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서생 1부 –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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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사람 뒷조사하는 정도에 무슨 비용이 그렇게 많이 들어?
기본 이용료(?)가 ‘1억’이라고..?
나는 내가 호기 있게 거기서 ‘열 배 더’라고 말한 것이 민망해져서 그만 어색한 음성을 내고 말았다.
“거… 생각보다 좀 비싸네..?”
“곡주께는 하찮은 액수일지 모르나, 전에 곡주께서도 강조하셨던 ‘투자 대비 이득’을 생각하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고 사료됩니다만…”
“…………”
머리 쓰는 군. 이 아저씨.. 내가, 아니 ‘원판’이 했던 말을 예로 들다니..
제기.. 그래도 오기가 있지 새삼 ‘명령 취소’라고 하긴 싫어서 인상을 구기고 있자 총관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전 다만, 참고 삼아 말씀 드렸을 뿐입니다. 곧 천이단에 제가 직접 접촉하여 곡주님의 뜻을 전달하겠습니다.”
사실, 10억이라는 뜻밖의 액수에 좀 놀라긴 했다.
제기… 불과 두 달 전이다.
군대에서 병장 달고 한 달에 만 원 받다가, 하사가 된 후에는 3만 8천 2백 원..이었던가?
하여간 그 정도 월급으로 애들 PX 데려가 회식(군대 회식은 과자와 주스가 주류이고 좀 고급 음식으로는 냉동 만두 찐 것, 소시지 등이 있다) 시켜주고 휴가 나갈 때 집에 부모님 선물 사고, 그리고도 저축까지 하며 꿋꿋하게 살아왔던 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여기서 지내며 내가 먹고 마시고 생활한 것만 해도, ‘짬밥’에 고춧가루 몇 개 붙은 ‘양배추 김치(?)’ 먹고 산 속에서 군용 텐트나 무덤가 잔디 위에서 디비자던 나에게 그 얼마나 호화 찬란, 사치스런 생활이었던가.
그런 기본 생활비는 물론이고 이 곳의 재물들은 내 것이 아니면서도 마구 써도 되는.. 매우 이상적인(?) 재물이므로 특별히 아깝게 여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까짓 거, 10억이면 어떻고 5000억이면 어떨 것인가 말이다.
흐… 게다가 아직까지 무협지에서 마교나 기타 악의 집단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걸 본 적이 없다.
항상 온갖 금은보화가 차고 넘치는… 음… 하지만 이들이 그런 것을 조신하게 장사를 하거나 해서 번 건 아니겠지?
제기, 이것도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걸?
이 곳 비화곡은 ‘최고’라는 체면 때문에 직접 어디를 습격하여 금품을 빼앗아 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고 한다.
사실 귀찮게(?) 그럴 것도 없이 이 아름다운 계곡 안에 점잖게 자리차지 하고 있기만 해도.. 군소 사마외도 문파들이 알아서 갖다 바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식이든 출처가 별로 떳떳하지 못한 재물인 것만은 틀림없을 것이다.
내가 지하 비밀 창고에서 생각했던 것처럼 피로 물든 재물들…
현실상 내가 그걸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부채질을 해선 안 되지 않나.
나는 그런 치밀한(?) 논리의 전개 끝에 결정했다.
“총관..! 나 맘 바꿨다. 천이단과의 대결 얘기는 없었던 걸로 해. 그냥 장청란에 대한 정보 수집만 의뢰하도록..”
“..존명!”
돈 몇 푼(?) 때문에 밀어붙이던 명령을 철회하는 나를 좀스럽게 보지나 않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총관은 기쁜 표정을 감추려는 기색이 역력할 뿐이었다.
소교와 동생들은.. 음, 얘들은 내가 하는 일에 아무 생각 없는 것 같고…
후.. 설사 날 좀스러운 주인이라고 생각해도 할 수 없지.
그래… 아껴 쓰자.
내가 아껴야 사람들이 덜 죽는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합리화로 마음을 정리했다.
그 후엔 이런 저런 보고, 뇌옥에 갇혀 있는 장명과 그와 정반대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구월화의 태도.. ‘야후’ 장로가 제자들 특훈 시키고 있다는 얘기 등등을 들었다.
음.. 좀 지루해 지는군.
적어도 내 안색 살피는 것에는 빨라서 총관은 대충 보고를 마치고 나갔다.
일단.. 중요한 일들은 내일 모레부터 처리해도 된다 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지하 비밀 창고에 가기로 했다.
대교 자매들 시켜서 준비시킨 짐을 어깨에 매고 어기적어기적(?) 나는 지하 창고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벽에서 귀신 울음소리가 나던지 말던지, ‘아수라 백작’이 두 번째 관문을 통과 시켜 주면서 말을 걸던지 안 걸던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약간 지난밤의 뒤끝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뭐든 신경 쓰기도 귀찮고 그저 빨리 내려가서 좀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비밀 창고에 도착해서 문 열고 들어갈 때까지 그야말로 암 생각 없었다.
음… 다행히 대교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 있었던 것 같았다.
“아, 곡주님..?”
연못 옆 탁자에 앉아서 뭐 먹다 말고 다급하게 일어서며 포권 하는 대교를 손짓으로 다시 앉게 했다.
“식사하는데 내가 방해가 됐네..?”
“그, 그렇지 않습니다. 그보다 오늘은 바쁘셔서 못 오시는 줄.. 아..?”
대교는 불연 듯 놀라며 내게 다가왔다.
“곡주님 안색이 좋지 못합니다. 설마, 어디 편찮으신 대라도…”
안타까워 어쩔 줄 몰라하는 대교에게 나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
“하,하… ‘백일취’라는 술이 있다기에 그냥 한번 마셔봤더니 그래. 거.. 독하데?”
“세상에, 그 백일취를.. 어젯밤 곡주님 처소 당번이 누구였습니까? 설마, 소령이가..?”
기집애, 눈치는 빨라가지구…
“아냐, 미령이였어. 그 애도 무척 말리더군. 하하-!
난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거든, 하지만 이번엔 정말 혼났어. 하하핫-!”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짐짓 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흐… 미령이에게 좀 미안하군.
하지만 소령이였다 고 하면 틀림없이 대교가 상황을 감 잡을 것 같고, 본래 내 방 당번 로테이션이 대교가 빠진 지금 미령이가 어제 당번이 맞기도 하다.
“후.. 미령이가 너무 어려서 생각이 깊지 못합니다.
제가 평소 동생들 교육에 미진한 탓이기도 하니 부디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행히 대교는 내 말을 그대로 믿는 것 같다.
“에이.. 용서는 무슨, 말리는 대도 내가 마신 건데 뭐..
그딴 거 신경 쓰지 말고, 이거나 받아.”
나는 대교에게 내가 어깨에 메고 온 큼직한 보따리를 건네주었다.
대교는 약간 의아해 하면서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대교의 세 동생들에게..
대교가 기본적으로 먹고 입을 것은 있으니까, 그 외에 대교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기라고 얘기해서 준비시킨 물건들이었다.
지난 번 대교에게 ‘필요한 거 있냐?’라고 물었을 때, 녀석의 눈치로 보아 여자들에게만 필요한 뭔가가 있을 것 같아서 그랬는데…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들러 메고 오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좀 궁금하긴 했지만 보따리를 열어보지는 않았다.
뭐.. 자매들끼리 알아서 잘 챙겨 줬겠지.
그보다.. 에구, 나는 좀 쉬기나 하자.
으.. 웬수 같은 ‘백일취’.. 다신 마시지 말아야지…
몽몽이 귀가(?)를 알리기까지 나는 몇 시간 동안을 내가 애용하는 평상처럼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 빈둥거리며..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가뜩이나 머리 속이 맑지 못해 ‘가상 공간’을 오래 훈련(?) 엄두도 나지 않았다.
잠자는 거에도 지쳤을 때 장명과 구월화를 내가 청문회(?) 하는 상황을 잠깐씩 보는 정도에서 끝냈다.
[ 이제 돌아가셔야 할 시간입니다. ]
음… 벌써 그렇게 되었나?
나는 부시시 몸을 일으키면서 연못에서 세수라도 하고 갈까 어쩔까 망설였다.
그 연못가 옆 탁자에 대교가 내게 뒷모습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좀 아까 졸린 눈으로 얼핏 봤을 때는 연못 반대편 바위 위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내공 수련하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탁자 위에 놓인 뭔가에 집중해서 공들여 ‘작업’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뭔가 특별한 무공 수련을 하나 보다 생각하며 나는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일어섰다.
음.. 무공 수련하는 것 치곤 좀 이상한 분위기네..?
…어라-? 그새 바뀌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