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0화 – 우사(雨師)의 길 1 : 우사경을 찾아
우사경을 찾아
밤바다는 다행히 잔잔한 편이었다. 현해탄의 넘실거리는 파 도 소리가 어두운 바다 위에 짙게 드리워 있었다. 그 바다 위를 한 점 불빛조차 비추지 않는 한 척의 작은 배가 거의 소리를 내 지 않고 조용히 항해하고 있었다. 그 배는 일본을 오가는 밀항선 이었다. 근래 들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밀항선은 몇 척씩 일본을 오고 가곤 했다. 그리고 그 배의 가장 깊은 밑바닥 선창의 어둠 속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한 명의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흰옷을 입고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크게 뜨고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가끔씩 선창을 오가는 선원들은 그 소년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아니, 아예 그 소년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았다.
선원들은 배 안에 감추어 둔 밀수품의 포장 상태를 확인하기 도 하고, 배를 움직이는 기관을 점검하기도 했으며, 가끔 내려와 서 술을 마시거나 야릇한 잡지를 뒤적이며 시시덕거리기도 했 다. 선원들은 벌써 선창 아래의 여러 곳을 수십 번 다녀갔지만, 소년이 앉아 있는 구석은 마치 벽이 가로막고 있기라도 한 듯, 그 누구도 그 안으로 발을 내밀려고 하지 않았다.
구석에 앉은 소년은 크게 눈을 뜬 채 그런 선원들의 움직임을 잠자코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소년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고색창연하다 못해 금방이라도 가루가 되어 와스 스 흩어질 것처럼 보이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테이프로 붙 여진 그 책의 겉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있었다.
해동감결 원전(海東鑑訣 原典)
그 책은 바로 현암이 목숨을 걸고 얻어 낸 『해동감결의 원전 이었다. 그리고 배의 구석에 앉아 있는 소년은 다름 아닌 준후였 던 것이다.
이 책이 「해동감결』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너무도 오래된 것 이라 원전 목간은 훼손되었으되, 그 내용은 이 책 한 권에만 유일 하게 온전히 옮겨져 있으니 원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떤 이 유에서건 다른 곳에 내용을 옮겨 적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유에 서도 이 책을 해동밀교 밖으로 유출하는 것을 금하며, 해동밀교내에서도 교주 이외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이 책은 풀이하여서는 안 되는 천기를 담고 있으며, 마지막 날이 올 때까지 사람들에 게 알려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 알아도 될 부분은 내가 따 로 적어 보존하니 원한다면 그것을 보라. 그러나 이 원전은 우사 경을 손에 넣기 전까지는 절대 보아서는 아니 되느니라.
해동밀교 19대 교주 법명(明)
맨 앞장의 내용이 준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원래 해동밀교 에서는 19대 교주였던 법명 선사가 「해동감결』을 썼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해동감결』의 일부분을 추려 다시 내놓았을 뿐, 정작 뒷부분은 『해동감결 원전이라 하여 따로 숨 겨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보고서야 준후는 박신부가 제주 도에서 발견한 그 글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해동감결』의 진짜 저자는 아득한 오랜 옛날, 치우천왕 시대의 우사 맥달이라는 것 도 확신했다. 그러나………………
선창을 기웃거리던 마지막 선원 한 명이 갑판으로 올라가자 준후는 술법을 풀고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금껏 준후는 도가 에서 전설적으로 전해지고 있는 장신술(藏身術)을 쓰고 있었다. 장신술은 은신술(隱身術)과는 조금 다른 수법이었다. 은신술이 몸 자체를 투명하게 만들거나 배경과 동화시켜 모습 자체를 없애는 것이라면, 장신술은 앞에 주술 막을 쳐서 벽과 같은 장애물로 막힌 것처럼 보이게 하여 몸을 숨기는 술수였다.
은신술은 엄청난 주술력의 소모가 있어야 했지만, 장신술은 비교적 힘의 소모가 적어서 오랜 시간 술수를 펼 수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한결 편리했다. 다만 장신술을 쓰는 동 안에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 준후는 책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준후는 『해동감』 원전을 펴고 뒷부분으로 장을 휙 넘겼다. 앞부분은 전부터 자신이 지니고 있던 『해동감결과 다를 것이 없 으니 볼 필요가 없었다.
준후가 보려는 것은 마지막 부분인 「불사의 장이었다. 원래 준후가 지닌 책의 「불사의 장에는 두 편의 시밖에 없었다. 그러 나 원전에는 서른 편이나 되는 시가 있었다. 그리고 법명 선사 판의 『해동감결에 있는 두 편의 시는 원전에는 없는 것이었다. 준후는 이 서른 두 편의 시들을 전혀 번역할 수 없었다. 해동감 결』 원전 「불사의 장의 서두에는 그 연유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두루마리와 책이라고만 되어 있는 두 개의 단어는 누 군가가 ‘’우사경’, ‘해동감결’’이라고 친절하게 한문 주를 달아 두 고 있었다. 법명 선사가 한 것이라고 볼 때, 이 원전이 필사된 것 은천 년 정도 된 것 같았다.
준후는 그 부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 보았다. 거기에는 한자로 다음과 같은 말이 씌어 있었다.
『해동감결』은 원래 갑골문 이전의 문자로 쓰였다. 그러나 한자가 변하면서 원래의 내용이 훼손될까 두려워한 지킴이들이 이를 신시 문자로 다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밑에도 꽤 구구절절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해동 감결과 『우사경은 다시 몇 번에 걸쳐 후대의 지킴이들이 원저 자의 의도를 중시하여 신시 문자에서 갑골문으로, 전자체 형태 로 옮겼다. 세월이 너무 지나 제대로 보존할 수가 없었던 것이 다. 형태도 목간에서 죽간으로, 다시 책이나 두루마리로 여러 번 변했다. 그런데 한자본을 만들면서 부록편이랄 수 있는 우사경 에는 후대의 가필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바로 신시 문자가 세상 에서 사라지면서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해독법이었다. 전반적 인 신시 문자 해독이라기보다는 『해동감결』을 해석할 때 특히 주 의해야 하는 핵심 부분과 단어나 명칭, 읽는 법들을 따로 기술한 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예언서이니만치 사소한 풀이 하 나도 중요했고 반드시 정확히 전해져야 해독이 가능하기 때문이 다. 또 우사경 자체가 『해동감결』의 풀이를 가능케 하는 열쇠 구실도 겸하고 있었다. 애당초 「해동감결 자체는 지킴이들도 함 부로 보아서도 해독해서도 안 되는 까다로운 물건이었기에 필사 자만이 『우사경』의 풀이를 얻어서 간신히 참조해 번역할 수 있었다. 신시 문자가 끊겼어도 읽는 법은 내려왔지만, 해동감결과 『우사의 지킴이들은 비밀 수호 때문에 그런 자들을 찾아 도움 을 청할 수도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이것을 이용하여 한자본을 만든 후에는 없애야 할 것이었다. 헌데 신시 문자가 소멸되어 읽을 사람이 점점 없어 져 갔기에 지킴이들은 정확한 내용의 전승에 확신을 얻기 위해 신시 문자 원본인 「해동감결과 『우사경』을 비밀리에 보관해 두 게 되었다. 물론 「해동감결과 우사경』은 한곳에 보관되지 않고 따로 보관되어 왔는데, 이것은 예언의 내용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허나 한자본이 있기에 큰 의미를 갖지 못하 던 이 신시 문자본 우사경은 다시 유출되어 어디로 없어졌고, 그 뒤에 원본 『해동감결의 한자본도 훼손되어 없어지면서 신시 문자본 『해동감이 중요해졌다. 당시의 지킴이는 신시 문자를 해독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따로 보존되어 있던 신시 문자본 을 그대로 전승했는데, 이때는 이미 우사이 유출되어 더 이 상 한자본을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원저자인 우사 맥달의 의도와는 달리 한자가 아닌 신시 문자로 전승되게 되었 다. 준후는 혼자 생각했다.
‘우사 맥달은 대 예언자였다고 하니, 이것도 미리 짐작했던 것 은 아닐까?’
한자본 분실이라는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것이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였다면, 원본 전수는 불가능 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 신시 문자의 정 확한 해독법까지 같이 전해지게 하려 일부러 한자로 적으라 했 다면? 그러지 않았다면 제아무리 준후라도 까다로운 예언서를 정확히 해독할 자신은 없었다. 신지 문자를 알기는 하지만, 대강 내용을 파악하는 것과 꼼꼼히 기술된 예언을 해독하는 것은 차 원이 다르니까. 이 과정에서 미리부터 조금씩 정확한 해독법이 『우사경을 통해 같이 전해져 내려오지 않았다면, 정확한 『해동 감』은 전승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진실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 대단 하다.’
준후는 한숨을 쉬며 엄청난 연륜이 쌓인 서문을 다 읽었다. 그 아래에는 원전에서 적은 듯한 문장이 신시 문자로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었다.
『우사경을 찾지 못하면 이후의 내용은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우사경』은 바로 「불사의 장」에 생명을 주는 열쇠이니, 『우사경』 의 뜻을 다르지 못하면 『해동감은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오. 「해동감이 없으면 『우사경』은 겉껍질에 불과한 것이다. 언젠 가는 「해동감결과 우사이 반드시 필요한 자의 손에 들어가 게 될 것이니 때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그것을 풀어내지 못하리라. 때가 되었다고 여긴 자는 다음의 글을 명심하기 바란다.
문은 가까이에 있으며
빗장은 먼 곳에 있도다.
세상의 반대쪽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찾을 수 없으며
세상을 구하는 빛을 보는 눈이 아니면
마지막 구함은 얻지 못하리라.
맥달
그리고 그 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추가로 씌어 있었다. 그것 은 풍백 비렴이라는 사람이 덧붙인 글귀였다. 이 원전 또한 너무 도 긴 시간을 내려오는 동안 수십 번 이상 필사되어 전해진 것이 었지만, 모든 글자가 지우고 고친 것까지 아주 세세하게 빠짐없 이 베껴서 전해진 것 같았다.
나는 맥달 님과 같은 시대를 살고 『해동감결과 『우사경』을 후 세에 전하는 일을 맡은 풍백 비렴이다. 나는 「해동감』과 『우사 경을 모두 읽었지만 심오한 뜻은 추측조차 하기 어렵다. 내가 무 지하여 아는 것은 없으나 때가 될 때까지는 결코 예언의 봉인을 떼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바, 서로 가장 멀리, 가장 반대편에 두권의 책을 떼어 놓았다. 이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신 맥달 님의 뜻이기도 하다.
예언은 오로지 한때에만 풀이될 수 있을 것이며, 그때가 되지 않고서 풀이하려 한다면 오히려 진실을 그르치게 된다. 그것을 당부하고자 내가 미진하나마 「해동감을 보고 느낀 것을 여기 에 적노라. 이는 이것을 보는 후인들이 예언의 뜻을 그르치지 말 고, 정말로 필요한 시기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기를 권하기 때문 이로다.
다음에 내가 적은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는 시기가 되기 전에는 「해동감결』과 『우사경』은 결코 풀이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 일들 이 정말로 일어날 것인지 나도 알 수 없지만, 맥달 님이 남기신 바 이니 틀림없으리라 본다. 그러니 이것을 보는 후인들은 이 모든 당부를 결코 헛되이 하지 말고, 지금 정말 그때가 되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주신의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자가 거의 하나도 남지 않을 때
사람의 색이 갈라지나 사람이 모두 같아질 때
한 사람이 자기 집에 선 채 백만 명을 죽일 수 있게 될 때
자연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들이 걸어 다니고 날아다니는 때
물이 검게 물들고 별이 떨어지며 세상이 좁아질 때
모두가 속고 모두가 속일 수 있고 모두가 속이는 때 진정으로 이르노니, 이때가 도달하지 않는다면 「해동감은 풀이되어서는 아니 된다. 후인들은 명심하라. 반드시 명심하라.
풍백 비렴, 감히 대우사(師) 맥달의 남김에 덧붙임
그 뒤에는 비렴이 쓴 또 다른 붙임 말이 달려 있었다.
진정 놀랍도다. 제아무리 긴 세월이 흐른다 하나 인간 세상에 정말 이런 일들이 벌어지리라고는 정녕 믿기지 않도다. 반만년 후를 내다본 우사 맥달의 능력은 진실로 신이(神)하다 아니할 수 없으리. 그러나 그보다는 그 때문에 목숨까지 바친 귀인의 마 음이야말로 더더욱 귀하다 아니 할 수 없느니.
준후는 힐끗 그 이후의 시들을 살펴보았다. 시들은 모두 글자 들이 뒤엉켜 있어서 조금도 해석할 수가 없었다. 맥달이 밝힌 대 로우사경을 찾지 못하는 한, 이 『해동감결 최후의 장을 해독 하는 것은 무리인 듯했다. 준후는 책을 덮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 겼다.
‘서복…………. 문제는 서복에 있다.’
준후는 서복을 떠올렸다. 조사해 본 결과, 서복은 진시황 때의 인물이었다. 천하를 제패한 진시황은 자신에게도 다가올 죽음 을 두렵게 여기고, 서복을 시켜 삼신산에서 불로초를 구해 오는 임무를 맡겼다. 또는 서복 스스로 자청했다는 설도 있다. 서복은 제(齊)나라 출신의 방사)였는데, 그가 시황제(始皇帝)에게 상소를 직접 올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삼신산을 중국 사람들은 봉래, 방장, 영주라 하였는데, 그것은 각각 금강산, 백두산, 한라산을 일컫는 말이었다.
서복은 육로를 통하지 않고 곤륜산의 고목을 베어 거대한 배 를 건조한 다음 뱃길로 여행을 떠났다. 또한 신선을 응대하기 위 한다는 명목으로 삼천 명의 동남동녀를 뽑아 동행했다. 영약을 구하는 여행치고는 준비가 너무 대단하여, 거의 작은 나라를 만 들 준비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일이 실패할 경우 진시황이 내릴 벌은 죽음뿐이었으 니, 이로 볼 때 서복에게 처음부터 돌아올 마음이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사실을 시황제도 알았을지 모 른다. 그러나 시황제는 반쯤은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반쯤은 자 신의 그러한 역량을 천하에 보인다는 의미에서 그런 행동을 했 을지도 모른다. 서복은 불로초를 찾는다기보다 시황제에게 반감 을 품고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거나, 또는 시황제의 세력을 조금 이라도 약하게 만들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도 사가(史家)들 은 해석했다.
‘어쨌거나 서복이 우리나라에 들른 것만은 틀림없다.’
서복이 대항해를 시작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서복은 가장 먼저 황해도 해주에 잠시 도달하였다가 제주도에 닿은 것 이 분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제주도에는 과거부터 서복이 왔 다 갔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 서귀포라는 지명은 서 복이 그곳에서 서쪽, 즉 중국 쪽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붙었다고 도 한다. 또 서귀포 앞바다에는 서불(徐市, 서복의 다른 이름)이 름을 새겼다는 바위도 있다. 그런 것으로 볼 때 서복이 제주도에 들렀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풍백 비렴이 『해동감결과 『우사경을 따로 떼어, 되도록 그 둘을 멀리 떨어진 곳에 보존하고자 한 결과, 「우사경은 제주도 로 갔을 것이다. 「해동감이 어떻게 돌고 돌아 해동밀교로 들 어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풍백 비렴의 후예인 좌풍주 비 직수일은 아마도 선조인 비렴의 뜻에 따라 「『우사경을 당시로서 는 가장 멀리 떨어진 땅끝인 제주도로 옮긴 듯했다. 비직수일이 그것을 제주도로 옮기기로 결정하기까지는 삼백 년이란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천 년 이상을 고요히 잠들어 있던 우사경』을 발견한 사람이 서복일 터였다.
박신부가 전한, 제주도에 서복이 남긴 글씨를 보아서도, 서복 이 사경을 얻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수천 명의 동남동녀를 이끌고 갔을 정도였으니 서복에게는 대단히 많은 부하가 있었을 것이고, 불로초를 찾기 위해 한라산과 제주도 전체를 샅샅이 뒤졌을 터였다. 그런 와중에 서복이 우사경』을 발견한 것은 당 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복은 신시 문자를 몰랐을지도 모르지만, 신시 문자는 발해 때까지도 사용된 만큼 그 수하 중 의 최소 한 명은 대강이라도 알았을 확률이 컸다. 그런데 그들은 『우사경과 비직수일이 남긴 글씨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비직수일은 우사이 죽지 않는 신비를 담고 있다고 했다. 물론 그는 『해동감결의 예언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만, 서복 은 애당초 불로초를 찾아온 만큼 그 말을 보고 눈이 뒤집혔을 것 이다.’
더구나 『우사경』은 『해동감결』 중에서도 마지막 장, 즉 「불사 의 장을 해독하는 열쇠라 했다. 아마 『우사경에도 서문이나 비 렴이 붙인 주 같은 것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불사의 장 중에 ‘불사’라는 말에 서복은 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이다.
‘그러나 해동감』의 마지막 장은 암호문처럼 뒤섞인 구조로 되어 있지 않을 거야…………. 신시 문자로 암호를 만들려면 아마도 중간중간의 글자들을 빼내어 따로 배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렇다면……..’
그렇다면 『우사경 자체로도 해독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서복은 안에 무슨 심오한 뜻이라도 담겨 있는 것으로 오해하였을 확률이 높았다.
‘서복은 진짜 불사약을 찾았다고 믿었겠지. 그러나 순순히 시 황제에게 그것을 바칠 위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누가 그런 비방 을, 더구나 그것이 진짜라면 남에게 건네줄 수 있을까?’
아무튼 서복은 배를 돌려 제주도를 떠났다. 그런데 그다음엔 어디로 간 것일까?
준후는 며칠 동안 여기저기를 뒤적인 끝에 일본의 와카야마 현(和歌山)의 신구 시(市)라는 곳과 구마노 시(熊野市)라 는 곳에 각기 서복의 무덤이 있다는 기록을 찾아냈다. 그곳을 조 사하면 무엇이라도 단서가 잡힐지 몰랐다. 아니, 그곳을 조사해 보지 않고서는 더 이상 우사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 었다.
하지만 박 신부와 현암은 모두 오랜 정양을 요하는 중상을 입 었고, 승희는 특별 수련을 하기 위해 외딴곳에 틀어박혀 있었 다. 그 때문에 준후밖에 갈 사람이 없었다. 백호가 있기는 했지 만, 그는 지난번 홍수 사건 이후로 아직 감시가 따라붙는 몸이라 만날 수조차 없었다. 백호가 마지막으로 마련해 준 위조 신분증 이 있기는 했으나 새 여권은 없었으며, 준후가 비행기나 배를 타 고 일본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또 일본 에 전해져 내려오는 서복 이야기가 과연 진실인지, 옛 기록을 보고 날조하여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확신 역시 없었다. 그렇지 만 준후는 갈 수밖에 없었다. 박 신부와 현암이 목숨을 걸고 얻 은 이 단서들을 그냥 썩힐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혈혈단신 으로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들어가는 모험을 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