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20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2 : 땅벌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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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20화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2 : 땅벌 떼


땅벌 떼

셋은 현장을 벗어났다. 차가 한참을 달렸을 때 박 신부가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는 건가, 현암군?”

“그 화가에 대해 조사를 해 봐야겠어요. 준후의 말대로 그림에 뭔가 있다면………..

준후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그림에 깃든 것이 뭔지는 나도 몰라요.”

“원한령이 깃든 것 아니었나? 나도 영사를 해 보았는데 원한 비슷한 이미지가 느껴지던데.”

박신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준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복잡한 게 있어요. 그 힘, 사람들을 죽게 한 힘 말이에요.”

“힘? 원한령의 한이 깊이 맺히거나 주술을 이용하면 영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잖아?”

현암이 속력을 줄여 커브를 돌며 대꾸했다.

“그래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영의 힘이 그렇게 까지 발휘된다면, 주변은 당연히 원기(氣)로 물들어 있어야 하 는데 거의 아무런 흔적이 없다는 것은……………

“그러면 사람을 날려 벽에 메다꽂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어디서 나왔단 말이지?”

“예감이 이상해요. 형. 사건이 계속 일어날 것 같아요.”

생각에 잠겨 있던 박 신부가 말을 이었다.

“음. 그러면 그 화가의 집으로 가는 건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 같군. 그 힘이 그림에서 나왔다고 단정하기는 이른 것 같아. 준후가 말한 미지의 힘에 대해 뭔가 알아낸 후에 가는 게 나을 듯 싶은데?”

현암이 차를 돌렸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나저나 안 기자 이 녀석은 왜 연락 이 없는거야? 희생자들의 신원에 대해 추적해 준다고 하고서는.”


“어딜 가는 거야?”

담배 연기로 뽀얗게 흐려진 방 안에 다섯 남자가 침울한 표정 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 앞에는 사진 몇 장이 흐트러진 술병 사 이에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한 사내가 갑자기 신음 소리를 내며 뛰쳐나가려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수염을 기른 사내가 뛰쳐나 가려는 사내를 붙잡았다.

“인마. 너 죽고 싶냐? 여기 잠자코 뭉쳐 있어야 된단 말이야!”

“형님 나가게 해 주십쇼! 더 이상 이렇게 숨어 지내긴 싫습니 다. 도대체 어떤 놈이, 아니 어떤 우라질 귀신이 우릴 해치려 하 는지는 몰라도 내가 가서 죽여 버리겠어요!”

“닥쳐! 그렇게 큰소리를 치다가 벌써 셋이나 당했어.”

“형님!”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

“형님………….”

사내가 무너져 내렸다. 사내는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로 울었다.

“이대로는, 정말 이대로는 견딜 수가 없어요…………. 전화벨 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

“닥쳐, 인마!”

“미칠 것 같아요. 차라리………… 차라리………………”

“인마 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야, 털보! 잡아, 저놈 잡아!” 

사내는 괴성을 지르며 수염 난 남자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어 이쿠! 하며 털보가 넘어지자 사내는 미친 듯 달려 나가기 시작했 다. 이미 반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 염병할 자식이…………. 이봐! 다들 따라가서 데리고 와! 개 죽음을 시킬 수는 없잖아!”

두목인 듯한 남자가 서둘러 나가자 세 명의 남자가 뒤를 따랐 다. 두목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제기랄, 누군 무섭지 않은 줄 알아?”


안 기자에게 연락이 온 것은 저녁 무렵이 다 되어서였다. 현암 은 욕을 퍼부으려다가 안 기자의 첫마디를 듣고 멈칫했다. 뜻밖의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잘 들어라. 경찰 컴퓨터를 훔쳐서 간신히 알아낸 거니까. 이 번에 칼로 귀를 쑤시고 죽은 놈은 서칠성이라는 조직폭력배야. 땅벌 떼라는 폭력 조직의 일원이지.”

“땅벌 떼? 뭐 하는 놈들인데?”

“가만, 끝까지 들으라고 이놈들은 해결사로 알려져 있고 밀수에도 손을 대고 있는데, 경찰 자료에 의하면 아마도….”

“아마도 뭐야?”

“인신매매 혐의도 받고 있는 놈들인가 봐.”

“인신매매단?”

“응. 현재 혐의를 받는 정도니까 단정할 순 없지만, 아무튼 이 상한 점이 있어. 경찰은 이 사건들을 비슷한 폭력배끼리의 암투 로 생각하고 있는데 말야, 내가 보기엔 영 수상쩍어. 본론으로 들어가서 전에 미술관에서 죽은 녀석 있지? 그놈도 대강 신원이 밝혀졌는데, 유대철이라고 땅벌 떼파의 칼잡이였던 걸로 추정 된대.”

“뭐? 같은 일파였다고?”

“그뿐이 아냐. 오늘 또 한 놈 발견됐어. 바닷가에서………….”

“뭐? 또 죽었다고? 그놈도 땅벌 떼파야?”

“그래. 이름은 이석암이고 별명은 돌중이래.”

스피커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준후가 끼어들었다.

“사인이 뭐였는지 물어봐요!”

“알았어. 그래, 어떻게 죽었지?”

“응, 익사야. 역시 지독해. 두 다리가 부러지고 양손이 바닷가 해변에 못 박혀 있어. 그런 상태로 밀물이 밀려오자 꼬르륵한거지.”

“밀물? 그러면 아주 천천히 익사했을 텐데, 반항의 흔적은?”

“전혀 없었어. 마치 자는 듯이 얼굴이 평온, 아니지, 멍하다고나 할까?”

박신부가 무릎을 쳤고, 현암과 준후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꿈꾸는 소녀>!”


사내는 달렸다. 저주의 욕지거리를 해 대기도 하고 단말마의 비명 같은 것을 지르기도 하며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목소리・・・・・・

귓전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유난히 하얗던 그 여 자의 목소리였다. 저만치 흰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으아아!”

사내는 발광한 듯이 부르짖었다. 눈은 살기로 번득였고, 극도 의 공포와 분노가 겹친 나머지 입에 거품까지 물고 있었다.

“덤벼라, 이 계집애야! 다시 한번 죽여주마! 나와 나오란 말이야!”

눈앞이 탁 트인 곳이었다. 공터・・・・・・ . 휴지기에 들어간 공사장 이었다. 여기저기 널린 콘크리트 파이프와 다소 익살맞게 서 있 는 포클레인 한 대, 모래와 자갈 무더기……………

흰옷을 입은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와! 어디야, 어디 숨었어!”

사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으나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귓전에 울리던 목소리도 어느새부턴가 들리지 않았다.

사내는 살벌한 인상으로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며 뒤지기 시 작했다. 손에는 자전거 체인이 들려 있었다. 사내의 눈에 포클레 인의 운전석이 들어왔다. 운전석에 그림이 한 폭 놓여 있었다. 사내는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긴장하면서 천천히 포클레인 의 운전석으로 다가갔다. 그림이 점차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한 것과 놀고 있는 듯한 소녀・・・・・・・ 얼굴이 유난히 흰 소녀…….

“으악!”

사내가 들고 있던 체인을 떨어뜨리며 뒷걸음질했다. 그림 속 의 소녀가 눈을 뜨고 남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의 눈동자는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아악!”

사내는 허둥거리며 뒤돌아서 달아나려고 했다. 그러다가 발목 이 삐끗했는지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두목과 세 남자가 모래더미를 넘어서자 허둥대는 사내의 모 습이 먼발치에 보였다. 그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입을 벌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포클레인이 움직였다. 사내는 다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뛰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린 상태로 뒤로 기어갔다. 포클레인 조종석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사내의 공포에 찬 신음 과 비명에 섞여 똑똑히 들렸다.

“여자다. 그 여자야!”

두목의 뒤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포클레인 삽이 마치 거대한 집게발처럼 아래로 내리꽂혔다. 사 내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리가 두 동강 나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네 남자의 귀에 여자의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박신부의 얼굴이 굳었다. 현암이 담배 연기를 푸욱 내뿜으며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건 도대체…… 죽어 마땅한 놈들만 죽는군요. 그냥 내버 려 두는 게 어때요?”

“악인이라도 회개할 기회는 주어야지. 그리고 죽은 영이 산사 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할 수는 없어. 산 사람의 죄는 인간들 이 해결해야 해. 심판은 주님이 하시는 거고…………….”

현암은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에이! 어째 이번 일은 처음부터 기분이 안 좋더라니…………..”

“어쨌든 이 건은 여러 분야에서 조사를 해 나가야 될 것 같네. 현암 군은 땅벌 떼라는 폭력 집단의 주변을 알아보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들에게 경고를 해주고.”

“뭐요? 아니, 내가 왜 그런 놈들하고…..”

“그럼 늙은 나나 어린애인 준후가 해야겠나? 사람하고 싸우는 건자네가 제일 잘하잖아?”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왜 그런 놈들에게 경고까지 해 줘야 하죠?”

현암은 박 신부의 날카로운 눈총을 받고는 얼른 말을 얼버무렸다.

“아뇨, 아뇨……. 하긴 개들도 가련한 인생들이니까………… 하 하하…………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하면 되잖아요.”

“나는 화가를 만나 보겠네. 준후는 나와 함께 가되, 집 밖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여기저기 영사를 해 봐라.”

“예? 들어가서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일단은 너를 데리고 들어갈 명분이 없잖니? 먼저 내가 이야 기를 나눠 보고,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거든 현암 군과 셋이 가 보기로 하자.”

“예, 알았어요.”

준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자 현암도 잔뜩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예에에.”

“현암 군, 아까 안 기자에게서 들은 땅벌 떼라는 조직 명단은 갖고 있지?”

“예에에.”

“일단 그들에게 연락을 취해 보게. 벌써 세 명이나 죽었으니, 아마 자넬 반겨줄지도 모르지. 우리도 이 계열에선 이름이 알려 져 있는 편이니.”

“예에에.”

“현암 군!”

“어이쿠, 전화 왔네!”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한바탕 박 신부에게 곤욕을 치를 참 이었던 현암이 냉큼 달려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예? ……….예, 예, 맞습니다만. ……………예? 음, 성함이 혹시…………. 남종호 씨요? ・・・・・・ 예, 알겠습니다. 예.”

현암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았다.

“누군데 그래요, 형?”

“이놈들도 양반 되긴 글렀군. 땅벌 떼 두목 남종호라는 작자야. 아예 까놓고 얘기하는군그래. 나보고 당장 오라네.”

“그것 마침 잘됐군.”

“방금 한 녀석이 또 죽은 채로 발견, 아니 죽었다나 봐요. 그래서 다들 공포에 떨고 있는 거죠.”

“또요? 어떻게 죽었대요?”

준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포클레인이… 아무도 없는 포클레인이 저절로 도망치는 남자를 쫓아왔대. 그러고는 삽으로…………. 허리가 잘려 나갔다는군.” 

준후가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윽!”

“이번엔 먼발치에서 두목을 비롯한 세 명이 남자가 죽는 걸 목 격한 모양이야. 처음엔 그들도 이 사건들을 다른 폭력 집단의 짓 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고는 이 일이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벌어지는 것인 줄 안 거야. 목소리가 마구 떨리더라고.” 

박신부가 현암의 말을 끊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림이 관련되어 있었나? 이건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아뇨, 있어요.”

준후가 재빨리 대답하면서 현웅 화백의 화집을 폈다.

“<게와 노는 소녀>, 이거예요.”

게…………. 마치 게를 놀리는 양 게의 집게발에 자신의 발가락을 아슬아슬하게 갖다 대는 소녀의 장난스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거야 원…….”

박신부가 한숨을 쉬었다.

“어디 안심할 수 있나. 언제 어느 곳에서 들이닥칠지 모르…….”

“모두 조심하는 수밖에 없죠.”

준후의 말을 현암이 가로막았다.

“이건 물리력을 구사해도 보통 정도가 넘어. 사람도 없는 포클 레인이 날을 들고 쫓아오는데 쇠로 된 기계 덩어리에 부적이며 주술이 통할 리가 있겠어? 대책이 없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우리가 아니면 누가 밝혀내겠는가?”

셋은 한동안 침묵했다. 상대가 대체 어떤 힘을 쓰고 있는지, 목적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누구인 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박신부가 침묵을 깼다.

“일단 아까 계획대로 자네는 말벌 떼인지 땅벌 떼인지를 만나보게. 나와 준후는 화가를 찾아가 보겠네.”

“좋습니다. 신부님.”

“현암군, 자네도 이번엔 각별히 주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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