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11화 유혹의 검은 장미 1 : 연속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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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권 – 11화 유혹의 검은 장미 1 : 연속 사고


연속 사고

1993년 6월 3일, 서울 여의도에 거주하는 오세열 군(가명) 사망(향년 23세, 무직).

사인 밝혀지지 않았으나 과다한 빈혈 증세를 보임.

1993년 6월 4일, 역시 여의도 모 아파트에서 김한수 군(가명) 추락사(향년 24세, 학생, 주거 부정).

사인 평소 김한수 군의 주변인의 진술에 의하면 절대 자살은 아니라 함. 사체 검시 결과 심한 빈혈 증세. 경찰은 빈혈에 의한 실신 때문에 추락한 것으로 단정.

1993년 6월 4일, 여의도 모 아파트에 거주하는 곽형준 씨(가명), 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향년 25세, 웨이터).

사인 밝혀지지 않았으나 과다한 빈혈 증세.

1993년 6월 4일, 오페라 가수 이병기 씨(가명, 향년 28세), 여의도 오페라 하우스에서 처녀 공연을 마치고 무대 아래로 실족하여 사망.

사인 : 뇌진탕 역시 강한 빈혈에 의한 것으로 추정됨.


“흡혈귀 짓일까?”

박신부는 신문을 오려 스크랩북에 끼워 넣으며 중얼거렸다.

“글쎄요. 전설에 따르면 흡혈귀는 밤에만 나오는 것 아닌가 요? 또 사람이 많은 오페라 공연 같은 데서 그런 짓을 할 수는 없 을 텐데.”

준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흡혈귀의 변종일지도 모르지. 아니면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신술 같은 걸로 접근했는지도 모르고,”

현암이 박 신부가 해 놓은 스크랩들을 들썩이며 말했다.

“변종이라. 아무튼 드라큘라 같은 형태는 아닐 거야. 그놈이야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고…………….”

준후가 뭐라고 대꾸하려 하자 현암이 웃었다.

“세상에 어떤 귀신이 망토 걸치고 백작 흉내를 내고 다니겠 니? 영화니까 그렇지. 원래 드라큘라 이야기는 루마니아에 실제로 있었던 영주 드라큘라 백작을 모델로 만들어 낸 이야기야. 백작은 터키의 침략을 막아 낸 영웅이었지만, 워낙 행동이 잔혹해 서 민중에겐 공포의 대상이었지. 그걸 브람 스토커라던가 하는 어느 소설가가 인용해서…………….”

“하지만…………….”

준후의 말을 받아 현암이 다시 빈정거리려 하자 박 신부가 중단시켰다.

“흡혈귀의 전설이 꼭 드라큘라로 한정되는 건 아니지. 어느나 라에나 흡혈귀의 전설이나 실화가 나타나고 있어.”

“1920년인가 독일에서 실제로 잡혀 처형된 흡혈귀 사나이 같 은 것 말예요?”

“아니, 꼭 그게 아니더라도…………….

준후가 아는 체하는 것을 박 신부가 막았다.

“원래 피는 생명의 상징이지. 그걸 모태로 하여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악령이나 그걸 모아 나쁜 목적에 쓰려는 주술은 얼 마든지 있어.”

잠시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박 신부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번 경우도 예외가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일행은 준후를 앞세워 여의도로 향했다. 준후의 영사 능력으로 적의 정체를 알아보려 한 것이다. 정체를 모르고서는 섣불리 달려들 수 없었다. 과거에 서둘렀다가 쓰라린 결과를 맞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만큼 우선은 신중한 조사와 준비가 필요했다. 

“제일 먼저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요?”

“오세열이라는 백수의 집으로 가 보자.”

오세열의 장례는 이미 끝나 있었다. 신문에 기사가 나는 바람 에 별 어중이떠중이가 찾아왔었는지, 세열의 형은 도리질을 치 며 숫제 문조차 열어 주지 않았다.

“어쩌죠, 신부님? 신부님이 한번 시도해 보세요.”

“안돼. 여긴 불교 신자의 집이라……”

“불교 신자에겐 천주교 신앙이 안 통하나요?”

“아니. 하지만 강도처럼 남의 집 문을 밀어내는 데 주님의 권능을 써서야 되겠니? 준후야, 이방인 듯한데 방 밖에서 투시해 보렴.”

준후는 밖에서 유리창에 손을 대고 주를 외웠다. 그렇게 한참 을 있더니 땀을 흘리며 손을 뗐다.

“이미 영은 떠나고 없어요. 귀기가 서린 느낌은 없었어요. 그런 게 아니라도 사람이든 악령이든 별다른 느낌은 안 들던데요?”

“정말이니?”

“예, 요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별건 아니었어요. 마치 옛날에 죽어 비틀어진 나무토막 같은 것이었어요. 아주 약해요. 별거 아니에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방 안의 광경은 특이한 점이 없었다. 일본 만화 영화의 포스터가 벽에 크게 붙어 있었고, 비디오테이프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화병에 꽂혀 있는 까맣게 시들어 버린 장미 가 쓸쓸해 보였다. 어쩌면 저렇게 잎까지 까매졌을까 하고 현암 은 생각했으나 곧 잊어버렸다. 준후는 산더미같이 쌓인 비디오테 이프에서 눈을 떼지 못했으나 박 신부가 재촉하자 발을 옮겼다. 

“현암 형, 우리 돈 벌면 커다란 텔레비전하고 슈퍼 비디오를 사자.”

“됐어! 난 만화 영화 싫어!”


김한수라는 주거 부정 학생이 떨어져 죽은 아파트 광장도 깨 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준후는 아무 영기도 느낄 수 없으니 선 착장에 가서 배나 타자고 졸랐으나 박 신부가 준후를 달랬다. 

“준후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쳐선 안 돼. 흡혈귀족은 자취를 거의 남기지 않아서 추적하기가 어렵다.”

“그래요? 신부님은 흡혈귀하고 싸워 보신 적이 있어요?”

눈치 없이 끼어드는 현암에게 박 신부가 눈을 흘겼다.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자신의 요구가 무시당하자 준후는 볼이 부은 채 영사를 시작했다. 좀 삐쳤는지 별것 아닌 것까지 싸잡아 중얼거렸다.

“음…… 병아리 한 마리가 애들한테 밟혀 죽은 적이 있네요. 아이고, 가엾어라. 잔인한 녀석들… 윽, 죽은 게 많네요. 모 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어요. 약을 뿌려서. 아이고, 해충이라고 해 도 불쌍한 것들인데……. 잔디들도 기운이 없네요. 매연하고 산 성비 때문에…………….”

박신부가 얼굴을 찡그렸고 현암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 신히 참고 있었다.

“음…… 누가 막 화를 내고 있네요…………… 신부님이야 수행이 깊은 분이시니까 그러실 리는 없고….. 음? 그 옆에서 누가 피 식피식 비웃는데요? 미친 사람인 것 같아요. 할 일 없이 왜 웃는 담? 전 그냥 자세히 말하는 것뿐이에요…………. 음………….. 검은 장미 세 송이가 차에 깔렸군요. 어쩜 저렇게 까맣지?”

‘검은 장미? 아직 새까만 장미는 나온 품종이 없는데……..?’

현암의 머리에 잠깐 이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준후의 장난이겠 거니 하고 잊어버렸다. 박 신부가 폭발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그 밖의 것들은 오래전에 죽은 가련한…………… 어? 어?” 

준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박 신부와 현암도 준후의 이상 한 행동을 보고 긴장했다.

“준후야, 왜 그러니?”

“부유령, 지박령 들이 무더기…………… 무더기로…………… 다 약한 것 들이지만…………… 으, 수가 너무…… 이리로 오고 있어요. 원한을

품고………… 저기… 저쪽에 뭐가 있죠?”

준후가 눈을 뜨지 않고 가리키는 쪽에서 한 여자가 걸어왔다.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하카마를 입은 여자는 손에는 무녀가 들 고 다니는 종이 달린 막대를 들고 있었다. 이상한 차림새에 아이 들이 먼발치에서 손가락질을 하고 있었지만, 그 여자의 주위에 수상쩍은 찬 기운이 어려 있어 감히 다가서는 아이는 없었다. 

“음・・・・・・ 강해요. 상당히 강한 기운이・・・・・・ . 그리고 많은 영들 이 무더기로…………. 무서워요, 너무 많아요.”

준후는 신음 비슷한 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고, 여자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눈만 치켜뜬 채 셋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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