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1권 – 30화 생명의 나무 1 : 사교
사교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깨우치신 위대한 사령 브리트라의 화신이시여.”
음울한 수백 개의 촛불이 가녀린 빛을 하늘거리고 있는 꽤 넓 은 회당에서, 녹색 사제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동시에 하늘에 두 팔을 벌리고 애절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백여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운집하여 함께 눈을 감고 외쳤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취하신 그 지혜로 저희를 굽어 살피사, 저희의 죄를 정화하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소서!”
백여 명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아우성처럼 들려왔다.
“죄를, 저희의 죄를!”
“힘, 힘을 주소서!”
남자의 사제복에 수놓아진 모나스 히에로글리피카와 여자의 사제복에 수놓아진 뱀의 문양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섬뜩한 빛을 반사했다. 남자가 뒤로 돌아섰다.
“이미 죽어 버린 신, 여호와를 섬기는 무지몽매한 크리스찬이 여! 너희는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 유일신 대사령 브리트 라를 믿어야 한다!”
여자도 뒤로 돌아섰다.
“헛된 염불만 늘어놓는 불도에 현혹된 중생이여! 대령 중의 대령, 브리트라를 섬기고 의지하라!”
둘이 함께 외쳤다.
“세상이 만들어진 것은 신들의 투쟁의 결과, 이제 오랜 싸움 끝에 승리한 유일신 브리트라를 믿는가?”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 엎드렸다.
“믿고 섬기나이다!”
둘의 어조는 묘하게 어울려 마치 한 사람의 목소리인 것처럼 합해졌다. 둘의 눈은 이상하게 번득이고 있었다. 갑자기 무리들 의 머리 위 허공에 거대하게 꿈틀거리는 뱀의 영상이 나타났다.
“오!”
“아아!”
* 중세 서양의 유명한 연금술사이자 마법사인 존 디가 만든 부적의 이름, 우주의 모든 지혜를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전해지며 그 형상은 추 또는 뿔 달린 악마의 모습과 흡사하다.
“브, 브리트라 신이시여!”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 영혼을 바쳐라! 너희의 모든 죄를 용서받으리라!”
여자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너희의 육신을 바쳐라! 세상을 흔드는 힘을 갖게 되리라!” 무리들은 저마다 아우성을 치면서 허공 위의 영상에게 팔을 뻗었다. 이미 몇 명이 탈진하여 쓰러지고, 한 건장한 남자가 미 친듯이 윗옷을 찢고 있었다. 광란의 도가니를 바라보며 두 명의 사제는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머, 이게 뭐야! 꺅, 그만해! 무섭단 말야!”
“으앗!”
놀란 승희가 엉겁결에 준후를 밀어내자 무방비 상태였던 준후 가 뒤로 자빠졌다. 동시에 준후가 펼쳤던 강신(降神符)*들이 허공에서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현암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소리쳤다.
“이봐, 승희야! 그런 것을 무서워하면 어떻게 해! 준후가 불러 내는 신들은 우리 편이라고! 이래서야 어떻게 마물들과 싸운다는 말이야?”
* 인간 세상으로 신을 내리게 하거나 그 신을 주술사의 몸에 들어오게 하여 그 힘 을 얻게 하는 부적.
“아유, 몰라! 무섭단 말이야! 웬 귀신!”
준후가 울상이 되어서 엉덩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누난 어떡하려고 그래? 아무리 잠재력이 크면 뭘해? 그걸 개발해야 할 거 아냐? 신부님처럼 수십 년 기도력 쌓는 수련 을 할 거야?”
“윽, 웬 수십 년? 쪼그랑 할머니가 되라고?”
“아니, 그러면 현암 형처럼 기공이나 외공을 연마할 거야?”
“야, 내가 깡패냐? 나같이 우아한 숙녀가 주먹질이나 배운단 말이야?”
“뭐, 깡패? 야, 너 말 잘했다. 넌 그러면 날라리냐? 그런 미니 스커트를 입고 싸우면 귀신들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뭐? 야! 말 다 했어?”
준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살짝 밖으로 빠져나갔다. 안 에선 현암과 승희가 계속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어이구,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평상시에는 눈곱만큼도 영력 이 있는 것 같지 않으니………….”
박 신부가 총총히 들어오다가 시무룩해 있는 준후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왜 이리 소란스럽니, 준후야?”
“또 전쟁이죠, 뭐. 어휴, 우리 여자는 빼고 활동하는 게 어때요? 이건 허구한 날 싸움이니…………….”
“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원래 다 그런 거란다. 오 히려 난 이제야 사람사는 맛이 나는 것 같다.”
“예? 그럼 여태까진 어땠는데요?”
“아니, 그건 아니고, 집안이 화기애애해지는 것 같아서 좋다는 말이지. 그나저나 어서 들어오너라. 중요한 소식이 있다.”
박 신부는 사제복 자락을 휘날리면서 한창 세계대전(?)이 진 행중인 방으로 들어갔다. 준후가 가만히 들어 보자 처음엔 박 신 부가 둘을 좋게 말리려고 하는 것 같더니 잠시 뒤에는 되레 삼 파전이 되어 싸우고 있었다.
“화기애애라고? 맙소사.”
“사교요? 뱀을 믿는 종교란 말인가요?”
오랜 말싸움에 지쳐 자연스레 휴전중인 현암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렇다네. 요즈음 일각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신흥 종교지.”
승희가 아는 척을 하며 끼어들었다.
“원래 뱀을 숭배하는 사상은 고대부터 많이 있었어요. 고 대 그리스의 테베에서 성스러운 뱀을 숭배했던 것이 대표적이 고…………. 또 뱀은 좋은 역할을 하진 못한다 해도 신과 거의 대등 한 악의 존재, 그러니까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믿었던 예가 많이 있지요. 북게르만 신화의 미드가르드 독사나 고대 베다에 나오는 브리트라, 이집트 신화의 우레아노스, 그리고………….”
현암이 톡 쏘았다.
“아는 척 좀 그만해. 누가 고고학 전공 아니랄까 봐.”
승희가 현암을 불만스럽게 쳐다보며 다시 말하려다가, 박 신부가 말을 꺼내자 입을 닫았다.
“이번 사교는 주신의 이름을 브리트라라고 부르더군.”
잠자코 있던 준후가 끼어들었다.
“그러면 인도의 영향을 받은 유파인가요? 브리트라라면 내가 좋아하는 인드라 님의 적인데!”
“꼭 그런 것만도 아냐, 기독교, 불교, 그리고 특히 바빌론이나 히타이트, 페니키아에까지 걸친 고대 신앙 체계를 제멋대로 끼 워 맞춘 교리를 가지고 있지.”
현암이 눈살을 찌푸렸다.
“페니키아라면, 잔인하게 인간 제물을 바치던 악성 종교가 있던・・・・・・ . “
승희가 또 끼었다.
“그래, 몰록 신을 섬기던………….”
“아무튼 상당히 강력한 주술을 부리는 것으로 봐서, 그들 뒤에 는 이름 모를 사마의 힘이 있는 게 분명해. 실종된 사람이 많아 서 경찰도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나 봐. 그러나 도대체 증거가 없고 수사관마저도 자꾸 사라진다는 거야.”
“그들이 주술을 이용한다면 경찰이 해결할 수가 없죠.”
“역시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아.”
서로를 쳐다보는 넷의 눈이 빛났다.
박신부가 얄팍한 소책자 한 권을 꺼냈다. 겉표지는 녹색이었 고, 붉은 글씨로 씌어진 ‘사랑을 믿고 받들라는 글씨와 함께 기 묘한 뱀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건 그들의 교리를 간추린 홍보물이네. 한번 보게나.”
현암이 책을 펼치자, 호기심이 생긴 승희가 현암의 어깨 뒤에 서 기웃거렸다. 알짱거리는 승희가 귀찮은 듯 현암이 인상을 찌 푸리자 준후가 아예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현암은 고 개를 끄덕이며 낭랑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세상에 난립하여 갖은 수단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는 각종 종교의 허울을 벗기고, 진정한 우주의 질서를 나타내 는 힘의 근원을 섬겨야 한다. 무릇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범위에 있는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갖추어 나가는 힘 에 귀의하고, 그 힘을 따라 세상을 지배하는 진정한 원리에 순응 하여, 하찮은 인간으로서의 삶이라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승희가 비웃었다.
“흥! 하찮은 인간으로서의 삶이라고? 처음부터 수상한 냄새가 나는군 그래! 안그래요, 신부님?”
“쉿!”
“피잇!”
“이에 우리는 우선, 현재 세상에 떠돌고 있는 각종 종교의 허 상 및 허구성을 알고 그에 속지 않도록, 또는 속고 있더라도 한 시바삐 벗어날 수 있도록 진상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준후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빈정대는 투로 말했다.
“어쭈, 대단하시구먼!”
현암은 묵묵히 같은 어조로 읽기만 하고 있었으나, 눈매는 찡 그려지기 시작했다.
“모든 종교의 기원은 옛 바빌론에서 찾을 수 있다. 바빌론에서 시작된 범우주적인 사색과 신의 기원에 관한 의문은 고대의 원 시 신앙 체계를 정립하는 첫걸음이었으며, 사색의 깊이나 추구 는 이후의 종교들이 따르지 못하는 바다. 바빌론과 메소포타미 아 지방의 종교는 시기적으로는 이집트나 인도의 것과 비슷하나 실제적 내용으로는 두 지방의 종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박신부가 중얼거렸다.
“바빌론이라…………… 부적, 주술, 점복이 그만큼 활성화된 종교는 아직까지 없지.”
“인도의 만신전이나 이집트 신의 계보, 그리스의 신, 북구의 신은 대체적으로 유사하거나 일대일 대응의 요소를 지니는데 이 는 자연력을 추상적으로 묘사하여 신격화시켰기 때문이며, 실제 로 자연력들은 응집되어 하나의 개별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종교관 및 대신관은 비록 유래가 오래되었더라도 훨씬 더 현실적인 것으로 이후, 인 간의 부족한 사고 및 이성으로 윤색되고 변질된 신의 추상적이 고 거대한, 무소불능의 형태보다 훨씬 사실에 가깝다.”
박신부가 한숨을 내뱉고, 승희도 눈썹을 치켜 올렸다.
“수천 년 동안 쌓아 온 인간 의식의 정화를 가볍게 묵살해 버 리는군그래. 역시 이단 논리가 분명해. 우선 인간이 아무것도 아 닌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 바도 그렇고…………….”
현암은 교리를 계속 읽어 나갔다. 종교 교리서라기보다는 주 술 이론서에 가까웠다. 그러나 제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비교적 정연한 이론적 전개를 보이고 있었다. 또 각 종교에서 금 기시되는 요소들을 적당히 섞어서 이용하는 수법으로 볼 때, 이 교리를 만든 인물이 고등교육을 받은 자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드디어 각 종교의 비판 대목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독교, 천주교 등은 유대교의 이론을 비유대인이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이롭도록 첨삭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 이후에 세력을 넓힌 기독교는 로마에 의해 공인된 후 세계 종교라는 모토를 걸었으나, 이는 모두 스스로의 이득만을 꾀한 인간의 행위에 불과하며, 그 이후 전 세계에 수천 건에 달하는 분쟁 및 전쟁을 유발시키고 수억의 사람을 살상케 하여 세 상의 만전을 저해하게 만든 유해 종교로서……………”
박 신부도 눈살을 찌푸렸다.
“성경의 내용도 고대 바빌론의 세계관을 억지로 끌어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대홍수의 노아는 바빌론 설화의 우트 나피슈팀에 불과하며……………..”
“그 부분은 빼고 넘어가세. 어차피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일 뿐 이니까・・・・・・ 종교가 논리적으로 완벽하다면 믿을 이유가 없지.”
현암이 더러운 것을 본 양, 책을 휙 던졌다.
“그래요. 불교, 도교, 유교 등등 모두 말도 안 되는 소리라 고 써 놓았군요. 역시 말도 안 되는 논리로요. 가르침의 유래 나 기원에 대한 꼬투리만 잡았지, 내용에 대한 비판은 없으니, 원・・・・・・ . 그래도 용케 이만큼이나 갖다 붙였구먼요. 이런 걸 좋다 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죠?”
“그래. 그리고 놀랍게도 오히려 식자라고 할 수 있는 층에서 더 호응을 얻는 모양이야. 그 뒤의 내용을 보면, 세상에서 지은 모든 죄는 역시 세상에서 속죄받을 수 있다고 하고 있어. 즉, 육 신으로 지은 죄는 육신을 바치면 속죄가 되고, 마음으로 지은 죄 는 영혼을 바침으로써 속죄가 된다는 식이지.”
승희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승희는 퇴마사의 대열에 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쉽사리 흥분하는 기색을 보였다.
“육신과 영혼을 바친다고요? 역시 사교(邪) 냄새가 나는군요.”
박신부가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또 이 교리에서는 거대한 뱀의 신 브리트라를 섬기는 데, 그 의미화를 위해서 전 세계의 뱀 설화 및 기타 모든 걸 다 갖 다 붙이고 있지. 아까 승희가 말했던 북게르만의 미드가르드 뱀 이나 테베의 성스러운 뱀의 이야기도 물론 포함되어 있고, 그 밖 에도 쿤달리니나 다른 모든 종교에 가지각색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바로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거대한 신, 즉 뱀의 신인 브리트 라를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네. 그리고 덧붙이기를, 세상의 제 신들은 각 종교에서 이름만 다르게 붙였을 뿐 동일한 구성을 가 진평등한 신적 체계와 수를 가지는데, 인간의 의식이 발달함에 따라 분열을 일으켜 신들의 대전쟁이 있었고, 그 승리자가 뱀의 신, 즉 생명력의 화신이라는 브리트라라는 거야. 브리트라가 승 리한 이유는 생명의 비밀을 깨우쳤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러니 까 성경에 나오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바로 뱀의 영, 브리트라의 화신이었다는 소리야.”
현암이 입을 열었다.
“생명의 나무요? 그러면 브리트라의 정체는 사탄이거나 사탄의 화신이 아닐까요?”
“글쎄, 아직 그렇게까지 단정 지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들은 각종의 이적을 행하고 기적을 일으켜 교세를 확 장시키고 있다네. 그러면서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는 증 거가 그의 이적이었다면, 더 큰 이적을 보라고 주장한다는 거 야. 아마도 어디선가 금단의 사술을 동원하는 거겠지. 아직 자 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들 중 적어도 하나는 펜타그램(五星, Pentagram)*을 이용하는 수단도 쓴다고 하네. 어쩌면 레비의 마 술학파의 일종인지도 몰라.”
준후가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런 건 잘 몰라요. 서양 종교의 사악한 주술을 쓴다니, 어디 내가 모시는 분들보다 정말 센가 볼까?”
“우리 목적은 싸움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 종교가 정말 사악 한지 여부부터 조사해 보고, 정말 사악한 힘을 행사한다면 그때 가서 싸워도 늦지 않아.”
현암이 나섰다.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박신부가 미리부터 생각해 둔 게 있었던 듯 시원시원하게 지시를 했다.
* 서양의 마술사가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한다고 하는 별 모양의 도구 또는 부적 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각각의 뿔인 4대 정령(地, 水, 火, 空)과, 이를 지배하는 광(光, Astral)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단은 사교의 배후에 있는 게 누군지, 아니면 무엇인지 알아 야 해. 들리는 말에 따르면 두 명의 남녀 사제가 이 종교의 의식 을 주관한다고 하는데, 우선 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 할거야.”
나머지 셋이 입을 모았다.
“좋아요.”
“그러면 현암 군과 승희가 한 조가 되어 한 사람의 뒤를 캐보 기로 하세. 나와 준후가 한 팀이 될 테니……”
현암이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좋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남녀 중에 어느 쪽을 맡죠? 남자쪽 이 나을 것 같은데요?”
“어째서?”
“남자 사제를 불러내는 데는 인물은 모자라지만 일단 미인계 를 쓰는 것이………… 아이쿠, 미안미안! 농담이었어!”
“하여튼 이번에는 귀신과 직접 맞부딪히지 않을 수도 있어. 상 대하는 것이 사람이라면, 함부로 손을 쓰지 말게. 생명을 소중하 게 여겨.”
승희가 눈을 부라렸다.
“아니, 그러면 만약 그자들이 허무맹랑한 속임수를 쓰고 있는 데도 나서면 안 되는 건가요? 꼭 귀신이 등장해야 개입할 수 있는 거예요? 나쁜 일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처리할 수도 있잖아요?”
박신부가 눈을 감으며 손을 들어 승희를 제지했다.
“아니야, 승희야, 진정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 또한 거 의 주술적인 것 아닌가. 원래 인간 세상에 알려지면 곤란한 것들 이지. 우리가 쓰는 방법들이 세상에 퍼지고 확산된다면 세상은 아비규환이 될지도 몰라. 우리의 힘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상 대하는 데만 써야 해. 그리고 그런 일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네.”
“하지만…………….”
승희가 더 따지려는 것을 현암이 막았다.
“자자, 시간이 없다고. 빨리 나가서 조사를 시작하자.”
“아 참, 잊을 뻔했군. 여자의 출신에 대해선 내가 조사한 바가 있으니 염려 말고 자네는 그 교단으로 접근해 주게.”
“알겠어요. 교리서에 써 있는 주소로 가죠. 가서 가입하는 척 해 볼게요.”
“그래. 조심하게. 물론 자네를 믿네만, 승희를 잘 돌보고…………..
“흥! 저는 왜 못 믿어요? 내 몸속에 무슨 신이 들어 있다면서 요? 그러면 나도 염려 없겠죠, 뭐.”
“그런 식으로 단정하지 마. 기 하나 운용할줄도 모르면서………….”
“뭐?”
“자, 자! 또 싸우나? 싸우려면 나가서 싸우게! 준후야, 우리도 나가자.”
둘로 나뉜 팀은 각자의 길로 나섰다. 박 신부의 가슴에 불안감이 깃들었으나, 현암을 듬직하게 믿는 마음이 곧 그런 불안감을 덮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