁으로 달려왔 다. 성도는 태자 유선이 남아 지키기로 되어 있었다.
영안궁으로 가 선주를 본 제갈공명은 선주의 병이 이미 위독함을 알고 황망히 침상 아래 엎드렸다.
“승상은 침상 곁으로 와 앉으시오.”
선주가 힘을 모아 공명에게 말했다. 공명이 그대로 하자 선주는 손으로 그 등을 쓸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짐은 승상을 얻어 다행히도 제업(業)을 이룰 수 있었소. 그러하 되 아는 게 얕고 모자라 승상의 말을 듣지 않다가 그로 인해 이같이 패하였구려. 뉘우침과 한스러움이 병이 되어 이제 이 몸이 죽을 날 도 머지않은 듯하오. 그런데 뒤를 이을 자식이 어리석고 약하니, 어 쩔 수 없이 대사를 승상께 당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소이다.”
선주는 거기까지 말해놓고 얼굴 가득 눈물을 흘렸다. 제갈공명 또한 울며 말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용체를 잘 보전하시어 천하의 바람을 저버림이 없도록 하옵소서.”
그때 선주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좌우를 흘깃 보더니 마량의 아우 마속(馬謖)을 밖으로 나가게 한 뒤 공명에게 물었다.
“승상께서는 저 마속의 재주를 어떻게 보시오?”
“저 사람 또한 당세의 영재()라 봅니다.”
공명이 평소 믿는 대로 대답했다. 선주가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 었다.
“그렇지 않소. 짐이 보기에 마속은 그 말이 실제보다 지나친 듯하 오. 크게 써서는 안 될 사람이니 승상께서는 마땅히 깊이 살펴 쓰도 록 하시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여러 신하들을 모두 방 안으로 불러들이게 했다.
선주는 여럿 앞에서 마지막 힘을 짜내 붓을 들어 유조(遺詔)를 썼 다. 그리고 그걸 공명에게 건네주면서 탄식하듯 말했다.
“짐은 글 읽기를 즐겨하지는 않았으나 큰 줄거리는 대강 알고 있 소. 성인께서 이르시기를 ‘새는 죽을 때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은 죽 을 때 말이 착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했으니 죽음을 앞두고 하는 짐의 말을 가볍게 마시오. 짐은 경과 더불어 역적 조조를 쳐 없애고 함께 한실을 떠받치려 했으나 불행히도 도중에서 헤어지게 되었소. 번거롭게 승상께 태자 선(禪)을 당부하는 바이니, 부디 짐의 말을 늘 하는 소리로 여기지 않기 바라오. 모든 일을 승상 께서 옳게 가르치고 이끌어주시오.”
공명이 땅에 엎드려 울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잠시 용체를 편히 쉬게 하시옵소서. 저희들은 개나 말의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일해 폐하께서 저희를 알아봐준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선주는 내시를 시켜 공명을 일으키게 한 뒤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고 한 손으로는 공명의 손을 잡으며 문득 처량한 소리로 말했다.
“짐은 이제 죽어가는 몸이니 무얼 꺼리겠소. 가슴속에 묻어둔 얘기가 있는데 들어보시겠소?”
“무슨 가르치심입니까?”
공명이 슬픈 가운데도 섬뜩함을 느끼며 물었다. 선주가 흐느끼며 망설이던 말을 꺼냈다.
“승상의 재주는 조비보다 열 배나 나으니 반드시 나라를 안정시 키고 마침내는 천하의 큰일을 이룩하게 될 것이오. 그때 만약 내아 들이 도와서 될 만한 인물이면 도와주시오. 그러나 그 재주가 모자 라 도와도 안 될 인물 같으면 그때는 승상께서 성도의 주인이 되도 록 하시오.”
실로 엄청난 소리였다. 뒷사람 중에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한 가장 몹쓸 짓으로 이 일을 드는 이마저 있다.
공명은 그 말을 듣자 온몸이 진땀에 젖고 손발이 떨렸다.
“신이 어찌 감히 신하로서 힘을 다하지 않고 딴 뜻을 품을 수 있 겠습니까? 충성과 절개로 죽을 때까지 폐하를 섬기듯 태자를 섬기 겠습니다!”
그렇게 소리치며 땅에 엎드려 이마를 짓찧었다.
이윽고 고개를 드는 공명의 이마에는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선 주는 그런 공명을 다시 침상 곁으로 데려다 앉히고 노왕 유영과 양 왕 유리를 가까이 불렀다.
“너희들은 모두 내 말을 머리에 새겨두어라. 너희 형제 세 사람은 내가 죽거든 여기 이 승상을 아비처럼 모셔라. 조금이라도 게을리하 거나 허술함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고는 두 왕에게 명해 공명에게 절하며 보게 했다. 노왕과 양 왕이 나란히 엎드려 절을 올리자 공명이 감격해 흐느꼈다.
“신이 설령 창자와 골을 땅바닥에 쏟으며 죽게 된다 한들 어찌 이 같이 나를 높게 보아준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선명히 대비되는 것은 조조와 유비의 사람 쓰는 법이다. 조조는 사마의가 남다른 재주를 지녔음을 알자 낭고(狼顧, 똑바로 앉은 채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볼 수 있는 사람)의 상이라 하여 무겁게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마의는 조조가 살아 있을 때 는 불우했으나 조비에게 중용되면서 끝내는 위(魏)를 찬탈하고 만다. 거기 비해 유비는 오히려 먼저 공명에게 나라를 내놓음으로써 죽은 뒤까지 공명을 은혜와 의리로 묶어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선주의 당부는 공명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았다. 공명의 맹세를 받아낸 뒤 다시 여러 신하들을 보고 말했다.
“짐은 이미 홀로 남게 된 태자를 승상에게 맡겼고, 태자에게는 승 상을 아비같이 섬기라 일렀다. 경들도 승상을 섬김에 정성을 다해 짐의 바람을 저버리지 말라.”
그리고 또 조운을 불러 당부했다.
“짐과 경은 어렵고 험한 가운데도 서로 따르며 오늘에 이르렀으 나 뜻밖에도 여기서 헤어지게 되었다. 경은 짐과의 오랜 정분을 생 각해서라도 어리석은 태자를 잘 보살펴주도록 하라. 결코 짐의 말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신이 어찌 개나 말의 수고로움이라도 마다하겠습니까?”
조운 또한 엎드려 울며 그렇게 다짐했다. 이윽고 선주는 다시 여 러 벼슬아치를 돌아보며 마지막 작별을 했다.
“짐은 경들을 하나하나 불러 말할 겨를이 없다. 부디 스스로를 아
껴 남은 삶을 값지게 채우라!”
그리고 마침내 숨이 지니 선주의 나이 예순셋, 때는 장무 삼년 사 월 스무나흘이었다. 뒷날 두보는 시를 지어 이렇게 노래했다.
촉주 오를 노려 삼협으로 나갔으나 蜀主窺吳向三峽
또한 같은 해 영안궁에서 눈감았네. 崩年亦在永安宮
푸른 가리개 빈 산 밖 생각 속에만 떠 있고 翠華相存空山外
허무하다 궁궐 터, 이름없는 절만 섰구나. 玉殿虛無野寺中
오래된 사당 솔나무 잣나무엔 백로만 깃들였고 廟杉松巢水鶴
설날 복날에 촌 늙은이나 찾는구나. 歲時伏臘走村翁
무후의 사당 멀지 않아 武侯祠屋長隣近
임금과 신하 함께 제사받네. 一體君臣祭祀同
그러면 이쯤에서 유비의 삶을 다시 한번 간추려 되돌아보자. 중국 역대 왕조의 창업자 중에서 유비만큼 해놓은 일에 비해 민중의 사랑 을 많이 받은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명분론(名分論)에 집착한 『연의의 지은이 덕분이라고만 보기에는 얼른 수긍이 가지 않는데 가 있다.
어떤 이는 그 민중적 인기의 근원을 그의 출신에서 찾는다. 고귀한 혈통이면서[宗室] 삶의 밑바닥에서 출발하고 있는 그는 그의 대 역인 조조와 대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영웅담과 일치한 다. 확실히 민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이다.
또 어떤 이는 그가 이끌었던 집단의 성격을 그 민중적 인기와 연 관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조조가 천자를 끼고 한(漢)의 제도를 그대 로 답습해 그가 이끄는 집단이 일찍 관료화한 것과 비교하면 충분히 근거 있는 말이다.
위, 오, 촉 중에서 촉이 가장 늦게 관료 체제를 정비하는데, 그때 까지 유비가 이끄는 집단은 제도나 법보다는 의리와 인정 같은 임협 적(俠) 원리에 지배된 사조직에 가까웠다. 수백 년 부패한 한(漢) 의 관료제에 시달려온 민중들에게는 호감이 갈 수도 있었으리라. 『연의』를 지은 이와 마찬가지로, 정통성의 문제에서 유리한 유비 의 혈통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다. 유비가 조상으로 말하는 경제(景 帝)는 아들이 매우 많아 혈통으로 한몫 보려드는 야심가들이 그족 보에 끼어들 여지가 많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유비가 그 아들 중 에 하나인 중산정왕(中山靖)의 현손(孫)이었다는 주장은 확실히 정통성 문제에서 유비가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했을 수도 있다. 후 한(後漢)을 일으킨 광무제도 당연하게 제위 승계를 주장할 만큼 가 까운 전한 제실의 피붙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유비의 통치 유형 또는 지배 원리일 것이다. 중국의 민중들이 전통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황제의 상은 한고조란 말을 이미 했거니와, 그가 내세운 게 바로 도가의 원리에 따른 무위(無爲)의 통치였다. 그밖에도 이백 년 이상 존속한 왕 조의 창업자는 대개가 도가형(道家型)의 치자가 많았고, 좀 비 약해서 말한다면 대부분의 수명 긴 왕조는 도가형의 창업자로 시작 해 유가형(儒家型)의 치자로 유지되다 그 유가형의 타락으로 멸망한 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비에게서 보이는 통치의 원리는 바로 도가형에 가깝다. 삼국지의 기록 어디에도 유비가 무슨 법률을 반포하고 제도를 정했 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있다면 서천으로 들어간 뒤 제갈량의 입안 (立案)을 받아들인 정도일까. 그 자신이 알고 실천했는지에 대해서 는 의문이 있으나 그가 지향한 것은 틀림없이 무위(無爲)의 치(治)였 고, 그의 사표(師表)는 한고조였다. 따라서 백성들에게는 그가 자신 의 다재다능에 힘입어 유위)의 치(治)로 시종한 조조에 비해 훨 씬 마음 편한 통치자였을 것이다.
그밖에 유비의 민중적 인기를 더한 것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사람에 대한 투자이다. 조조도 사람에 대한 투자는 게을리하지 않았 으나 그것은 다른 투자와 병행된 것이었고, 그나마도 법가적(法的) 원칙이나 능률의 문제와 부딪치면 서슴없이 사람을 희생시켰다. 유 일한 예외가 관운장에 대한 투자 정도였을까. 그러나 유비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희생시키는 법이 없었고, 그게 그가 이끄는 집단의 결속을 남달리 굳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인적 결속은 은연중에 민중들에게도 전해져 그와 그의 집단에 남다른 호감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그에 대한 정사의 평도 대개 그러하다.
‘선주는 속이 넓고 굳세면서도 남에게 너그럽고 후했다. 사람을 알아보고 선비를 잘 대접해, 한고조의 풍도가 있었으며, 영웅 의 기량을 갖추었다…….’
하지만 작은 인정에 이끌리어 큰일을 그르치는 일이 잦았고, 사람 을 부리는 기교가 지나쳐 냉정한 관찰자에게는 역겨움을 느끼게 하 는 경우도 있었다. 사양을 거듭하면서도 결국은 형주를 차지하고 또 서천을 빼앗아 한참 치솟던 기세가 어이없이 꺾이고, 결국 그의 촉 (蜀)이 삼국 중에서 가장 허약한 나라로 주저앉고 만 것은 그런 결 점들의 결과가 아니었는지.
거기다가 유비의 과거 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이념은 근대적 이념에 물든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못마땅한 데마저 있다. 그게 갈 수록 조조를 격상시키고 그에게는 과대평가의 혐의를 걸게 하는 것 이나 아닌지.
선주 유비가 숨을 거두자 문무의 모든 벼슬아치들은 하나같이 슬 퍼해 마지않았다. 공명은 여러 벼슬아치들을 이끌고 선주의 유해를 받들어 성도로 돌아갔다.
태자 유선은 성 밖까지 나와 선주의 영구를 맞아들이고 정전(正 殿)에 안치했다. 슬픔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선주가 죽으면서 남긴 조서(詔書)를 받들어 읽으니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짐이 처음 얻은 병은 다만 하리(下)일 뿐이었으나 뒤에 다시 여 러 가지 병이 보태어 끝내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듣건대 사람 이 쉰까지 살면 결코 일찍 죽은 것이라 할 수 없다[人生五十 不稱天] 했거니와 이제 짐의 나이 예순하고도 몇을 더했으니 여기서 죽은들 다시 한스러울 게 무엇이랴. 다만 너희 형제들이 마음 놓이지 않을 뿐이다.
바라노니 너희 형제는 힘쓰고 또 힘쓰라. 악한 일은 작다고 해서 하는 법이 없게 하고, 착한 일은 작다고 해서 하지 않는 법이 없게 하라. 오직 어질고 오직 덕이 있어야만 남이 너희를 따르게 할 수 있 으리라. 너희들의 아비는 덕이 없는 사람이라 본받을 게 못 되니 내 가 죽거든 너희는 모든 일을 승상과 함께 돌보되, 그분을 모시기를 이 아비 섬기듯 하라. 결코 게을리해서 아니 되고 잊어서는 더욱 아 니 된다. 당부하고 당부하거니와, 무엇이든 먼저 승상께 물은 뒤에 행하라.’
태자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유조를 읽기를 마치자 공명이 나와서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도 임금이 없어서는 아니 됩니다. 태자께서는 어서 제위로 나가시어 한(漢)의 대통을 잇도록 하십시오.”
그러고는 태자 유선을 받들어 제위에 올리니 이가 곧 촉[蜀漢]의 후주(後主)이다.
후주는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고 제갈량을 무향후(武鄕侯) 익주목에 봉한 다음, 선주를 혜릉(惠陵)에 장사지내고 소열(昭烈)이 란 시호를 바쳐 올렸다. 또 황후 오씨(吳氏)는 황태후(皇太后)로 올 리고 죽은 감부인에게 소열황후(昭烈皇后)란 시호를 바침과 아울러 미부인에게도 황후(皇后)의 칭호를 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벼슬아치들도 각기 벼슬을 올려주고 상을 베풀었으며 한편으로는 대사령을 내려 많은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오래잖아 그 같은 촉나라 사정은 위나라에도 알려졌다.
“유비는 백제성에서 죽고, 그 아들 유선이 뒤를 이어 촉의 주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같은 소식이 근시들을 통해 들어오자 위주 조비는 몹시 기뻐
하며 말했다.
“유비가 이미 죽었다면 짐이 걱정할 게 무엇 있겠는가? 크게 군사 를 일으켜 나라에 주인이 없는 촉을 쳐야겠다.”
그러나 가후가 나서서 말렸다.
“유비가 비록 죽었다 하나, 반드시 그 아들을 제갈량에게 당부했 을 것입니다. 또 제갈량은 유비가 자기를 알아준 은혜에 감격해 반 드시 그 힘을 다해 유비의 아들을 도울 것입니다. 폐하께서 갑작스 레 치신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그 말에 조비도 주춤했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때를 그대로 넘 겨버릴 수도 없어 얼른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줄지어 서 있 던 벼슬아치들 틈에서 한 사람이 뛰쳐나오며 분연히 소리쳤다.
“이 좋은 때를 틈타지 않고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신단 말입니까? 폐하, 어서 군사를 내도록 하시옵소서.”
모든 사람이 놀라 그 사람을 보니 그는 바로 사마의였다. 가후의 말에 마음이 흔들려 망설이던 조비가 반가운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경에게 어떤 좋은 계책이 있는가?”
“우리 중원의 군사만 일으켜서는 급하게 이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다섯 갈래 큰 군사를 일으키시어 사방에서 한꺼번에 들이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제갈량은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볼 틈이 없을 것인즉, 그때서야 촉을 노릴 수 있겠습니다.”
사마의가 선뜻 그렇게 대답했다. 조비가 다시 물었다.
“다섯 갈래 큰 군사라니, 어디어디 군사들을 말하는 것이오?”
“사람을 뽑아 요동의 선비국왕(鮮卑國王) 가비능(軻比能)에게 글 한 통을 전하게 하십시오. 비단 뇌물과 아울러 이익으로 달래 강병 (羌) 십만을 일으키게 하고 먼저 물길로 서평관(西平關)을 치게 하 는 것입니다. 첫 갈래 큰 군사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다음은 다시 글 한 통을 써서 그럴듯한 벼슬과 상을 곁들인 뒤 남만으로 사람을 보냅니다. 남만왕 맹획을 찾아보고 그 또한 십만 대병을 일으켜 익주, 영창, 장가, 월준 네 고을을 치게 하십시 오. 그 네 고을은 바로 서천 남쪽이니 맹획의 군사가 바로 두 번째 갈래의 대병이 됩니다.”
사마의의 말에 신이 난 조비가 재촉하듯 물었다.
“그럼 나머지 세 갈래 군마는 어디어디 있는가?”
“세 번째 갈래는 오나라에 있습니다. 또 한 통 글을 닦아 손권에 게 보내 땅을 베어주마 약속하고 군사 십만을 일으키게 합니다. 손 권이 그 대군으로 양천(川) 어귀를 들이치고 부성을 뺏으면 바로 그게 세 번째 갈래의 대병이 됩니다. 그다음은 촉에서 항복해 온장 수 맹달에게 사람을 보내 상용의 군사 십만을 일으키게 하십시오. 맹달의 대군이 서쪽에서 한중을 들이치면 그게 곧 네 번째 갈래의 군마가 됩니다. 모든 군마가 일어난 다음에는 대장군 조진을 대도독으로 삼아 역시 군사 십만을 이끌고 경조(兆)를 지나 양평관으로 나아가게 하십시오. 그 대군이 바로 다섯째 갈래의 군마입니다. 이 렇게 하여 합쳐 오십만의 대군이 다섯 갈래로 길을 나누어 쳐들어가 면 설령 제갈량이 강태공의 재주를 지녔다 한들 어떻게 당해낼 수 있겠습니까?”
사마의가 그렇게 말을 끝내자 조비는 기뻐 어찌할 줄 몰랐다. 곧 사마의가 일러준 네 곳으로 사자를 보내는 한편 대장군 조진을 불러 영을 내렸다.
“경은 군사 십만을 이끌고 양평관으로 나아가 서천을 치도록 하라.” 그러나 그때 조진에게는 이렇다 할 장수들이 없었다. 장요를 비롯 한 오래된 장수들은 모두가 열후(列侯)에 봉해져 기주, 서주, 청주 및 합비 같은 곳에 가 있었다. 그것도 한결같이 관이나 나루, 좁은 길목 따위 싸움에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어 함부로 빼내오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