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4권 10화 – 하르마게돈 4 : 불안한 출발
불안한 출발
현암이 비행기 안에서 곤경에 처하고, 박 신부 일행은 그런 사 실도 모른 채 인도로 향하고 있을 즈음, 아라와 준호는 뜻하지 않은 기이한 일을 겪고 있었다.
박신부는 인도로 향하면서 아이들을 두고 갈 것을 결심했다. 「해동감결」의 예언대로라면 아라와 준호, 수아 등의 아이들도 무 언가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머나먼 타국까지 아이들을 데 리고 가서 위험에 맞닥뜨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 에는 현암과 준후가 빠졌더라도 박 신부, 승희, 성난큰곰, 윌리 엄스 신부, 이반 교수, 로파무드에 바이올렛까지 동행하는 것이 니 이쪽의 인원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황달지 교수도 내용의 해독을 위해 동행을 자청했다(사실 황달지 교수는 아직도 누군가가 자신을 노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동행을 자청한 것이었지만). 더군다나 이번 일은 『해동감 결에 언급된 예언을 따른다기보다는 고반다라는 정체불명의 악 인을 상대하는 것이니 굳이 아이들까지 같이 갈 필요가 있겠느 냐는 것이 박 신부의 생각이었다.
박 신부는 가급적 연희도 떼어 놓고 가고 싶었지만 이번만큼 은 연희도 물러서지 않았다. 인도로 가는 길에 통역할 사람이 없 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 연희의 주장이었다. 박 신부는 로파무 드가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했고, 연희가 가면 누가 수아를 돌보아 주느냐고도 했지만 연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래서 아라와 준호는 졸지에 수아를 돌보면서 한국에 남게 되 었다.
허나 박 신부는 다른 집단들이 굳이 아이들을 노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어 왔던 점토판 건도 모두 일단락 지 어졌으니 말이다.
준호는 조금 마음이 들떴다가 같이 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이내 침울해졌지만 아라의 속셈은 달랐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 으면 행여 준후가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 기쁘기까지 했다. 아 라와 준호는 번갈아 수아를 돌보면서 임시 거처로 삼은 호텔 방 을 비우지 않고 지켰다.
그런데 박 신부 일행이 밤 비행기로 떠난 바로 다음 날, 예기치 않게 그들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때마침 함께 있던 아라와 준호 는 달려 나가 문을 열었다. 준후가 온 것이 아닌가 했기 때문이 다. 그런데 문밖에는 난데없는 한 무리의 스님들이 서 있었다.
“누구・・・・・・시죠?”
아라는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으나 준호는 예리한 눈빛으로 그 들을 살펴보았다. 문밖에는 모두 다섯 승려들이 서 있었는데, 한 명은 체구가 아담하고 젊었지만 다른 네 사람은 상당히 큰 체구 의 중년 승려들이었다. 그리고 가만 보니 그들의 뒤편에는 자그 마한 비구니 한 명도 서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스님들……?”
그때 젊고 잘생긴 승려가 웃는 얼굴로 합장을 해 보이더니 아라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에 현암 시주라고 계시지 않나요?”
“예?”
아라와 준호는 단박에 경계심을 보였다. 그러자 그 승려는 다 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제 법명은 승현이라고 합니다만…………. 아마 제 법명을 전해 주시면 기억하실 겁니다.”
그 승려는 과거 초치검 사건 때 만난 적이 있는 승현 사미였 다. 이제는 그 작던 사미승도 나이를 먹어 젊은 비구승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뒤에 서 있는, 체구가 장대한 네 명 의 승려들은 증장(增長), 광목(目), 지국(國), 다문(多聞)의 사천왕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만치에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는 비구니는 무련이라는 법명을 받은 과거의 여검사 현정 이었다.
그러나 아라와 준호가 그들을 알 리 없었다.
“전 모르겠는데요. 그리고 그런 사람 없어요.”
일단 무엇인가 수상쩍다고 생각한 준호는 딱 잡아뗐다. 그러 자승현 화상은 다시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요. 여기 계실 줄 알았는데, 그러면 박 신부님은 계십니까?”
“그런 사람 없다니까요!”
아라가 뒤쪽에서 대뜸 앙칼지게 쏘아붙이는데도 승현 화상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시는 준후 시주의 예전 모습하고 너무 비슷하군요. 나 도 하마터면 준후 시주라고 말할 뻔했어요. 그러나 아니겠죠? 허 허, 나도 컸는데 준후 시주라고 안 컸을 리 없고.”
‘준후 오빨 아세요?’
아라는 그 말이 바로 목까지 차올라 “준……”이라고 말하는 순간, 준호가 발을 꽉 밟아 다행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 나승현 화상은 다 알아들었는지 웃으며 말했다.
“준후 시주도 물론 다 압니다. 이번에 온 것도 사실 준후 시주때문이에요.”
“그런 사람 몰라요. 그리고 그런 사람 없다는데도요!”
준호는 아무래도 의심스러워서 짐짓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며 문을 닫아 버리려 했으나 승현 화상이 재빨리 문을 잡았다. “다 알고 온 겁니다. 분명 여기에 있다는 메모를 보았는데요?”
“메모라뇨?”
“왜 있잖습니까? 그…………… 아지트로 쓰던 배에 남긴 메모 말입 니다.”
과거 현암은 도혜 선사가 입적할 때 승현 화상과 사천왕을 통 해 연락받은 바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현암 일행의 아지트를 알 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어떤 연유 때문에 그 아지트를 방 문했는데 아지트에는 박 신부가 행여 준후가 돌아올까 봐 남겨 놓은 메모가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보고 이 호텔을 찾아왔던 것 이다.
승현 화상이 찬찬히 그간의 과정을 설명하자 아라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지만 준호는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을 지우지 않았 다. 그런데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광목 화상이 나서서 승현 화상 에게 말했다.
“여기는 이 아이들밖에 없는 듯하군. 저 안쪽에 꼬마가 하나 있고.”
광목 화상은 ‘광목(目)’이라는 법명 그대로 오감이 상당히 발달한 사람이라 문밖에서도 문 안쪽에 어떤 사람이 몇 명 있는 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그 말에 승현 화상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 거사님이 잘못 아신 거란 말입니까?”
“그럴 리야 있겠는가?”
“허나…… 난 거사님이 말씀하신 것이 현암 시주일 거라 생각했는데요. 현암 시주가 없다면… 대체………….”
승현 화상이 조금 당황한 듯 말끝을 흐리자 무련 비구니가 나섰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과 인연이 있는가 보죠.”
“예?”
승현 화상은 의외라는 듯 짧게 내뱉었지만, 그보다 더 의외인 것은 아라와 준호였다. 이 화상들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비구니가 나서서 하는 말을 더더욱 뜻밖이었다.
“거사님이 틀리실 리가 없습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분명하다고 믿습니다.”
“이 아이들 중 누군가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 중 누구를 데리고 가야 한단 말입니까?”
“확인할 길이 없으니 다 데리고 가야죠.”
승현 화상과 무련 비구니가 서로 합장을 해 보이며 아무렇지 도 않게 자신들을 데려간다고 하자 준호와 아라는 얼이 빠졌다.
“가만……………. 누가 같이 간댔어요? 난 갈 수 없단 말이에요!” 그때 방 저쪽에서 혼자 부스럭거리던 수아가 쪼르르 달려 나왔다.
“뭐야?”
그러자 승현 화상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꼬마까지 있는걸요?”
“일단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도 없으니………….”
그러더니 갑자기 무련 비구니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 른 동작으로 수아를 낚아채려 했다. 순간 준호는 깜짝 놀라 본능 적으로 택견의 수법을 써서 무련 비구니의 손을 막으려 했다.
허나 무련 비구니의 손은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준호의 방어를 피해 수아 쪽으로 뻗어 나갔다. 다급한 나머지 준호는 있는 힘을 다해 반격했지만 비구니의 손은 척척척 세 번의 공격을 가볍게 받아넘기고는 수아를 덥석 안아 올렸다. 그녀는 그러면서도 전 혀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제법이구나, 그 나이에..”
기이하게도 무련 비구니가 안아 올리는데도 수아는 눈만 동그 랗게 뜨고 있을 뿐, 저항하거나 발버둥치지 않았다. 게다가 수아를 지키고 있을 정령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악인들 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이대로 수아를 빼앗길 수는 없는 참이라 준호는 다시 용을 쓰면서 무련 비구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귀신 같은 몸놀림으로 스르르 뒤로 빠져나가고, 대신 거대한 체구의 증장 화상이 준호 앞을 막아섰다.
“꼬마야 같이 가자꾸나. 절대로 너희를 해롭게 하려는 게 아 니야.”
그사이에 준호는 자기보다 압도적으로 덩치가 큰 증장 화상의 정강이를 발로 냅다 걷어찼다. 틀림없이 준호가 정통으로 맞혔 을 텐데도 마치 바위 덩어리나 담벼락을 찬 듯 오히려 자신의 발 이 찌릿하니 아플 뿐, 증장 화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급기야 준호는 독한 마음을 품고 아직 약하나마 오행술의 수 법을 손에 모았다. 그러자 이내 자그마한 불덩어리가 이글거리 며 준호의 손에 맺혀 갔다.
그것을 본 여섯 승려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 굴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의기양양해진 준호가 외쳤다.
“당장! 그 애를 안 내려놓으면 전부 불고기가 될 줄 알아!” 솔직히 준호의 오행술 실력으로는 사람을 크게 해칠 정도의 불을 뿜어낼 수 없었지만, 준호는 허풍을 놓았다. 그러나 여섯 승려가 놀란 것은 준호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준후 말고도 그나이에 그런 술수를 쓸 수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여전히 의문을 품고서 이번에는 다문화상이 나섰다.
“너, 어린 나이에 대단하구나. 그러나 그런 술수는 함부로 쓰 는 것이 아니란다. 좀 더 공부가 깊어지면 몰라도………..”
그러나 준호는 이미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오행의 불길을 다문화상을 향해 날렸다. 그러나 다문 화상이 손바닥을 털어 내 자 불길은 그의 손바닥에 잡혀 맥없이 꺼져 버렸다.
“약한 술수를 함부로 쓰면 오히려 네 명만 재촉할 뿐이란다. 보통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강한 상대를 만났을 때 섣불리 수를 쓰는 것은 되레 그들을 경계하게 만들거든. 알겠느냐, 꼬마야?”
타이르는 듯 자상하게 말하면서도 다문화상은 덩치와 어울리 지 않는 무섭게 빠른 동작으로 어느새 준호를 덥석 들어서 어깨 에 둘러멨다.
그러는 사이 아라는 조요경을 움켜쥐고 안간힘을 썼지만 도무 지 이놈의 호텔이라는 곳은 동물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구경하 기 힘든 곳이라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 틈에 어느새 무련 비구니가 귀신같이 다가와 아라의 어깨 부근을 한 대 살짝 쳤다. 순간, 기이하게도 아라의 몸이 돌처럼 굳어 버리고 말조차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무협 소설 에서처럼, 혈도를 짚힌 것이다.
준호는 안간힘을 쓰면서 다문화상의 운동장만큼 넓은 등판을 마구 두들겨 댔지만 아주 약간의 타격조차도 줄 수 없었고, 손만 얼얼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돌연 다문 화상의 안색이 싹 변하더니 준호를 내려 세 우고는 탁탁 어깨를 두들겨 혈도를 짚었다.
준호 역시 석상처럼 굳어지자 다문 화상은 승현 화상을 손짓 해 부르더니 준호의 손바닥을 펴 보았다.
“이게 뭔지 아는가, 사제?”
준호의 손바닥을 본 승현 화상의 눈이 커졌다. 그는 이내 눈을 비비고는 유심히 준호의 손바닥을 살폈다. 그러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이건・・・・・・ 서양에서 전해지는…………….”
승현 화상이 말을 더 잇기 전에 이번에는 광목 화상이, 아라가 몸이 굳어지면서 떨어뜨린 조요경을 집어 들고 살피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것 또한 보통 물건은 아니군. 이 아이들, 아무래도 보통이 아닌 것 같네…”
그때 수아는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수아 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그리 영악한 편이 아니라, 나이 든 스님 들이 무슨 짓을 하리라고는 여기지 않았다. 특히 이 비구니는 생 긴 것도 예쁘장하고 왠지 마음에 들어서 저항하지 않았지만, 아 라와 준호가 꽁꽁 굳어지자 수아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오빠랑 언니가 왜 그래요? 스님들, 왜 그러세요?”
수아가 묻자 무련 비구니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염려 마라. 어디 갈 곳이 있어서 그런 거란다. 가면서 차차 설 명해 줄 테니 염려 말거라.”
“어딜 가는데요?”
“높은 산에 가는 거야. 가서 아주아주 훌륭하고 멋진 할아버님 한분을 뵈러 가는 거란다.”
“할아버지요?”
“그래. 그러니 아가야, 염려 말려무나. 우린 절대 나쁜 사람들 이 아니야.”
이런 상황이라면 어린 수아로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 가 아닐 테지만, 수아는 이 언니의 미소를 보자 이상하게도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수아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었 더라면, 이 여섯 사람은 아마 크게 소동을 피워야 했을지도 몰랐 다. 그러나 수아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덩치가 가장 큰 지국 화상이 옷자락에 준호를 숨기고 다문화상이 아라를 숨겼다. 그들은 워낙 덩치가 커서 아이들을 한명씩 감추었는데도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호텔 문을 나서서 주차장에 세워 둔 커다란 차를 타고 어 디론가 달려갔다.
한편, 인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잠들어 있던 박 신부는 퍼뜩 눈을 떴다. 박 신부의 옆자리에 앉아 로파무드와 이야기를 나 누고 있던 승희는 박 신부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박 신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온몸에는 소름이 돋아 있었다.
“왜 그러세요. 신부님?”
승희의 질문에 박 신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꿈을 꾸었다.”
“무슨 꿈인데요?”
“그냥・・・・・・ 별것 아니니 신경 쓸 건 없다.”
그러더니 또다시 박 신부는 비행기 안을 둘러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다. 모두 잘 있는가 싶어서 말야.”
비행기 안에는 일행이 타고 있었다. 박 신부와 승희, 로파무드 가 있었고 건너편 자리에는 연희가 있었다. 그리고 뒷좌석에는 이반 교수와 바이올렛, 윌리엄스 신부, 그 건너편에는 성난큰곰 이 혼자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모두가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박 신부가 승희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비행기 안을 좀 살펴 주겠니? 특별한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사실 지난번 수많은 능력자들과 대면하고 아녜스 수녀의 경고 를 받은 바 있어 그들은 이제 모든 일에 조심하고 있었다. 승희 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한차례 비행기 안을 둘러보았지만 다시 한번 박 신부의 말대로 주변을 살폈다. 능력자나 주술사처럼 보 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수상쩍은 낌새를 풍 기는 사람도 없었다.
“괜찮은데요?
승희가 고개를 젓자 박 신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으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웠다.
“무슨 꿈이기에…………….”
승희의 질문에 박 신부는 약간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박 신부는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박신 부가 꿈에서 본 것은 현암과 준후와 누군지 알아볼 수 없는 몇몇 사람들이었다. 꿈의 내용이 뒤죽박죽이라 눈을 뜬 후에는 제대 로 그 내용을 기억해 낼 수 없었지만, 그 둘에게 무슨 일이 생기 고 있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박 신부는 현암에게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말하 면 괜스레 승희가 걱정할까 봐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일부러 그 녀의 관심을 돌리게 하려고 탄 비행기 안을 살피도록 한 것이었다. 박 신부는 불안한 낯빛을 보일까 싶어 눈을 감고 잠든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이상해……. 아무래도 불안하다. 현암군이나 준후….. 아니 면 우리가 아는 누군가가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 같은데……… “
박 신부가 애를 태운다고 비행기가 더 빨리 도착하는 것도, 달 리 무슨 수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박 신부는 이미 눈을 뜨 자마자 행여 현암과 연락이 될까 싶어 승희 몰래 주머니 속에서 세크메트의 눈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별일은 없을 것이 라고 애써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단 순한 위험이 닥쳤다는 것 이상의, 뭔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동 반한 불안감이었다.
‘뭔가 불안하다. 이 불안감은 도대체 뭘까? 도대체 뭘까… ‘
박신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굳은 인상을 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