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27화 태극기공 3 : 검기

랜덤 이미지

퇴마록 국내편 1권 – 27화 태극기공 3 : 검기


검기

도혜 스님이 말도 없이 떠나간 후, 현암은 새로이 수련을 시작 하기로 마음먹었다. 도혜 스님이 물려준 칠십 년 내력을 과연 어 느 정도 자신과 융화시킬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 과연 이 내력을 한빈 거사에게서 배운 무예에 어느 정도 응용할 수 있을 까도 아직은 의문이었다.

‘내력이 모자라서 무리하게 무예를 펼치려다 두 번씩이나 주 화입마를 당했다. 이번에는?’

현암은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겼고, 우연히 도혜 스님을 만나 게 된, 이 산을 떠나 다른 곳을 찾기로 했다. 도혜 스님이 해동밀 교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하기는 했지만, 아직 거기까지 욕 심을 낼 필요는 없다고 현암은 생각했다. 도혜 스님의 진원지기가 자신의 몸에 적응되지 않는다면 혈도를 모두 열어 보았자 무 슨 소용이 있겠는가? 현암은 한빈 거사에게 받았던 열여섯 가지 의 수련법을 차근차근 되씹어 보았다. 그리고 현아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도혜 스님의 거리낌 없는 선행에 감명을 받지 않은 바 는 아니었지만, 현아를 해친 귀신에 대한 복수심을 버릴 수가 없 었다. 아니, 오히려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보 이기 시작하면서, 현암의 복수심은 더욱 깊어졌다. 현암은 도혜 스님이 해동밀교에서 얻었다는, 영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부적을 품 안에서 만지작거리면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영 의 목소리를 들어 보았자 피에 굶주린 귀신의 변명일 것이 분명 한데, 그런 것을 왜 들어 보라고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었다. 하 여간 도혜 스님은 현암에게 큰 은혜를 베풀었고, 현암은 그런 분 의 당부를 어기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겨울이 돌아왔다. 차가운 삭풍이 살을 엘 듯 몰아치고, 간간 이 눈발까지 섞여 날리고 있었다. 여간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미 치지 않는 해봉산・・・・・・ 그 산의 중턱에,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 하고 가지를 축 늘어뜨린 커다란 나무 밑에 현암은 정좌하고 정 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얇은 베옷을 걸치고 있었으나 차갑게 몰 아치는 바람도 잊은 듯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는 현암의 몸에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암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면서 앞에 꽂혀 있던 긴 칼을 집어 들었다.

“이야압!”

기다란 기합 소리가 울려 퍼지자 주변에 있던 나뭇가지들에서 눈발이 와르르 쏟아졌다. 현암의 기합 소리가 메아리를 이루며 사라지기도 전에, 현암이 든 긴 칼의 손잡이부터 푸르스름한 기 운이 서서히 칼의 검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기운은 손잡이부 터 반 자쯤 된 곳에서 엉겨들었다. 현암의 눈에 기쁨의 빛이 떠 올랐다.

‘드디어 성공이다! 파사신검의 기초식! 공을 기로 바꾸어 검에 싣는 데 성공했다! 검기를 냈다. 검기를! 한빈 거사님, 도혜 스 님! 보십시오!’

그러나 현암이 발한 검기는 아직 칼 전체에 맺힐 정도로 강하 지 못했다. 현암은 몸을 일으켜 파사신검의 기술에 따라 칼을 휘 둘렀다. 칼에 맺힌 검기는 나직한 소리를 내면서 현암이 휘두르 는 궤도를 따라 허공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렸다. 현암은 파사신 검의 검보에 적혀 있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칼이 닿지도 않았는 데 나뭇가지들이 와스스흩어지고, 공중에서 상쾌한 칼의 음향이 들려왔다. 아직 자신의 내력을 칼에다 반도 집어넣지 않았다. 현 암은 용기를 내어 내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 칼에 불어 넣었다. 검기가 맺혀 있던 부분에서 갑자기 요란한 소리가 나며 폭발 하듯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검기가 맺히지 않은 칼의 윗부분이 쨍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현암은 동작을 멈추고 손잡이만 남은 칼을 망연히 들여다보았다.

‘검기, 드디어 전설로만 내려오던 검기를 칼에 맺히게 했다. 드디어 파사신검을 시전했다. 그러나 칼이 검기를 이겨 내는 칼 이 없구나!’

현암은 몹시 아쉬웠다. 도혜 스님이 아낌없이 부어 준 칠십 년 의 내력을 태극기공으로 바꾸어 검기를 맺게 하고, 이인 한빈 거 사가 물려준 도가 제일 검술이라는 파사신검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힘을 제대로 받아내는 칼이 없어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다니…………….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명검이 아니면 안 되겠구나. 그 러나 내 처지에 그런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이제는 칼을 구하러 나서야 되나?”

현암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손잡이만 남은 칼에 다시 한번 기공력을 불어 넣었다. 조각만 남은 칼에 약간의 검기가 맺힌 것 을 바라보다가, 현암은 쓴웃음을 지으며 얼음 사이로 흐르던 냇 물로 던져 버렸다. 칼 조각이 냇물에 닿자마자 폭약이 터진 것 같은 굉음이 울리면서 물기둥이 치솟아 현암에게까지 물벼락이 쏟아졌다. 현암은 놀란 얼굴로 그쪽을 쳐다보았다. 잠시 무슨 영문인지 생각하던 현암의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던 져 버린 칼자루에는 아직 검기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손에서 떠나도 주입한 검기가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구나! 물과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도 있고……..’

짚이는 바가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잘 이용한다면 수마와 싸 울 때 장검을 구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암은 기 쁜 마음으로 다시 수련을 시작했다. 이제는 마무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동생의 복수를 위해서………….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