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1권 13화 – 우사(雨師)의 길 4 : 이전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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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물건을 내려놓자 항삼세명왕이 칼로 준후의 등을 겨누 었고 황도인과 모 선생이 준후의 물건들을 멀찌감치 치웠다. 그런데 황도인과 모 선생은 준후가 꺼낸 부적들을 보더니 주변 은 의식조차 하지 않고 그것들을 마구 뒤적이며 자세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몇 장의 부적들은 화산파와 모산파에서조차 실 전된 지 오래된, 그들로서도 처음 보는 전설의 부적들이었던 것 이다. 비마도 그쪽으로 자꾸 눈길을 보내면서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겐조는 이제 그들에게 더 이상 관심이 없는 듯, 항삼세 명왕이 준후를 밀어서 가까이 인도하자 미소를 띠면서 유리구 앞에서 비켜섰다. 준후는 조용히 말했다.
“영원히 산다는 게 좋은 일인 줄 아나요?”
준후는 『해동감결」의 「불사의 장」이란 결코 불로장생법을 기 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이야기 해 본댔자 눈이 뒤집힌 놈들이 믿을 리도 없었고, 그랬다 간 당장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곧이곧대로 말할 수도 없 었다. 준후는 그저 악랄한 겐조가 미워 견딜 수 없어 참지 못해 한마디 한 것이다.
겐조는 대답도 하지 않고 힐끗 턱으로 유리구를 가리켰다. 준 후는 입을 다물고 유리구 안의 도자기를 천천히 보았다. 그러다 가 겐조에게 말했다.
“종이와 붓을 줘요. 나도 즉석에서 통역할 정도의 실력은 없으니……………. 종이에 적어 번역해 드리지요.”
겐조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와 펜을 주었다. 펜을 쳐다보며
준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펜에 익숙하지 않아요. 지필묵을 줘요.”
“그냥 이걸로 써도 되지 않으냐?”
“붓을 줘요. 안 그러면 난 못 써요.”
겐조는 미심쩍어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짓도 못할 것이라 생각한 듯, 잠시 후 붓과 먹물을 어디선가 찾아서 준후에 게 주었다. 그것을 받아 들고 차분히 도자기의 표면을 보면서 해 독해 나가던 준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또 한참이 지나자 이 번엔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겐조는 준후가 도대체 무 슨 이유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잠자코 준후를 바라볼 뿐 이었다. 그러자 항삼세명왕이 겐조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저 녀석・・・・・・ 보통이 아닌데, 무슨 수를 부리는 건 아닐까요?”
“보아하니 글의 내용이 평범하지 않은 것 같으니 일단은 그대 로 두지.”
“해독이 끝나면 저 녀석은 반드시 제가 없애게 해 주십시오.”
“그러지.”
겐조는 저쪽의 도인들과 비마를 힐끗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이 녀석이 풀이한 내용이 정말 타당성이 있다면 저 녀석 들도 그냥 두면 안 되겠지?”
“그렇죠…………. 허나…………… 놈들의 수가 많은데…………….”
겐조의 눈빛이 잠시 번쩍 빛났다.
“나에게 안배가 있어.”
그사이에 저편에서 황도인과 모 선생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중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 겐조와 황삼세명왕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 화산파의 황사공(功)의 공력을 응용한 부적이오. 황사공을 쓰는 자가 아직 남아 있다니………………”
황도인이 놀란 듯 말하자 모 선생도 좀 사납기는 했지만 놀란 눈길로 준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뿐이오? 이 만부원진(圓) 술법의 부적은 더욱 신묘 하오. 이것은 모산파에서 전해지던 전설의 술법…………. 아니, 오 히려 전설 이상이오.”
“우리가 비록 불사의 비결을 전해 들으러 온 것이기는 하지 만……………. 저 아이를 그냥 없애는 것은 아깝지 않겠소? 아까 슬쩍 보니 공력 또한 비범하던데…………….”
황도인이 말하자 모 선생이 눈을 빛냈다.
“아깝긴 하오. 그러나 저런 녀석을 살려 둘 수는 없지 않소? 우리가 녀석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살려 주어서 풀 어 놓는다면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나 다름없소.”
“그렇다면?”
“지금 당장 없애는 것은 아깝고 녀석이 알고 있는 비전의 술수 를 모조리 토해 내게 한 다음에 없애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소? 저 왜놈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지요.”
그 말에 황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모 선생에게 물었다.
“둘이 힘을 합해 저 녀석을 빼앗자는 거요?”
“안 될 거야 있겠소? 보시오. 우리는 이 부적들을 사용할 수 있으니 그 힘을 우리도 쓸 수 있는 셈이오. 그러니 저 녀석들과 붙어도 절대 지지는 않을 거요. 더구나 저 꼬마 녀석은 자기를 구해준다고 여기고 우리를 도우려 할 테니 얼마나 유리한 싸움 이오? 인도 녀석이 왜놈 편을 든다 해도 삼 대 삼, 충분히 승산 있소.”
그러자 황도인이 여전히 가늘게 뜬 눈으로 모 선생을 보며 말했다.
“일이 끝난 다음에 모 선생이 내 등을 찌르는 건 아닐 테죠?” 황도인의 날카로운 말에 모 선생이 놀라며 대꾸했다. “내 어찌 같은 도인에게 그런 짓을 하겠소? 우리가 왜놈이나 인도 녀석, 조선 아이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이오? 우리는 어차 피 피차 모산파와 화산파의 실전된 술법을 얻으면 그뿐이지, 서 로 해코지한다고 다른 술법을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부질없는 짓을 해서 무엇하겠소?”
“그렇다면 좋소.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것이고, 나도 쇠락 한 화산파의 흥망이 걸린 일이니 어찌 가만있겠소? 우리 힘을 합 칩시다.”
“좋소. 다만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해야 하오.”
“알았소이다.”
그러나 황도인이나 모 선생이나 둘 다 진정한 속셈은 따로 있었다. 만약 불사의 비결을 정말 알게 된다면 그걸 아는 것은 자신뿐, 다른 녀석들에겐 절대 그런 비밀을 알게 하진 않겠다는 꿍 꿍이였다. 비마는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차크라의 날 만 계속 만지작거렸다.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각각 다른 궁리를 하는 동안 준후는 줄 곧 도자기의 글자들을 들여다보면서 놀라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문득 겐조에게 물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겠어요. 당신들은 이 도자기의 내 용도 알지 못하는데, 이게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 게 안거죠?”
별것 아니라는 듯이 겐조가 하하 웃더니 대꾸했다.
“간단하다. 너・・・・・・ 오키에를 기억하지?”
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왕교 교주였던 오키에. 그 때문에 박 신부와 현암, 연희와 승희까지도 중상을 입고 죽을 뻔하지 않 았던가? 그러자 비로소 기억이 났다. 오키에가 박 신부에게 했다 는 그 말이 …………. 오키에는 『해동감』에 절대적인 힘이 담겨 있 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부른 것이었다. 신시 문자를 아는 준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말이다.
오키에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박 신부에 의해 저승으로 가 버 려, 퇴마사들은 해동감결에 있는 위대한 힘이란 것이 무엇인지 에 대해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었단 말인가. 「불사의 장」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 …………?
“그랬군요. 전에 명왕교주 오키에와 대적할 때…………… 오키에는 「해동감결에 있는 위대한 힘을 끌어내기 위해 우리를 끌어들였 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당신들은 그녀의 뒤를 이은 거군요.”
겐조가 껄껄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명왕교의 새 교주다! 이제야 눈치챘느냐?”
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겐조가 명왕교의 새 교주라니. 명왕 교는 그때 끝장난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이자가 항삼세명왕 등 의 흉악한 인사들을 불러 모아 재건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도 운은 원래 그리 강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귀자 모신만 한 사람이 이들에게 당한 것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귀자 모신도 명왕교의 일원이었으니 일단 교주가 된 겐조가 음모를 써서 제거해 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궁금한 것은 단 한 가지, 겐조의 내력이었지만 굳이 물어 볼 필요가 없다 싶었다. 준후는 거의 수수께끼가 풀리자 만사를 포기한 듯한 표정으로 서서히 종이에 한자들을 써 내려갔다. 겐조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준후의 뒤에 서서 그것을 들여 다보느라고 열심이었다. 사실 그들 모두가 그 내용이 정말 불사 의 비법을 담고 있으리라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영원히 사는 것 에 대한 조금의 단서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셈이었다. 그리고 지금 준후가 그 내용을 읽은 대로 순순히 적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혹시나 어긋나는 곳이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준후가 쓰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물론 한문으로 적당 히 번역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우사의 길은 인간의 도(道)를 위함에 있다.
인간의 도란 인간이 먹고 입고 잠자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지칭함이니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해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먹고 입고 잠자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날씨의 변화를 다 스리는 것이 우사의 큰 길이며,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의 도를 지니고 있어 서로 부딪히고 혼란됨이 생김에.
이를 하나로 엮어 그들에게 앞날을 제시하는 것이 우사의 작은 길이다.
그러나 우사의 가장 큰 길은 영원히 죽지 않는 비결을 전하는 데에 있다.
우사의 뜻을 이해하는 자, 죽음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며 우사의 길을 되밟아 걷는 자, 영원히 썩지 않고 잊히지 않으리.
풍백 비렴 남김
“이게 뭐지? 이게 다는 아니겠지?”
겐조가 준후에게 묻자 준후는 겐조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이건 서문일 뿐이죠. 차차 보세요.”
의외로 준후는 고분고분했다. 겐조는 점점 안달이 났다. 영원 히 죽지 않는 비결이라거나 죽음을 벗어날 수 있다거나 하는 말 들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준후가 그대로 옮겨 적진 않았지만 실제로 비렴이 남긴 문구는 훨씬 더 길었다.
우사의 길은 인간의 도(道)를 위함에 있다.
인간의 도란 인간이 먹고 입고 잠자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을 지칭함이니 결코 신령스럽거나 기이해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이 먹고 입고 잠자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날씨의 변화를 다 스리는 것이 우사의 큰 길이며,
수많은 인간들이 저마다의 도를 지니고 있어 서로 부딪히고 혼란됨이 생김에,
이를 하나로 엮어 그들에게 앞날을 제시하는 것이 우사의 작은 길이다.
그러나 진정한 우사는 쉽게 나오지 않는 것이니 우사의 길 또한 따라 걸어가기가 쉬운 것만은 아니리라.
나쁜 우사는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따름이니 천벌을 받을 것이며
작은 우사는 사람들보다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에 힘을 쓰니 지위가 올라갈 것이며 큰 우사는 나라를 이루면서도 사람 하나하나를 따스하게 다스 려서 이름이 영원히 남으며 가장 큰 우사는 지금의 사람만이 아니라 먼 훗날의 사람마저도 위하고 아끼는 법이어서 오히려 아무도 그가 있었음조차도 모르 기를 바란다.
우리가 운이 좋아 가장 큰 우사를 얻었으나 그 우사는 먼 훗날의 알지도 못하는 후손을 위해 천기를 누설
하고 스스로의 꽃 같은 생명을 버렸으니 이보다 바른 우사의 길은 아무도 걸을 수 없으리.
우사의 뜻을 이해하는 자,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며 우사의 길을 되밟아 걷는 자,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라
풍백 비렴 남김
이 내용대로라면 우사의 길이란 것이 결코 불로장생의 비법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준후는 그 내용을 빼놓고 쓸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우사였던 맥달의 말이 너무나 놀라운 내용 이어서 그대로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준후가 다시 붓을 놀리자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 우사 맥달이 적는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을 겪고 다시 태어나기 이전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나
나는 지금 아래에 글을 적어 커다란 죄를 짓는다.
비록 내 목숨은 이것으로 인해 없어질지언정 누군가 큰일을 할 자가 있어 이것으로 생명을 연장하리라.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방법은 없으며 영원히 사는 것은 차라리 고통과 저주일 뿐이다.
다만 죽음을 미루고 미루어 뜻을 이룰 때까지 살 수 있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불사의 의미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후세에 이것을 보는 이는 이 뜻을 잘 새기어 결코 사리사욕을 위해서 이 술수를 사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실제로 아주 영원히 사는 비법이 존 재한다고는 믿지 않았다. 다만 조금이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 는 장생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도자기의 내용을 보니 자못 진솔하고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이렇게 하면 영원히 산다’는 식의 문구를 적었다면 이들은 되레 믿지 않고 도자기를 깨어 버리거나 준 후를 윽박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조에 간곡하고 자못 깊은 뜻이 담긴 것을 보니, 거짓말이거나 허무맹랑한 말 같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 말에 공감하며 점점 그 내용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사람의 생명은 호흡을 함으로써 이어지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니
짧게는 태어나고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숨의 조절에 있으니
팔다리의 힘이 아닌 마음의 힘을 믿고
빈틈없이 행하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하나의 도형이 있었다. 준후는 도형을 도자기에서 베낀 다음 종이에 그렸는데, 사람들이 보기에 그 도형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듯했으나 보고 있자니 돌연 이상한 기분이 느껴 졌다.
밀교의 술수를 수행한 겐조와 항삼세명왕은 등줄기가 시큰해 지며 근지럽고도 시원한 기운이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황도인과 모 선생은 단전에서부터 갑자기 가느다란 기운이 솟 구쳐서 몇 개의 혈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마 역시 뭔가 느껴지는 듯 놀란 눈을 깜박였다. 그들은 혹시 무슨 술수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여 조심스레 각자 몸의 이곳저 곳을 말없이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다음에는 호흡법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이 부분에 이르 자겐조 등과 황도인 등은 서로 속셈을 감추고 잠시 이야기를 나 누었다. 그 호흡법은 밀교의 것도, 도교의 것도, 힌두교의 것도 아 니었다. 그러나 법술과 공력에 일가견이 있는 그들이 아무리 보 아도 거기에 적힌 호흡법과 전신의 기 흐름을 나타낸 방식은 결 코 허무맹랑한 것은 아닐 듯했다. 아무리 천재라도 준후가 그런 내용을 즉석에서 지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서 그들은 저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그 호흡법의 내용 대로 조심스레 경계하며 기를 돌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 졌다. 온몸이 상쾌해지면서 사지에 힘이 넘쳐나며 단 몇 번의 호 흡을 했을 뿐이었는데도 법력이나 공력이 크게 증진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도대체가 믿어지지 않는 신기한 일이었다.
‘정말 신기하다. 이러한 술수가 세상에 있을 줄이야………! 그 렇다면 이 방법으로 오랜 세월 계속 수련을 하면 불로장생할 수 도 있겠다. 몇 번 호흡을 한 것만으로도 몸의 힘이 이토록 넘쳐 나는데, 오랜 기간 수련을 한다면 불로장생까지는 안 되더라도 세상에 적수가 없어지고 불가능이 없어지겠다!’
이는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특히 호흡을 위주로 하는 도가계열의 황도인과 모 선생은 더더욱 기뻐했다.
그다음 부분은 손의 기를 운행시켜서 힘을 얻는 것이 씌어 있었다.
이것은 무드라, 즉 수인(手印)과 비슷한 것이라 이번에는 비마 나 겐조, 항삼세명왕이 더더욱 기뻐했다. 황 도인이나 모 선생은 수인은 잘 몰랐지만 그런 대로 조금씩 따라해 보자 역시 기운이 가득해지고 알 수 없었던 신묘한 기운까지도 차오르는 것이 느 껴졌다. 음흉한 겐조는 그때까지 이런 생각도 했었다.
‘요 꼬마 녀석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모든 것을 알았을 테니, 녀석이 먼저 이 방법대로 수련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들이 합해도 못 당할 정도가 되는 것은 아닐까?’
겐조가 이번의 손을 움직이는 무드라의 수련을 하니 또 법력 이 증가되며 신묘한 기운까지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 까부터 지켜보았지만 준후는 글씨를 쓰느라 손 같은 건 전혀 놀 리지 못하는 것 같으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부분은 기의 운행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보자 겐조 는 더더욱 안심했다. 전 단계에서 무드라를 수련하지 않으면 이 기의 운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흉한 겐조와 모 선생은 위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항삼세명왕과 황 도인, 그 리고 비마가 먼저 수련을 하고 기쁜 얼굴빛이 되었을 때 비로소 수련에 들어갔다. 이미 그들의 법력과 공력은 처음보다 두 배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준후가 글을 쓰는 시간이 자못 오래 걸렸다고는 하나, 그래도 불과 서너 시간 만에 공력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굉장한 일 이었다. 모 선생이나 겐조는 이러다간 별안간 주화입마라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은근히 신경을 썼지만, 그런 일 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이건 정말 하늘의 신 선들이나 할 것 같은 기상천외한 수련법이었다.
단시간에 얻어지는 힘이 점점 강해지자 그들은 거의 경쟁적으 로 수련을 해댔다. 이렇게 급속하게 힘이 얻어진다면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상대방이 더더욱 강해져서, 혹시라도 상대가 다른 마음을 품었을 경우 그냥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모 선생이 황도인의 귀를 잡아당기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물었다.
“황도인, 화산파에 자미주천법(紫薇周天法)*이라는 술수가 있 다고 하는데, 그것을 아시오?”
황도인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모 선생의 얼굴을 보고 고개 를 끄덕였다. 사실 자미주천법은 이름은 거창했지만, 단순한 기 체조와 같은 연마법에 불과했지 무슨 힘이나 위력을 가진 법술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 선생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항삼세명왕은 준후의 등 뒤로 무기를 겨누고, 준후가 조금이 라도 서툰 수작을 부리면 팔이라도 하나 잘라 낼 각오를 하고 있 었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은근하게 수련을 해 나갔다.
준후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치 무엇엔가 도취된 듯 계 속 글을 적어 내려갔다. 다섯 번째 단계에 다다르자 준후는 우선 다음과 같은 말을 옮겼다.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단계는 급히 시행할 수 없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준후는 이상야릇한 도형과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 을 종이에 써 내려갔다. 겐조가 히죽 미소를 지으며 준후에게 말 했다.
“잘한다. 착하다, 착해. 계속 적어야 한다. 그래야만 해.”
겐조는 팔짱을 끼고 그때까지도 입고 있던 긴 여자 옷소매 속 에 손을 넣은 채 모 선생과 황도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황도 인도 히죽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 순간, 겐조의 소맷자락이 꿈틀하면서 요란한 소리가 터져 나왔고, 미소를 짓던 황도인의 몸이 휘청거렸다. 겐조가 황도인에게 총을 쏜 것이다.
*소설 내용 전개상 창작한 가상의 술수. 도가의 호흡법 가운데 하나로 설정되어 있다.
그 다음 순간, 모 선생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놀라운 속도로 부적 한 장을 허공에 던졌다. 그러고는 곧바로 합장을 하 며 손과 발을 딱 붙였다. 겐조는 모 선생에게도 총구를 돌렸으나 모 선생이 발을 탁 딛는 순간,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겐조 만이 아니라 항삼세명왕과 비마, 그리고 준마저도 몸이 딱 굳 어 버린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
겐조가 놀라며 일본말로 중얼거렸다. 모 선생은 그 말을 알아 들은 것 같지는 않았으나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건 석화(化術)*이다. 흐흐… 네놈들은 날 과소평가 했구나. 난 모산파의 일개 도사일 뿐이지만…………… 여러 가지를 알 고 있지.”
겐조는 식은땀을 흘렸다. 겐조 등 다섯 명의 사람들은 모두가 준후의 주술과 법력을 막을 수 있는 범자와 부적의 옷을 입고 있 었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 스스로의 술법도 피차간 에 통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겐조는 권총을 준비해 가지고 있다 가 준후를 해결한 뒤, 다른 자들까지 없앨 작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모 선생이 준후의 우보법과 흡사하지만 근본이 다른 석화술이라는 수법을 써서 모든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석화술은 준후의 우보법과 비슷한 원리였으나, 본래 남 방묘족(苗)의 샤먼 주술의 일종이라서 도가의 부적으로는 방 어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이 주술은 상대의 몸을 돌같이 굳힐 수 있었지만 말까지 못하게 만드는 힘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리 고우보법과 마찬가지로, 이 수법을 쓰면 자신도 움직일 수가 없 었다. 모 선생은 몸이 굳은 채 총을 맞아 숨만 헐떡거리는 황도 인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소설 내용 전개상 창작한 가상의 술수. 우보법과 비슷하게 사람의 몸을 굳혀 움 직이지 못하게 하는 술수로 설정되어 있다.
“황선생! 선생은 이 주술을 풀 수 있소! 아까 내가 말한 술법 을 응용하면 이 주술은 풀리오! 힘을 내어 저놈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시오!”
황도인은 곧 힘을 어떻게 운기하는가 싶더니 흐음 소리를 냈 다. 황도인은 팔다리가 굳은 상태에서 풀리자 총을 맞은 가슴을 움켜쥐며 헐떡거렸다.
“나………… 나는…………. 이미 중…… 중상이오…………….”
“원수를 갚아야 할 것 아니오! 아이 하나만 빼고 저놈들을 모 조리 없애 버리시오!”
그러면서 모 선생은 음침한 눈빛으로 겐조를 보며 웃었다. 모 선생의 간계는 실로 지독한 것이었다. 모 선생은 겐조의 속셈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일부러 황 도인을 끌어다 겐조와 자신 사이 에 서게끔 머리를 굴린 것이다. 그래야 만일의 경우에 황도인이 자신의 방패가 되어 줄 테니까. 예상대로 과연 겐조가 흉심을 드러내어 일단 가까운 황도인에게 총질을 했다. 그러자 모 선생도 준비했던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다.
겐조나 항삼세명왕, 비마는 당연히 도가의 술수를 알 리 없었 으며, 자미주천법이란 것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그러니 모 선 생에게 남은 것은 죽어 가는 황도인이 스스로의 원한에 못 이겨 준후만 빼고 남은 자들을 모조리 없애고 죽어 주는 것뿐이었다. 모 선생은 공력이 강한 황도인이 권총 한두 발로는 단번에 죽 을 리 없다는 것까지도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석화술을 펼치느라 꼼짝할 수 없었지만, 준후 혼자만 남게 된다면 몸을 움 직일 수는 있을 터였다. 그러면 죽은 겐조의 권총을 가지고 얼마 든지 준후를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도인이 모 선 생을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다・・・・・・ 당신은…… 그럼 처…… 처음부터 …………….”
그 말에 모 선생은 조금 당황하여 얼버무리듯, 짐짓 비분강개한듯 외쳤다.
“나는 대비를 했던 것뿐이오. 어서 원수를 갚으시오! 당신은 개죽음을 당하고 싶소?”
“원수………… 원수…………”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황 도인은 쿨럭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떨어뜨린 도목검을 집어 휘두르자 나무 칼날이 쑥 빠져나가고 그 안에 감추어져 있던 아주 가느다란 칼이 나왔 다. 황도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어서 악만 남은 듯, 흉악한 표 정을 지으며 비틀거리며 겐조에게 다가갔다. 겐조의 얼굴이 하 얗게 질렸고, 황도인이 칼을 쥔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악…..”
황도인이 들고 있던 칼을 미처 내려치지도 못한 채 앞으로 쓰 러져 버리고 말았다. 황도인의 칼은 겐조 앞을 스치며 지나가서 땅에 떨어졌고, 그의 등에는 날카로운 슈리켄이 두 개나 꽂혀 있 었다.
“어엇!”
이번에는 모 선생이 하얗게 질리면서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이 건물 안에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단 말인가? 눈을 돌린 모 선생 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슈리켄을 던진 사람은 놀랍게도 조금 전에 죽음을 당한 하꾸 운이 아닌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어나 변장을 찢어 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준후마저도 깜짝 놀랐다. 그는 팔대 명왕중의 하나였던 금강야차명왕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과거 명왕교의 팔대 명왕 중 항삼세명왕, 군다리명왕, 금강야 차명왕은 귀자모신이나 대위덕명왕 등과 달리, 끝까지 사악한 교주였던 오키에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준후 일행과 싸워 참패했다. 군다리명왕은 월향검에 양손이 잘려 폐인이 되었 고, 항삼세명왕은 준후의 뇌전에 맞아 참혹한 몰골이 되고 말았 다. 그때 이인 일조였던 금강야차명왕은 도망쳤는데, 그중의 한 명이 하꾸운으로 변장해 있었던 것이다. 금강야차명왕은 본래 둘이 하나로 뭉쳐서 싸우는 까닭에 혼자만 있을 경우에는 그 기 운이 드러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준후는 물론 치밀한 모 선생까 지도 깜박 속아 넘어간 것이다.
금강야차명왕은 한 명만 왔고 혼자서는 주술을 부릴 수 없다 해도 슈리켄을 던지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한 다들 그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까닭에, 아무도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쓰러져 있던 곳은 모두가 있던 장소와 좀 멀리 떨어진 곳이라, 모 선생도 거기까지는 석화술을 부리지 않 았던 것이다.
모 선생은 다급히 석화술을 풀었다. 지금은 자신도 꼼짝할 수 가 없는 처지이니, 금강야차명왕이 슈리켄을 던지기만 하면 자 신은 속절없이 당할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금강야차명왕까지 사정에 넣어서 석화술을 부리려 했으나, 겐조는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총을 쏘았다. 모 선생은 결사적으로 몸을 굴려 권총을 피 하면서 겐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항삼세명왕이 재빨리 모 선생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항삼세명왕도 싸움에 끼고 싶었지 만 준후의 등에 칼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에 발밖에 쓸 수가 없었다.
허덕거리며 쓰러지는 모 선생을 향해 겐조가 다시 권총을 겨 누는 순간, 비마가 느닷없이 겐조에게 달려들었다. 비마는 겐조 가 황도인을 죽이는 것을 보고, 그다음은 분명 자기 차례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비마의 차크라가 휙 하고 휘둘러졌다. 비 마의 차크라도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쨍하는 쇳소리와 함께 차크 라의 날이 권총에 푹 파고들었다. 겐조는 권총을 쏠 수 없게 되 자 차크라가 박힌 총을 비틀어 그것을 가지려 했다. 그러나 모 선생이 엎어진 채 겐조의 몸을 잡아당기면서 겐조는 균형을 잃 고 말았다. 이때 금강야차명왕의 슈리켄이 비마의 팔목에 맞았 다. 비마는 비명을 지르며 차크라를 놓쳤고, 차크라는 겐조의 권 총과 함께 땅에 떨어져 버렸다. 금강야차명왕이 다시 슈리켄 던지려 하자, 비마는 눈을 부릅뜨고 주문을 외우며 자기 팔에서 솟아나는 피를 뿌렸다. 그러자 금강야차명왕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락타비쟈*!”
비마가 뿌린 피는 곧 생물처럼 공중에 엉기면서 금강야차명왕에게 달려들었다. 그 피가 마치 아메바처럼 금강야차명왕을 덮 치자 긴 비명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두 사람이 뭉쳐야 비로소 주술을 쓸 수 있는 금강야차명왕은 혼자 나와 연극을 하느라 주 술을 막는 방어구도 지니고 있지 못했다. 너무나 허무하게, 그리 고 끔찍하게도 금강야차명왕의 몸은 우드득 소리와 함께 뒤틀리 고 꺾어져서 순식간에 즉사하고 말았다.
* 락타비쟈는 힌두교의 설화에 나오는 악마로, 피를 근본으로 하는 일종의 괴물 이다. 락타비쟈는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면 피 한 방울 한 방울이 다른 락타비쟈 로 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골치 아픈 괴물을 처치한 것은 칼리 여신인데, 칼리는 락타비자와 그 분신들을 단번에 삼켜 버려서 처치했다고 전해진다.
죽어버린 금강야차명왕의 몸에서 피가 솟구치자 무서운 피의 괴물 락타비쟈는 더더욱 커져 겐조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 항삼세명왕이 준후의 등에 무기를 들이댄 자세로 주문을 외웠 다. 그의 특기인 덴구(天狗)*를 불러낸 것이다.
소환된 네 마리의 덴구와 락타비쟈의 대결, 곧 괴물끼리 처절 한 싸움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비마와 겐조, 모 선생 셋이 엎 치락뒤치락하면서 목불인견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차피 세 명의 주술은 서로에게 통하지 않았고 비마는 차크라를 놓쳤으며 겐조는 총을 잃었다. 그리고 모 선생은 원래 무기 대신 주술을 적은 헝겊을 사용했기 때문에 변변한 무기가 없었다.
* 원래 일본 신화에 나오는 덴구는 개의 형상이 아니다. 덴구는 아직도 일본에서 는 인기 있는 도깨비의 일종으로서, 코가 몹시 큰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 다. 그래서 중세 시대 정도에 표류해 온 서양인이 모델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덴구는 개 모습의 소환 괴물로만 묘사되며, 이름을 전설에 나 오는 덴구로 붙인 것일 뿐 실제 전설상의 덴구는 아니다.
형세로 보면 겐조 하나에 비마와 모 선생 둘이 싸우는 판이었 다. 그런데 갑자기 겐조가 품에서 낚싯대 같은 것을 꺼내더니 마 구 휘두르며 기선을 제압해 나갔다. 덕분에 비마와 모 선생은 모 두 얼굴과 온몸이 날카로운 낚싯대로 긁혀 피 칠갑이 되었으나, 쓰러지면 곧바로 죽음을 당한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겐조에게 덤 벼들었다.
또 한편에선 락타비쟈와 덴구들이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으나 항삼세명왕은 준후를 경계하느라 이 상황을 구경만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조용히 붓만 놀리던 준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후의 얼굴은 혐오감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겐조의 싸움에만 신경 을 쓰고 있던 항삼세명왕이 깜짝 놀라 준후를 칼로 위협하려 했 으나, 준후는 빙글 몸을 돌리며 수형도(手刀)의 수법으로 칼날 을 내리쳤다. 쨍강 소리와 동시에 항삼세명왕의 칼이 꺾여 버렸 다. 다음 순간, 준후는 그림과 도형을 그리던 종이를 잡아 파르 륵 소리와 함께 항삼세명왕에게 덧씌웠다.
“어어!”
항삼세명왕은 그 종이가 바로 그 기막힌 수련법을 적은 것이 라 감히 찢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순간 종이가 허공에서 불타 올랐다. 종이 한 장을 태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 난 불길이 솟구쳐 오르면서 항삼세명왕의 전신으로 옮겨 붙었다.
“으…… 으악! 뭐야!”
항삼세명왕이 놀라서 팔을 마구 휘저으며 뒤로 물러서는 순 간, 준후는 양팔을 뻗고 손가락을 쭉 폈다. 그러자 불길은 휘르 르 열두 갈래로 갈라져 준후의 손가락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고 뒹굴면서 싸우던 겐조와 비마, 모 선생도 그 광경을 보았 으나 서로 얽힌 판이라 금방 무슨 수를 쓸 수가 없었다. 다시 준 후는 양 손가락을 모두 꼿꼿이 세우면서 앞으로 쭉 내뻗었다. 준 후의 손가락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이 불꽃, 바람과 더불어 뻗어 나와 뒹굴고 있던 세 사람을 덮쳐 갔다.
“이………… 이게 무슨 술수냐!”
겐조는 대경실색하며 수인을 맺으려고 했지만 팔이 모 선생의 손에 잡혀 맺을 수 없었다. 비마도 무슨 수를 쓰려 했지만 겐조 에게 깔린 상태였다. 모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순간적으 로, 준후의 술수가 자신들이 입은 범자와 도형들에 의해 막힐지 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열한 줄기의 불과 연기와 바람 등의 서로 다른 기운이 세 사 람을 정통으로 맞혔다. 셋은 동시에 째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면 서 저쪽 벽까지 밀려나서 박혔다. 얼마나 심하게 부딪혔는지 두 툼한 벽에 금이 갈 정도였다. 세 사람은 삽시간에 증진된 엄청난 공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처 대응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서 떨어지면서 뻗어 버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준후는 마음 속으로 소리쳤다.
‘상준이 형! 잘 보세요! 십이지신술이에요!’
준수가 쓴 것은 주기 선생 상준이 전해 준 십이지신술이었다. 준후는 놈들이 서로 싸우는 사이, 종이에 십이지번의 도형을 적 어서 십이지번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에 태운 다음 열 손가락에 흡수하여 깃발 대신 손가락을 휘둘러 십이지신술을 펼친 것이다.
사실 준후와 주기 선생이 원래 지니고 있는 법력 자체는 서로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을 만큼 달랐지만, 온갖 주술에 능하고 영 특한 준후는 순식간에 주기 선생의 수법을 응용하여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했다.
쓰러진 자들을 냉정한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준후는 침을 뱉었 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되자 이제 남은 것은 항삼세명왕뿐이었다. 준후는 획 몸을 돌려 항삼세명왕을 향해 십이지번의 술수 중 남겨 놓았던 자번의 술수를 썼다. 자번은 십이지신술 중 최강의 술수였 으며, 수백 개의 작은 기운이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가하는 술수 였다.
준후는 지금의 항삼세명왕을 제압하는 데는 그 정도 힘이면 충분하리라 보고, 자번의 술수를 쓰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준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번의 기운이 항삼세명왕을 향해 쏘아졌지만 그에 앞서 달려든 물체들이 있었다. 방금 전에 항삼세명왕이 불러냈던 덴구들이었다.
‘아차!’
비마가 쓰러지자 자연히 락타비쟈도 기운을 잃고 사라졌다. 그러자 남은 덴구들이 항삼세명왕을 보호하기 위해 달려든 것이 다. 자번의 기운은 몹시 강했으나 항삼세명왕의 사면을 덴구들 이 에워싸자 번번한 타격을 주지 못한 채 그대로 폭발해 버렸다. 네 마리의 덴구들도 사라져 버렸지만 항삼세명왕은 멀쩡한 모습 으로 급히 몸을 일으켰다. 십이지번이 탈 때 일어난 불길로 인해 그는 또다시 화상을 입어 안 그래도 추악하던 용모가 더욱 추악 해졌으나, 그보다 더 추악해 보이는 건 그의 표정이었다.
“이・・・・・・ 이 조센징・・・・・・ 꼬마!! 나를…………… 두…… 두 번이나…….”
준후는 주춤 뒤로 물러서면서 힘을 끌어 올려 수인을 맺었다. 순간, 푸른 뇌전이 항삼세명왕의 몸에 날아들었으나 그 기운은 그만 그 앞에서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급한 나머지 준후는 항삼세명왕도 주술을 막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항삼세명왕은 소리를 지르면서 뒤에 세워 두었던 막대기를 주워 들었다. 그는 선장을 쓰던 수법으로 능숙하게 봉을 빙빙 돌리면 서 준후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그때 준후가 외쳤다.
“잠깐! 나를 해치면 오 단계와 육 단계의 수법은 익히지 못해! 그래도 좋은가?”
그 외침에 항삼세명왕이 준후의 머리를 내리치려던 막대기를 멈추어 세웠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보다도 그의 탐욕에 가득 찬 눈동자가 역겨워서 준후는 욕지기가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입 을 꼭 다물고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 없이 항삼세명왕을 쳐다보 았다.
항삼세명왕은 흐흐하는 웃음소리를 내더니 막대기를 휘둘렀 다. 막대기는 퍽퍽 소리와 함께 준후의 오른팔과 오른손, 왼팔과 왼손을 무지막지하게 때렸다. 몇 군데가 삽시간에 부러지고 탈 골되자 준후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데굴데굴 몸을 굴렀다. 다 시 항삼세명왕이 흐흐하고 웃으며 말했다.
“꼬마……………. 당분간 수인을 맺지 못할 거다. 또 수작을 부리면 용서 없다. 알겠지?”
준후는 억지로 고통을 참으며 매서운 눈초리로 항삼세명왕을 바라보았으나 결국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항삼세명왕이 막대기를 높이 들고 달려가서 쓰러져 있던 겐조의 머리를 한 방에 내리치는 것 이 아닌가. 준후는 너무도 참혹한 모습에 악 비명을 질렀으나 겐 조의 머리는 깨지는 수박마냥 퍽 소리를 냈다. 곧이어 항삼세명 왕의 미친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으하하하! 나 혼자다! 그 힘을 얻는 건 나 혼자만이다! 겐조 놈! 교주라고 우쭐댔지? 꼴좋다!”
이번에는 비마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그러나 머리가 단단 했던 듯, 한 번에 깨지지 않자 항삼세명왕은 대여섯 번이나 퍽퍽 소리를 내며 미친 듯이 막대기를 휘둘러 비마의 머리를 그야말 로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준후는 더 이상 보지 못하고 구 역질을 하면서 몸을 구부렸다. 항삼세명왕은 준후에게 외쳤다.
“히히히! 꼬마! 얼른 해라! 안그러면 이 꼴로 만들어 줄 테다!”
그리고 모 선생의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아까 쓰러졌던 황도인과 친구였다던 금강야차명왕의 시체마저 도 막대기질을 하여 안 그래도 참혹한 시체를 더 끔찍하게 만들 었다. 준후는 구역질을 하면서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 역시 그대로구나…………. 맥달의 예언은…… 정 말・・・・・・ 정말로………..?’
“으헤헤! 다 죽어! 다 죽어 버리란 말야!”
항삼세명왕은 이제 더 이상 죽일 사람이 없는데도 미친 듯 여 기저기를 헤매면서 시체에 매질을 했다. 그의 눈은 이미 뒤집혔 고 노란 기운마저 비쳐 보였다. 앞에 쓰러졌던 세 명을 때릴 때 까지는 그래도 멀쩡한 것 같았는데, 지금 이토록 시체에 매질을 하고 발작하는 것을 보니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주화입 마에 빠진 것이다.
항삼세명왕은 쓰러진 준후에게로 비틀거리며 걸어와 준후마 저도 내리치려 했다.
준후는 눈물만 흘릴 뿐, 항삼세명왕의 행동을 알아차린 건지 아닌지 눈도 뜨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항삼세명왕은 준후의 머리를 노리고 막대기를 쳐들다가 갑자기 입과 코, 귀와 눈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고는 막대기를 쳐든 자세 그대로 뒤로 쓰 러져서 죽어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