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4권 11화 – 하르마게돈 5 : 죽음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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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4권 11화 – 하르마게돈 5 : 죽음의 선택


죽음의 선택

한편, 아하스 페르츠는 시켈의 손을 완전히 짓이겨 버린 뒤 싸 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세 노승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 은 여전히 무표정한 가운데 권태와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 장난 덕분에 정신이 들었군. 감사해야겠지. 밥맛없는 위 선자 놈 때문에 며칠이나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말야. 그러니 너희에게 기회를 주겠다.”

세 노승은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었으나 솔직히 지금 아하스 페르츠의 무시무시한 힘을 이길 수 있다고는 여기지 않는 듯 했 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기회를 준다는 말이 나오자 아무래도 귀 가 솔깃해지는 것 같았다.

“뭐라고?”

눈썹 긴 노승이 묻자 아하스 페르츠는 천천히 대꾸했다. 

“너희도 주술사지? 난 주술사가 싫다. 아주 싫어. 자꾸 나를 건드리고 집적거린단 말야. 다 없애 버리고 싶지만…………. 그러나 나는 공정한 사람이지. 너희가 내 정신이 돌아오게 해 줬으니, 나도 너희에게 기회를 주마.”

“어떻게 말이냐?”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너희가 그 잘난 주술로 한 번 겨루어 보 아서 한 명이 살아남으면 그놈은 못 본 걸로 해 두지.”

결국 서로 죽고 죽인 다음 한 명만 살려 주겠다는 뜻이었다. 노승은 기가 막혀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뛰어내리는 거다. 헤엄을 잘 치 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물에 빠뜨리려고 했으니 너희야말로 헤엄을 쳐야겠다. 당장.”

더더욱 기가 막히는 소리였다. 아하스 페르츠는 총알도 다 피 해가는 터이니 바다에 빠져도 죽지 않겠지만, 현암이나 노승들 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면 물에 빠지는 충격만으로도 박살 날 터였다.

“세 번째 방법은 뭐지?”

현암이 눈을 부릅뜨고 묻자 아하스 페르츠가 무표정한 얼굴로 현암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간단하지. 무조건 날 따르는 것”

“네 부하가 되라는 소리냐?”

“부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군.”

“그러면?”

“노예.”

세 노승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현암이 계속 물었다.

“만약 그렇다면, 무슨 일을 시킬 거지?”

아하스 페르츠가 짧게 말했다.

“간단하다. 서로 죽을 때까지 싸워라.”

결국 아하스 페르츠의 말은 누구도 살려 주지 않겠다는 뜻이 었다. 세 노승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음 순간, 무섭도록 빠른 동작으로 힘을 합쳤다.

노승들이 움직임을 보이는데도 아하스 페르츠는 전혀 무관심했다. 돌연 세 노승은 힘을 합쳐 보이지 않는 맹렬한 힘을 아하스페르츠에게 내뿜었다. 아까의 빛보다는 위세가 덜했지만 여 전히 굉장한 기세였다.

그래도 아하스 페르츠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 음 순간, 세 노승이 뿜어낸 무시무시한 기운은 아하스 페르츠를 빗겨 나가 비행기의 한쪽 벽을 뚫고 사라졌다. 공격에 실패하자 세 노승은 긴장된 표정을 지었으나 아하스 페르츠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서서히 입을 열었다.

“재미있군. 더.”

“너는 왜…………….”

노승들 중 한 명이 기가 막힌 듯 입을 열려고 하자 아하스 페 르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승들이 공격했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때 세 노승 중 영어를 약간 할 줄 아는 눈썹 긴 노승이 한숨 을 쉬면서 현암에게 말했다.

“할 수 없군. 젊은이, 우리를 죽이게.”

“옛?”

현암이 놀라자 노승은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 셋은 항상 같이 있었네. 우리 중 한 명만 산다면 의미가 없네. 차라리 젊은 자네가 살게.”

그 말에 현암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허나 세 노승의 합공도 소용없는 판이라면.

현암의 공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해도 그의 상대가 될 수는 없 었다. 아니, 근본적으로 그 어떤 공격으로도 맞힐 수 없다면 어 떻게 아하스 페르츠를 이길 수 있겠는가?

현암은 재빨리 머리를 짜냈다. 마지막 남은 수단을 블랙 엔젤 을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아무래도 마음에 걸 렸다.

‘내가 죽더라도 악마의 도움은 거부해야 해. 절대로 악마를 믿 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면 내가 속고 이용 당하더라도 해 보는 편이 정당하지 않을까?’

그러나 곧 현암은 생각을 바꿨다.

‘아냐. 그렇게 하면 지금 당장은 좋은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 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함이라고 해도 악한 수단 을 쓴다는 것은 옳지 않다. 그건 많은 사람을 구한다는 핑계로 한사람을 죽이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 없어.’

이내 또 다른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라면………… 해 봐야 하지 않 을까? 모르겠다. 도대체 어느 편이 맞는 것일까? 어느 편이 옳은 길일까?’

결국 현암은 최종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일단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자. 세상의 운명이니 뭐니 해도, 나는 인간일 뿐이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나 와 같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것 아니었던가. 속아서는 안 된다. 세상의 운명이 걸렸다는 핑계로 우쭐한 마음에 빠져서 는 안 된다.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과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크 게 다를 바가 없다.’

그때 아하스 페르츠가 한쪽 손을 휙 내밀었다. 그러자 기절해 쓰러져 있던 마하의 몸이 아파스 페르츠에게 끌려가기 시작 했다.

현암은 마하딥의 몸을 잡고 버티려 했지만, 보이지 않는 기운 이 현암의 몸을 왈칵 떠밀었다. 공력이 있었다면 버틸 수도 있었 겠지만 지금의 현암은 그저 보기 흉하게 데굴데굴 뒤로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굴러가는 것뿐만 아니라 엄청난 타격까 지 받아 입에서 피를 뿜었다.

마하딥이 아하스 페르츠의 앞까지 끌려가자 아하스 페르츠는 마하의 손을 꾹 밟으면서 말했다.

“셋 중의 하나를 고르든지, 내 발에 밟히든지. 이놈을 밟으려 면 오 분 정도 걸릴 테니 잘 선택해 봐라.”

그때 현암이 간신히 소리쳤다.

“죽・・・・・・ 죽이지 마라! 결정을…………… 내릴………… 때까지만이라도・・・・・・ “

아하스 페르츠는 고개를 저었다.

“이놈은 안 돼.”

아하스 페르츠는 마하의 왼손부터 천천히 밟아 으깼다. 마 하딥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구멍투성이가 된 비행기 안에 가득 울려 퍼졌다. 마하딥은 소리만 지를 뿐, 저항하거나 몸을 피하지도 못했다.

더 이상 현암은 망설일 수가 없어 크게 소리쳤다.

“멈춰!”

그러나 아하스 페르츠가 현암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현암 은 다급히 마음속으로 블랙 엔젤을 불렀다.

막 마하의 얼굴을 밟으려던 아하스 페르츠는 갑자기 대단히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현암 쪽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그때, 조용 히 서 있던 백호가 고개를 돌려 아하스 페르츠를 바라보았다. 백 호의 몸이 검은 안개로 뒤덮이더니 어느새 여섯 쌍의 검은 날개 가 너울거리는 블랙 엔젤의 모습으로 변했다.

블랙 엔젤은 무서운 표정으로 아하스 페르츠를 노려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아하스 페르츠는 걸음을 멈추었지만, 그 역시 험 상궂은 표정으로 블랙 엔젤을 노려보았다. 아하스 페르츠가 어 떤 식으로든 표정을 보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하스 페르츠가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하자, 블랙 엔젤은 천천 히 허공을 날아 현암의 앞을 막아서며 아하스 페르츠에게 날카 로운 시선을 보냈다. 아하스 페르츠는 흥 하고 코웃음을 한 번치더니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러고는 기절해 버린 마하딥을 잠시 외면하는 듯하더니 또다시 마하의 팔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블랙 엔젤은 대단히 불쾌한 얼굴로 서서히 몸을 돌려 현암을 쏘아보다가 이윽고 말했다.

드디어 나를 부른 건가?

현암은 조용히 블랙 엔젤에게 물었다.

‘너・・・・・・ 저자를 이길 수 있어?’

현암의 질문에 블랙 엔젤은 입을 꼭 다물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안 돼. 저자는 내가 건드릴 자가 아냐.

‘그리스도가 직접 명한 자이기 때문인가?’

말해 줄 수 없어. 네가 아니라 누군가가 나에게 목숨을 바치면서 부탁한다 해도 나는 저자를 건드릴 수 없어.

‘그가 그렇게도 강한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그건・・・・・・・

블랙 엔젤은 대답을 회피하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현암은 한숨을 내쉬면서 블랙 엔젤에게 말했다.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 테니,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밖으로, 안전한 곳으로 옮겨 줘. 물론 백호 씨도 같이’

그러면 넌?

‘난 내가 알아서 하겠다. 그러니 ….’

바보……………. 네가 그의 상대가 될 것 같아? 더구나 나한테 빚을 지고 있어. 그런데도 또 청한다고? 대가는? 네 눈이나 심장이나 뇌를 원하면 어떻게 할 거야?

‘원한다면 가져가.’

그러지 말고 내가 한 번 눈감아 줄 테니, 아까 그 고물을 내게 넘기는게 어때? 그러면……..

블랙 엔젤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암은 눈을 부릅떴다. 

‘눈을 원하면 눈을 가져가고, 심장을 원한다면 심장을 가져가 하지만 그건 안 돼.’

현암은 절대로 그것만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승희가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색한 적도 없고 승희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마음먹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승희가 준, 마음을 담은 선물을 악마 따위에게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목숨을 걸어? 정말 미친…………

블랙 엔젤은 너무도 화가 나는지 별안간 날개를 휘둘러 현암 의 뺨을 철썩철썩 후려갈겼다. 이어서 발로 현암을 걷어차기까 지했다.

아픔도 아픔이지만 블랙 엔젤이 후려칠 때마다 섬찟섬찟한 냉 기가 스며들어 견디기가 몹시 힘겨웠다. 하지만 현암은 고스란 히 얻어맞으면서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현암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진작 머리를 썼더라면 시켈과 우 사부 그리고 두 명의 용화교도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였다.

한참 현암을 두들겨 패던 블랙 엔젤이 불쑥 말했다.

좋다! 그럼 그 칼을 내. 그러면 봐주지.

블랙 엔젤은 월향검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현암은 어이없 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블랙 엔젤은 길길이 날뛰면서 현 암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어찌나 호되게 때리는지 현암의 입술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더구나 현암은 공력을 쓸 수 없으니 몸을 보호할 수도 없는 상태 였다. 이대로라면 아하스 페르츠에게 죽기 전에 블랙 엔젤에게 맞아 죽을 것 같았다. 세 노승이 불안한 눈으로 현암을 바라보았 지만, 그보다는 마하딥의 팔이 거의 다 없어져 가는 것에 더 신 경이 쓰이는 듯 했다.

블랙 엔젤은 한참이나 더 현암을 두들겨 패더니 돌연 동작을 멈추었다. 너무나도 호되게 두들겨 맞은 나머지 현암은 손가락 조차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때 블랙 엔젤이 손을 뻗자 아까 현암 이 떨어뜨린 청홍검이 휙 하고 블랙 엔젤의 손으로 날아들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지독한 놈! 지독한 놈! 때가 되면 내 손으로 박살 낼 거야! 너 같은 건 정말…………….

블랙 엔젤은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로 현암에게 욕설을 한참이나 늘어놓고는 말했다.

좋다. 그럼 이걸 대신 받아 주지. 그러니 군소리는 마라.

그러고는 블랙 엔젤은 아하스 페르츠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 갔다. 순간 아하스 페르츠는 정색을 하고 블랙 엔젤 쪽을 돌아보 았다. 블랙 엔젤과 아하스 페르츠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들 을 수는 없었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아까와는 달리 퍽 진지한 표 정이었다.

다음 순간, 블랙 엔젤이 들어 있는 백호의 몸과 세 노승, 마하 딥의 몸이 느닷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너무나도 갑자기 사라져 버려 현암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현암의 귀에 다시 블랙 엔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루어졌다.

현암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이제 죽은 것 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백호와 세 노승, 그리고 죽음의 문턱 까지 가 있던 마하딥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 했다.

아하스 페르츠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얼굴이 지독한 무표정에서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낸 기이한 표정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제 비행기 안에는 아하스 페르츠와 현암만이 남았다. 둘만 남게 되자 아하스 페르츠의 모습에서는 더욱더 위화감이 느껴졌다. 아하스 페르츠는 현암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는・・・・・・ 정말 미쳤군…………….'”

현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아하스 페르츠가 말했다.

“네가 예수라도 되나? 마지막 순간까지 착한 척인가? 정말 구 역질 나는군.”

현암은 피를 흘리며 헐떡이면서도 조용히 양손을 꼭 잡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아하스 페르츠가 빈정거렸다.

“너는 내가 지금껏 본 벌레들 중에서는 가장 강한 축에 속해 그런데도 순순히 죽겠다고? 한번 저항해 보는 건 어떻겠나?” 

그런데도 현암은 정색을 한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아 하스 페르츠가 말을 건넸다.

“나는 내 말을 지킨다. 더구나 어둠의 숙녀분이 계신 데서 첫 번째 제안을 했으니 반드시 지킨다. 그런데 아쉽게도 네가 그 기 회를 발로 차버렸어. 그러니 나는 두 번째 제안대로 너를 밖으 로 던져 버릴 거야. 아까 세 늙은이들도 비행기 밖으로 뛰어내린 것으로 생각할 테고. 알겠나?”

“너는 이제 어디로 갈 거지?”

의외로 현암이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하스 페르츠는 약간 눈썹을 찌푸리다가 대꾸했다.

“알아서 뭐할거냐?”

“인도로 가겠지? 타보트를 찾아서?”

아하스 페르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암이 다시 물었다.

“타보트는 확실히, 너에게도 위험한 물건이겠지?”

아하스 페르츠는 잠시 현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날 건드리려는 놈들은 그 누구도 용서 안 한다. 물론 너도.” 

그러면서 아하스 페르츠는 현암을 향해 손짓을 해 보였다. 순 간현암의 몸이 뭔가에 왈칵 밀려 일 미터쯤 벽 쪽으로 옮겨졌다. 아하스 페르츠가 말했다.

“너 정도라면 내 계획에 도움을 줄 수도 있겠다고 봤다. 하지 만 너는 너무 착한 척해. 너무나… 꼴 보기 싫어…………. 도대체 왜 너는 도망치지 않는 거지? 응?”

현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비록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래를 했지만, 자신만큼은 절대 로 악마의 신세를 져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현암은 결코 악마 라는 존재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일단 악마에게서 목숨의 빚 을 지면 자신이 악마의 하수인이나 마찬가지가 될 거라는 두려 움이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강했던 것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현암의 몸을 밀어냈다. 현암은 아하스 페르츠를 쳐다보면서 조용히, 또박또박 말했다.

“그・・・・・・ 더러운 힘으로 나를 건드리지 마라. 다만 네가 인도 로 간다면…………….”

“뭐?”

현암은 이상하게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으면서 한 손에는 승 희가 준 라이터, 다른 한 손에는 월향검을 잡고 한 번씩 그것들 을 쳐다본 후 품에 넣으며 말을 이었다.

“최소한 고반다나 너, 둘 중 하나는 없어지겠지.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련다.”

아하스 페르츠가 약간 고개를 갸웃하는 그 순간, 현암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비행기 밖으로 몸을 날렸다.

비행기 밖에는 찬란한 태양이 있었고, 넓게 깔린 구름이 있었 다. 구름은 온갖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현암은 기분 이 좋았다. 자유롭게 떨어지는 기분이 몹시 좋았다. 그 느낌 외 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한없이 떨어지는 기분을 만끽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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